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병에 대한 나의 생각

2010. 10. 1. 16:46Review/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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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병

2009F20316 박형락

 

소년병을 다루기 전에 하나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전쟁과 함께 강대국과 약소국과의 관계에 따른 경제 논리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을 보면 주로 강대국이 전쟁 이면에 있으면서 약소국 끼리 또는 내전이 심하다. 이렇게 되면 전쟁이 벌어지는 지역에서의 경제는 강대국과 비교하면 점점 경제적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국의 경제체제가 무너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약소국에다가 내전의 경우는 경제가 바닥난 상태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인권을 자연히 무시하면서까지 경제적 이득을 취해야하고 그것이 바로 전쟁의 승리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다. 조금이라도 많은 군사동원을 위해 계속 징집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비로소 청소년, 어린이들 까지 동원 되게 된다. 따라서 전쟁 속에서 생기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논리가 복합적으로 들어가면서 소년병이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의 생활협동조합에서 상품으로 내놓고 있는 공정무역 중 카카오와 커피 부분을 보면 주로 약소국에 대한 배려도 있지만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인권 문제 까지 포함되어 있다. 공정무역이 생긴 이유는 강대국의 대기업이 값싼 상품을 위해 약소국의 값싼 노동력을 동원하는데 상당히 열악하고 불리한 조건을 가진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경제적으로 많은 이윤을 챙기고 인권 착취를 감행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의 대응이다. 공정무역은 합리적으로 약소국과 계약을 맺고 비싸더라도 정당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러한 공정 무역을 하는 이유 중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소년병과 관련이 있다. 한마디로 아동 인권 문제가 자연스레 소년병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한 배경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식민지 정책과 연관이 있다. 다만 외형만 바뀌었을 뿐이다. 사상의 차이로 내전의 갈등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경제는 불황을 얻을 것이다. 그러면 NGO라는 단체가 긴급구호에 들어간다. 이렇게 긴급구호를 통해 노약자들과 피난민들은 자연스레 구호의 손길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NGO 단체가 소속된 나라에 대해 국내의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레 호의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NGO 단체를 통해 국가는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 뿐 아니라 그 나라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 받게 된다. 그리고 강대국은 약소국에 접근을 하게 된다.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대기업이 침투를 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현지인들을 고용하고 노동 착취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전에서 위험은 뒤따르지만 그만큼 서로에 대한 이윤이 나름 충분히 있을 거라고 겉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내전이 소강기에 접어들었을 때 남아 있는 노약자들은 대기업의 노동에 착취를 당하기 시작하는데 그때 어린이들도 노동에 종사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어린이들에 대한 인권에 대한 의식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소강기가 끝나고 다시 내전이 일어났을 때이다. 내전의 끝을 보기위해 어린이들도 전쟁에 동원이 된다.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와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 가'에서는 이러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도와야하는 NGO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기도 한다. 서로에 대한 입장 차이는 존재하는데 월드비전의 김혜자는 그래도 계속 도와주어야하고 지글러는 이러한 경제적인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내전이든 경제 속이든 어린이에 대한 인권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영화 '유로파 유로파'에서는 어린 유대인이 독일의 탄압을 피해 가족을 떠나 소련병사로 다시 독일병사로 참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소년병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이라기보다 왜 주인공이 소년병으로 참전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다. 바로 소년의 생존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변 유대인들이 독일인들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그래서 소년은 혼자 목숨을 걸고 소련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 역사적 배경으로 독일과 소련 사이는 이미 틀어져 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소년은 그것을 이용해 유대인으로 핍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도망쳤으며 독일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고 스탈린주의를 사랑한다고 서기장에게 말하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친다. 결국 주인공은 소련의 병사로서 독일인과 싸우게 된다. 그런데 그 당시 상황은 독일이 상당히 소련에게 우세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독일 군사들에게 포로가 되었을 때 자신은 독일인이고 소련군에게 붙잡혀 강제로 동원 되었다고 설명하면서 독일인들에게 감정을 호소한다. 결국 또다시 소년이라는 복합적인 감정기제를 이용하여 독일군에 서게 된다. 그런데 그는 히틀러유겐트로 들어간다. 이미 세계 2차 대전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다. 전쟁 동원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다. 특수한 집단을 조직하여 훌륭하고 충성심 있는 리더를 육성 하는 데는 교육이 좋은 기제 인데 그 대상이 남녀 구분할 것 없이 배우면서 자라게 될 어린이,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그 학습의 효과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주인공의 친구와 몰래 관계를 맺다 임신을 하는데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자신이 탄생하게 될 아이는 히틀러의 전선에 보내질 순수 혈통의 아리아인이기 때문에 낳아야 한다는 논리로 중절을 거부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이렇듯 장기적인 전쟁은 전시 동원 체제, 경제적 문제, 생존문제, 사상문제로 인해 자연스레 소년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소년병은 존재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쟁에서 애국주의 뿐 아니라 사기를 유발시키는 기폭제로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청년이지만 소년병처럼 그 당시 생각으로는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여자가 조국을 위해 혜성같이 등장하여 애국심을 발휘하는 잔 다르크를 들 수 있다. 잔 다르크의 등장으로 잔 다르크는 영웅시 되었으며 프랑스의 애국사상 뿐 아니라 사기까지 증가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년병들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도 존재한다. 바로 십자군 전쟁 때 등장하는 소년병의 경우이다. 종교적 신념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노예, 농민, 상인 뿐 아니라 소년들까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결국 결말은 비참하게도 노예로 팔려나가게 된다. 하지만 당시 십자군 원정에 대해 강한 종교적 신념과 열성을 생각해 본다면 역사적으로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겠지만 그 시점에서 소년병들이 원정을 떠났을 때 부모들이나 주변인들이 말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십자군에 대한 사기 증가에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먼 서구의 이야기뿐 아니라 가까운 한국에서도 같은 예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신라의 화랑이다. 화랑도 지금 우리들에게 상당히 미화된 면이 강하지만 화랑이 아니었다면 신라의 삼국통일이 있었겠느냐 에 대한 의문은 여지가 없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히틀러 유겐트와도 흡사하겠다. 삼국시대에는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고구려보다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통일할 수 있었던 배경은 분명 화랑 출신의 장군들이기 때문이다. 단지 어린 시절 무예뿐만 아니라 교양을 익히고 정신을 수양하면서 애국심을 기른다. 그리고 화랑들의 여러 이야기를 통해 주변 군사들의 사기를 복 돋는다. 또한 전장에서의 영웅시도 된다. 모든 것들이 국가전쟁을 위해 완벽하게 만들어 졌기 때문에 그 나라를 대표하게 된다. 화랑의 탄생 배경은 미화가 심하지만 미소년에서 비롯되었는데 결과론적으로 따지면 분명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화랑들은 어린 시절부터 수양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의와 우정으로 꽃피워 나간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상당히 지금의 소년병들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이데올로기와 지금의 이데올로기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의 시선은 단지 깨진 오목거울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소년병들에 대한 비판과 미화는 확실히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판단하기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소년병들이 전장에 있어서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전쟁 속에서 소년병은 필요악이다. 인권의 문제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개인적으로는 생존과 경쟁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사기, 애국심, 영웅, 전시동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한국도 6.25 때 소년병들이 총알받이로 사용되었음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쟁을 위해서 동원도 되지만 이렇듯 강대국과 약소국과의 경제논리 속에서도 소년병은 존재하게 된다. 자의, 타의 어느 것이든지 간에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전쟁 속에서는 살기 위해 목숨을 걸 것이다. 결국 어떠한 시각을 보느냐에 따라 소년병에 평가는 다르겠지만 평가는 평가에서 끝날 뿐 전쟁이 없어지지 않으면 소년병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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