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하게 만드는 곳, 료안지 - 이 세상엔 팩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2013. 7. 28. 10:45Culture/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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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료안지로 가려면 위 사진의 역에서 노면 전차를 타야한다. 



          유럽보다 철도가 더 발달되어 있고 최신 차량과 오래된 차량이 공존하는 곳이 일본이다. 80년대 부터 모노레일이 상용화되고 현수식이 대중화 되어 있는 곳 역시 일본이다. 물론 이런 것들을 타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외국인으로서는 장기 체류자가 아닌 이상 숙명이다;; 



          노면 철도 안~ 버스 같다. 



          노면 철도 종점에서 다시 다른 노면 철도로 갈아타자.



          릿스마이칸 대학 (일본 사립 대학)  이 료안지 부근에 있구나..



            이곳이 료안지 역~



          먼지에 더러워지는 콘크리트와는 다르게~ 꽃을 아름답게 가꿔 조용한 마을의 역을 연상케 한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 오늘 쓰레기 수가하는 날이이었다.






          일본인의 평범한 마을~ 집 입구에 화분과 기이한 상을 갖다놓은게 인상적이다. 그리고 한국과는 다르게 담장있는 집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교토가 확실히 싸다~




          일본 집과 소형차와 크기를 비교해보자~ 차가 참 깨끗하다.






          주인있는 고양이~ 그냥 바깥 구경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더라~




          료안지로 가는 입구~




          벚꽃이 지고 목련이 폈다.



          이날 일본 학생들이 학교 단체로 료안지를 관람하러 왔었다. 사진에 보면, 소수 학생들 무리 사이에 있는 검은 양복의 사람이 관광 안내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인지 아니면 가이드인지 잘 모르겠다.



          이걸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린다. 세계 문화 유산이기도 한 정원이다~ 이게 정원인데~ 국내에서는 조금 비추천 하는 곳이 많다;; 이유는 여기 들어오는 시간에 비해 볼것이 돌정원 또 앞으로 소개할 다른 정원 이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여기 오는 관광객들이 이 정원을 보고 자기만의 생각을 마음 껏 표출하는 모습이 나는 인상적이 었다. 한국인이었다면 무슨 생각할까? 아휴~ 어려워~ 야 그게 맞는 말이야? 헛소리 하지마라~ 아 뭐야 돌밖에 없자나~ 라고 할 듯~ 



          이 료안지가 절이라서 필자가 글을 쓰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법륜 스님의 강연에 필자를 사로잡는 강연이 있었는데~ 표상에 관한 말씁이었다. 즉 우리는 어떤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오감(시각, 촉각, 미각, 청각, 후각)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자신의 뇌에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을 생각하고 다시 오감으로 표현하는데~ 그 과정에서 주관이 생긴다. 이를 표상이라고 한다. 법륜 스님은 칸트의 표상을 가지고 이 주관성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의 표현은 언제나 왜곡되어 있다는 것~ 기록이든 말이든 생각이든 영상이든지 말이다. 어떻게 사진 찍고 어떻게 촬영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현상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이 세상에 표현되는 것들은 믿을 수가 없다. 나도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거지만~ 팩트가 세상에 어딨는가? 라깡은 정신분석하면서 진정한 진리 실재 (the Real) 는 저 너머;;; 에 있다고 했다;; 좀더 잔인하게 말하자면 니가 죽기 싫으면 왜곡된 세계에 영원히 산다는 말이다. 태어날때 부터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 이름이 지어지니까;; ㅅㅂ;;; 



          그러니까 절대 진리라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물을 보던지 간에 자기 좋아하는 편에서 수집하고 바라보고 그러기를 바라고 나의 생각과 공감되기를 원할 뿐이다. 그래서 반대편은 싫다 잘못되었다 왜곡되었다 증거가 있지 않느냐 라고 하지만~ 애초에 법륜스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이럴 수 있는 것만 바라보고 저럴 수 있는 것을 배재한 것을 의미한다. 증거 그 자체에 대한 왜곡과 사람이 표상하여 기록된 것을 무시한 격이기도 하다.



          이 곳 료안지가 바로 필자는 법륜스님이 말해주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료안지의 돌은 총 15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돌은 14개다. 사람들은 15개 돌을 모두 볼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깨달음을 얻으면 15개가 보인다는데~ 아무리 이쪽으로 봐도 저쪽으로 봐도 보이지 않는 다;; 왜일까? 필자의 생각인데;;



            마음을 비워라는 말인 거 같고;; 자신이 원하는 15개의 돌을 전부 다보려는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말인거 같다;; (허무하지 않나?) 이게 선종의 가르침이라면? 우리들은 어떤 사물과 현상을 바라 볼때 어쩌면 목표를 가지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것은 세속인들에게는 불가능 하다는게 바로 료안지에서의 가르침인거 같다.

           표상에서 벗어나려면 나는 생각한다라는 명제를 버려야 한다. 그게;; 인간에게;; 생각하는 동물에게 가능 한 일일까? 결국;; 이 세상의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을 뿐이고, 사실 즉 팩트가 있니 없니는 없다. 어느 편이 팩트인지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이미 왜곡을 가미해서 설득력으로 충분한 증거로 팩트를 내새울 뿐이다. 



          필자의 생각을 계속 해 보겠다;; 이 료안지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디서 필자가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지금 현대 시대에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바로 이 정원에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아무 것도 없음... 뜻이 없음... 목표가 없음... 찾을 수 없음... 이룰 수 없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허무함과 깨달음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필자가 이 정원에서 깨달은 것음... 이 세상의 어떤 팩트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점이고~ 이 세상은 어떤 시각에서 보더라도 모순점이 결국 보일 수 밖에 없으며(팩트가 없으니), 단지 세속의 화술과 설득만으로 사람들을 선동해 나가야 하며~ 상대방의 의도와 주장에 대해서는 무시해야 자신의 주장이 옳고 그르며 상대 주장에 대해 갉아버려야 자신의 주장이 살아 남고 팩트라고 말한다.



           이 료안지의 정원은 15개의 돌을 찾을 수 없다;;; 어느 관점에서든지 그 누구도 깨닫지 못한다. 그냥 아 저기에는 내가 볼 수 없지만 15개가 전부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만 우리는 팩트를 인정한다. 즉 우리는 팩트를 볼 수없다. 있다고 인정하고 어느 관점에서 보든지 간에 상대 관점에서 내가 볼 수 없는 돌을 저 사람은 보고 있다는 것 뿐이다. 서로의 관점들을 인정해서 볼 수 없는 팩트를 보는게 아니라 추측 하게 한다. (실제로 공중에서 바라보면 15개의 돌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 료안지가 말하는 인간의 진실 그리고 팩트는 도달할 수 없는 건가? 그렇다..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죽는다. 그래서 도달할 수 없다. 왜냐? 이 료안지의 정원에 아무도 공중으로 올라가서 볼 수 없으며 이 정원의 하얀들을 관람자는 밟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암묵적인 룰... 관광객에게 주어지는 이 암묵적인 룰 때문에 전부 멀뚱 하게 지정된 관람 지점 안에서만 이 정원을 바라 볼 뿐이다. 



          료안지 돌 정원의 하얀 돌들은 우리는 만질 수 없으며~ 밟을 수도 없다. 그 진리는 우리 인간 세상에서 유령처럼 맴돌고 겉돌아서 인지~ 절 주변을 흰 돌들은 배회만 할 뿔 이다.




          인간의 진리를 도달하기 위해서는 ... 인간이 아니어야 할 지도 모른다. 슬픈일이다. 설령 이러한 진리를 깨달아도 우리는 여행을 마치고 속세로 돌아가면 끝임없는 다른 생각사들과 부딪치고 이겨내야 한다. 져도 된다. 그래 봐야 팩트는 없다.













          료안지의 절 내부를 벗어나면~ 우리가 상상했던 일본 정원을 볼 수 있다. 이게 어쩌면 세속인들에게는 돌정원보다~ 이러한 정원이 아름답게 느겨지고~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생각에는 일본 정원을 위 사진 같은 정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할 지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료안지에서 내려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렀다. 이름도 모르는 녹차 병과 캔커피를 사고 마시면서 세속의 단맛을 필자는 느꼈다~ 우리에게 진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 진리를 찾으려는 단 맛은 없다. 이미 어떤 식으로는 사물된 것만이 우리를 기쁘게 하고 다시 그것을 오감으로 받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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