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이론 과제물 정리

2010. 10. 10. 11:34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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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이론 과제

2006006015 독어독문학과 박형락

형식주의에 있어서 낯설게 하기, 자동화된 의식

형식주의는 "문학연구를 과학적 기반 위에 설정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방법과 절차를 사용하는 자족적인 학문으로 확립하는 일"에서 시작하였다.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문학이라는 언어와 일상 언어를 구별해주는 형식적 부분과 언어학의 특징을 찾아내는 것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어떤 추상적 기준을 확립하려 하는 질문은 문학작품의 "형식적 특징의 검토"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문학이라는 것은 현실을 반영 한다기 보다는 그것을 "새로운 주목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상적인 평범한 독자들의 생각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혼란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 했다. 그것이 바로 낯설게 하기다. 따라서 형식주의자들은 이 낯설게 하기를 만들어 내는 문학 속의 "형식적인 장치"를 밝히는데 노력하였다.

형식주의의 시각에서 문학에 대해 쉬클로프스키는 "예술의 목적이란 우리를 강제로 인식케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한마디로 무언가가 쉽게 말해 자동화가 우리에게 작용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기법이 문학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기법이 바로 낯설게 하기 인데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을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 일회적인 방식이 아닌 구성적인 방식을 원했다. 물론 낯설게 하기가 사회비판의 형태를 취하는 것만은 아니고 "형이상학적 형태"로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소련이라는 배경을 볼 때 낯설게 하기를 보자면 일상생활은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는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그들의 일상생활은 단순히 반복 노동의 기계적인 삶이다. 형식주의자들의 시각에 있어서 이들은 아무런 고민 없이 이러한 일상생활을 지각없이 살아왔다. 이러한 사회는 관습적이고 자동 즉 수동으로 조작하지 않고 어떤 "의문조차 없어지는 사회"를 가리킨다. 따라서 수용자 중심적 입장을 가지며 그들의 가치는 획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형식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타겟으로 비판하였다. 이러한 획일적이고 평범한 삶들을 비판하고 "일상 언어에 폭력"을 가해서라도 이것을 비틀지 않으면 인식과 표현의 어떤 일상적 버릇 및 늘 사용했던 언어를 배제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것은 시적이지 않기 때문에 자동적이고 습관적인 인색방법을 깨는데 낯설게 하기는 그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일상에 대한 무미건조함은 자동화가 된다는 것이기에 이러한 것을 깨야한다고 형식주의자들은 생각했다.

형식주의에 있어 낯설게 하는 것은 이러한 배경의 의식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 일반적인 어떤 문학 언어는 일상 언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일상 언어를 "밀도가 강화되거나, 응축되거나, 비틀리거나, 압축되거나, 길게 펴지거나, 거꾸로 세워서 " 문학 언어로 만든다. 이러한 일상적이지 않은 문학 언어는 자동화된 사람들 즉 독자들이 읽으면서 갑자기 낯설게 느끼게 한다. 그것은 독자들이 자동화가 되는데 우리의 현실 인식과 현실에 대한 반응이 진부한 일상어 속에서 둔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은 우리로 하여금 언어를 극적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이 습관적인 반응들을 새롭게 하고 사물들을 더욱 인식 가능하도록 만든다. 어찌 보면 문학이 우리의 반응을 새롭게 해준다고 할수 있다. 평소보다 더욱 집요하고 자의식적인 방법으로 언어와 맞씨름할 수 밖에 없음으로 해서 그 언어가 담고 있는 세계는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형식주의자는 이러한 낯설게하는 방식을 통하여 세속에 찌들어 있는 독자들을 계속 긴장하게 하고 집중도를 높이면서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 언어를 규범으로부터 일탈한 것들의 집합체로 일종의 언어폭력으로 보았다." 이렇게 본 이유는 일상 언어가 문학 장치들의 압력을 받아 변형되고 낯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문학 언어를 통해 독자가 보통 사용하는 일상 언어 외 대조되는 특별한 종류의 언어로 보았다.

*참고문헌

literary theory : terry eagleton : black well

기술로서의 예술 : 빅토르 쉬클로프스키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 : 빅토르 쉬클로프스키 : 청하

문학이란 무엇인가 : 유종호 : 민음사


신비평의 텍스트

신비평은 문학을 내적으로 접근하는 것인데 즉 외적인 것을 반대했다. 외적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인데 신비평은 이를 외면했다. "일차적인 것은 작품 자체이며 나아가 작품은 텍스트 이외 어떤 것도 아니라는 새로운 문학관"을 내놓았다. 언제나 인문학이 그랬듯이 이 문예사조 또는 문예운동 또한 기존의 사조에 부정하면서 시작 되었다. 기존 사조는 비평가의 주관적 느낌이 들어있거나 역사적으로 접근하여 작가의 생애나 당대 상황 등 문학작품의 주변적 사실들에 집중하는 것인데 이를 신비평은 반대하였다. 그리고 "작품 자체" 를 중요시 하였다.

신 비평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낭만적, 미적, 휴머니즘의 대안으로 그들의 비평 방법은 합리적 논의를 허용하지 않고 작품이 절대적 위치를 지녔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와 독자 주관적 해석이 분리되었다. 이는 낭만주의와는 다른 차별성을 가졌다. 왜냐하면 낭만주의는 현실세계보다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정신세계를 추구하지만 그 반대로 현실을 향해 열려 있었다. 그러나 신비평은 문학의 "독자성과 내재성"을 더욱 더 중요시했다. "긴장과 역설과 양면성을 엄격한 비평 해부 기법"으로 신비평은 추구했다. 이를 통해 "합리적 접근과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된 언어"를 가졌다. 어떤 문학의 텍스트의 의미를 신비평은 최종적인 해석으로 확정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대립과 분열과 갈등이 현대인의 삶의 모습에서 통합을 위한 시적체험 즉 "시성과 문학성"을 통해 감동을 주는 문학테스트를 가진다고 신 비평가들은 주장했다. 이는 텍스트 자체에 대한 꼼꼼한 분석이 요구된다. 이러한 분석을 "꼼꼼히 읽기"라고 한다. 시의 경계를 언어구조물로 단단히 확정 짓고는 아예 다른 것들 즉 다음 문단에 설명하는 어떤 외적인 부분은 재껴버린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오직 작품 즉 텍스트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신비평 주의자들은 텍스트 중심의 해석을 신봉하였다. 이는 독일 2차 세계대전 유행했던 작품 내재적 방법과 유사하다. 비평가는 오직 문학 텍스트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작품의 어떤 배경이나 다른 텍스트 간의 관계는 전혀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문학 속에 담긴 "갈등과 모순과 분열을 통합하고 조화되는 과정에서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였다. 문학은 "그 자체로 작가의 의도나 독자의 영향은 무시"했다. 이를 통해 문학 "텍스트는 독자의 반응과 동일시 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신비평은 "저자의 의도"와 독자가 갖는 감정"을 배제 시킨다. 비평가는 문학에 나타난 모순적 상황을 파악하기만 한다. 따라서 텍스트 외부로 나가기를 신비평 주의자들은 거부했다.

이렇게 신비평가들은 문학 즉 텍스트를 꼼꼼히 분석하는데 중시했던 이유는 과학과는 차별하고 싶다는 어떤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과학의 지배가 심한 현대 문명에서 "시는 교정적이며 저항적이고 혹은 대안적인 탐구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학과 과학을 구분 지으면서 과학처럼 입증하는 학문을 하려 했던 것이다. 문명 발달 하면서 과학도 동시에 발달하고 서로 상호 관계를 인문학도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인문학은 시대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을 분명 어떤 특별한 대안이 필요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부에 집중하는 신비평은 결국 현실의 세계문명이 지배하는 것과는 다른 진실과 깨우침과 "정서적 방응양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계문명 속에 문학이 필요하다고 알리고 싶었고 그것은 "역설적인 믿음"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그 당시 신비평은 "시는 세상을 떠남으로써 오히려 세상에 중요한 무엇을 던져줄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었다. 

*참고문헌

literary theory : terry eagleton : black well

비판적 문학 이론과 미학 : 페터 지마 : 문학과 지성사

영미문학의 길잡이 : 영미문학연구회 : 창작과 비평사


형식주의와 신 비평의 유사성과 차이성

형식주의 와 신비평은 시대적 상황과 배경이 서로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다. 하지만 20세기의 대표적인 문학비평이론인 형식주의와 신 비평은 모두가 19세기 과학적이고 실험적인 태도를 부정하면서 문학을 문학 자체로 인식한다는 공통점을 띤다. 문학을 문학 자체로 봤기 때문에 형식주의 같은 경우 내용이나 사상성 문제는 중요시 하지 않고 대신 "형식과 수법을 중시" 하였다. 신비평 역시 문학을 "역사적으로나 전기적인 맥락에서 분리" 해서 형식과 기법에 집중을 하였다. 이러한 두 이론의 태도는 "사상이나 의미"를 좋아하는 마르크스나 역사주의와는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찌보면 두 이론 모두가 형식주의의 범주에 들 수 있다. 형식주의와 신 비평의 유사성은 일상의 감성과 감수성에 일상적 비판의식에 대한 문학체험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문학의 자율성을 강조"하였고 문학작품의 "언어적 특성을 주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유사성 속에 차이점도 있다.

형식주의와 신 비평의 차이성은 첫째로 이들이 보여주는 문학과 현실의 관계가 달랐다. 러시아 형식주의는 반 휴머니즘적 세계관을 구축하였고 신비평은 휴머니즘이라는 세계관을 구축하였다. 따라서 형식주의는 문학의 자율성이 세계를 낯설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현실 인식을 모델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대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신비평가들은 위의 유사성 처럼 형식주의자 같이 문학의 자율성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세계나 현실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인식을 어떤 모델로 보았다. 즉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서 형식주의는 대립관계 그리고 신비평은 유사적 관계로 봤던 것이다. 이렇게 상이한 태도가 나타나는 것은 배경에 따른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적 언어에 대한 관심"이 달랐다. 형식주의와 신 비평은 모두 시적 언어와 일상적 언어가 서로 차이가 있으면서 영향을 받는다는 공통된 견해를 보여준다. 형식주의의 경우에는 시적 언어는 자동화된 일상적 언어를 낯설게 만든다고 했다. 즉 자동화에 탈출한다. 따라서 시적 언어와 일상적 언어는 대립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신비평의 경우에는 시적 언어가 과학적으로 실증될 수 없는 진리를 목표로 하며 "시적 어법은 과학적 어법과 대립"된다고 했다. 그리고 시적 언어에 따른 비평 방법도 차이가 있었는데 형식주의는 음성학에 관심이 있었는지 음운 분석에 주력하였다. 따라서 음운은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문학의 요소"이며 문학의 "구조 분석"을 택했다. 그러나 신비평은 이미지 분석을 중시 하였다.

또한 "시적 의미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 시적 의미의 문제는 언어의 의미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계된다. 형식주의의 경우 시적 의미는 자동화된 일상적 의미를 낯설게 만들 때 생산된다고 했다. 그러나 신비평에서 언어행위는 현실에 관계없이 생산하긴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현실이나 객관적 사물의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는 특수한 형태"를 낳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신비평에서 시적 의미는 아이러니를 생산하지만 그 의미는 결과적으로 현실과 관계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시적 구조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 형식주의와 신비평은 모두 문학연구의 대상으로서 텍스트 자체를 강조했다. 텍스트를 작가나 독자와 분리시켜 인식했다. 따라서 구조와 상호관련성을 중시했다. 그러나 형식주의의 경우 구조 또는 형식이라는 개념은 차이, 낯설게 만들기, 이탈 같은 개념들을 포함했다. 신비평의 경우 구조는 "아이러니의 특성"을 나타냈다.

*참고문헌

literary theory : terry eagleton : black well

내재적 비평 문학의 이론과 실제 : 김혜니 : 푸른 사상사

뉴크리티시즘(신비평)과 러시아 형식주의 : 이승훈


Eliot의 전통과 개인(시인)의 의미

T.S Eliot은 미국 남부출신으로 "유기체적이고 목가적이고 봉건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Eliot은 산업자본주의를 정신적으로 천박하고 경솔함에서 오는 혐오감에 느꼈다. 미국 남부에서는 그 당시 혈통과 가계가 여전히 중요시 했었는데 이러한 삶에서 하나의 대안을 찾아내었다. Eliot이 영국에 올 당시 영국 고유 낭만주의자들 보다 프랑스 상징주의자들이 문화적으로 수입되어 활개를 쳤다. 절대왕정과 성공회가 융성할때는 "시인들이 감수성의 통일을 보여주었다". 즉 사고와 느낌의 자유로운 융합을 보였다. 그러나 왕정이 몰락하고 현대의 세속사회를 만들어 낼 때는 당시 상황이 달라졌다. "과학과 민주주의, 합리주의, 경제적 개인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 감수성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언어는 경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시인들은 생각은 할 수 있지만 느끼지 못하고 다른 시인들은 느낄 줄은 알았으나 생각할 줄 몰랐다".

Eliot은 중산계급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비난했다. 이는 "산업자본주의, 자유주의, 낭만주의, 프로테스탄티즘, 경제적 개인주의"가 이에 포함된다. 그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극우적 권위주의"라고 생각했다. 인격이나 개성, 의견을 희생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비인격적 질서인 전통을 찾은 것이다. 전통에 대한 가치기준 보다는 시를 쓰는데 도움을 주느냐를 보았다. Eliot은 무조건적인 문학이 아니라 전통이라는 것이 그 작품 속에 내재 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경험과 밀접히 결합된 어떤 언어가 지닌 장점은 그것이 시인으로 하여금 합리주의 사고의 치명적인 추상들을 무시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시가 독자의 마음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며 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의미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게 하기 위해 독자에게 던져진 미끼다." 시는 더욱 물리적이고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독자에게 작용한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전통이라는 측면은 되풀이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했다. 그 이전 세대에 전해 내려오는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저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전통을 시인이 받으면 큰 힘이 된다고 주장했는데 왜냐하면 "역사적 의식"이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전통에서 역사적 의식이 "과거성"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성도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골수에 박혀있는 자신의 세대를 파악하게 되어서 자기의 위치와 속해있는 시대에 대해 날카롭게 의식"한다. 이러한 의식을 가진 시인은 과거가 현재에 의하여 일끌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가에 있어서도 전통과 새로운 것이 서로 평가되어지고 이를 통해 측정되고 비교된다고 주장했다. Eliot은 시인의 임무가 과거의식을 발전시키거나 획득이라고 생각하고 한평생을 그 의식 발전에 신경써야한다고 했다. 이렇게 함으로 시인은 "그 순간의 자기자신을 항상 보다 더 가치있는 것 앞에 굽히는것이 디고 한 예술가의 발전이란 끊임 없는 자기 희생이요 개성의 지속적인 탈각" 이라고 했다.

Eliot은 "세련되고 원숙한 매개체"가 "시인의 정신으로부터 특수하고 다양한 감정을 마음껏 자유로 구사하여 새로운 결합을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시인이 아무리 독창적이더라도 그것은 전통이 된다고 생각했다. 즉 전통불변의 법칙으로 전통 그 자체는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의 전통주의 특징은 전통을 유기체적 이미지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낭만주의와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을 비판하였다. 그는 통합감수성 이론을 내세웠는데 이상과 현실의 분열을 통합하여 시에 보여줌으로써 "이상과 현실 사이의 중립"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전통이론은 전통과 시인 즉 개인의 관계로써 객관적 상관물로써의 시를 주장했다. 그리고 Eliot은 전통과 시인과의 관계를 "탈개성적 시론의 한가지 면"으로 봤다. 시인과 전통에 있어서 시를 쓸 때 자신의 어떤 사상과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통하여 자신의 개성을 죽이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시속에 시인의 감정이입이 없다. 이는 천재적이고 개인성을 가진 낭만주의 시인과는 달랐다. 시적화자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을 때 매개체를 필요로 한데 이런 이상과 현실의 통합의 모습이 일상적 현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상적 현실에 대한 일탈은 굉장히 불편할 것이고 이러한 불편한 경험을 통한 감성 분열은 전통을 통해 시인이 극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literary theory : terry eagleton : black well

전통과 개인의 재능 : T.S Eliot


총체성과 전형의 의미

191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독일의 문학, 미술, 음악에서 표현주의가 성행하였다. 표현주의는 강렬한 예술적 표현을 추구하였다. 한편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사회주의 정권이 이미 그들의 체제와 권력을 굳혀가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서구의 파쇼적 정치세력이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었다. 이로 인한 사회주의 진영과 서구의 파쇼진영의 증대하는 정치적 긴장과 대립 속에서 러시아를 위시한 사회주의 진영은 진보적 부르주아지 계급과 연합 전선을 구축함으로서 파쇼정권의 대두를 막고자했고 파쇼진영은 볼세비즘 정치권력의 확대를 저지하고자 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는 시기를 전후한 독일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독일 공산당은 독일 국내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정책을 수립했는데 부르주아지 계급과 구별되는 정치노선을 펼쳐야 했고 한편으로는 시민층 정치세력과 손을 맞잡고 반파쇼 공동전선을 구축해야만 했다. 이 같은 정치적 모순이 독일 공산당의 문화정책에도 반영되었다. 시민층 문화에 완전히 대립되는 독자적인 문화정책 수립과 광범위한 시민계층을 포함하는 포괄적 문화정책을 수립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독일의 여건은 정치적으로 좋지 못했기 때문에 문화정책에서도 당연히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루카치의 총체성과 전형이라는 용어의 표현은 이러한 당시 독일 배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혼란과 그에 따른 문화적 혼란이 가중 될 수밖에 없었고 이에 고트프리트 벤을 시작으로 표현주의 논쟁이 일어나면서 리얼리즘 논쟁이 치닫게 된다. 이러한 역사 속에 루카치가 있었다. 루카치의 개인적인 생애를 보면 해겔 주의자였으며 시대의 흐름에 목숨을 내맡기고 거기에 맞게 자신의 주장을 (총체성을) 수정해 나갔다고 한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데 이를 종합해서 루카치의 총체성을 설명하는데 루카치가 헤겔주의를 신봉하면서 마르크스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관점에서 총체성을 분석하겠다.

루카치의 마르크스주의는 휴머니즘과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에게 미학과 지적활동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이미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 이전부터 자본주의적 삶의 파편적이고 소외된 형식에 대해 깊은 환멸을 느낀다"라고 하면서 반자본주의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루카치는 사물화라는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의 폐해를 설명했다. 상품생산에 의한 자본주의적 관계가 인간의 생활을 지배함으로서 노동자가 상품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인격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계산가능한 양의 존재로 기계부속품으로 전락되어 인간의 의식은 점점 사물화의 경향을 띄게 되고 사물화 된 의식의 결과로서 부르주아 철학과 학문은 반 변증법적인 사고를 가진다고 했다. 이러한 반 변증법적인 사고의 극복으로 예술이 가지고 있는 "인식론적 성질"을 통해 인간의 총체성을 형상화하려는 고전주의적 형식원칙에 힘입어 소외되고 사물화된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를 순수한 인간관계로 발전시켜나가고 반 변증법적 사고를 깨뜨릴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리얼리즘의 시각으로 왜곡된 의식과 수단과 물건으로 보는 상품화는 사물화 된 의식을 가진다고 했다.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통해 문학에서 현실을 우선으로 보고 반영된 것이 의식인데 계속 변화해나간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변화 발전하는 운동성에서 진리가 점근성을 띠는데 루카치는 이러한 진리와 일치할 수 없으나 포착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경험은 하고 있지만 알지 못하는 것 즉 그 원인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경험하고 있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지 말고 분석을 통해 전방을 터득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어떤 소설에 있어서 개인적이거나 특수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총체화시켜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단순한 개인 개인의 인물이 그 사회의 전형화된 인물로 독자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이를 전형이라고 한다. 전형은 "개인이면서 동시에 삶의 본질적인 연관 관계를 포착 가능케 해주는 보편자로서의 인물" 이다. 이를 통해 루카치는 전형이 “수준 높은 리얼리즘” 이라고 했으며 이러한 생각은 자연스레 사회주의적 전망이 된다. 또한 사물의 의식적 왜곡화를 루카치는 지배이데올로기의 작용으로 봤는데 즉 이는 계급 모순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문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독자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학작품 즉 소설이 알지 못한 사실들을 “기록하고 고발”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루카치는 독일 고전주의의 총체성의 예술이상과 마르크스주의의 총체성의 사회이상을 전제를 가지고 이념을 추구했다. 루카치가 주장하는 총체성은 헤겔의 역사철학과 미학에서 유래하였다. 헤겔에 따르면 그리스 세계는 정신과 자연, 윤리성과 법, 이상과 현실, 개인과 국가가 하나의 유기적 총체성을 이루고 있었으며 내면세계와 외면세계가 아직 분열되지 않은 세계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저절로 자연에 순응하고 자유로우면서도 도덕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시적 세계상태" 즉 총체성 속에서 생활하였는데 현대인에게는 그것이 사라져버리고 시가 탄생하기 어려운 산문적 세계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루카치는 예술을 통해서 잃어버린 총체성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루카치는 대중성을 위해 총체성과 전형이라는 반영이론의 핵심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는 문학에서 하나의 면이 아닌 다양한 면을 보는 총체성과 전형적으로 모든 현실의 모습을 반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참고문헌

독일문학사조사 : 반성완 : 서울대학교

루카치와 알튀세르의 문예론 연구 : 양종근 : 경북대학교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에서 총체성과 주체의 문제 : 양종근 : 경북대학교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 게오르그 루카치 : 실천문학사

표현주의 문학론 : 박찬기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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