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꼽추 난쟁이’의 역사 개념에 대하여

2011. 7. 20. 00:00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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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추 난쟁이

역사 개념에 대하여

 

 

 

설명: P0000002207.jpg

 

 

 

 

 

 

 

 

 

 

 

 

 

 

 

 

 

 

 

 

교과목 : 현대미국희곡연구

담당교수 : 정병언 교수님

201180142 박형락

 

 

 

1. 들어가면서

설명: cle.jpg  스탈린과 히틀러와의 상호 불가침 조약은 벤야민에게 큰 충격을 안아 주었다. 유태인 부르주아 출신이었지만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기대고 있었던 사회주의의 대표가 자본주의의 대표와 권력으로써 손을 잡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벤야민은 파시즘을 진보이념의 부산물로 그리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자들이 순진하게도 인류의 무한한 발전에 대한 낙관적인 진보사관에 사로잡혀 결국 파시즘에 무릎을 끓을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파시즘이 승산이 있는 이유는 그 반대자들이 진보라는 이름을 하나의 역사적 규범으로 삼고 파시즘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벤야민의 눈에 진보이론의 맹신자들은 파시스트들이 아니라, 그들에 맞서 싸워야 할 막중한 임무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 앞에 굴복하고 만 사회민주주의자들로 비쳤던 것이다.[1]

벤야민은 클레의 그림을 소장하고 난 후 쭉 그 그림을 보면서 감상했다고 한다. “구원의 상징인 천사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산산히 부서지고 죽은 자가 울부짓는 그곳에 내려 앉아 재건하려고 하는 그 찰나에 살짝 떠있는 상태에서 뒤 등뒤를 보며 매우 놀라워 했다. 천국에서 불어온 폭풍이 미래를 향해 몰아 붙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무력해진 그의 눈앞에 다시 과거의 잔해더미는 하늘 높이 쌓여만 간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 폭풍을 말한다.”[2]

벤야민의 역사관 아니 어쩌면 시간관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원래 자연은 돌고 돈다. 사실상 과거, 현재, 미래가 생긴 것은 인간이 돌고 도는 이 현상들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서다. 문제는 이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정해지는데 여기서 유물론적 사관이 뒤섞인다. 모계사회 이후 사유재산이 생겨나고 그 이후 계급이 분화된다. 분명 역사는 승리자 입장에서의 역사일 것이다. 거기에 기독교 역사가 중첩된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도 생각해 보면 과거를 돌이키지 않는다. 과거는 원죄다. 우리는 현재 죄인이다. 그런데 미래에 메시아 즉 예수가 구원해준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니 당연히 미래 즉 예수만 쫓아가면 되는 거다. 따라서 역사적 상을 붙잡지 못해서 절망하는 무감각적 태만이 생겨난다. 과거를 단순히 승리자 입장에서 감정이입을 할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에 들어서도 분명 프랑스 혁명이 있었지만 왕에서 단지 부르주아로 대체될 뿐이었다. 그것을 전복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그것을 전복시키려면 절망하고 있는 그 과거를 포착해야만한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들은 승리자의 입장에서 서술 되어 있으니 당연히 주관적이다. 그런데 이 주관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벤야민은 인용을 강조했다. 인용이라는 건 자신의 연관으로부터 뛰쳐나온다는 뜻이 담겨있다”. 벤야민에게서 인용은 역사주의자들에게서의 서사와 같이 단순히 있었던 것의 재생산이라기 보다, 비평, 번역, 미메시스 등 그의 다른 문예이론적 개념들과 마찬가지고 오히려 재생산 속에서의 독특성, 개성의 창조와 연결되어 있다.[3]

벤야민은 유대인이 었다. 그래서 메시아적 사관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적인 시간관은 분명 미래를 구원의 존재로서 기다릴 것이고 미래를 향해 달려갈것이다. 미래에서 행복을 찾을 것이다. 마치 미래의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상상에 대한 행복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교적 입장에서는 과거에오는지 현재에 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미 지나쳤을 수도 있고 지금시간” (독일어 : Jetztzeit -> Jetzt : now, Zeit : time) 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나타났을 수 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 아니 사랑 했던 사람과의 행복감을 떠올리는 그 기억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필자는 크리스마스날 차였다. 그래서 그 아픔은 행복한 시간 만큼이나 크다. 그러니까 나중에 이 기억들이 다음 인연에 (기약할 수 없지만..) 어떤 구원이 될 수 있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벤야민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연대기적 시간이나 역사적 연속성도 파괴되고, 그 자리에 혁명과 정지의 변증법적 종합으로서의 지금시간이 들어 선다.[4] 과거, 현재, 미래를 논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비상사태에서 구원을 위해 비상사태와 마찬가지 였던 과거에서의 절박함을 포착하고 재해석해서 계속되는 뫼비우스 띠 속에서 해쳐나가자는 말이다. 안일하게 변화한다고 기다리다가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결국 똑 같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의 큰 착각이 계급이 전복되면 공산주의세상으로 도래한다고 믿고 있지만 결국 노동자가 세상을 잡아도 결국 세상 돌아가는 어떤 무언가를 모르기 때문에 결국 또다시 구원으로서 누군가가 존재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형식을 취하는 가에 따라 내용을 달리하는 가에 중요한 것이다.[5]

 

2. 발터 벤야민

 1) 발터 벤야민에 대하여[6]

설명: imagefile(10).jpg  벤야민은 1892년 베를린의 한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때 부유한 상인이었다가 나중에는 주로 미술품, 골동품 업계에 종사하였다. 1912년 남독의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숄렘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유대교의 전통에 대한 관심을 받았다. 숄렘은 1923년 팔레스타인으로 떠나면서 벤야민도 동참하기를 원하였지만 벤야민은 거절하게 되었다. 집안의 가장이 되면서 고서적상이나 출판사의 편집인으로 생계의 근거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이러한 계획이 모두 뜻대로 되지 않게 되자 아버지의 환심과 경제적 지원을 받기위해 교수자격논문을 쓰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특유의 난해한 방법론적 성찰과 문체 때문에 벤야민은 대학으로의 길을 좌절하게 된다. 이로서 벤야민은 여기 저기 자신의 글들을 쓰는 자유기고가로써 살아야만 했다. 그러면서 지식인으로서의 프롤레탈리아로 차츰 변모하게 되었다. 1924년 브레히트와의 교류를 통해 막시즘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나치가 집권하던 1933년 봄에 벤야민은 파리고 망명하였다. 벤야민의 파리 망명시절은 그의 경제적 수단이 완전히 박탈당한 시기였다. 유일한 수입원천이었던 신문과 잡지의 기고가 정치적 사정으로 여의치 않게 되었다. 30년대 후반에 아도르노가 있는 사회문제연구소로부터 장학생의 자격으로 경제적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예속관계였다. 그의 논문은 이의가 제기되었고 연구소의 편집방향에 맞게 첨삭되어 발표되기도 했다.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 가을 벤야민은 한때 불란서 정부에 의해 독일인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그후 곧 석방되어 스페인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하려고 하였으나 국경에서 스페인 관헌에 의해 입국이 저지되자 말이 죽을 정도량의 모르핀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그는 이미 심장병을 앓고 있었으며 파리에 있는 그의 집은 이미 게슈타포가 몰수 해버렸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가 이미 나치에게 점령당한 프랑스 정부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난민들에게 출국 비자를 주지 않았다. 벤야민의 자살로 인상을 받은 국경관리인들이 벤야민과 함께한 난민들을 통과시켜주었다. 몇 주 후 프랑스 정부는 출국 비자에 대한 조치는 없었던 것으로 했다.[7]

 2) 꼽추 난쟁이

베를린 유년시절의 마지막 텍스트 꼽추 난쟁이에서 나오는 꼽추 난쟁이는 기억과 망각의 상관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 서술되고 있다. 꼽추 난쟁이의 등뒤에 난 혹처럼 망각된 것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가운데 왜곡되어 있다. 이 텍스트에서 꼽추 난쟁이는 망각된 유년의 상을 저장하고 훗날 다시 되돌려주는 수수께끼 같은 기억의 힘을 상징한다. 그 힘은 우리가 망각한 사물로부터 우리에게 던져지는 눈초리처럼 느껴진다. 벤야민은 마치 사진을 찍듯이 유년의 상을 기억의 흔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꼽추 난쟁이에게 전가한다. 베를린 유년시절에서 다룬 모든 유년시절의 인상들은 꼽추 난쟁이 시선의 작품으로 나타난다. 그 시선 속에서 연속적인 삶의 흐름은 중단되고 마치 서사극에서 중단을 통해 많은 제스쳐들이 발견되듯이 유년시절의 상들이 발견된다. 유년시절에 대한 글을 마치면서 벤야민은 이제 꼽추 난쟁이는 그의 일을 끝마쳤다고 적는다. 왜 벤야민은 자신의 유년시절 기록의 주체를 꼽추 난쟁이라는 상징적 인물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한편에서는 망각속에서 사물이 취하는 왜곡된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서 다른 한편에서는 망각된 과거에 대해 느끼는 이질감 혹은 낯섦을 표현하기 위해서다.[8]

 

3. 역사철학테제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 요약[9]

설명: kempelen.jpg 1) 벤야민은 신학과 역사적 유물론과의 관계를 장기자동기계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알레고리적 비유에 의하면 언제나 승리하는 이른바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인형은 실제로는 못생긴 꼽추 난쟁이라는 신학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여기에서 벤야민은 역사적 유물론은 신학을 자기 것으로 만듦으로써만 역사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펴고 있다.

 2) 역사적 유물론이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하는 신학적 이념은 구원과 행복이라는 이념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런데 인류의 구원과 행복은 미래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향하고 있다. 인류역사의 구원은 해방된 후손들의 이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억눌린선조들의 과거 이미지와 이러한 이미지를 관통하고 있는 희미한 메시아적 힘에 의해 이루어 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섬광처럼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는 순간적 이미지다. 역사적 유물론의 과제는 이러한 순간적 이미지를 포착하는 일이다.

 3)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를 붙잡으려는벤야민의 역사관은 19세기적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신의 이념에 비추어 보면 역사의 모든 시기는 동일한 가치와 의미, 그리고 그 나름의 특수성과 정당성을 지니며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는 모름지기 과연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기만 해야 한다는 랑케식의 역사주의는 벤야민에 의하면 단지 과거를 절대화하고 또 감정이입을 통하여 자신을 역사적 영웅들과 동일시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역사를 지배계급의 역사가 되게 한다. 따라서 역사주의는 구원의 손길과 행복을 향한 동경이 담겨 있는 진정한 과거의 이미지에 공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4) 벤야민의 역사주의비판은 또한 문화사적 역사관과 19세기적 문화개념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 벤야민에 의하면 문화유산이란 역사에서 승리한 지배계급의 전리품이고 또 이 전리품으로서의 문화개념은 역사에서 짓눌리고 패배한 자들의 고난과 구원의 몸짓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문화사는 인류의 등에 쌓이는 보화의 무게를 증가시키고 있지만 그 보화를 뒤흔들어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고 하는 힘을 우리들에게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오늘날 현존하는 예술작품은 천재들의 창조적 노력에도 힘입고 있지만 또한 이름도 없는 부역자들의 노고의 결과이기도 하다. 역자적 유물론자는 지금까지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모아온 이러한 역사주의적 문화사적 역사관과 전통적 문화개념을 마치 천의 결에 거슬러서 옷을 손질하듯 반대로 관찰해서 역사의 한결같은 지속적 흐름을 중단시켜야 하고 또 문화라는 보화의 무게를 떨쳐버려야 한다.

설명: P0000002240.jpg 5) 역사주의적 문화사적 역사관에 대한 비판이 보수주의적 진영을 겨냥하고 있다면 벤야민의 이른바 진보적 역사관에 대한 비판은 사회 민주주의와 부르주아적 좌파 지식인을 겨냥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라쌀에서 시작해서 카우츠키를 거쳐 오늘날의 사민당으로 이어지는 독일 사회민주주의 (이는 마르크스, 엥겔스, 로자룩셈부르크, 스파르타쿠스당으로 이어지는 독일 노동운동의 좌파와 대비된다.) 의 역사관은 과학과 기술의 무한한 발전에 대한 신뢰, 교양이념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이와 결부된 인류의 역사발전에 대한 미래낙관론으로 특징지어진다. 노동계급의 적극적 투쟁없이도 역사발전에 대한 미래 낙관론으로 특징지어진다. 노동계급의 적극적 투쟁없이도 역사발전의 도도한 흐름은 이미 우리편이라는 카우츠키식의 진보적 역사관을 벤야민은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이러한 진보적 역사관을 낳게 한 근본원인을 노동과 자연에 대한 이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벤야민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노동조건은 개선될 것이고 공장노동을 통해 생산될 엄청난 부는 인류를 구할 것이며 그리고 인간의 노동은 궁극적으로 노동계급의 착취가 아닌 자연의착취를 낳을 뿐이라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천진난만한견해가 기술의 발전만을 믿고 사회의 퇴행을 생각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과학, 기술, 노동, 자연 등의 개념이 한데 어울려 생겨난 19세기적진보적 역사관에 대한 벤야민의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의 세계인류가 처해 있는 상황, 즉 기술의 엄청난 발달로 인한 인류 파국의 묵시록적 위기 의식과 과학 기술이 가져다 줄 인류번영과 복지에 대한 희망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현대 인류의 분열된 의식을 앞질러 이론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 지금까지 논의된 벤야민의 역사 비판의 근거를 이루는 것은 통상적인 시간에 대한 비판이다. 역사라는 구조물을 형성하는 것은 한결같이 흘러가는 지속적 시간이나 동질적시간도 아니고 또 아무런 실체가 없는 공허한시간도 아니다. 그것은 또한 역사주의적 역사관이 생각하고 있는 연속적 시간이나 과거의 영원한 이미지도 아니고 또 사회민주주의적 역사관이 믿고 있는 미래 낙관론적 진보의 시간도 아니다. 벤야민이 생각하는 역사의 시간은 과거역사의 동질적 시간의 연속성을 폭파하는 희미한 메시아적 힘에 충만된 현재시간이고 또 미래의 낙관론적 시간을 파괴하고 언제라도 나타나 과거의 역사를 공정하게 시만할 메시아적 시간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정지된 현재의 시간 속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변증법적 역사의 시간이다. 이 정지된 현재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서 역사적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시간이고 또 역사의 진리가 섬광 처럼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는 순간적 시간이다. 벤야민에 있어 혁명의 시간은 바로 이러한 순간을 의미한다. 벤야민의 전생애를 지배해온 신학적 모티브와 정치적 보티브의 상관관계는 이러한 시간 개념에 의해 그 마지막 표현을 얻고 있다.

 

4. 이태원 프리덤

 최근 대중 음악이 심상치 않다. 케이블 티비 슈터스타 K’ 이후 우후죽순 오디션 관련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리얼버라이어티가 지금 대새이면 대새다. 한때 황금시간때 가요 톱 10’을 생각한다면 지금 음악프로그램 대부분은 새벽이나 해가 질 무렵 예전 만화동산시간때 방영하고 있다. 음악 주 타켓이 10대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이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지성인들의 고민 처럼 음악이란 무엇인가?’ 혹은 이제 대학교 새내기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생활이자 문화 그리고 당구의 대체 수단이 되어버린 게임이란 무엇인가?’ 까지 논할 수 있고 최근 국문학에서도 박경리의 토지분석에 게임 시스템을 이용하거나 인문대 자체적으로 대학원 과정에 대중문화를 신설하는 등 조심스럽게 앞으로 일어나는 새물결을 감지 할 수 있다. 이러한 물결을 필자는 부정하지는 않는다.

 우후죽순 등장한 오디션 프로그램 이후 나는 가수다의 사건은 그야말로 인터넷에서는 기가 막힌 사건이었다. 경제적으로 놀라운 그래프를 볼 수 있는데 음원 판매량이 나는 가수다’, ‘슈퍼 스타 K’에서 음원을 퍼블리싱 하면 그대로 판매량은 로켓을 쏘아올린다. 그러니 최근 아이돌 기획사들은 언론에 하소연을 지금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로 음악의 발전이 없다고 말이다. 대부분 오디션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음원 대부분은 리메이크 음악이다. 따라서 신곡진입이 너무 힘들다. 한때 잘나갔던 명곡들을 심지어 트로트를 가수가 자신만의 색깔로 바꿔서 모든 끼를 발산해 프로그램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10대에서 50대 사이의 청중 평가단의 평가에서 지금 대중 음악의 트렌드가 조심스럽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락의 대표주자 윤도현 씨가 부른 발라드 이선희 씨의 나 항상 그대를을 부르는 순간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원하고 있고 나가려고 하던 죽은줄 알았던 음악이 다시 찾아오고 우리도 그 과거 음악을 통해 우리가 찾고자 했던 무언가를 통해 감동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들은 특정 집단에 많이 휘둘렸다. 가요계의 혁명 뒤에는 계속 고착화 되는게 특징이었고 그것이 언젠가는 유행으로써 혁파가 되긴하다. 그러나 이전에도 리메이크 유행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유행이 과거와 현재를 통해 새로운 유행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상당히 건전하게 움직였다는 것도 주목 할 만하다. 이번 유행에 해당 되는 가수들은 일반 아이돌 가수와는 다르게 음원 수익의 절반을 준다거나 신인 조차 해당 되지 않는 사람 로써 자신의 재능을 알릴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가수 뮤지와 개그맨 유세윤이 작사, 작곡하고 박진영 씨가 피처링한 이태원 프리덤은 살아있는 과거를 포착하여 자신만의 색깔로 만든 뮤직비디오를 최근 발표했다. 반응은 상당히 뜨겁다. 80년대 디스코 풍과 고 마이클 잭슨을 패러디한 음악은 단순하면서 가창력이 아닌 가사와 비트 그리고 비주얼에 승부를 두었다. 단순한 리듬으로 현재의 전유물들을 과거화 시켰고 외국인들을 동원해 옛날 AFKN과 이태원의 풍경을 접목 시켰다.

 

신사숙녀 여러분 더이상의 음악은 없다

더이상의 댄스도 없다

그들이 돌아왔다 UV

JYP

 

요즘 심심할 땐 뭐해 따분할 땐 뭐해

어디서 시간때우나

강남 너무 사람 많아 홍대 사람 많아

신촌은 뭔가 부족해

 

다 알려주겠어 다 말해주겠어

새로운 세상 그곳을 말해봐

음악이 있어 또 사랑도 있어

세계가 있어 나에게 말해줘

 

배달하는 집배원

물건파는 판매원

기타치는 김태원

모두 모여 이태원

배달하는 집배원

물건파는 판매원

기타치는 김태원

모두 모여 이태원

 

이태원 프리덤 저 찬란한 불빛 oh oh oh

이태원 프리덤 젊음이 가득한 세상

이태원 프리덤

 

다 알려주겠어 다 말해주겠어

새로운 세상 그곳을 말해봐

음악이 있어 또 사랑도 있어

세계가 있어 나에게 말해줘

 

청소년은 대공원

노인들은 양로원

아이들은 유치원

우리들은 이태원

청소년은 대공원

노인들은 양로원

아이들은 유치원

우리들은 이태원

 

이태원 프리덤 저 찬란한 불빛 oh oh oh

이태원 프리덤 젊음이 가득한 세상

이태원 프리덤 With JYP dance

 

춤을 춰요 모두 앞에서

꿈을 꿔요 여기서 모두

사랑해요 모두 앞에서

노래해요 이태원 프리덤

 

이태원 프리덤 저 찬란한 불빛 oh oh oh

이태원 프리덤 젊음이 가득한 세상

이태원 프리덤 (이젠 여기서 나와)

 한때 잠깐 반짝 하는 유행이 될지도 모르나 지금의 유행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은 어쩌면 우리들의 행복을 찾는데 단순히 거대한 조직에 따른 미래에서 구원을 찾고 과거를 무너뜨린게 아니라 과거의 행복의 순간을 포착하여 다시 건설 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 하다. 또한 이 트렌드 자체를 이끌어 오는데는 대중들에 의해서 유행을 만들었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가 깊다.

 

5. 참고문헌

 고지현. 발터 벤야민: 우리 시대의 도시사상가 ;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 역사주의와 역사 유물론 그리고 메시아주의의 성좌구조. 2010.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김경수. 벤야민의「역사철학테제」의 변증법적 재구성 :시간과 공간, 그리고 맑스의 현실변증법과 연관하여. 2001. 문예미학회

 김영옥.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과 미학. 오늘의 문예비평. 세종출판사

 김영옥. 벤야민의 역사철학과 미학이론

 김유동. 파괴, 구성 그리고 복원 :발터 벤야민의 역사관과 그 현재성. 2006. 문학과 사회

 반성완. 발터 벤야민의 비평개념과 예술개념.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윤미애.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이창남. 역사의 천사 :벤야민의 역사와 탈역사 개념에 관하여. 2005. 문학과 사회

 이태동. 문화 비평과 이론. 문예출판사

 최문규. 역사성+심미성으로서의"순간";발터 벤야민의"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1991. 한국뷔히너학회.

 최성만.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최성철. 파국과 구원의 변증법 :발터 벤야민의 탈역사주의적 역사철학. 2003. 한국서양사학회



[1] 최성철. 파국과 구원의 변증법 :발터 벤야민의 탈역사주의적 역사철학. 2003. 한국서양사학회 p.60

[2] 최성만.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p.339

[3] 최성철. 파국과 구원의 변증법 :발터 벤야민의 탈역사주의적 역사철학. 2003. 한국서양사학회 p.65

[4] 최성철. 파국과 구원의 변증법 :발터 벤야민의 탈역사주의적 역사철학. 2003. 한국서양사학회 p.82

[5] 최성철. 파국과 구원의 변증법 :발터 벤야민의 탈역사주의적 역사철학. 2003. 한국서양사학회 p.83

[6] 반성완. 발터 벤야민의 비평개념과 예술개념.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p. 363~368에서 편집

[7] 이태동. 문화 비평과 이론. 문예출판사. P.26~28

[8] 윤미애.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 p.14

[9] 반성완. 발터 벤야민의 비평개념과 예술개념.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p.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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