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의 선물

2011. 8. 7. 00:00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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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은 책임이며 대체불가능 성을 지니고 있다. 죽음의 자리 만큼은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종교는 선물이다. 아브라함 아들 희생과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됨을 생각해보자. 아들은 절대적 윤리로 singularity 이고 아무사람들의 경우 보편적 유리에 해당한다. 이 둘은 서로 염두해 두고 희생된다. 기독교에서의 선은 모든 것을 다주는 선물이다.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선물은 예숙의 죽음이며, 이는 좋은 선물도 아니고 나쁜 선물도 아니다. 모스의 증여론에 따르면 선물은 공짜가 없다. 항상 상호교환을 한다. 사회적 의무관계는 자발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항상 기브 앤드 테이크가 우리 사회에선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티고네에서 잘 먹고 잘 살수 있는데 절대적인 의무를 지니게 된다. 결국 이에 대답을 해야하면 또다른 법이 행해지고 유지 됨을 알 수 있다. 책임은 나의 죽음 그 자체로서 책임이다. 내 책이라고 생각안하고 생각하면서 죽음 이라는 선물을 지닌다. 이 선물은 비 개인적이고 절대적이다. 모스의 증여론에서의 데리다는 받은 만큼 반드시 줘야하는 합리적 원칙을 지닌다. 데리다의 공짜 선물은 위조 화폐다. 가지와 주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주는 사람은 부담과 위태롭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위조지폐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거지는 기쁠 것이다.이는 선물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채무의식을 지니게 될 것이다. 
 해체의 방법은 정의다. 법과 정의가 각각 실체가 되면 해체되지 않는다. 크레온의 질서는 근간해 있어야 한다. 정의에 의해서 말이다. 정의에서 기능하려면 법은 반드시 질서의 근간으로서 필요하다. 언제나 있는 어떤 정의를 바꿨다고 정말 정의로운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정의와 정의각 서로 충돌하면 그 사이 상호작용하는 것이 법이다. 타자에 대한 폭력을 초월 할 수 도 있다. 폭력을 지닌 타자라는 것 그 대면 자체인 것이다. 정의가 정의로운가에 대한 의문은 그에 대한 법의 정당성을 생각해야 한다. 애도를 투자, 회수 개념으로 생각해보자. 투자했던 리비도를 받아 거둬들이는 것 그리고 다시 다른 대상에게 리비도를 투자한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대상이 었을때 내안의 타자 에 대한 투자다.
 박카스의 여신도들에서 디오니 소스라는 새로운 신이 인정을 받으려 한다. 박카스 여신도들은 황홀경에 빠져 자기를 잃게 된다. 국가는 질서를 돌리려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처벌하러 잡으러 가게 된다. 왕은 신을 죽이러 가는데, 왕의 어머니가 사실 박카스여신도들이다. 왕의 어머니는 아들을 모르고 죽여버린다. 왜냐하면 너무 빠져서이다. 대리 불가능한 존재로서 자신이 유일한 존재로 인식하고 책임의 당위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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