현대 영미시 Midterm 강의 정리

2010. 10. 21. 11:37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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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펌 금합닏.


Hap (우연)

 Thomas Hardy는 초기시에서 다분히 직설적이고도 일관되게 인간과 우주에 대한 비관적 태도를 보였으므로 극는 철학적 비관주의자로 규정되어 왔다. 하느님은 인간과 자연을 창조한 후 고통받는 대지를 완전히 망각하고 방치해 버렸으므로 인간의 삶은 하느님의 섭리가 아닌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인간과 우주에 신의 섭리 같은 내재적 원리가 존재하지 않고 또 인간의 의식이나 인식행위가 명쾌하게 설명될 수 없는 변칙적 현상이라면 인간은 기쁨과 행복보다는 고통과 슬픔을 더 많이 경함하게 된다면 의식이 없는 하등동물의 상태가 오히려 더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식의 비관주의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Hap에서 그는 하느님을 어떤 의도와 목적에 따라 시인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시인의 운명에 전혀 무관심한 존재로 인식한다. 만일 하느님이 의도적으로 시인에게 고통을 가하고 있다면 시닝ㄴ은 자기보다 더 강력한 자의 횡포에 분개하면서 이를 악물과 견디거나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해 놓고는 그의 행복과 불행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존재이다. 그래서 Hardy는 그런 하느님을 지독한 우연, 주사위놀이 하는 시간, 반쯤 눈먼 운명의 신들로 규정하면서 인간과 우주에 대한 절망감을 토로했다. Hap Hardy의 비관주의가 직설적으로 표현된 시에 속한다. 그러나 그는 이 시에 표현된 생각과 감정은 단순히 순간적인 인상을 표현한 것일 뿐 자신은 진화론적 세계개선론자라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비록 이 시가 Hardy 시 중에서 최상의 작품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 표현된 생각과 감정을 단순히 어느 순간의 인상을 토로한 것으로 가볍게 처리해 버릴 수는 없을것이다.

 

In Tenebris(암흑 속에서)

 Hardy는 세상을 무의미한 행동들로 뒤범벅된 혼란스런 장소로 인식한다. 이 시기에 그의 의식은 그때까지 끊임 없이 그를 괴롭혀 온 신과 인간과 우주에 대한 모든 의혹조차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기다리는 절망적인 상태 속을 헤맨다. 제목에 나타난 암흑과 죽음의 이미지는 시편에서 인용한 라틴어 제사 내 심장 세차게 얻어맞아 풀처럼 시들었네 에서 반복되고 그것은 다시 시 전편으로 이어진다. 특히 2-3-3-2 음보로 구성된 각 연들은 그 자체로서 완결된 의미와 감정을 전달하며 각 연의 마지막 행은 첫 행의 이미지들을 다시 한번 부정하면서 굳어진 감정의 추이를 변증법적으로 전개한다. 이런 절망감의 이면에는 당시 Hardy가 탐독하던 Spencer Schopengauer 같은 비관주의 철학자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Hardy는 정체불명의 인간들 혹은 환영들이 끊임없이 자기를 따라다니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조롱한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렇나 풍자적 상황 속에서 Hardy가 인간과 우주를 비관적으로 인식했다고 해서 그것은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The Oxen (황소들)

 진화론자인 Hardy는 사물의 궁극적인 동인을 자신에게 납득시켜야 할 필요성과 함께 종교적 감성을 유지시켜야 할 필요성을 똑같이 느끼고 있다. 이 시는 전통적인 삶의 양식이 뿌리 뽑힌 현재상황과 기족교 신앙이 건재했던 과거상황을 대비시켜 과거에 대한 향수와 신앙에 대한 갈망을 노래했다. 이 시는 Hardy 시 중에서도 향수와 동경의 정감을 가장 풍부하게 보여 주는 시일 것이다. 웨쎅스지방의 전설에 의하면 크리스마스날 자정에는 소들도 그리스도에게 경배하기 위해 무릎을 굽힌다고 한다. 처음 두 연은 사그라드는 난로 가에 오손도손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는 시골사람들의 소박한 신앙공동체로 우리를 안내한다. 연장자라는 단어는 장로라는 성서적의미를 암시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날 자정에는 소들도 무릎을 굽혀 그리스도에게 경배한다고 이야기하자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모두가 그말에 절대적인 믿음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셋째 연에 오면 시점이 과거에서 현재로 바뀌면서 시인은 요즘 그런 아름다운 환상을 짤 사람은 아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걸! 하고 말한다. 따라서 처음 두 연은 행의 중간에 호흡점이 오는 법이 없이 춤추는 듯한 가벼운 리듬으로 진행되면서 약강격 음보 사이사이에 약약강격 음보를 작절히 배치하여 찬송가와 민요의 전통리듬인 민중운율을 만들어 낸다. 이 시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것은 2연 마지막 행의 그때란 단어인데 처음에는 그 의미가 크리스마스날 한밤중에 라는 뜻으로 여겨지다 곧바로 과거 그 시절에는 이란 의미로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균열이 생기면서 시의 리듬도 급변하여 3연은 시종일관 약강격과 강약격의 딱딱한 리듬으로 바뀌고 중간부분의 years 에서 깊은 호흡점이 온다.이 전까지는 경쾌한 민요조 리듬이 시종일관 시의 흐름을 주도하여 소박한 신앙공동체의 모습과 잘 어울렸으나 시점이 현대적 상황으로 이동하면서 시의 리듬은 무겁과 딱딱하고 머뭇거리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두운일치 현상에 의해 기독교 전설에 대한 의혹이 부각되면서 시의 리듬도 한층 더 무겁고 힘겨운 리듬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머뭇거림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과거의 전설을 사실로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점이 3연과 4연 사이에서 회복되면서 시의 리듬도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나 어느 정도 처음 두 연의 경쾌한 이중적 리듬으로 선회한다. 어린 시절 그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전설은 사실은 진실이 아니라 단순히 미신일 뿐임을 시의 화자는 잘 알고 있다. 기존의 신앙을 상실한 시인에게 그런 인식은 광범위한 상실감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깊은 비애감은 기억의 회상력에 의해 조절되고 그 결과 현실과 환상은 절묘하리 만치 완벽한 균형상태에 도달하고 있다.

 

In Time of The Breaking of Nations (국가들이 붕괴하는 시기에)

 상실과 박탈감에서 오는 Hardy의 비관주의는 인간의 불행을 언제나 광활한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 시는 좁은 시 공간 속에서 대단히 암시적인 방식으로 인간과 국가의 운명을 노래했다. 이 시의 역할은 스냅사진처럼 순간적으로 빛을 발하는 세개의 영상, 즉 말과 함께 힘겨운 동작으로 밭갈이하는 농부와 개미풀 더미에서 불길도 없이 타 들어가는 엷은 연기와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다. 이는 과거의 행복했던 체험은 일차 세계대전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새롭게 발굴되어 광대한 우주적 관점에서 묵시적 비전을 보여 주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배경을 이루는 노동과 사랑의 이미지들은 시의 전면에 나타난 왕조의 멸망이나 전쟁의 참상보다도 더 소중하고 더 영속적이며 연대기에 기록되지 않는 진정한 역사를 담고 있다. 파종을 앞두고 농부와 말은 반쯤 졸면서 밭의 흙을 일구고 하찮은 잡초더미는 불길도 없이 검은 연기를 내며 타 들어간다. 거대한 제국이 생겨났다가 멸망하더라도 두 연에 나타난 인간과 우주의 과정은 계속 될 것이다. 이런 디테일들은 그것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우주적 과정이라 할지라도 인간과 우주에 대한 비극의 감정을 전달하게 한다. 광활한 배경 속에서 벌어지는 현재의 역사적 사건은 그것이 아무리 견디기 어려운 우연이나 맹목적인 운명의 장난에 의해 좌우된다. 하더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건을 바라보는 거리효과에 의해 충격이 많이 완화된다. 그러한 거리감은 시인과 독자 모두에게 사건에 대한 공감과 사색을 유발하여 그 사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결국 이 시에서 Hardy는 인간을 자연에 동화시키고 인간에게 자연의 침묵과 자연의 영속적 가치를 부여했다.

 

The Song of Wandering Aengus (방랑하는 엥거스의 노래)

 Yeats는 전통신앙을 상실한 후 처음에는 낭만주의 시인들에게서 보상을 찾아나섰고 이어서 민솏ㄴ앙, 접신론, 강신술, 신플라톤주의, 스웨덴보리 신비사상, 블레이크 심지어는 마법에까지 몰두하면서 Yeats는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조직화 할 수 있는 상징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는 화금여명회와 켈트 신비회 결성을 준비하기도 했다. 이 시는 켈트의 황혼과 관련된 Yeats의 초기시다. 이 시는 개인적 체험 특히 모드 곤에 대한 열렬한 사랑, 마법과 신비학에의 몰입, 상징탐구, 켈트족의 전설과 민담에 대한 관심들을 종합적으로 잘 반영하고 있다. 이는 켈트 신비회 나름의 삶과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이자 모드 곤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들 중의 하나다. 모드 곤에 대한 사랑은 Yeats의 삶을 끊임없이 동요 속으로 몰아넣었는데 그녀와 관련된 시편들은 열렬한 사랑과 숭배에서 분과 회환과 체념의 감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어조의 편차를 보여준다. 이 시에는 시의 리듬과 구문이 회화적 리듬과 단순한 구문으로 되어 있으면서 반복구문으로 주술적 효과를 만든다. 문장구조와 리듬 못지 않게 동원된 어휘와 이미지들도 민중적 감성에 어울리는 단순 소박한 것들로 채워져있고 동시에 거기에 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암시하는 요소들이 함께 존재한다. 특히 은빛 송어는 때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촛불처럼 빛나는 눈으로 자기가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초자연적인 존재이다. 요정의 나라에서 엥거스가 사랑의 현인으로 통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희미한 빛 발하는 어떤 처녀와 은빛 송어는 사과꽃처럼 하얗게 상기된 얼굴로 얘기치 않은 순간 Yeats 앞에 나타나 긍의 마음을 사로잡고는 평생동안 삶을 동요와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던 모드곤과 중첩되고 있다. 개암나무 지팡이가 환기하는 초자연적 암시력과 함께 마지막 두행은 각각 태양원리와 태음원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 두 원리가 합쳐질 때 그것은 완점함의 연금술적 상징이 된다. 따라서 켈트의 황혼을 노래한 Yeats의 초기시들은 켈트적 소재를 매개로 세기말 시인들이 애용했던 공식화된 어휘들 장미, 창백한, 흐릿한, 잿빛, , 늙은, , 슬픔, 열정, 은빛, 희미하게 빛나는, 슬픔에 잠긴, 붉으스레 빛을 발하는 등 을 사용하여 어슴푸레한 박명의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초원적 세계에 대한 갈망을 노래했다. 또한 아일랜드 농민들의 일상적 어휘와 구문과 리듬을 되살려 아일랜드를 문화적으로 통합함으로써 노선을 달리했던 민족주의자들이 현실정치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눈 내리는 날 저녁 숲가에 서서)

 이 시는 특징짓는 일상적 억양과 음악성의 결합으로 단순히 시인의 목소리와 시의 리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비전과도 갚은 관련이 있다. 첫 연에서부터 서로 상반된 두가지 어조와 상상적 긴장이 나타나 있다. 숲에 대한 화자의 반응은 처음 3행의 느슨한 대화적 언어와 4행의 묘사적 디테일들을 상승시키는 최면적 언어에 이중성이 확립된다. 시장과 시장을 연결짓고 공동체와 문화를 증진시키는 여행길과 세속의 어떤 제한도 존재하지 않는 숲의 하얀 정적 사이의 조용하면서도 반어적인 대비 속에 나타나 있다. 이런 대비는 숲을 단순히 물질적 투자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숲 주인과 그것을 영적, 미학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화자의 다른 관점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실과 낭만의 상반된 태도는 2,3 연에도 이어진다. 이런 대비는 표현된 내용과 함께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즉 화자의 어조와 언어조직의 결과다. 퉁명스런 운동은 말과 관련된 현실적태도의 언어적 표현이다. 이는 화자를 유혹하는 편안한 수면과 죽음의 세계에 대한 언어적 등가물이다. 3연에서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고조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이행해야 할 현실적 약속과 끝까지 마무리 지어야 할 인생여정을 표현하고 있으나 동일한 구절이 두번 반복됨으로써 이상하리 만치 깊은 공명을 유발한다. 마지막에서 이 시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체험의 과정에 독자와 함께 동참토록 유도한다. 따라서 이 시에서 긴장의 상상적 해결은 갈등과 미해결의 요소들이 적절한 극적 표현을 통해 균형에 도달했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

 

Neither Out Far Nor In Deep (멀리도 깊이도 아닌)

 이 시는 삶과 우주의 신비에 대한 화자의 반응에서 비롯된 긴장과 긴장의 상상적 해결을 보여준다. 첫 연의 무료로 바라보는 느낌에서 포괄적 인식의 문제와 결부시키고 부분적으로는 주체의 시선이 영원히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에 의해 바라봄은 또 다른 차원으로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DEJS 포괄적 인식이나 우주의 실체에 대한 통찰의 가능성도 배제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무료한 상태에서 행하는 하릴 없는 행위 다음에는 환각상태에서 행하는 것처럼 비춰졌던 바라봄이 목적있는 행위로 전환시킨다. 그 결과 바라봄은 단순히 감각기관인 눈뿐만 아니라 심장과 마음까지도 작용하는 인식의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지켜보다의 의미는 대상에 대한 희망과 갈망 또는 신비나 위험등 다양한 암시력을 발휘하는 한편 이 관용어의 고어적 성격에 의해 장중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일상적이고도 방심한듯한 구절들 속에서 대위선율로 작용한다. 사람들의 갈망이나 본능적 요구는 3연의 진실이란 단어에 의해 심리적, 미학적 차원을 넘어 보다 더 보편적이고 광대한 무엇으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시인도 독자도 대답할 길 없는 현실의 맥락에서 우주의 신비는 최소화된 상태로 암시되고 있다.

 

The Road Not Taken <-김철수 비교

 노란과 단풍의 차이가 있다. 이 시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 하는데에 대한 문제를 나타낸다. 그러나 단풍이라는 것이 인생의 황홀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아쉬움과 서운함과 차이가 있다. 또한 여행과 두 길이 차이가 있다. 덤불과 잣나무가 차이가 있다. 일반 번역은 끝간 데라고 했는데 이렇게 해서 어려운 말을 써서 프로스트의 정신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2연에 위에 첫 문장에 일반변역은 시의 전체적인 리듬을 무너 뜨렸다. 한 행에 다른 것과 다르게 2문장이다. 일반번역은 시의 파격이 크다. 좀 현대적이다. 서리내린 낙엽 이라고 일반 번역은 나타내어 가끔식 의역이 짙다고 볼수 있다. 전체적으로 일반번역은 의역을 많이 했지만 좀더 젊은 층들의 입맛에 맞는 번역과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그리고 인생의 황혼 상태와 그 당시 젊을 때의 시기를 혼돈하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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