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과 데리다의 법

2012. 1. 22. 17:38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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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야민은 결에 거슬러서 새롭게 쓰는 역사를 주장하면서 기존의 부르주아 비판을 가했다. 이러한 것은 폭력에 전제한다. 혁명적 폭력을 옹호하였는데, 신적 폭력을 옹호 하였다. 여기서 신적 폭력은 법의 경계선을 깨뜨리는 역할을 한다. 기존있던 법적 폭력을 옹호하였다. 데리다는 법은 폭력에 기초한다고 하였다. 법은 재정되는데 폭력의 수단으로 재정된다고 하였다. 폭력은 곧 법이다. 이 둘 사이에는 서로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다. 법이 폭력인데 이 목표는 정의다. 신적폭력이며 메시아를 통한 정의를 찾는 것이다. 권한, 특권이 법적 이전으로의 회기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을 범주화 시킬 수 밖에 없다. 이 법을 신화적인 법이라고 한다. 이 법은 법 제도 적에서의 폭력을 말한다. 속죄를 요구하여 주체권리는 경계선 안에서 강요 받는다. 법적 폭력은 돈, 권리와 생활 내적으로 본다면 신적 폭력과는 다른 것이다. 희생의 피를 흘리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화는 법을 기초로 하였다. 경계가 설정되어 있으며 죄를 만들고 속죄하게 만든다. 이와 대립되는 신은 법을 파괴한다. 그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죄를 제거해주며 부수고 피의 냄새가 없이 파괴하려 든다. 벤야민이 말하는 폭력이 진짜 순수한 폭력인지에 대해서 데리다는 의문을 가졌다. 법과 정의가 신적 폭력이라도 언제다 피로 물들일 가능성이 농후 하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끊임 없이 미끄러진다고 한다.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차연을 뜻한다. 신화적 폭력은 그리스 적이며 신적 폭력은 유대교 적이다. 권력은 법이 생길 수 있는 하나의 근거다. 공산주의를 예로 들면. 신적폭력은 신화 폭력을 파괴하는 순간 부터 새로운 폭력이 생긴다. 선언하는 순간 법은 그 자리에서 형성하기 때문이다. 신화적 과정에서 생기는 법은, 즉 벤야민의 신적 폭력은 신화적 폭력을 폐기하는 성격에 신적 폭력이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데리다는 정의는 잡히지 않고 계속 차연된다고 하여 정의는 불가능 하다고 하였다. 해체는 근원에 도달하는 작업이다. 끊임 없이 차연을 내포하면서 정의는 해체로서 연관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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