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비극과 들뢰즈

2011. 8. 5. 00:00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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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실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바로 이런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
 그 이유는 관객이 자기 자신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쁜 것을 내보내고 건강하게 하려고 할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운명과 자유 의지를 보인다. 그는 투사 기질을 지닌다. 이에 대한 가치는 타고난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의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너무 극단적인 운명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결정론 유무말이다. 내가 두손을로 찔렀다라고 한 그의 말에서, 나가 실행 했음을 강조 했다. 자유의지인것이다. 운명이지만 나의 선택이었다. 프로이트 문화론과 예술론에 따르면 이러한 사적인 영역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고 한다.
 코러스는 인물과 대화 가능하다. 등장인물 분장시 시간을 매우기도 한다. 구조적으로는 파로도스라고 하여 들어가는 곳이 있었다. 이러한 코러스 기능은 축소가 되면서 그리스 전성기가 넘어가게 된다. 공동체가 공유했던 가치의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 중요했다. 추상, 처벌, 저항 없이 오이디푸스가 행한다. 코러스가 비극의 핵심적 내용을 잘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개인의 비극과 비극이 속한 사회인 공동체를 주장했다. 절대적이고 다양성이 허용되고 있지 않았다. 이들 비극과 사회 사이의 가치 측면에 있어서 불일치가 발현되지는 않았는데, 그것이 비극 형성의 원인이었다. 언젠가는 신의 말씀에 작아져라라고 오이디푸스도 몰락하는데, 라고 시민들에게 충고하는 것이다. 정화되어야할 해로운 관점은 카타르시스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위대성과 함께 참여함으로서 받는 고양된 느낌을 느끼게 한다. 파멸하는 과정에서 비인간의 경지를 감내하는 오이디푸스는 비극적이면서 미학적이다.
 스스로 느낌으로서 배설하고 건전한 시민으로의 복귀를 고차원적 통치 철학으로 보여주고 있다. 왜 들뢰즈가 안티오이디푸스라고 했을까? 
 최근 상반되고 있는 부조화 를 주목하자. 완전한 구조에 암시하는 코스믹 오더가 있다. 하나의 개인보다 하나의 역할이 가깝다. 크레온의 상반된 행동은 포괄적이다. 인간과 왕사이의 역할극인것이다. 하데스의 법과 크레온의 법과의 대립은 평소에는 조화를 이룬 상태 였다. 코러스의 표적은 아니토네가 아니라 크레온이다. 이작품의 주인공인가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판단의 잘못, 주인공 성격 결함에서 오는 비극적 결함이 있을 것이다. 오만함의 관점도 말이다. 크레온에 대한 연민과 공포 그리고 이에 대립되는 배신자인 안티고네에 대한 연민과 공포가 존재 된다. 여러 비극 인물들 대상으로 연극 기법을 낳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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