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주네의 "검은 몸들" 에서 나오는 미학 떡밥

2012. 1. 30. 17:01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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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학교 정병언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정리해본 글입니다.
          충격을 주는 것은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롤랑 바르트는 작업을 한다는 것에 의미가 안정되어 있고 소통이 가능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텍스트가 되면 다의적이며 기의가 없다고 하였다. 의미 생산 주체는 독자이다. 텍스트가 나의 환희 대상인 것이다. 굉장히 에로틱 적인 읽은 방식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유혹과 만남이라는 것에서 독자를 꼬셔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만이 작품을 즐길 수 있고 해석에 예측 불허한 셔플 기능이 추가된다고 하였다. 신발을 못벗어 끙끙 대는 이런 것들을 추가하여 거창한 것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무엇이 주요하도록 하였다. 부부갈등 같은 사소함에서 사건을 집어 넣어 주벼화에 의미를 두게 한 것이다.
          이러한 극은 배우들에게 힘들어 진다. 논리 정열되어 있고 합당한 반응의 스토리가 아니라서 연기를 할때 예측이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관객이 연극에 처해보고 이해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였다. 수잔 손탁은 해석 대신에 에로틱들을 가미할 것을 주장하였다. 스타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의 지각 방식이 다른 반 자동화를 취하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사무엘 베켓의 엔드게임을 수수께끼와 같다고 말했다. 풀리면 더 이상한 극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무언가를 말하면서도 말해주지 않는 수수께끼 연극이라는 것이다. 의미는 풀릴 수 없고 의미의 흔적과 실마리만 남는다고 하였다. 흔적을 찾는 그것은 로고스 중심주의이다. 그런데 데리다는 이와 반대로 흔적은 미끄러진다고 하였다. 종착지가 없는 메커니즘이라고 한 것이다. 미학의 과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대한 이유를 대는 것이 미학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삶을 모방한 것이 수수께끼이며 인간을 알 수 없다는 논리가 된다. 이 의미들을 통합 한 것이 이데올로기다. 합의의 시대이며 이 합의는 폭력을 내포한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합의도 없고, 익숙도 없으며 단지 자유만이 있고 다양한 목소리만 존재한다.
          랑시에르는 대의제를 비판하면서, 모든 정치인은 주체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 수많은 공통적인 문제 즉, 시스템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주체 행동이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무지한 스승에서 굉장히 파시스트적인 교육 즉, 이데올로기는 학생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공부하면서 상징 폭력을 받는 다고 하였다.
          카타르시스는 감정이입이 되어서 이해를 하고 삼키도록 극이 의도하는 한 부분 요소다. 이는 반 정치적이다. 정치적인 것은 거리를 유지하고 심리적 거리, 사실 객관적 시각을 취한다. 크리스테바는 혐오와 혐오성을 주장한다. 비언어적 몸짓으로 언어의 확장을 지향하는 것이다. 제의의 연극은 희생이 필요한 의식의 극이다. 이 극은 참여를 한다. 이러한 참혹한 연극은 잔혹극과는 조금 다른 부분인데, 잔혹극이 충격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된다. 의도적으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는 장치를 부여한 것이다. 기존 서구의 미학은 밝았다. 그러나 잔혹극은 그 밝음의 대상을 추하게 보았다. 미는 추함의 개념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지젝이 말했는데 왜냐하면 색깔을 상징화 했기 때문이다. 네 이웃을 두려워 하라는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타자를 비인간화 시점으로 상징화 한 것이기 때문이다. 파농은 니그로라고 호명을 하면 흑인들이 쳐다 보게 되고 이들은 니그로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가면은 그 사람이다. 개념은 추상화되어 있고 고착화 되어 있다. 공간적 위상에 따른 배치 그리고 모자의 길이를 생각해 보자. 구조화 되었다는 것은 질서를 뜻하며 상징적 역할을 한다. 상징에 의해서 작동을 하고 역할이 오히려 우리를 만든다. 타자는 사물화되고 기호가 되며 상징이 될 뿐이다. 데리다가 말하는 법이란 무엇인가에서, 법은 권력과 힘이다. 이 법은 답이 없고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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