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22. 00:00ㆍLiteratur/English
The Homecoming..
(pause)
<<Edward Albee의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교과목명 : 현대미국희곡연구
담당교수 : 장병언
201180142 박형락
I've only slept with men I've been married to. How many women can make that claim? - Elizabeth Taylor
1. Edward Albee[1]
Edward는 1928년 3월 12일 워싱턴에서 출생했으며, 2주일 후에 입양되었다. 양아버지인 리드는 사립극장 재벌의 총수였다. 총수의 부인은 프란시스 올비는 리드보다 스물세 살 연하였지만 리드보다 기가 더 셌으며 양아들을 훌륭한 인물로 키우려고 했다. Edward는 열한 살에 기숙학교로 보내졌으나 다시 퇴교해야했다. 하지만 프란시스 올비는 Edward에게 졸업장을 안겨주기 위해 그를 사관학교에 입학시켰고, 그는 여기서도 퇴학을 당했다. 그는 명문 사립학교인 초트에 입학해서 글쓰기를 배우고 나서야 학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많은 창작을 했으며, 특히 시를 많이 썼다.
그는 스무 살에 양부모의 집을 떠나 뉴욕으로 가서 외할머니가 그에게 남긴 유산으로 살았다. 돈이 바닥나자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으며, 무엇보다도 전보 배달원으로 가장 많이 일했다. 그는 작곡가 윌리엄 플래내건과 함께 살았으며 그의 소개로 뉴욕의 음악가들과 예술가들과 사귀게 되었다. 손턴 와일더는 그에게 희곡 창작을 권유했다. 하지만 데뷔작인 단만극 ‘동물원 이야기’는 1958년에 가서야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뉴욕에서 ‘너무 실험적’ 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했지만, 여러 우회로를 통해서 마침내 베를린에서 1959년에 초연될 수 있었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서 상당한 액수의 유산을 물려받았으며, 동일한 작품이 미국에서도 제작되었다.
그의 경력은 차츰 상승가도를 탔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희곡작가로서 명성을 굳혔다. 보스턴의 에머슨 칼리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퓰리처 상과 다른 많은 상들도 탔다. 핸재 롱아일랜드 자택에서 살고 있다.
2. 부조리극[2]
1) 부조리 연극은 오로지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세계관을 표현한다. 이 연극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형식의 탐구에서 그 두드러진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오랫동안 드라마의 평가 기준이 되어 왔던 모든 것을 일소에 붙임으로써 재래의 드라마에 익숙해 왔던 우리를 당혹시켰다.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사실주의극은 등장인물 들의 성격창조가 치밀하고 그들의 행동의 동기가 충분히 믿을 수 있게 끔 되어 있다. 그러나 부조리 연극에서는 그 인물의 신분이나 성격이 거의 밝혀져 있지 않으며 그들의 행동의 동기도 전혀 주어지지 않고 있다.
2) 종래의 연극은 어떤 스토리를 말해 주거나 지적인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부조리극은 인간의 기본 상황을 시적인 이미지나 메타포로써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꿈이나 환상이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전달하며 그 발전이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연상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같다. 부조리 극은 인생을 모사하려는 한 사건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원형적 상황을 표출해서 그것을 설명 없이 있는 그대로 투사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이 극은 관객의 사고와 판단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신의 심층에 호소하며, 그러한 상황을 막연하게 느끼게 해주기보다 의식적으로 그것에 직면케 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적인 부조리성을 인식하게 한다.
3) 부조리 극은 재래의 형식으로부터 아무런 결론이나 해결도 없으며 명중한 정의가 결여되어 있는 이미지로 그 역점을 옮겼다. 그것은 부조리 작가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어떠한 것도 명확하고 깨끗하게 해결되고 설명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생의 이해 불가능을 말하며 의미와 목적이 상실된 세계에서의 절망을 표현하려고 한다. 종래의 연극은 확실하고 그것대로 만족 할 수 있는 신조의 가치체계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 세계는 의미가 통하고 있던 세계였다. 그러나 부조리 연극은 그저 한 신조나 가치체계가 없거나 상실되어 버린 세계,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는 세계에 부딪힌 인간의 절망,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공허한 세계에 살고 있는 정신의 황폐감이 전적으로 표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4) 언어에 대한 불신감을 부조리 극은 가진다. 모든 진실을 그 동안 우리는 언어에 의해서 밝힐 수 있고 소통시킬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물과 그를 설명하는 언어 사이에는 차츰 간격이 벌어지게 되었고, 언어는 진실을 표현해 주기보다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 버렸다. 우리는 이제 엄청난 언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미래를 맹세하는 정치가들과 사회 개혁자들의 엄청난 장광설, 대중매체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유혹의 말들이 얼마나 거짓되며 허위에 차 있는가를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따라서 부조리 작가들은 언어를 통해 논리 정연하게 무엇을 기술하고 설명하여 설득시킨다는 일을 포기해 버렸다.
5) 연극에서 과거 연극의 유산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커스, 마임, 광대놀이, 넌센시컬한 말장난, 우의적 요소를 강하게 갖고 있는 과거 꿈과 환상의 문학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이제까지 언어의 노예가 되다시피 했던 종래의 사실주의 연극의 옹색하고 답답한 울타리로부터 연극을 해방시켜 연극적 재미와 활력을 되찾게 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3. 사회적 관점에서 본 등장인물의 특징
Edward Albee는 의도적으로 사회비판을 하기 위해 미국 초대 대통령인 George Washington[3], 1960년대 소련의 서기장 Nikita Khrushchev, Washington 대통령과 그 부인의 이름 Martha 를 인물로 내세우고 있다.[4]
1) Martha
ㄱ. 그녀는 학창시절 뭔가 꿈이 있었고 잠재적인 역량도 있었다. 그러나 가정적, 교육적, 사회적 여러 제약과 억압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현 남편과 정식 결혼을 했다. George와 결혼을 함으로써 George가 그녀의 아버지의 계급을 물려받아 총장이 될 것이므로 자신의 욕망과 허영심을 충족시키겠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극 중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편의 무능력에 실패 했고 고통스러워 한다.
Martha : I cry alllll the time; but deep inside, so no one can see me. I cry all the time. And Georgie cries all the time, too. We both cry all the time, and then, what we do, we cry, and we take our tears, and we put 'em in the ice box, in the goddamn ice trays[5]
ㄴ. 불임이다. George에게 육체적 부적격자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 사회에서 성 역할에 어긋난 인물이 된 것이다. 결국 이 때문에 극중 이전에 있었던 교수 파티에서 상상의 아들을 언급하도록 유혹 받게 된다.[6]
Martha [crying]: I FORGET! Sometimes .. sometimes when it's night, when it's late, and … and everybody else is … talking. … I forget and I ... want to mention him ... but I ... HOLD ON … I hold on ... but I've wanted to … so often … ah, George, you've pushed it … there was no need … there was no need for this. I mentioned him … all right … but you didn't have to push it over the EDGE. You didn't have to …kill him.[7]
ㄷ. 사실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피해자다. 분명 그녀만의 가치관, 인생관, 결혼관이 있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녀의 모든 인생은 마치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되는 것이다. 바로 아버지라는 존재에서 말이다. 대학교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했으나 아버지에 의해 무효가 되었다. 또한 아버지는 그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단지 “자신이 학교를 그만 둘 때를 대비해 학교 일을 딸의 신랑감에 대해서는 항상 생각하고 있었지만 딸인 Martha가 대학의 상속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이다.”[8]
George.: ... and on top of all that, poor weighed-dov;n girl, PLUS a father who really doesn't give a damn whether she lives or dies, who couldn't care less what happens to his only daughter ... on top of all that she has a son[9].
2) George
ㄱ. 현재 40대인 대학의 역사 교수 George는 6년이나 연상인 Martha와 20여 년 전 Martha의 아버지가 총장으로 있는 대학에 부임하면서 결혼했다. Martha의 욕망처럼 장인의 대를 이어 총장이 되길 바랬는데, 총장은 커녕 사학과장에도 오르지 못했고 교수 간의 영향력도, 학문적 업적도 신통치 못했다. 과거에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마저 사고로 죽인 어두운 내력을 지니고 있었다. 역사의 회의주의에 빠져 매사 시니컬하고 결단력이 없으며 항상 독설적이었다. 그런 그가 총장의 신임받는 사위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출세만을 노리는 속물들의 집단인 대학 사회에 적응하기란 심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성공과 실패 여부는 단지 Martha 입장일 뿐이다. 왜냐하면 교수는 교수일 뿐 경영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즉 “George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젊은 남성들과 비교하여 George에 대한 Martha의 평가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비록 Martha가 George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젊은 남성들과 비교하여 George에게 실망 했을 지라도 그녀의 관점은 피상적이고 좁은 것이다.”[10]
George [to NICK a confidence, but not whispered): Let me tell you a secret, baby. There are easier things in the world, ifyou happen to be teaching at a university, there are easier things '¢an being married to the daughter of the president ofthat university. There are easier things in this world.
Martha [loud . … to no one in particular]: It should be an extraordinary opportunity ... for some men it would be the chance of a lifetime![11]
ㄴ. 사실 이 사람도 속물주의 근성을 가지고 있다. “White mouse” 의 부하로서 “교수들의 무덤”이라는 대학에서 필요에 의해 소모되는 소모품이었지만 그래도 Martha와의 결혼을 적절히 이용하려고 하였다.[12]
Nick: Have you been trying for years?
George [after a long pause . .. looking at him] : Accommodation, malleability, adjustment …[13]
3) Nick
ㄱ. Nick 은 19세에 석사 학위를 받고 권투 미들급 챔피언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다. Nick은 Honey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사실은 이것 때문에 결혼한 게 아니라 Honey 아버지가 소유한 돈 때문이었음을 자신의 입으로 명확하게 밝힌다.[14] Honey의 아버지는 전도사인데 전도여행을 통해 부도덕하게 헌금을 통해 다시 병원에다가 투자해서 “재산을 증식”한 “a church mouse” 였다.
GEORGE: Sure! I'll bet she has money, too!
NICK [looks hurt. Then, determined, qfter a pause]: Yes.[15]
4) Honey
ㄱ. 남편 Nick의 경력과 정열을 사랑하지만 그와 결혼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상 임신’이라는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이용한다.
4. 작품분석
1) 제목의 의미[16]
어느 술집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에 Edward Albee는 극작가 지망생이었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10번가에 있는 단골 바에서 술한잔 하기를 즐겼다. 그 집 일층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거기에 낙서를 하곤 했다. 나느 날 Albee는 맥주를 마시다가 거울에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라는 말이 비누로 씌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문장은 그의 뇌리에 강렬하게 새겨져, 그가 대학 캠퍼스를 무대로 한 희곡을 쓰기 시작 했을 때 떠올랐다. 이 뜻은 누가 저 무섭고 위협적인 적 (big bad wolf) 를 두려워하겠느냐 라는 뜻이다. 거짓 환상 없이는 사는일이 누가 두려워하겠느냐 라는 이야기로 Albee 는 그 말이 대학 사회와 지식인의 전형적인 농담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2) 이 게임의 줄거리[17]
ㄱ. 게임의 법칙
Nick 부부가 손님으로 George 부부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미 이 부부의 교양인 다운 모습이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다.
Set in darkness. Crash against front door. Martha’s laughter heard. Front door opens, lights are switched on. Martha enters, followed by George.
Martha: Jesus….
George:…Shhhhhhh….
Martha:….H. Christ….
George: For God’s sake, Martha, it’s two o’clock in the….
Martha: Oh, George!
George: Well, I’m sorry, but….
Martha: Whar a cluck! What a cluck you are.[18]
곧 불어 닥칠 언어의 폭력을 느끼며, 부부의 격렬한 말싸움은 언제라도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게임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혼한지 20년이나 되었지만 자식이 없는 중년의 부부 Martha와 George는 게임의 규칙을 숙지하고 있다. 공격을 받으면 언제나 새로운 공격기술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다. 실제로 피바다를 이룰 때 까지 격화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따라서 전략적으로 균형이 중요해 보인다. 누가 다음에 공격을 할 것인가? 누가 구타를 당할 것인가?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의 발전은 군사작전 처럼 표현했다.
Martha[almost disappointed]:Well, I guess you didn't get the whole sad story. What's the matter with you, George? You given up?
George [calm•..serious]:No...no. It's just I've got to figure out some new way to fight you, Martha. Guerillatactics,
Maybe ... internal subversion ... I don't know. Something[19]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공격하는 기술이 결혼 생활 동안 발전한 것에 비례해서, 주량도 늘어간다. 점점 격렬해지는 두 사람과의 싸움과는 무관하게, George는 자신과 아내의 술잔에 번갈아가며 술을 채우고 아내에게 마시라고 강요한다. 그들을 찾아온 Nick과 Honey는 비록 처음에는 순진무구한 듯이 보이지만, 나중에는 점차 본색을 드러낸다.
Honey: I don't know, dear A little brandy, maybe. 'Nevermix-never worry.' [Shegiggles.][20]
Nick: Everybody drinks a lot here in the East. [Thinks about it.]Everybody drinks a lot in the middle-west, too.[21]
처음에는 물 섞은 리큐르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원액 위스키로 끝나는 Martha에 대한 George의 묘사 역시 이들의 결혼 게임과 동일한 모델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힘을 상호간에 승인하는 것도 게임에 속한다. 두 사람이 마치 점수를 나눠서 새로 무장하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Martha: All right, George. What do you want, George?
George: An equal battle, baby; that's all.
Martha: You'll get it!
George: I want you mad.
Martha: I'M MAD!!
George~"Get madder!
Martha DON'T WORRY ABOUT IT!
George: Good for you, girl; now, we're going to play this one to the death. .
Martha: Yours!
George: You'd be surprised. Now, here come the tots; you be ready for this.
Martha [she paces, actually looks a bit like afighter]: I'm ready for you.[22]
ㄴ. Act1. Fun and Games
주인공 부부 George 와 Martha가 처한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23] George는 Nick 이 출세를 지향하는 현실주의자임을 폭로하고 있다. Nick은 Honey의 유산상속권, 나중에 맹장염으로 판명된 상상임신 때문에 그녀와 결혼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게임이 경과되면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결혼을 종말로 치닫게 하는 주제가 건드려진다.
George와 Martha의 게임 규칙 중에는 아들에 대한 침묵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Nick의 아이 질문에 George는 그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Nick: Vh ... no ... not yet. [Pause] You?
George [a kind of challenge]: That's for me to know and you to find out.
그 이유는 아들이 존재한다고 설정하고 이들은 생활하는데, 사실 아들은 부부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규칙은 Act3에서 깨지게 된다. 왜냐하면 Martha가 먼저 Honey에게 말을 아이가 없다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George는 복수를 하게 된것이다.
George: You broke our rule, baby. You mentioned him . you mentioned him to someone else.[24]
ㄷ. Act2. Walpurgisnacht[25]
George나 Martha 뿐 아니라 Nick 과 Honey 부부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소외와 파괴가 점점 강렬하게 전개된다.[26] Martha와 규칙적으로 토를 하는 Honey가 자리를 비운 사이 George의 숨겨진 젊은 시절 이야기가 드러난다. 소년시절 어릴 때 이유 없이 어머니를 총으로 쏘아 죽였으며, 자동차 사고로 아버지를 죽게 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Martha가 George를 빈정거릴 때 이용한다. 이 말을 들은 그는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죽이려 한다.
GEORGE: I will notl [All three are laughing at him.] [Infuriated] THE GAME IS OVER![27]
공격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가중된다. Nick과 Honey도 이 게임에 휘말려들어 점차 드러나는 이 두 사람의 일상생활은 George와 Martha와 유사하다.
Martha는 George에게 인생의 패배자라는 기분이 들도록 하기 위해 Nick과의 섹스를 고집한다. 그러나 굴욕감을 주기 위한 이 의도는 George의 젊은 시절 이야기와 함께 악용함으로써 그들의 종말을 불러오며 게임의 끝을 보게 된다. 이 게임에서 Nick과 Honey는 단지 이들 중년 부부의 단지 비장의 무기로서 투입되는 역할 만 한다.
ㄹ. Act3. The Exorcism
부부의 관계와 두 가족에서 나타나는 그릇된 환상이나 삶을 방해하는 요소를 물리침으로써 나타나는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28] 하지만 Act3의 시작부분의 Martha의 대사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부부의 전망 부재에서 뒤에 남는 쓸쓸함을 표현하고 있다.
Martha가 Honey에게 화장실에서 아들의 존재를 말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게임의 규칙이 깨지게 된다. 따라서 George는 마지막 씬에서 아들을 상상속에서 죽여버리도록 내버려 둔다. George는 대학총장의 딸인 Martha에게 베풀어준 유일한 선물인 아들을 희생한다.
이에 대해 Martha는 유일한 가임여성으로서 남성세계에 대해 우위를 주장한다. 그런데 그녀의 말은 애매한 점이 있다.
MARTHA [dismissing him]: You're all flops. I am the Earth Mother, and you're all flops. [More or less to herself] I disgust me. I pass my life in crummy, totally pointless infidelities... No, I’d forgotten him. But when I think about him and me it's almost like being a voyeur. Hunh. No ; I didn't mean. Him ; I meant George, of course. [No response from NICK.] Uh...George; my husband.[29]
게임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이제 George 부부는 게임의 도구였지만 앞으로 불운한 영향을 끼치게 만든 Nick 부부가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바로 버린다.
George [Martha is sitting on te floor by a chair now] : You two gonow.
Nick : Yes.
Honey : Yes.
밤이 끝나자 George는 처음으로, 술잔에 술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잔을 내려놓기 위해 바로 걸어간다. 계속해서 그들끼리만 함께, 다시 말해 공동 존재인 열매의 환상 없이 살 수 있겠느냐는 George의 조용한 질문에 대해 Martha는
Martha: Yes, No.
그가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그녀가
Martha : I…am…George…I…am[30]
대답한 뒤 그들의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게 된다.[31] 그리고 정적이 흐른다.
3) Martha와 George의 결혼관계[32]
현대사회의 전형적인 속성인 출세주의, 물질주의, 기회주의의 희생물이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행복하고 화목한 이상적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실현과 완성을 위한 도덕적 성품과 인격을 갖추기도 불가능했다. Martha의 경우 무능한 남편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 만을 가하며, 음주와 비도덕적 행위를 자행함으로써 타락한 상황으로 빠져 들게 된다. 손님을 초대한 상태에서도 George와 정사를 가지려고 유혹하기 까지 한다. 여기에 George는 애정 어린 대우를 하기보다는 마치 창녀나 자신과 관계가 없는 여자를 다루듯이 힘으로 지배하려고 한다.[33]
George [too matter-of-fact]: Well, dear, if I kissed you I'd get all excited .. I'd get beside myself, and I'd take you, by force, right here on the living-room rug, and then our little guests would walk in, and . . well, just think what your father would say about that.[34]
그들이 하는 일은 오직 상대방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불만과 좌절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일이거나, 아니면 거짓과 환상으로 자신을 기만하는 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결정적으로 자신의 진실을 직시하고 그 진실과 맞설 만한 도덕적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자정이 지난 새벽의 술파티에서 Martha는 30대 젊은 신임 교수 Nick와 남편과의 아내가 함께 있는 지붕아래에서 정사를 감행했고 남편 George는 이를 묵인 하고 있었던 것이다. George는 출세하고 싶어하는 Nick에게 성관계를 부추긴다.[35]
문명이 안겨다 준 물질의 부와 그 부를 보장해 주고 사회체제에 대한 맹목적 순응이 빚어 낸 정신의 타락과 도덕성의 마비를 표현하고 있다. Albee는 이 모든 것이 잘못된 ‘미국의 꿈[36]’과 거짓 조장된 행복의 환상 때문이라고 했다.
4) 환상 탈출[37]
George 부부는 가상의 아들을 창조하여 그 거짓의 환상 속에서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진실한 감정을 늘 장난과 놀이로 감추고 있는 자식이 없다는 공허감과 불모성을 거짓 아이로서 대상적 만족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벽이 다가올 때 George는 아들을 죽임으로써 어둡고 음울한 긴 터널에서 빠져 나온다. Act2에서 결국 이런 환상들을 깨뜨리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있다. 바로 차임벨이다. 차임벨 소리에 맞추어 George의 잘못된 생활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려 하고 Honey가 깨어나기 시작한다.
HONEY: Who rang? Someone rang!
GEORGE [his jaw drops open . . he is whirling with an idea]: ... Someone ..
HONEY: RANG!
GEORGE: ... someone ... rang ... yes ... yessss..••
HONEY: The ... bells ... rang... .
GEORGE [his mind racing ahead]: The bells rang .. and it was someone . . .
HONEY: Somebody..
GEORGE [he is home, now]: somebody rang ... it was somebody .. with ... I'VE GOT IT! I'VE GOT IT, MARTHA ... ! Somebody with a message ... and the message was ... our son ... OUR SON! [Almost whispered] It was a message ... the bells rang and it was a message, and it was about ... our son ... and the message ... was ... and the message was ... our ... son ... is DEAD!
GEORGE [he is home, now]: somebody rang ... it was somebody .. with ... I'VE GOT IT! I'VE GOT IT, MARTHA ... ! Somebody with a message ... and the message was ... our son ... OUR SON! [Almost whispered] It was a message ... the bells rang and it was a message, and it was about ... our son ... and the message ... was ... and the message was .. our ... son ... is ..DEAD!
HONEY [SUddenlY; almost tearfully]: I want a child.
NICK: Honey...
HONEY [moreforciful!YJ: I want a child!
GEORGE: On principle?
HONEY [in tears]: I want a child. I want a baby.
MAR THA [waiting out the interruption, not reallY paying[38]
.
이는 죽음 다음의 저주인 생명력의 고갈로부터 오늘의 미국사회를 구출하고자 하는 Albee의 몸부림으로써 현대인의 비극적 상황을 경고하여 안이하고 값싸며 거짓된 잠에서 빨리 깨어나기를 독촉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5) 인문학 vs 과학.. 인문학의 승리??
이 작품에 관한 여러 논문을 읽는 과정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주장을 펼친 내용을 소개 할까 한다. 문명이 발달되는 지금 현 시대는 인문학이라는 정신 세계보다 과학이 우리들 앞에 결과물로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과학철학, 물리학의 경우 The elegant universe의 저자 Brian Greene이 출연한 PBS NOVA 프로그램에서 “초끈 이론이 증명 불가하게 되고 LHC 실험에서 힉스 증명이 실패하게 되면 철학으로 남게 된다.” 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인문학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이 뿐 아니라 PBS, NHK, BBC 등등 유수한 다큐멘터리에서도 역사를 제외하고는 정신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게 하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프로그램은 아직까지 필자는 많이 본적이 없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다는 양자나 수학이론 같은 것들 조차도 대중매체에서 언급하고 환심을 사는 데 비해 인문학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이 작품에서는 George와 Nick과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결을 보여주고 있다. 논문의 한 페이지에 언급되어 있는 이 글을 통해 우리 스스로 과연 작가 의도가 정말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승리에서 인문학이 승리했는지 생각해보고 인용, 각주 하나도 없는 이 페이지 내용을 읽어보고 생각해보자.
“George는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생활은 보다 나아지겠지만 인간의 유전자를 규제하고 변화시킴으로써 보다 낳은 인간으로 개조시키고, 그러한 인간들만 탄생하도록 인가의 세포를 배양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생물학 연구를 걱정하고 있다. George의 말처럼 오늘날 과학이 좋은 의도, 즉 질병을 치료하고 인간이 오래 살도록 건강 증진에 힘쓰는 것 이외에도 자유자재로 유전자를 변화시킴으로써 똑 같은 모습의 인간들을 다량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시점에 와 있다. 사람이 가진 개별성을 모두 획일화시키는 작업, 즉 보기에 좋은 눈빛, 수염이나 머리카락의 색, 키와 얼굴 생김새, 그리고 총명한 두뇌를 탄생시키기 위한 인공 인간의 탄생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신성한 결혼의 결실로 탄생된 새 생명이 아닌 기계에서 배양되어 나온 똑 같은 생김새의 아이들이 우글거리는 세계에서는 … 이러한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실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실험으로 태어난 생명들은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한 일이다. 따라서 미래의 문명을 짊어질 사람들은 좋은 용모를 가진 회일화된 인간으로 천재성이나 감성 따위는 기대할 수 조차 없고 음악이나 미술은 말살된 채 빛나는 과학자와 수하자 종독들만 거대한 현대 문명을 위해 생존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계급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자유나 개성이 없어지고 민족이나 민족들이 소유한다양한 문화는 소멸되어 지배자를 위한 일개미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George는 과학에 대한 상당한 비판의식을 지성인 답게 논리적으로 전개시키면서 Nick의 반박을 막아버렸다. Nick은 사실 반박을 할 만큼 과학에 대한 열정조차 가지지 못하고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도 없이 과학을 받아들인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이 극에서는 Nick으로 상징되는 과학 문명의 승리가 아니라 George로 상징되는 정신문명의 승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5. 영화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1966) [39]
한 중년 부부가 젊은 부부 한쌍을 자신들의 파괴적인 애증의 게임에 끌어들이는 이야기를 가차없이 그려 1960년대 초에 브로드웨이에서 크게 히트한 Edward Albee의 연극은 그 언어와 주제가 당시의 제작규약에 비추어 영화로 옮기기에는 너무 잔인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60년대 중반에 이르러 헐리우드가 제작규약을 폐지하고 등급제를 도입하면서 보다 성인 취향의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앨비의 연극을 각색한 Mike Nichols의 이 작품은 그렇게 극장에 걸린 성인 취향의 드라마 중 초창기 작품에 속한다.
Nichols가 영화로 옮긴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는 새로운 유행을 이끌었다. 전통적인 엔터테인먼트에서 벗어나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헐리우드 르네상스의 특징이 되는 진지함을 추구한 것이다. 촬영은 흑백으로 이루어졌고 Ernest Lehman의 섬세한 대본은 원작 희곡의 대사를 상당부분 그대로 가져왔으며, 연극연출을 하다가 헐리우드로 옮겨온 Mike Nichols는 원작의 정수를 거의 그대로 살려냈다. 캐스팅도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부부였던 Richard Burton과 Elizabeth Taylor가 George와 마사 부부로 출연했고 그들의 언어적, 정신적 대결이 영화의 주축을 형성했다. 이 영화는 Burton과 Taylor 부부를 함께 출연시킨 작품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며, Nichols는 Taylors의 경력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를 이끌어냈고 Burton은 겉으로는 유약하지만 엄청난 정서적 강인함과 지칠줄 모르고 사랑을 베푸틑 마음씨 넓은 인물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아카데이상 5개 부문을 석권한 이 작품은 연극을 옮긴,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 중 하나다.
6. 냉소주의 :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역사철학테제’ 발표 후기
학부 시절 때만 하더라도 발표를 준비하게 되면 도서관에서 책과 논문을 찾으면서 즐겁게 학문입문을 즐겼던 거 같다. 그런데 대학원에 입학하고 무려 다음 주까지 3개의 발표가 동시에 쓰나미가 나에게 불어오자 엄청난 압박이 나의 심연 뇌관이 녹아 들어가고 있었다. 학부 때만 하더라도 과감하게 논문 짜짓기를 하면서 나의 주장을 펼쳤었다. 나의 주장을 정말 마음껏 펼치고 교수님한테 불려간 적도 있었다. (자랑하자면 그 이후 교수님은 2 학년 때부터 졸업까지 한번도 A0이하를 나에게 주신적이 없으셨다.) 나의 주장이 오류가 많고 비문도 많고 여러 오해 소지가 있는 글들이 엄청 많다는 사실은 세익스피어 소네트를 가지고 독일 낭만주의에 주입시켜 교내 대회에 나갔을 때 알았다. 당시 장려상을 받았는데 입상자들 작품을 책자로 만들기 위해 문법이나 여러 양식들을 통일할 필요 가 있었다. 그런데 나의 글 때문에 영문과, 국문과 선생님들이 도저히 수정할 수 없어서 나에게 푸념했던 것이 기억난다. (제본된 책에 나의 작품은 빠져있다.)
동독과 동유럽을 방학 중에 매일 왔다 갔다 하다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포함한 수많은 사상가들이 잠들어 있는 베를린 다리에서 강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겼었다. 내가 학부 때 가르침을 주셨던 교수님 처럼.. 한쪽 눈을 사실상 사용할 수 없어서 장애인도 아닌데 장애인 취급 받은 이후로부터는 (법적으로는 정상인이다. 그런데 군법으로는 장애인이다.) 그냥 이 강처럼 물 흐르듯이 흐르는 거 같았다.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이상 나보다 수능 많이 쳐본 사람 없을 것이고 나보다 많이 학교 활동 한 사람 없을 것이며 오지를 가본 사람 없을 것이다. 나는 우울한 벤야민 아니 로자 룩셈부르크가 되고 싶다. 독일에서 귀국하자마자 대학원 영문과를 지원했었다. 한양대와 부산대를 지원했고 둘 다 합격했다. 그런데 한양대는 학비도 비쌌고 분명 구술시험에서 4문제 전부다 한마디도 답변 못해서 사실상 면접시험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합격해서 너무 부끄러워 지원하지 않았다. 물론 부산대는 더욱 그랬다. 왜냐하면 면접 때 윤화영교수님이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다시 지원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쨌든 학부와는 다른 대학원 분위기 속에서 첫 발표를 준비하는데 무려 2주 넘게 걸렸다. ‘역사철학테제’ 때문이다. 뭐라고 말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가장 친숙한 사회철학 같은 거 해도 입문서를 보던지 아니면 논문을 보면 이해가 완벽하진 않지만 두리뭉실하게 이해 할 수 있고 그것도 안되면 소위 네박사라고 하는 네이버 지식인에게 의존하면 된다. 그런데 이 벤야민이라는 사람은 철학자가 아니라서 글들이 너무 이미지화 되어 있었다. 이전에 발표자가 벤야민 관련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대단했다. 여러 번 읽어보니 알거 같은데 여기에 대학원이라는 두려움이 문뜩 생겼다. 두려웠던 것이다. 내 마음대로 말하기에는 이 곳은 너무 무서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제지를 완성하고 지우는 반복을 무려 3번이나 했다. 첫번째 할때는 진짜 나만의 생각으로 썼는데 문득 틀리면 어떻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번째 때는 입문서의 내용 그대로 채용했다. 그러니 너무 억울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역사철학테제’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데 무려 4권의 책과 7편의 논문을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이해 못하겠다. 하지만 너무 억울해서 다 지우고 중요 개념은 인용 다해버리고 발제지 첫 부분에 과감하게 내 생각을 남겨버리기로 했다. 이렇게 말하면 우울할 테지만, 아 내가 이곳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되면서 동기에게 디테일이 떨어진다고 핀잔도 듣고 있다. 오죽했으면 지금 나는 ‘메가스터디’ 같이 인문학 부분도 이런 곳이 서울에는 있는데 지금 조심스럽게 알아보고 공부하고 있다. 연극 관련 사회 진출의 꿈이 이렇게 험난 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후기는 부산대학교 발전을 위해 작은 외침을 해보려고 한다. 바로 도서관 문제다. 도서관 시스템이 인문학도에게 너무 불친절 하다. 통합 검색과 자연어 검색능력이 떨어진다. 특히 자연어 검색능력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다. 검색할때 원하는 단어를 거의 다 사용해야 원하는 검색 결과가 뜬다. 그 뿐 아니다. 논문 인덱스 전산화가 안되어 있다. 학술지에 기재된 논문을 검색하는 것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결국 대부분 교수, 학생들은 100% 전자저널이라던지 외부 학술 사이트 검색에 의존 할거라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본다. 거기에 복합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보유 장서수가 너무 딸린다. 적어도 Riss 사이트에 있는 논문은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설령 보유 하더라도 학술지 인덱스 검색력이 떨어 져서 검색도 안된다. 더욱 중요한 건 적어도 논문 학술지를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에 직접 가면 한 층의 공간에 전부 소장해도 모자랄 판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즉 외부 전자 논문 사이트를 의존 한다는 말 밖에 없다. 그렇다고 riss, kiss가 많다는 건 절대 아니다. 네이버 전자학술 사이트가 더 많다. (일부 유료다.) 전자 논문의 단점은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망막을 해치면서 집중력을 떨어 뜨린다. (LCD, LED 디스플레이에 있는 액정 크리스탈 자체가 빛을 발광 하는 것이다. 아직 기술적으로 자연과 가까운 빛을 개발 하지 못했고 여러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에 삼성 연구원 친구의 견해를 살짝 빌리겠다.) 결국 파일을 찾아 다운받고 프린트 하던지 E-ink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기기를 따로 구입해야만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전자 논문을 건드리면서 우리 세대에게 큰 적인 컴퓨터를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찾고 싶은 분야 단어를 네이버 책에 검색한 후 그 결과의 책들을 교내 도서관 사이트에 검색하니 결정적인 책들 대부분 소장하고 있지 않았다. 대학원생은 그렇다 쳐도 학부생들은 입문서가 절실한데 입문서를 많이 보유하지 못한거 같았다. 마지막으로 영상자료가 부족했다. 적어도 이 작품 검색하면 당연히 관련 영상이 나와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알고 있는 해결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점과 데이터 베이스를 교환한후 없는 것은 계약 맺고 구입해야 한다. 내가 도서관에서 일한 경험으로 알고 있는 바로는 부산대학교는 도서관에 투자하는 예산이 조금 떨어지는 걸로 알고 잇다.)
발표 결과가 좋던 안 좋던 간에 나름의 힘든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 이전에 나의 부족한 능력을 다시 한번 반성한다. 항상 고민이 었던게 이렇게 발표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 쓰고 있던 것들이 사람의 행복에 접근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가에 생각 해본다. 이곳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유이고 목적이며 고민을 좀더 하기 위한 장소다. 이젠 함부러 언급을 못하겠지만 학부시절 발표 때 내가 도서관에서 발제 준비 할 때 다른 학생들은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던 말을 회상하면서 계속 더욱더 열심히 학문을 즐기고 내가 원하는 답을 찾도록 “방황하는 한 노력” 하겠다.
7. 참고 문헌
노르베르트 아벨스. 연극 글라시커 50. 해냄
마틴 에슬린. 부조리극. 한길사
앙드레 머나드. 제목은 뭐로 하지?. 모멘토
양원옥.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의 게임의 양상과 정치적 알레고리
양정원.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에 나타난 사회 비판. 드라마연구 제 23호
월간조선 Feb. 1981
정효숙.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의 Martha에 관한 연구. 드라마연구 제30호
한상철. 현대극의 상황과 한국연극. 현대미학사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Jay Schneider. 1001 Movies – You must see before you Die. 마로니에 북스
[1] 노르베르트 아벨스. 연극 글라시커 50. 해냄. P.293
[2] 한상철. 현대극의 상황과 한국연극. 현대미학사 p. 34~36
[3] 미국 최초의 아이 없는 대통령이다.
[4] 양정원.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에 나타난 사회 비판
[5]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110
[6] 정효숙.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의 Martha에 관한 연구. 드라마연구 제30호 p. 305
[7]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138
[8] 정효숙.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의 Martha에 관한 연구. 드라마연구 제30호 p. 311
[9]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131
[10] 정효숙.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의 Martha에 관한 연구. 드라마연구 제30호 p.313
[11]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24
[12] 양정원.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에 나타난 사회 비판. 드라마연구 제 23호 p.290
[13]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65
[14] 양정원.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에 나타난 사회 비판 p.290
[15]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65~66
[16] 앙드레 머나드. 제목은 뭐로 하지?. 모멘토 p.16
[17] 노르베르트 아벨스. 연극 글라시커 50. 해냄 p.288~292
[18]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6
[19]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77
[20]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21
[21]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67
[22]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123
[23] 양정원.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에 나타난 사회 비판 p286
[24]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138
[25] 중서부 유럽에서 5월제 전야에 마녀의 사악한 힘이 절정에 달한다고 믿고 그 힘을 쫓아내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소리를 지르는 의식이다. (양원옥.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의 게임의 양상과 정치적 알레고리. P.15)
[26] 양정원.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에 나타난 사회 비판 p286
[27]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83
[28] 양정원.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에 나타난 사회 비판 p286
[29]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138
[30]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140
[31] 환상이 깨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사 한다는 논문도 있다.
[32] 월간조선 Feb. 1981
[33] 양정원.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에 나타난 사회 비판. 드라마연구 제 23호 p.293
[34]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17
[35] 양정원.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에 나타난 사회 비판. 드라마연구 제 23호 p.294
[36] 1961년 뉴욕의 요크 플레이하우스에서 세계 초연한 작품의 이름이다. 이 작품은 진보와 낙관주의의 이상과 국가적 사명을 솔직하고도 진솔하게 다룬 것이다. 이 작품은 가족 생활, 동족성과 신체 단련의 센티멘털한 이상, 미사여구의 언어, 그리고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상황과 대결할 때의 혐오감을 조롱한다. 미국 시민계급의 행동방식과 자의식은 유럽의 부르주아지보다 훨씬 더 강하게 생각하기 싫은 근본문제에서 등을 돌린다. “미국의 꿈”은 무언가 잘못되어 죽은 입양아의 대체물을 찾고 있는 한 미국 가정을 보여준다. 그 가족을 채워줄 새 식구가 생기는 데 미국의 꿈의 진수인 명랑한 젊은 남자다. 그는 자기가 오직 근육과 건강한 신체로만 되어 있으며, 경험할 수 있는 어떤 능력도 없다고 설명한다. 돈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이 가족의 일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품의 언어는 상투어를 놀라울 정도로 결합시키고 있어 이오네스코의 언어를 상기시킨다. Albee의 상투어는 미사여구에다 어린아이 투여서 전형적인 미국식이다. 생각하기 조차 싫은 진실들을 여기에서 광고어의 키치적인 편안함의 이면에, 또한 가정 잡지에서 볼 수 있는 칭찬 일변도의 속물적 어조 이면에 숨겨져 있다. (마틴 에슬린. 부조리극. 한길사 p.350)
[37] 월간조선 Feb. 1981
[38] Edward Albee. WHO’S AFRAIDOF VIRGINIA WOOLF?. Penguin. 1972 p.130
[39] Jay Schneider. 1001 Movies – You must see before you Die. 마로니에 북스 p.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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