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 - 그린비

2012. 2. 7. 12:04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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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를 듣고 정리한 글입니다. 
          감각적인 것은 이성과 감성이 범주화 되어 있는 상태다. 이것이 잔재 되어 있는데, 이 것을 어떻게 배분하는 가? 에 의문을 지닐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몫을 나누는가가 더 맞을 지도 모른다. 재현을 하면 민중이 개입하는게 예술이다. 그러면 서로 평가 할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를 미학적 시각으로 본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학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것 처럼 사회를 분할하는 방식과 미학을 분할 하는 방식이 유사하다. 이를 테면 청소년과 이방인과 외국인과 노동자들은 말할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재현을 통해 참여를 한다? 그러면 몫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게 정치적인 것이다.  랑시에르는 평등이라는 것은 집합적 연대라고 하였다. 재현은 모든 것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주체는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재현의 환상으로 볼 뿐이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감각적인 배분을 간섭하는 것이고 중지 시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정치를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 감각적인 것을 배분하는 좌표 및 체계로 몫을 설정해서 배분시킨다. 사회가 유지하기 위한 행동을 할 가능성을 지니는 것이다. 사물화는 현실 관계를 정확히 보지 못하고 인간과 인간을 사물로써 바라 보는 것을 말한다. 주체는 사실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의 부속품에 불과하다고 알튀세르가 말했다. 호명되면서 구성되는 주체인 것이다. 교회를 통해 신에 대해 믿으로 구성되는 주체는 폭력과 이데올로기 장치속에 구속되어 있다. 주체를 구성시키는 것은 교육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과 주권과 대의제는 서로 상호간의 근대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몫을 끊임 없이 나누는 체제로 민주주의라도 독재의 그림자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주권은 대의제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이 직접 정치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은 이데아에서 시작된다. 이데아를 모방하는 것은 현실계다. 이 현실계는 모방의 세계다. 잊혀진 이데아계를 상기하는 작업이 철학이다. 이 하부에 그림자의 세계가 있다. 문학으로 과시된다. 질서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퇴락적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는 기존 질서와 다르다. 따라서 그는 시인추방론을 주장하였다.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능동적이고 정주하지 않게 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플라톤의 시각에서는 저평가를 가져 올 수 있다. 시뮬라크르 바로 그림자다. 형상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낮고 불투명하여 형상이 없다. 이는 에이도스의 현실계와는 다르다. 시뮬라시옹의 세계를 보들리아르는 주장하였다. 원본이 없는 세계로 자본이 더 철저하게 지배되는 세상인 것이다. 아감벤은 예외상태가 우리 구조 속에서 일상적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틀을 부숴버리는 요소가 재현이다. 머리속에 있는 것을 공연이나 드라마로 현실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재현은 생각 속에 담겨져 상이 새겨지게 한다. 자신의 신재와는 다를 수 있다. 전체의 일부분의 대표성을 상만가지고 지닌다.
          근대의 대의제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생긴 것이다. 푸코는 에피스테메라는 인식소를 말한 적이 있다. 각 시대에 각 시대에 맞는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예를들어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 낭만, 리얼리즘, 자연주의,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각기 반발로 인해 쭉 내려져 온 것이다. 영웅에서 서사시로 그리고 서정시로 그리고 소설로 가면서 점점 반발로서 장르가 구축되었었다. 세계를 바라보는 선험적인 경험에 앞서있는 틀을 누구나 가지고 있고 훈련받았다라고 할 수 있다. 세익스피어는 이중 플롯을 지니고 있다. 왕중심과 저작거리 이야기가 그것이다. 동시적으로 줄거리가 지니고 있는데, 이는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 시대 그리고 계층과 통합의 과정에서 다양한 계층의 만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계급속의 계급은 자세해지고 옷의 색이나 지위도 그러할 것이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신분에 맞게 말하고 행동한다. 이게 계속해서 세부적이고 섬세하게 굴러가는게 역사였다. 결탁세력을 하사보다 월급으로 주는 방식이 왕이며 국가였다. 랑시에르는 신고전주의를 주목하였다. 예술윤리적 체제와 시학적 재현적 예술체제가 그러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적 관점을 다 도려내고 비극은 인간 행위를 모방한다고 하였다. 그는 현실있는 그대로의 틀을 중시했다. 연극은 인간행위를 모방하는 것이며 이 행위를 두고 해석한다고 했다. 이데올로기의 덧을 씌우지 않는 것이다.  신분과 문체의 분리를 이끌어 내었다. 소설의 등장은 혁명이다. 문자성은 재현의 필요조건이다. 문자로 쓰여진 것의 지위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자율성과 독립성이 없다. 예술과 정치는 분리될 수 없고 특정한 위치와 몫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에서의 공동체는 기존 질서를 뒤흔든다.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였다. 정치적인 내용을 그려서 정치적인 것이 아님을 만든다. 2차원적 그림은 투시법적이다. 단순한 표면에서 그리는 것으로 위치와 지위를 사물에게 명확히 한다. 그러나 이는 최근과는 다르다.
          민주주의에서 민주에 사용되는 데모스는 (최소한 영어단어를 생각해보라) 자신의 주장을 이것 저것 요구하는 혼란의? 상태다. 그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내가 초등학생이지만 어떤 투쟁을 한다는 것? 은 정치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어색해 한다. 그래서 내가 비록 학생이지만 이라는 말로 우리도 모르게 스스로 언급하고 정치를 한다. 내가 비론 돈은 없지만? 내가 한마디 하겠다.. 내가 비록 비전하지만? 내가 뭐라고 주장하겠다. 이런식 말이다. 그럼 진정한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인건가? 그거에 대한 고민이 바로 이 책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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