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31. 17:06ㆍReview/Movie
우선 위 주제를 이야기 하기전, 가장 인상 깊었던 해당 영화의 리뷰를 꼽씹어 보고자 한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햇던 것은 기존 인터넷에 떠도는 리뷰어의 말을 빌리자면 우연이라는 핵심 단어를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리뷰어의 입장과 다르게 나의 생각을 덧붙여서 설명을 하면서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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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은 언제나 우연에서 비롯된다. 어처구니 없게도 우연이 이리저리 맞아 떨어지지 않는 한, 혁명 그 자체는 실현 불가능 하다. 예컨데, 과거의 혁명을 본보기로 삼아서 그 원인들을 분석하고 그것을 통한 혁명이 이루어 졌다면, 지금쯤 손쉽게 모든 혁명들은 과거의 성공과 실패를 벗삼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 낼 것이다. 그러나 현 사태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랬다면 지금쯤 언론 장악에 따른 국민들의 이데올로기라는 이름 하에 씌여진 (진실에서 벗어난) 가면들, 세일즈맨의 죽음, 정상의 개들 혹은 이중국가 는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전히 앞서 언급했던 이야기들은 1890년대에서 50년대 사이에 논했던 키워드인데 여전히 이 담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니겠는가?
여기서 리뷰어는 반짝이는 자신의 아이디어로 이 영화를 우연이라는 단어에서 읽어내었다. 바로 혁명은 우연이라는 것이 없으면 이룰 수 없고, 이 우연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충실성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물론 이 우연이라는 단어에 나의 입장이 그 리뷰어와는 다르지만 영화의 장면을 포착 한 것은 일치하기에 그 리뷰어가 작성한 글을 소개하고, 나의 생각이 담긴 책을 소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나의 의견을 포스팅하겠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reviewread.nhn?nid=231783&code=43208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387895
사실 나는 이러한 우연의 원리보다는 충격과 공포 쪽에 이 영화에 대한 시선을 보면서 집중 시켰다. 원작 그래픽 노블과는 달리 아나키즘(anarchism)은 이 영화에서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 이는 영화에서 테러리스트를 통한 정권 교체 혹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의도이지 완전히 무정부 상태를 만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죽음 뿐 아니라 그 모습까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죽음을 택했으며, 여기에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분장을 제공하여 모두가 혁명에 참여 그리고 브이로서 익명으로서 하나가 됨을 만들었다. 그가 자신의 업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충격과 공포를 사용하였다. 이 충격과 공포는 복수로서의 충격과 공포를 제공하여 자칫 해석하기에 따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충격과 공포를 통해서 인간이 이룩하지 못하는 폐쇄적인고 비인간적인 정권을 무너뜨린데는 여지 없다.
브이가 충격과 공포를 시민들에게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을 감추려는 기존 정권을 대표하는 대법관과 그 인사이 오히려 바이러스와 공격적인 테러를 언론에 혹은 자신들이 테러를 저질러서 시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안전하다는 것은 안전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제도권 안에서 현실을 안주하고 정권의 이득을 위한 세금 줄로서 혹은 도구로서 사용되도록 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브이는 사람들에게 정권을 향해 지위를 흔들리게 하는 테러를 활용하면서 진심어린 진실을 촉구하게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로서 진실을 드러내게 한다. 이것을 대표하는 것이 여주인공에게 있다. 여주인공의 계획되고 만들어진 충격과 공포의 제의와 감춰진 진실을 간접적이지만 직접적인 것 같은 놀라움 속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테러리스트로 변모하는 가? 그렇지 않다.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갔고, 단지 그 진실을 깨달은 수사관과 함께 브이가 마지막으로 하려고 하는 테러의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한다.
충격과 공포에 우연이 뒤따라야만 하고, 물론;;; 영화라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브이의 말에 바로바로 전체적으로 시민들이 인식하고 깨닫는 모습은 아주 감상적이고 이상적이다. 그러나 그만큼 시민들 전체가 문제를 인식하고 자신들이 내재해 있는 진실을 찾는 것, 계속해서 죄여오는 제도권 속에서 자유를 찾으려는 본능 그리고 그 맛을 안 이상 그들도 스스로 모두가 브이와 함께 혁명을 했다고 생각하면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의 행진을 저지하려는 군인들이 명령이 없다는 이유로 총을 거두는 모습에서, 이들도 수많은 브이들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에 대해 공포감을 느꼈지만, 그 행진하는 시민들과의 마음은 같은 일개의 정권 속의 도구였음을 충격을 통해 느꼈기 때문에, 그들의 지나가는 밀물이 자신들을 죽이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보내주면서 이상의 오케스트라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깨닫는 다는 것은 충격이다. 그것을 극단화 시키면 자칫 테러라는 아슬아슬함이 있는 것을 사실이다. 그러나 그 효과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여전히 혁명이라는 단어와 감춰진 진실을 벗어나는 수단으로서 충격과 공포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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