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31. 15:08ㆍLiteratur/Deutsch
독일문화1
예전종족들
Deutsche 는 국민의, 민중의, 국민의 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Deutschland라는 것은 민중의 땅을 말한다. 지리학적으로 서쪽은 프랑켄, 동쪽으로는 슬라브가 위치해 있어 불리하다. 자본주의 국가로 가는데 늦어서 후진국이라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이는 중앙집권을 이루지 못함에 따른 원인이 된다. 프로이센 통일 후 뒤늦게 올라서게 된다. 통일문제는 주변국의 이익을 위해 분단의 영구화를 주장한다. 기독교문화와 그리스로마문화 그리고 게르만 문화로 발달되었다. 게르만 신화는 다신교로 주신은 Bodan (Odin, 오딘) 이고 자식숫자는 노동력과 직결되어서 풍요의 이미로 다산을 신성시 했다. 독일 남쪽 산맥은 알프스산맥으로 북쪽는 흐리고 비가 많이 왔다. 독일은 땅이 척박하고 비가 자주 내려서 철학이 발달했다. 프로이센 기질과 시간을 잘지키는 것을 보면 규율이 강함을 알 수 있다. 독일인의 심성은 사변적이고 프로이센 기질을 가지고 있다. 로마의 ‘타키투스’ 는 게르마니아 라고 말하여 독일지방은 사람 살기 힘든곳이라고 했다.
왕 권과 교권의 싸움의 연속으로 교회가 부패하는데 면죄부 문제를 계기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비템베르크 대학문에 25개조 반박문이 공시되었다. 토마스 뮌쩌는 그의 사상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프로써 프로테스탄트의 시작이 되었다. 왕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파문이어서 루터를 배격했고 루터는 은거 하면서 성경번역을 하여 회기적인 개혁과 성경을 직접읽을 수 있게 하였고 독일 민족 일의 초석을 놓았으며 언어학적면에서 발달되게 하는 지름길을 놓았다. 동학농민전쟁과 비슷하나 농민전쟁과 비교가능하다? 중세부터 신성로마제국이 존재했는데 느슨한 형태의 모습을 나폴레옹까지 이어갔다. 1814년 비엔나에서 연방이 탄생하였다. 산업화로인해 제 1차세계대전의 강력한 국가로 발달했다. 착취를 근거로한 인간적 문제가 생겼다. 독일공화당의20%이상을 지지받으면서 나치스는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았다.
루터의 성경번역 독일문화사적 의미
획기적인 개혁, 성경을 직접읽을 수 있게 함 누구나.. , 독일 민족 통일의 초석을 놓음, 언어학적면에서 발달되게 하는 지름길
로베스삐에르의 공안정치에 대해
로베피에르의 공안정치 이전에 혁명전쟁에 따른 여러 정당들과 논의를 하는데 다른 정당들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전쟁을 반대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 지휘권을 쥐게 될 자는 필연코 혁명을 실패시키려는 세력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 현실 상황이 훈련된 장교도 없고 군인 훈련과 무장이 빈약했기 때문에 힘들다고 주장했다. 여기서부터 이미 로베스피에르의 사상은 민중적이고 반 봉건적 성격을 띄었으며 다른 정당에 비해 현실적이었다. 전쟁이 결국 일어나게 되고 불리한 프랑스 혁명군이 민중들의 단결력에 외세를 물리치게 되는데 이러한 흐름을 통해 로베스피에르는 입헌군주파의 처벌을 요구하며 왕권을 정지시키고 보통선거에 의한 새로운 국민 공회 소집을 가결하였다. 그리하여 민중을 국민에 통합시키고 민주적이며 민중적인 공화국의 탄생을 예고했다.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파들은 자본의 집중을 반대하고 소규모 생산자들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원했으며 민중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와 공정가격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1792년 8월 10일 파리민중과 연맨제 참가자들이 튈르리 궁을 장악한 사건은 사실상 제1차 공포정치 등장의 즉각적인 결과가 되었다. 민중의 정치적 진출에 기반하여 국내의 적에 대한 강제력의 수단이자 대외적인 위협에 대한 반격의 도구였다. 그리고 9월 학살에서 자코뱅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에의해 전국 감옥소의 반동적 승려과 반혁명자들을 약식 재판에 의해 학살하였다. 민주적인 국민공회가 시행되면서 지롱드파와 산악파로 나뉘어 졌는데 지롱드파는 경제적 자유와 사유권의 자유를 주장한반면 산악파는 프로레타리아트를 위한 경제적, 정치적 평등을 우선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산악파는 모든 사람들이 소토지 생산자로 살 수 있는 국가건설을 우선 목표로 하여 현실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들은 혁명의 급진파로서 그들 대부분은 중산계급 출신이었지만 루소의 열렬한 지지자들이자 전투적인 도시노동자들이었다.
로베스피에르는 지롱드파를 몰아내고 국민공회를 통해 루이 16세를 반역죄로 표결하였다. 로베스피에르는 민주주의를 공고히하고 헌법의 준수를 위해서는 우선 폭정의 자유가 확립되어야하며 국내외의 공화국의 적을 섬멸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도덕이 평화시 민주정부의 기둥이라 한다면. 혁명시 민주정부의 기둥은 도덕과 공포이다. 공포는 신속하고 준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공포는 도덕의 방사물이며 전제정치의 기둥이라고 생각했으며 혁명의 정치는 폭정의 자유를 위한 전제정치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공포정치는 혁명수행에 없어서는 안될 필요악이었던 것이다. 그는 국민공회를 통해 성인보통선거권과 단일입법부의 최고권력이 부여되었으며 보통 선거와 생존권, 노동권, 교육권, 복지국가와의 원리와 같은 사회민주적인 성격을 띄었다. 물가와 임금 통제를 위한 최고가격제와 균등한 빵을 공급하였다. 그리고 공안위원회에게 행정권을 일임하였는데 이는 외교관계와 군대를 지휘하는 독재적 핵심기관이 되었다. 공안위원회는 경찰행동을 감시하는 치안위원회와 공화국의 적으로 지목되는 사람들이 다루는 혁명재판소르 두었다
로베스피에르는 철저한민주주의자로 모든 시민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재산에 관계없이 참정권을 행사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경제적 평등을 강조하였으며 빈부격차가 없는 세상을 이상으로 하였다. 하지만 인간사회의 다양성을 거부했다. 이러한 이상은 너무 추상적이고 너무 강압적이며 비인도적이어서 일반대중이 실천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결국 이러한 반발이 전국적으로 일게 되면서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반기를 들게되고 결국 로베스피에르는 36살의 나이로 처형당하게 된다. 사실 그의 공안정치만을 놓았을때 우리나라의 박정희 정권과 비슷한 양상을 띄었다. 물론 박정희가 로베스피에르처럼 만인의 평등까지는 생각을 안했지만 공안정치라는 하나의 억압과 우리 스스로가 그 사회속에 있다고 한다면 사실 좋은것보다 싫은 단점이 많이 신경 쓰이는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로베스피에르의 강요정책은 마르끄 블라조의 로베스피에르 평론에 따르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강요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로베스피에르는 모든 인민들의 행복을 위해 이상적인 정책보다 현실적인 정책으로 빠르게 추진하려다 보니 그런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루소의 신봉자였는데 그래서 인지 노동과 근검절약을 좋아했고 이러한것은 불가능한 평등의 실현에 필요한 차선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사회적 이상은 재산소유를 제한하여 소지주들을 늘이는 것이고 만인에게 교육과 노동, 실질적인 구제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립적인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공동조합을 창설하여 생산자들 상호간에 용역의 교환이 이루어짐으로써 어느 정도의 평등이 확립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자본의 집중으로 이어지는 자유로운 경제상의 자유경쟁과 모순임을 감안하면 큰 실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우리가 고등학교때까지 단순히 공포정치로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교과서에 기술되어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의 평전을 읽으면 아직까지도 프랑스내부에서 로베스피에르의 비석이 없는것처럼 시각차가 크게 존재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마치 박정희를 유사하게 한다. 박정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누구도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지금 세계 경제 10위권에 올라가지 못했을거라는 것은 간과할수 없다. 로베스피에르의 경우 성격이 다르지만 만약 공포정치를 유지했더라면 비록 경제는 아니더라도 인민들의 행복만큼은 지켜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로베스피에르는 아주 급진적으로 반부르주아의 성격을 띄었다. 따라서 부르주아의 미움을 사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천천히 타협해 나가면서 충분이 인민평등사업에 나갈수 있을정도로 민중에게 인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든다. 또한 국유지의 매수에 따른 농민들의 안정이 오히려 농민들의 보수화를 부추기게 됨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해본다. 또한 반혁명과의 전쟁이 해소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정치의 계속됨은 민중들의 반감을 샀다. 따라서 그는 많은 국민과 동료정치인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의욕이 지나치게 앞섰고 시세의 흐름에 개의치않고 혁명의 대의에만 충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평전에 따르면 반로베스피에르가 봉기에 따른 서로의 화해를 요청했지만 그는 거절하면서 목숨마저 각오하는 모습에서 그의 고집을 알수가 있다. 비록 로베스피에르는 그의 이상에 도달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가 죽고난후 프랑스의 경제, 정치는 그야말로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이상이 현실과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그의 공포정치는 반동세력과 폭리추구자들의 이기적인 저항을 분쇄하고 괴적으로부터 국가를 건지기 위해 불가피 했다. 그리고 경제정치도 사회복지국가를 수립하려는 하나의 채찍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급진적이어서 민중들마저 따라올수 없었다는 것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우리 역사에도 너무 급히 사회 정치에 변화를 모색하려다 죽은 인물들이 많다. 어느 글에는 조광조를 언급하는데 더 급진적인 로마의 그라쿠스형제도 생각된다. 혁명을 위해서는 너무 급진적이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 중 큰 변화를 모색하려다 실패하고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하지만 그가 4년 동안 재임한 길을 보면 그 누구도 다음에 물려 받은 정권은 편하질 것이라는 것이 성분을 무시하고 엘리트 정치외교학과 출신들의 견해이다. 여지껏 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로베스피에르를 원래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비춘 것과 같이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로베스피에르도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프랑스 아니 전세계의 누구나 평등한 사상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더니즘
1920년대 일어난 근대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예술상의 여러 경향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교회의 권위 또는 봉건성에 반항,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널리 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여 현대풍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예술상의 모더니즘은 1920년대에 일어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형식주의 등의 감각적,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운동을 통틀어 말한다. 이는 사실주의에 대한 반항운동이며 아방가르드라는 전위예술의 한 형태였다.
이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는데 문학의 경우 시민계급의 가치관을 대변했고 언어의 재현능력을 믿었던 19세기 부르주아 리얼리즘의 낙관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20세기초 작가들은 낯익은 일상을 묘사하는 관습적인 언어와 문테를 떠나 참신하고 실험적인 기법으로 낯선 세계를 탐색기 시작했다. 그들은 외적현실보다는 내면세계를 주목했고 내면세계를 묘사하기 위해 ‘의식의 흐름’과 ‘내적 독백’이라는 새로운 창작기법을 만들어냈다. 또 리얼리티를 파악하고 재현하는 각기 다른 방법에 따라 수많은 유파들이 생겼다.
하지만 이러한 낯선 세계의 탐색, 세련된 기교 그리고 심미적 가치의 치중으로 인해 모더니즘은 점점 더 대중과 괴리된 엘리트주의 그리고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로 치달았다. 또한 그들은 자들의 시대를 혼란스럽고 파편적인 것으로 파악했고 질서와 총체성을 동경했다. 모더니즘 예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다양성속의 통일성’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루카치의 총체성
총체라는 의미는 사전적으로는 모든 것을 다 반영한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마르크스 사상사전에 따르면 상호작용을 하는 모순의 구체적인 통일이라고 의미한다. 루카치는 역사 발전은 자연적 법칙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체 즉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집단 의지에 의한 혁명을 통해 발전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루카치는 헤겔의 변증법에서 가장 중요한 범주 중 하나인 ''총체성''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진리는 전체다''라는 헤겔의 변증법적 명제에 잘 나타나 있는 ''총체성''이란 개념을 끌어들여, 루카치는 ''지식의 주체와 대상이 동일할 때에만 총체적 지식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왜냐 하면 헤겔에 따라 그는 ''의식은 대립되어 있는 대상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그 대상의 자의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상이란 곧 삶의 ''현실''을 의미하며, ''내가 삶의 주체적 활동을 통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은 주체의 삶의 활동과 분리해서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 현실은 마치 주체와는 무관하게 작동하는 사회, 즉 주객의 총체성이 아니라 주객이 분리된 사회 현실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노동의 상품화와 물상화로 인해 양이 질을 축출하고, 수단적 이성에 지배되는 자본주의 사회는 주객의 총체성을 파악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루카치는 노동 해방을 위한 혁명을 위해서는 변증법을 통해 계급사회, 즉 노동의 사회적 분업에 의해 생겨나는 왜곡과 일방성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으로 보았다. 윤리적, 철학적 혁명을 동반한 사회 정치적 혁명이 경제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 사이의 모순으로부터 일어날 때, 이러한 사회적 과정 속의 단계로서 해석된다. 따라서 이를 예술로써 본다면 주인공이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진화 속에서 어떤 특수한 상황의 묘사가 그 상황에 대한 비판 및 그로부터 나타나는 것에 대한 고발과 변증법적으로 융화된다. 따라서 이를 통해 총체성은 결정적인 역사적 사실들과 그 이데올로기적 형식들이 갈등을 통해 해결을 촉구하는 전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말한다. 총체성은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형식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통해 포착되는데, 그들은 특정한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성취하고, 자신들의 사적 운명을 원숙하게 만들어 나간다. 그러므로 그것은 현실로부터 구별되는 자기 완결적 총체성이다. 역사는 혁명을 통해서 움직이지만, 이렇듯 커다란 변화들은 완만한 해체와 축적을 통해서 준비되어진다. 비극은 위기의 극단적인 순간을 제시하고, 소설은 “여러 경향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방식”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소설이 산문적이고, 외면적이며, 아무리 극적 절차들(극적 발생, 대화)을 빌어 온다 할지라도 그것들을 소설의 산문적 서술의 흐름 안에서 조직화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러한 총체성은 우리의 근대적 의식을 포기한다거나, 또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근대적 상황에 관계되는 것을 발견해 냄으로써가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으로써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과거의 위대한 역사적 변혁을 응축한 지난 시대의 모든 예술은 하나의 총체적이고 완결된 경험으로서 제시되는 역사이다. 그것의 역사성은 본질적인 바, 그것은 우리에게는 우리의 과거, 인류의 과거가 구현되어 있는 기억으로서 중요하며, 인류에게는 각 개인의 어린 시절의 의미 있는 순간에 대한 기억으로서 똑같은 기능을 한다.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제국주의란 어떤 국가가 국외로 세력 범위를 확대하여 타국을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국가활동을 뜻하지만 최근에는 자본주의의 특정한 단계와 결합된 특수한 국가 활동으로 자본수출을 원동력으로 하여 정치와 경제와 군사적으로 타국과 타민족을 정복하고 지배하여 대국가권을 형성하려는 강경한 정책과 그 수행을 말한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특성은 정치적으로 국내에서 독점자본의 설립과 유지를 위해 보수 반동적 체제를 유지하고 국외적으로 제국주의 국가간의 치열한 경쟁과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는데 네셔널리즘의 변질이 일어난다. 경제적인 측면으로 자본수출을 원동력으로 하고 식민지를 획득하여 원료공급지와 판매시장에서 잉여자본의 투자 대상지로 변화한다. 군사적인 측면으로 수출된 자본보존과 반대세력 억압을 위해 군비확장과 무력강화를 가진다. 사상적인 측면으로는 사회적 진화론과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을 민족과 국가에 적용을 가진다.
제국주의 시대 배경으로 기술혁신과 동력기관의 발달과 신흥공업 발달과 독점기업의 발달 그리고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있다.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시대때 전성기를 가지고 세계분할에 참여하면서 현상유지책 시행을 하였고 프랑스는 영국 다음으로 가는 제국주의 식민 건설과 독일과는 갈등관계를 가지고 러시아와는 우호관계를 가진다. 독일은 보호관세정책을 시행하고 독점자본을 형성하였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후진국이었으며 한국을 목표대상으로 식민정책을 펼쳤다. 미국은 19세기말 공업생산으로 영국과 독일, 프랑스를 능가하였고 쿠바와 하와이, 괌, 필리핀, 중국, 한국 등지로 진출하여 독점자본을 형성하였다. 러시아는 후진국 사회로 대외차관을 이용하여 1890년 까지 중공업중심으로 발전하였고 짜리즘하에 군사적이고 침략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1차 세계대전 성격
1차 대전은 제국주의적의 강도 전쟁이라고 레닌이 말한 처럼 국제관계에서 제국주의적인 경쟁에서 일어났다. 1차와 2차 모로코 대전을 통해 독일이 프랑스를 도전하고 영국이 프랑스를 지지해 독일이 퇴각하는 일과 이탈리아가 트리폴리를 점령한 것이 그 원인이 된 이토전쟁과 발칸동맹과 터키와의 전쟁으로 발칸동맹이 마케도니아를 얻었으나 다시 내분으로 전쟁을 한 1,2차 발칸전쟁 등 제국주의에 의한 국가간의 대립이 일어났었다.
영국과 독일 양국의 제국주의적인 경쟁과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적으로 민족적으로 감정대립이 충돌 그리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와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1차대전이 일어났다.
제국주의 국가간의 전쟁이며 대규모적이고 세계적인 전쟁, 그리고 국민생활 저눈야에 걸틴 전면전과 소모전 그리고 장기전을 보인 총력전 형태였으며 경제적으로 전시국가독점자본주의체제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국내적으로 전시총동원체제를 확립하였으며 적대국에 대해 이간책과 경제봉쇠책을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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