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yzeck 분석 및 대중문화 실용성

2011. 2. 28. 06:37Literatur/Deutsch

반응형

 

 

졸업논문

 

 

Woyzeck 분석 및 대중문화 실용성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박 형 락

 

 

 

 

 

 

 

 

 

 

 

 

 

 

 

 

 

 

 

 

2010 12

 

 

경북대학교

 

 

 

 

1. 서론

 Büchner Woyzeck는 실제로 당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희곡이다. 당시 많은 관심과 논란을 일으켰고 재판 과정에서 Woyzeck의 정신착란에 대한 문제로 정신감정까지 의뢰를 했을 정도다. 이러한 정신감정은 보고서로 작성되었고 이것을 기초로 하여 Büchner는 당대 사회상을 근거로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 Woyzeck에서 사회적 인간, 사회 제도 내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조명된다. BüchnerWoyzeck의 개인적 운명에 관심을 둘 뿐 아니라 그의 사회와의 관계에 관심을 둔 것이다.[1] 또한 Woyzeck는 기존 전통극의 구성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하였고 다음 세대로 이어져 나가 현대극에 영향을 크게 끼쳤다. 따라서 이 작품을 구성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여 당대 사회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무엇을 고발하였으며 지금까지 현대극에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자. 그리고 21세기부터 사실상 시작되어 이제 사회의 주역이 될 10~30 대의 문화를 고찰해보고 앞으로 희곡을 지금의 사회 분위기와 문화에 맞게 수용해나가고 적용해 나갈 수 있는 방안까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2. Woyzeck의 구성과 대중문화 비교

 1) 전통극과 현대극

 전통극을 대표 할 수 있는 비극은 기원전 7~6세기 때 유행했던 서정시 시대 이후 기원전 6~7세기에 성행하였다. 여기서 비극이라는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시학에서 나오는 시를 드라마라고 하며 그 드라마 중에서 비극을 지칭한다. 그의 시학 6장에 따르면 첫째,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둘째,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되 각종의 장식은 작품의 상이한 제 부분에 따로따로 삽입된다. 셋째,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넷째,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바로 이런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 라고 했다. 즉 시학이론은 기승전결을 통해 우울함을 극적으로 정화 작용하여 비극에서 극적이 나타나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통극이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Woyzeck 같은 현대극은 종례의 구성 잡힌 전통극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품의 줄거리가 혼잡하다. 즉 기승전결의 전통극과는 다르다. 또한 폐쇄되고 완결된 전통적인 5막의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즉 막의 구분이 없다. 설령 있다 해도 전통적인 막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대신 장면들이 자율성을 지니며, 각 장면 간에는 시간과 공간의 연관성이 약하다.[2] 낯설게 하기를 통하여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던지 몰입을 방해시켜 궁극적으로 내재된 의미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Woyzeck : Ja Andres; den Streif da über das Gras hin, da rollt Abends der Kopf, es hob ihn einmal einer auf, er meint es wär ein Igel. Drei Tag und drei Näht und er lag auf den Hobelspänen, (leise) Andres, das waren die Freimaurer, ich habs, die Freimaurer, still!

Andres : (singt) Sassen dort zwei Hasen Frassen ab das grüne, grüne Gras

Woyzeck : Still! Es geht! Was!

Andres : Frassen ab das grüne, grüne Gras Bis auf den Rasen.

Andres : (nach einer Pause) Woyzeck! Hörst dus noch?

Woyzeck : Still, Alles still, als ob wär die Wwlt tot.

Andres : Hörst du? Sie trommeln drin. Wir muwssen fort.[3]

 

 불과 20년 전 괴테의 파우스트 작품만 하더라도 고전극에 충실하였는데 영웅과 왕과 기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개성이 뚜렷하고 극적인 일을 성사시킬 수 있어 카타르시스 유발에 용이하였다. 또한 주인공이나 부수적인 인물 등 모든 인물들이 하나의 고급 언어인 운문을 사용함으로써 통일적인 문체를 이루고 있다.[4] 그러나 Woyzeck의 주인공 Woyzeck는 드라마에서 최악의 직업인물이다. Büchner의 이분법적 생각을 통해 주인공은 철저히 가난하고 철저히 수탈당하는 자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전통극의 등장인물들간의 대화들이 가끔 서로 인과관계가 없는 말을 한다. 위의 지문과 같이 Andres Woyzeck는 시종일관 동문서답을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기존 전통극처럼 대화에 따른 적절한 대답이 없이 관객들에게 낯게함을 유도하게끔 한다. 이를 통해 Woyzeck의 무슨 심리적 문제, 즉 불안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5]

청소년 문화에서의 하이퍼텍스트 또는 웹툰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형식과 무관하고 주제하고 전혀 상관 없는 사건을 내용 중간 혹은 마무리에 삽입하여 사람들에게 충격을 앗아간다. 대개 작가의 의도가 Woyzeck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사회 속에 생겨나는 문제점에 대한 한 개인이나 Woyzeck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 들이 사회에 대해 느끼는 것을 고발하고 있다. 한 예로 영화 스피드을 패러디 한 만화에서는 버스가 브레이크 고장으로 승객들이 절망에 빠질 때 한 승객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청와대로 간다!’ 라는 식으로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승전병[6]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도 스토리와는 전혀 관계없이 엉뚱하게 결말을 맺지만 이를 통해 독자들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주제를 명확하게 간파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읽게 된다.

 2) 만든 동화

원래 동화는 어린이를 주 타켓으로 하는 작품이다. 아이는 맑은 영혼에 미래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지닌 존재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동화는 꿈과 희망이 존재한다. 그러나 Grossmutter의 대화는 희망도 없는 이야기를 통해 동화자체의 목적을 뒤엎어 버렸다. 해님과 달님과 별님에 대한 이미지를 극단적으로 바꿔버리고 시민사회의 모습으로 압축시켰다. Woyzeck에 나온 이 동화에서의 주인공은 바로 불합리한 사회의 주인공이다. 이 사회는 경제, 소유 관계, 도덕, 인간 이성, 학문 등등 모든 것들이 인간을 위해 유용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양식은 이제 대중들에게 익숙해져 있어서 더욱 친숙하다. 잠깐 여기서 이러한 뒤틀어진 동화가 어떻게 대중문화에 접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1998년도 출시된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은 이젠 젊은 층의 주된 문화가 되어버렸다. 한때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사실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차츰 최근 들어서 당시 1998년도 때 즐겼던 청년들이 12년이 지나 이젠 세상의 기둥으로써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문화로써 변모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모기업의 회장 차녀가 게임대회의 스폰서로써 세계적인 규모로 유치하고 사내 동호회를 만들 정도다. 당연히 지금 대학교 문화를 보면 이젠 교우들과 어울리는 수단으로 유흥과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지금 게임이라는 산업은 이미 10~30대 초반 사이에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게임을 혁신적으로 발전 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은 ID소프트웨어의 창립 멤버인 존 카멕이다. 그는 어느 잡지를 통해게임은 포르노다.[7]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98년도 당시하프라이프라는 게임은 단순히 즐길 수 있는 게임에 스토리를 집어 넣어 플레이어에게 강한 몰입을 심어 주었다. 이 단순한 혁신 이후 게임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영화처럼 감독과 작가가 참여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몇몇 대작 게임의 경우 사회 비판하는 심오한 내용을 게임 작가가 의도적으로 다루고 있다.

독일의 유명한 게임제작회사 ‘Crytek’은 최첨단 그래픽 기술과 접목시켜 미래에 미국이 북한과 대립을 하게 되고 외계인이 나타나 서로 돕는 다는 단순한 스토리를 연출했다. 그러나 이후 수많은 네티즌들의 관심이 대중매체 속에 사실상 금기 시 되어 왔던 북한이라는 소재가 대중으로 등장하게 된 것에 초점이 맞추게 된 것이다. 이 한 예를 미루어보더라도 당연히 작가가 조금만 더 의도하고 싶은 내용을 주입하게 되면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젠 게임도 단순 프로그래밍을 떠나서 그래픽과 스토리를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그 수준은 영화 수준으로 다가서고 있다. ‘아메리칸 멕기의 엘리스의 경우이상한 나라의 엘레스를 패러디 한 게임이다. 엄청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앨리스라는 여자 아이가 이제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린 시절 동심과 현실 사이에 대한 괴리감과 말할 수 없고 금기시된 우리 삶의 솔직한 진실들에 보여지는 어린 아이의 시선 그리고 어린 시절 자신의 고양이 때문에 집에 불이나 부모님이 죽은 것에 대한 자괴감과 정신분열을 이 게임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굉장히 어려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접근 하고 이해하기 쉬운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알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독일 문학도 피해갈 수 없었다. 최근에 나온 아메리칸 멕기의 게임 시리즈 중에는 2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독일 그림형제 작품을 유저가 악마가 되어 동심의 동화를 악마가 뒤틀어 버린다.

 Woyzeck에서 나오는 만든 동화는 위에서 나오는 게임이라는 대중 문화 속에서 그 방식을 충분히 활용 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만든 동화를 가지고 Woyzeck 뿐 아니라 대중문화도 사회 비판에 대해 대중들을 작가가 좀더 이해하기 쉽게 접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Woyzeck의 경우 대중의 몰입을 방해 하려다가 오히려 만든 동화 극 중에서 대중들에게는 이해 할 수 있도록 설명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고 대중문화 특히 게임이라는 장르 특성상 여태껏 동화를 뒤 짚어 엎는 시도는 많았으나 대중의 몰입에만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상호보완만 이루어 진다면 앞으로 현대극에서나 대중 문화에서 사회를 어필 할 수 있어서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나갈 수 있을 것이다.

 

3. Woyzeck의 주제와 대중문화 비교

 1) 사회의 이분법

Woyzeck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을 보면 Hauptmann, Doktor, Professor, Tambourmajor, Unteroffizier 처럼 사람의 이름보다는 직업 즉 기능을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사용된다. 관객들에게 당대 사회의 전형성이 부여된 인물을 통해 무언가를 알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작품에서는 Büchner가 고발하려 했던 이분법적인 세계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노동하는 자와 안 하는 자로 나누게 하고 이에 극 중에서 대립하는 계층 싸움으로 이끌었다.

2000년 서울연극제의 공식초청작으로 선정되어 국내에 소개된 Josef Nadj 연출, 프랑스 국립 오를레앙 무용단의 ‘Woyzeck’ 는 단순히 언어를 신체동작으로 대체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의 텍스트에서 뽑아 낼 수 있는 모든 이미지의 정수를 상징적으로 공간화 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유행하던 춤과 연극, 마임, 마술, 서커스 등을 독특한 방법으로 결합시킨 작품을 발표하였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인물간의 이분법적 구도는 물론이고 인물간의 경계가 완전히 해체된 상태에서, 모두가 극도의 소외와 불안에 시달리는 인간군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감정이 배제된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 인간 자체를 표현하였다.[8]

 

 2) 자본주의 사회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 사회이며 강자와 약자가 정해진다. 이는 빈부 격차가 반드시 생겨날 수 밖에 없다.  Woyzeck Hauptmann과의 관계를 보면 Büchner가 바라보는 자본주의 사회를 알 수 있다. Hauptmann Woyzeck와의 말에 사실상 장난말 취급 밖에 안 한다. 하지만 Woyzeck는 생존에 매달린 면도를 하며 Hauptmann과의 대화 자체도 마찬가지다. 같은 인간이며 같은 공간과 현장 속에 있으면서 존재 양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Hauptmann 영원한 일요일의 인간이며 Woyzeck는 영원한 노동의 인간인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극단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Hauptmann Woyzeck 에게 말하는 장난말 그리고 거기에 담겨있는 도덕이야기는 사실 배경을 살펴보면 자본 즉 돈과 관계 있다.

 당시 유럽에서는 결혼을 교회에서 하는데 돈이 있어야 결혼을 한다. 교회에서 혼인허가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허가서를 받기 위해서는 수수료, 교회사용료, 예식 비와 그 외에 집을 위한 보증금도 결혼자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직장이 있거나 주택보증금을 지불할 만한 능력을 서류상 입증할 수 있어야만 했다. 이러한 혼인정책은 빈곤층의 결혼을 억제함으로써 빈민출신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아예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9] 이러한 제도는 자본이 없는 사람은 결혼을 못하게 하는 억압 정책이면 가난한 자들에게 동거를 강요하게 하는 것이다. Woyzeck Marie 의 아들은 나중에 크게 되면 결국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동거한 부모의 자식이기 때문에 시민권이 없으며 여러 가지 사회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심지어 길드나 도제제도에 참여할 수 도 없게 된다. 이는 계속 되는 악순환과 세대를 거쳐 악화를 낳게 된다.

만약 Woyzeck 구성요소에서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사회를 고발하는 배경에 가장 가까운 요소를 꼽자는 바로 이 부분이다.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 간의 차별과 파워 게임은 결국 없는 자의 패배로 끝나게 된다. 또한 이것은 인격과 직결되는 문제다[10]. 심지어 돈이 없으면 인격도 없고 이성도 없고 교육도 할 수 없는 불행한 존재로서 지금도 당대 현실 사회와 직결되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이다. Woyzeck 의 작가의 궁극적 목적은 관객에게 이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대중문화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 또는 공부하고 있고 이제 갓 사회에 진출 하는 직장인들인 10~30대 들이 즐겨 하고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매체에 Woyzeck의 사회상을 지금 현실에 맞게 수정한다면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된다. 성 역할 교차 기법을 통해 Woyzeck의 연기자를 여성으로 한다던 지 해서 의미를 좀더 발전 시킬 수도 있으며 게임 스타크래프트 2’ 처럼 거대 자본을 둘러싸고 우주 식민지에서 내전이 일어나 비참하게 생활하다가 피의 혁명을 일으켜 영웅이 되었으나 오히려 언론을 장악하고 악행을 저지르다 주동자 자신이 아닌 언론을 이용하여 민중을 영웅으로 내세우는 주인공에게 파멸을 맞게 되는 이야기를 통하는 구조[11] 처럼 Woyzeck의 암울한 사회상을 통해 유저에게 흥미와 몰입을 유발시키고 사회를 스스로 이겨낼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행동해야 하는 어려움을 통해 깨닫고 비판 할 수 있는 구조와 세계관을 청년들의 문화 속에 반영 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3) 자연과 이성

극 중에서 나오는 Ausrufer Büchner가 당시 사회와는 아주 극단적으로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동물과 이성과 사람을 통해 장난하는 말투로 핵심을 말한다. 인간과 이성을 굉장히 중시 했던 당대 사회와는 다른 방향으로 유럽전체를 뒤집는 사상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동물성과 이성 사이를 깸으로써 인간만이 이성이 아니고 교육을 중시하였다.

 

Ausrufer : Alle Erziehung, haben eine viehische Vernunft, oder vielmehr eine ganze vernünftige viehigkeit, ist kei viehdummes Individuum wie viel Person, das verehrliche Publikum abgerechnet. (mit dressiertem Pferd). Zeig dein Talent! … Sehn Sie, das Vieh ist noch Natur, unverdorbe Natur! ,,,[12]

 

 또한 Woyzeck는 사회적 동거문제로 인하여 결혼을 못한 상태인데[13] Hauptmann에 의해 도덕이 없는 존재로 낙인이 찍힌다.

 

   Hauptmann : … Woyzeck, Er hat keine Moral! Moral, das ist wenn amn moralisch ist, versteht Et. Es ist ein gutes Wort. Er hat ein Kind, Ohne den Segen den Kirche…[14]

 

 더 나아가 이러한 모습에 대해 Büchner Ausrufer 을 통해서 도덕으로 파괴된 Woyzeck와 동물과 비교했다. 교육을 받은 이성적인 동물은 자연적이지 못하여 부자연스럽고 동물로써 말로써의 정체성을 상실하였고 교육과 이성과 도덕을 박탈당한 인간은 인간으로써의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15]

 

Ausrufer : … Sehn Sie, das Vieh ist noch Natur, unverdorbe Natur! …[16]

 

Marie 에게서는 자연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에 대한 양면성에 대해 갈등이 나타나있다.

 

Marie : (allein, nach einer Pause) Ich bin doch ein schlecht Mensch. Ich könnt mich erstechen.- Ach! As Welt? Geht doch Alles zum Teufel, Mann und Weib.[17]

 

Hauptmann Doktor 사이의 대화는 서로 각각 자신들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엇을 말하는지 좀처럼 알 수 없음을 보여준다. Doktor는 의학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며 Hauptmann은 이성주의 도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 말들이 문제는 말 같지 않은 말이기 때문에 서로 대화가 자주 빗나간다. Hauptmann의 대화를 보면 양심 있고 착한 사람은 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Büchner는 이러한 이성이 허구적인 것임을 폭로하고 있다.

 

Hauptmann : Herr Doktor, die Pferde Mahen mir ganz Angst; wenn ich denke, dass die armen Bestien zu Fuss gehn müssen. Rennen Sie nicht so. Rudern Sie mit Ihrem Stock nicht so in der Luft. Sie hetzen sich ja hinter dem Todd rein. Ein gutter Mensch, der sein gutes Gewissen hat, geht nicht so schnell. Ein gutter Mensch. [18]

 

 4) 인간의 수단화

Woyzeck Doktor 사이의 관계는 실험 자와 피 실험자의 관계이다. 그런데 Doktor의 행동묘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수단화 되었음을 보여준다. 학문이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Doktor는 인간을 이용하여 자신의 학문의 목표를 실현시키려고 한다. 아주 비합리적인 행동이며 주객전도 즉 인간이 도구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Woyzeck 환청 시 Doktor가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음에 기뻐하는 장면에서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Doktor : Woyzeck Er hat die schönste aberration mentalis partialis, zweite Spezies, sehr schön ausgeprägt. Woyzeck Er kriegt Zulage. Zeite Spezies, fixe Idee, mit allgemein vernünftigem Zustand, Er ist ein interessanter Kasus, Subjekt Woyzeck Er kriegt Zulag. Halt Er sich brav. Zeig Er sei Puls! Ja.[19]

 

이러한 Doktor의 행동은 장면 18에서 Professor 로 다시 제기 된다. 학생들에게 인간을 위한 학문이 아닌 단순히 텅 빈 공론들만 늘어 놓는다. 또한 Woyzeck 이상반응에 기뻐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Professor : Wen wir nur eins von denDingen nehmen, worin sich die organische Selbstaffirmation des Göttlichen, auf einem der hohen Standpunkte manifestiert, und ihre Verhältnisse zum Raum, zur Erde, zum Planetarischen u.

Doktor : (ganz erfreut) [20]

 

Doktor 는 과학자로써 근거 없고 타당하지 못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이는 과학을 우상화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자연현상까지도 과학으로 제어한다는 것은 곧 과학우상주의이며 이처럼 성숙하지 못한 과학에 관한 이해는 과학을 비판 없이 독자적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스스로를 과학의 도구로 인식한다.[21]

 

Doktor : Nein Woyzeck, ich ärgere mich nicht, ärger ist ungesund, ist unwissenschaftlich.[22]

 

Büchner는 극에서 중심인물이 아닌 인물을 통해 사상을 내포하기도 한다. 그는 목적론적 세계를 말하기 위해 Erster Handwerksbursch 를 통해 말을 한다. 어떤 존재도 또 다른 존재에 종속되는 모습이 되어선 안 된다고 내포하고 있다.

학문뿐 아니라 삶과 도덕까지 거꾸로인 세상이다. 사실 Tambourmajor Marie와 불륜을 저질 렀기 대문에 Marie의 남편인 Woyzeck가 피해자이다. 그런데 피해자인 Woyzeck Tambourmajor에게 당하고 있다.

 

Tambourmajor : Ich bin ein Mann! (schlägt sich auf die Brust) ein Mann sag ich. Wer will was? Wer kein bsoffe Herrgott ist der lass sich von mir! Ich wollt ihm die Nas ins Arschloch prügeln. Ich will (zu Woyzeck) da [23]

 

인간을 수단적으로 생각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모습은 인간의 시체에서 마저 찾게 된다. Gerichtsdiener 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을 기능으로 본다.

 

Gerichtsdiener : Ein gutter Mord, ein ächter Mord, ein schooner Mord, so schön als man ihn nur verlangen tun kann, wir haben schon lange so ein gehabt.[24]

 

 위에 소개한 Doktor Woyzeck의 관계 그리고 Tambourmajor Woyzeck 의 관계는 인간 소외라는 측면에서 가장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지금도 사회에서 엮을 수 있다면 충분히 엮을 수 있고 대중들과 친숙한 배경을 넣어서 연출가의 목적에 맞게 적절히 변형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Woy-zecke@tv’ 에서는 미디어에 의한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다루어진다. Woyzeck 는 그의 마음씨 좋은 삼촌이 마련해준 새 주택에 입주한다. 하지만 방송극 PD인 삼촌은 그 집에 Woyzeck 몰래 카메라를 곳곳에 설치해 놓았으며 그의 사생활을 TV방송사에서 라이브 쇼로 생중계할 수 있게 계약을 맺었다. Woyzeck 과 그의 아내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은 슈터지다. 더 나아가 삼촌은 Woyzeck에게 수상한 의학 박사의 임상 실험에 참여 할 수 있게 해준다. Woyzeck은 왠지 미심쩍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이며, 그 박사의 약을 받아 매일 복용한다. 박사는 인간복제 가능성을 실험하는 아주 귀찮은 사람이다. 이 내용은 현대의 매스미디어와 유전공학이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비극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25]이렇게 다른 의도와 목적인 현대 사회 고발에 좀더 가깝게 재 구성 시킨 것이다. 이는 영화, 만화책, 게임 등 가까이 할 수 있는 요소와 주제 들이다. 따라서 청년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매체에 몰입하여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을 주인공의 불행한 서사에 대한 몰입으로 느끼게 해줄 수 있다.

 

4. 새로운 대중 문화 등장 그리고 Woyzeck

 세계에서 저명한 학자들이 초청받아 자기자신이 이루고 싶은 내용, 아이디어, 혁신적인 연구 분야를 거침없이 약 20분간 발표하는 연례 국제 컨퍼런스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단 하나다. 발표의 주제는 상관 없지만 Büchner 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발전이 가능한 내용을 발표해야만 한다. 2007년 이후 지금까지 600건이 넘는 강연이 1억 원 이상 조회되고 있다. 열린 프로젝트 이후에는 4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자기나라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다. 이전까지 사실상 가까운 일본보다 늦게 한국에서는 연세대학교와 한양대학교에서 하이퍼텍스트와 게임 같은 디지털 문화를 인문학과 함께 활용하는 시도는 간간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이번 세계적인 컨퍼런스에서 디지털 문화 중 하나인 게임은 이례적이었고 혁신적이었다. 미래 연구소의 Jane McGonigal은 게임의 역사, 게임이 인류에게 주는 다섯 가지 대가, 앞으로의 실용성을 주장했다. 2500년 전 리디아 왕국이 기근에서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주사위 게임이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현실의 고통에 도피하기 위해 현실에서 망가진 것, 현실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것을 벗어나려고 게임을 이용했다고 한다. 게임을 통해 국정의 문제를 결정하고 심지어 백성들에게도 게임에 빠지게 하여 먹을 음식이 없다는 사실 걱정 조차 없앴다고 한다. 하지만 기근이 나아지질 않았고 결국 게임 즉 웅대한 모험을 하여 새로 살아갈 곳을 인구 절반이 찾아 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사위로 선택 받은 사람들이 바로 에트루리아 사람 즉 로마 제국을 이끈 사람이었다. 이렇듯 게임이 인간에게 주는 대가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어떤 장애물에 대해 성공에 대한 합리적인 희망을 가지고 즉시 도전하려는 욕구인 즉시적 낙관주의, 둘째는 누군가와 함께 놀려면 많은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우리와 함께 시간을 부내고, 서로 같은 규칙으로 플레이 하고, 같은 목표에 가치를 두고 끝까지 함께 할 거라고 믿게 되어 튼튼한 사회 망을 엮게 한다. 한 예가 바로 우리들이 즐기는 윷놀이 정도 연상하면 되겠다. 셋째는 행복한 생산성, 넷째는 웅대한 의미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백과사전이 항목만 무려 8만을 가지고 있는 인터넷 백과사전이 있는데 이것은 단 하나의 게임에 담긴 세계관에 관한 백과사전이라는 것이다. 매월 5백만 명이 이용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즐기고 있는 게임이 단순한 임무가 아니고 어마어마한 서사시 속에 장엄한 임무가 연관되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유저 모두 스스로가 세계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고 믿게 하는 극한의 자율성을 부여 받은 희망적인 개인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연설자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미래 연구소에서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석유 고갈 문제 같이 앞으로 있을 문제를 가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임무를 부여하여 아이디어를 세우거나 세계은행에서 사회혁신을 위해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26] 이는 Woyzeck에서도 이용 할 수 있는 여러 부분이 많다. Büchner 가 당시 유행 했고 유희였던 연극을 통해서 사회상을 고발하려고 아주 혁신적인 문학 이론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관객들에게 주인공을 느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전과는 다르게 문화를 대표하게 될 게임은 Brecht의 작품 Massnahme, Der Jasager und Neinsager 처럼 관객이 그냥 관객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연출자의 의도 또는 멀티 엔딩 방식 또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면서 사회의 부조리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할 수 있는 가능 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도 높은 문화에 Woyzeck 는 기존 연극, 영화 다른 공연 문화처럼 적절히 지금 현실 상황에 적합하게 만들어 주인공 Woyzeck 처럼 끔찍한 경험과 비극을 맛보거나 자신이 직접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 할 수 있도록 구성하면 될 것이다.

 

5. 맺음말

 Woyzeck가 초연한 후 어느 덧 100년이 지난 지금 20세기에서 21세기를 훌적 넘게 되었다. 세상은 끊임없는 반동과 반동을 거듭하여 발전을 이룩하고 있고 사람들의 사상도 계속해서 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Büchner가 이야기하는 Woyzeck는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성의 현대극은 Brecht를 거쳐 지금 까지도 그 기법이 유용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연출될 당시의 사회적 문제 그리고 인간소외,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다양하게 변형되어 연출이 시도되고 있다.[27]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보이지 않은 구조 속에 이분법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악화되어 가고 있다. 이미 보이지 않은 이데올로기라는 거울 속에 비춰진 소시민은 Woyzeck 처럼 공허한 우주 속에 던져진 주사위에 불과하며 인간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살아간다. 역사는 돌고 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없는 자는 항상 없었고 있는 자는 항상 있었다. 없는 자는 끊임 없이 반동해도 결국 제자리에 머무르며 가난과 착취를 당해왔다. Woyzeck는 이 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순수한 꿈을 꾸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정의를 찾아 쫓아간다.  그러나 자본주의로부터 우리는 강요당하며 이제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 보다는 목적을 위해 일하게 될 것이고 반짝거리는 구두에다 미소를 지으며, 저 멀리 푸른 하늘 밑을 달리는 분[28]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계속되는 뫼비우스 우주 속에 우리는 그 우주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수많은 대학생들이 Büchner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제도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자세를 취하나 결국 목표는 현실로 가는 게 대다수다. 지금 자본주의 제도에 결국 굴해야지 만이 즉 Woyzeck 처럼 기존 사회와 제도에 반대하는 행동을 하여 비극 적인 삶을 피할 수 있음을 알리려는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의도가 아닐까? 대학교 4년 동안 정말 남부럽지 않은 대학교 내외에서 활동했던 순수했던 활동들이 이제 남부럽지 않은 활동 스펙으로 이용하는 나의 모습 속에 최근 들어 굉장히 관심 받고 이목이 집중되어 지고 있는 자연과학을 보면서 계속해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고발에 그쳐버리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인문학도에게 Woyzeck 는 다시 한번 나를 생각해주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러한 해결책을 Woyzeck의 구성과 주제를 통해서 다른 장르에서 또는 다른 방식으로 Woyzeck를 수정하거나 이론들을 주입하는 방법으로 생각해봤다. Herbert Read시나리오와 문학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에 대해서도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문학을 점잖고, 학문적인, 다른 말로 하자면 정확한 문법과 거창한 연설조의 말로 구사된 버림받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좋은 글의 특징을 나에게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한 마디로 말 할 수 있다. 시각적인 것, 문학을 기본적인 요소로 축소시키게 되면 결국 한 가지 목적, 즉 말로써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에 귀결된다. 단지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 마음으로 보게 하는 것. 뇌 속에 있는 스크린에다가 움직이는 사물과 사건에 투사하는 것.’[29] 이라고 한다. 이미 오래 전 오이디푸스 왕부터 호메로스’, ‘파우스트에 적용될 수 있는 문학의 정의는 사실 영화나 게임이나 하이퍼텍스트나 그에 상응한다. ‘뇌 속에 있는 스크린에다 움직이는 사물과 사건을 투사하는 것즉 문학이 말로써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란 점은 사람들이 잘 아는 일이면서도 자주 잊어버리는 사실[30]을 생각해 볼 때, 인문학을 실용적 아니 당시 Woyzeck를 썼던 작가의 의도처럼 인문 학도로써 교양과 생각의 깊이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극 중에 나오는 Doktor 와는 다르게 인간을 위해서 연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6. 참고문헌

 A Coat of Many Colors: Read: London: 1945

 Death of Salesman (1949): Arthur Miller: The Cambridge University

http://110.45.172.234/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divpage=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7140

 http://www.ted.com/talks/jane_mcgonigal_gaming_can_make_a_better_world.html

 Masters of Doom: How Two Guys Created an Empire and Transformed Pop Culture: David Kushner

 동서독 통일 이후의 보이첵공연 사 연구: 인성기

 보이첵에 나타난 하층민의 동거문화와 섹슈얼리티 : 도기숙

 뷔히너의 보이첵과 드라마 교수법 인물묘사와 창의적 작용을 중심으로 : 류시응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조명해 본 뷔히너의 보이첵’: 임호일

 새로운 연극언어를 통한 ‘Woyzeck’의 무대화: 이경미: 고려대학교

 시대와 문학 게오르크 뷔히너의 경우: 김명희

 의학적 관점으로 본 뷔히너의 보이첵연구: 김복희

 컴퓨터 게임과 문학: 최유찬: 연세대학교 출판부

 컴퓨터 게임의 이해: 최유찬: 문화과학사

 탈근대 인식론적 관점으로 본 보이첵’ – 시민 보이첵의 비극적인 삶: 장순란



[1] 김명희 : 시대와 문학 S. 283

[2] 시대와 문학 게오르크 뷔히너의 경우: 김명희 S. 284

[3] Woyzeck Lesefassung 1 Szene

[4] 시대와 문학 게오르크 뷔히너의 경우: 김명희 S. 287

[5] 류시응: 뷔히너의 보이첵과 드라마 교수법 : 인물묘사와 창의적 적용을 중심으로 S. 224

[6] 네티즌 사이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러한 스토리 방식을 지칭하는 은어

[7] David Kushner, Masters of Doom: How Two Guys Created an Empire and Transformed Pop Culture Chapter 8, p. 120.

[8] 새로운 연극언어를 통한 ‘Woyzeck’의 무대화 : 이경미 : 고려대학교

[9] 보이첵에 나타난 하층민의 동거문화와 섹슈얼리티 : 도기숙 S. 6~7

[10] 3-3) 2번째 지문

[11]http://110.45.172.234/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divpage=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7140

[12] Woyzeck Lesefassung 3 Szene

[13] 3-2)-ㄴ 참조

[14] Woyzeck Lesefassung 5 Szene

[15] Vgl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조명해 본 뷔히너의 보이첵’ : 임호일 S.26

[16] Woyzeck Lesefassung 3 Szene

[17] Woyzeck Lesefassung 4 Szene

[18] Woyzeck Lesefassung 9 Szene

[19] Woyzeck Lesefassung 8 Szene

[20] Woyzeck Lesefassung 17 Szene

[21] 의학적 관점으로 본 뷔히너의 보이첵’ : 김복희 S. 35~36

[22] Woyzeck Lesefassung 8 Szene

[23] Woyzeck Lesefassung 13 Szene

[24] Woyzeck Lesefassung 26 Szene

[25] , 서독 통일 이후의 보이첵공연사 연구 : 인성기 : 부산대 S.11

[26] http://www.ted.com/talks/jane_mcgonigal_gaming_can_make_a_better_world.html

[27] 자세한 내용은 동서독 통일 이후의 보이첵공연사 연구 : 인성기 에 있습니다.

[28] Death of Salesman (1949) : Arthur Miller : The Cambridge University S. 807 “He is a man way out there in the blü, riding on a smile and a shöshine.”

[29] A Coat of Many Colors : Read : London : 1945 S. 230~231

[30] 컴퓨터 게임과 문학 : 최유찬 : 연세대학교 출판부 S.11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