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7. 13:22ㆍReview/Movie
설리번의 일상생활에서 발현된 특수 교육관
20146146 일반대학원 영어교육학과 박형락
아서 펜(Arthur Penn)의 영화 『미라클 워커』(Miracle Worker, 1962)는 실존 인물이었던 사업가이자 사회주의 인권운동가였던 헬렌 켈러(Helen Keller)와 그녀의 스승이었던 애니 설리번(Anne Sullivan)의 사제 관계 중 헬렌 켈러의 어린 시절 첫 만남부터 단어 학습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위인전기에는 헬렌 켈러의 일대기가 대부분 위 영화처럼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위인전기 자체가 저학년 학습자를 위한 교육적인 목적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 헬렌 켈러가 애니 설리번 선생의 도움으로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훌륭한 인권 운동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다. 그러나 『미라클 워커』에서는 헬렌 켈러보다는 애니 설리번의 열정적인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헬렌 켈러가 대학 시절 이후부터 죽을 때 까지 그렇게 밝은 삶을 살지 못했고 성격과 자금과 사상의 문제로 미국에서 비판을 받아 왔었기 때문이다. 영어 속어에서 헬렌 켈러라는 단어는 개인에 대한 비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헬렌 켈러 보다는 그의 스승인 애니 설리번의 역할을 더 높이 사고 있다.
영어 속어 중에 “Pulling a Helen Keller” 라는 말이 있다. 이는 헬렌 켈러와 애니 설리번을 비하하는 발언인데, 여기에는 레즈비언의 개념이 들어가 있다. 사실 속어 자체가 대부분 좋은 의미가 아님을 감안한다면, 애니 설리번 선생이 헬렌 켈러에게 그만큼 헌신을 다했으며 헬렌 켈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맞물려 경박한 속어가 나온 것이다. 애니 설리번이 헬렌 켈러에 대한 교육의 열정은 영화 『미라클 워커』에서 잘 드러난다. 애니 설리번은 외부 세계의 질서를 거부하는 헬렌 켈러를 어떻게 하면 정상인처럼 앞으로 살아가게 하는 길을 헬렌의 인생에서 열어 줄지 고민 했다. 애니 설리번이 헬렌 켈러를 받아들이기 전에는 헬렌 켈러의 부모님과 그들의 주변사람들은 단순히 앞으로 어떻게 격리할지 고민만 했으며 헬렌 켈러가 외부와의 단절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편하게 다룰지 고민을 했었다. 즉 헬레의 부모님과 그 주변 사람들은 헬렌은 사회에서 혹은 개개인의 주체(subject)로 받아들이지 않고 객체(object)로 받아들인 것이다. 영화에서는 정확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헬렌 켈러의 수동적 또는 능동적 행동에 따라 타자들(others)은 헬렌 켈러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상상과 타자로 부터의 상징 질서에 대한 혼란을 무의식적으로 조절(control)시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애니 설리번 선생은 헬렌 켈러에게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교사는 이렇듯 상징질서 속에서 아버지의 법(law of the father)으로서 학습자(lerner)에게 수행해야 하며 특수 교육(special education) 역시 특수 아동(exceptional children)에게 일반인과 형평(equity)에 맞게 상징 질서에 적응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징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헬렌 켈러와 같은 시각장애(visual impairment)와 청각장애(hearing impairment)를 가진 아동에게 교육 받을 수 있는 곳은 사회적으로 다수와는 구별되어 차별받는 사람들을 모아놓은 수용소 같은 더러운 보호소뿐이었다. 이는 장애 아동에게 적합한 교육을 국가에서 지원하기 위한 방책이 아니다. 마치 헬렌 켈러 부모님처럼 도저히 일반인의 일상생활(everyday life)과 전혀 달라 헬렌 켈러가 그녀의 가족과 끝임 없는 갈등을 차단하기 위해 헬렌 켈러를 위해서가 아닌 일반인을 위해서 장애인을 서로 분리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헬렌 켈러의 가족들이 헬렌 켈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 가족으로 생각하며 사랑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헬렌 켈러가 선천적으로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하지 못해 가족들과 상호관계를 누릴 수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는 마치 현대 통합 교육을 거부하는 사회적 장애물과 유사하다. 현대 교육의 문화와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일반아동과 교사와 학교의 관리자 및 부모들과 지역사회 주민들의 장애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과 장애아동에 대한 거부”를 하면서 사회적 장애물을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차라리 장애인 보육기관에 보내면 가족들과 적어도 상호관계를 유지하고 가족의 부유한 재산을 통해 사회활동은 못하더라도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생애를 다할 수 있을 거라고 헬렌 켈러의 가족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헬렌 켈러는 선천적으로 청각장애인이면서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외부의 형상과 음성을 볼 수도 들을 수 없어서 인지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특수 교육을 받으면 외부와의 소통을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시각의 경우 “시각적 정보 획득의 어려움에서 오는 인지적 문제는 반복적인 훈련과 청각이나 촉각 등의 다른 감각을 통한 보상으로 얼마든지 극복 가능”(정동영 133)하며, 청각에 문제있는 사람 역시 일반인에 비해 인지 능력이 낮지 않다. 단지, “의사소통을 원만하게 수행하지 못하고 상호작용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행동에 많은 문제”(정동영 163)가 발생할 뿐 이다. 따라서 어떻게 교육을 하느냐가 헬렌 켈러에게는 중요했다.
교사 애니 설리번이 헬렌 켈러의 가족마저 포기한 헬렌 켈러의 언어 교육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애니 설리번의 어린 시절 기억과 일상생활에서 기인한다. 애니 설리번은 남동생이 있었으며 가족들 모두 아일랜드 출신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아일랜드 출신은 신분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언제나 차별받으면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소수자(minorities)에 속해 있었다. 미국문화에서 아일랜드인의 위치는 하얀 흑인(white blacks)이었다. 거기에 애니 설리번은 시각 장애인이었으며 동생은 지체장애(physical disabilities) 아동이었다. 둘은 부모의 품에서 떨어져 주립 보호소에 맡겨졌다. 그러나 주립 보호소는 사실상 외부로부터 격리만 하는 곳이지 교육을 통해 사회로 다시 나가게 할 수 없는 기관이었다. “애니 설리번 : 동생 지미와 쥐를 장난감 삼아 놀았어요. 헬렌이 겪게 될 일들을 생각해보셨어요? 불구의 노인들이 지내던 한 건물에선 옮길 곳이 없어서 죽어가는 노인들이 그냥 방치 . . . 건너편엔 결핵과 간질이 있는 창녀들이 있었는데 어린애만 쫓아다니는 여자애들도 있었어요. 정신병자와 디프테리아 환자, 13, 14살 정도의 미혼모를 수용한 건물에선 출산 후 엄마 없이 방치된 수많은 아기들이 말도 못할 온갖 질병들에 시달려 참혹하더군요. 그러다 죽죠. 첫해에 80명 중 70명이 죽었어요. 동생하고 전 시체를 보관하는 영안실에서 논곤 했어요”. 이러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애니 설리번은 단순히 교육의 차원에서 보호소로 헬렌 켈러를 보내는 것에 대해 반대를 했다. 애니 설리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어린 시절 일상생활이 헬렌 켈러에게 필요한 교육의 환경과 교육방법을 찾아내게 하였다.
현대 특수 교육교사 개인이 환경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 안에서 당대 담론을 넘어선 특수 교육을 애니 설리번을 실행했었다. 애니 설리번은 자신의 과거 일상생활을 헬렌 켈러에게 대물림 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처럼 사회에 나가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를 고찰했다. 헬렌 켈러는 선천적으로 타자와 상호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반복적인 학습에 의해서 길들여 져있었다. 어린 헬렌 켈러가 무언가 요구를 하거나 집착을 할 때, 강박적인 행동을 할 때, 주변 가족들이 먹을 것을 주거나 품에 안기고 타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헬렌 어머니 : 우리한테로 숨을 텐데요.” 부모님이 헬렌 켈러를 단기적인 사랑만 주었지 교육을 통한 헬렌 켈러의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애니 설리번 : 이제야 방법을 깨달았어요. . . . 사랑이 아닌 규율이 필요해요”. 애니 설리번은 가족들과의 면담을 통해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교육방법을 다시 한 번 확고히 했다. “애니 설리번 : 부인 헬렌에겐 신체장애가 아니라 부모의 사랑과 동정이 문제에요. 애완동물처럼 키워왔잖아요. 꼭 강아지처럼요”. 애니 설리번은 헬렌 켈러에게 당시 힘들고 더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에서 살기 위한 강한 신념이 필요했고 생존을 위한 배움의 의지를 주고 싶어 했던 것이다. 다만 헬렌 켈러는 영화 종지부에 말을 배우기 시작한 것 외에 “글을 배운 과정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자신이 선생님과 크게 싸웠던 것도, 식구들과 하인들에게 못되게 굴었던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사실 헬렌은 선생님을 만나기 전의 자신의 삶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이수영 역. 190-110). 이를 비추어 볼 때, 교사 애니 설리번이 헬렌 켈러에게 헌신한 교육이 학습 인지(cognitive views of learning)뿐 아니라 규율과 행동에 대한 기억(memory)에 있어서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음을 증명했다. 헬렌 켈러가 애니 설리번을 만났기 때문에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현대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설리번의 교육관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애니 설리번은 그녀 자신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듯이, 헬렌 켈러의 사회 적응을 위하여 행동을 교정하려는데 전념했다. 즉, 헬렌 켈러와 같은 장애 아동을 변화의 대상으로서 바라본 것이다. 물론 헬렌 켈러처럼 그녀 스스로가 교사인 애니 설리번과 가족들과의 온전한 관계를 거부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위에서 논지했듯이 헬렌 켈러는 마치 동물처럼 살았을 뿐이다. 또한 교사로서 애니 설리번이 그렇다고 해서 당시 미국 사회 전반적인 장애 아동에 대한 인식을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가정 방문 교사로서 분리(segregation) 교육을 지향했다는 점에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애니 설리번 입장에서 물론 교사 스스로 최근 현대 담론인 통합교육을 지향하기 위한 기반 마련이 부족한 상황에서 단기적인 학습효과가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측면은, 현대 교사들이 부딪치고 있는 학급 현실과 유사하다. 교사 스스로 학급 개선을 위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목소리를 높여 개혁할 수 없다. 그러나 애니 설리번처럼 “자신의 사랑에 대한 열망-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사랑 받으려는 열망 . . . 가족들이 모두 자기를 버렸던 것처럼 상대가 자기를 버릴까봐” 두려워했을 정도의 자기 자신과 타자사이에서 우러나오는 일상생활의 감정과 기억을 가지고 특수 아동을 교사들이 다가간다면 특수 아동이 올바르게 현실 사회에 적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이수영 역. 130).
헬렌 켈러는 어린 시절 일반인과 소통할 수 없었던 답답함을 극복하고 애니 설리번의 헌신적인 교수법을 받아들여서 사회에 당당히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헌에 따르면 헬렌 켈러는 일생에서 사회 장벽과 싸워야만 했다. 그녀와 계속 함께 보조 해준 하인은 평생 헬렌 켈러 옆에서 헬렌 켈러의 귀와 말이 되어 주어야 했으며 심지어 헬렌 켈러의 손에 알파벳을 그려주다 보니까 하인의 손가락이 변형되었다고 한다. 부모는 헬렌 켈러의 성공과 사회 운동에 따른 후원에 대한 일정 후원금을 갈취한 의혹이 있었다. 헬렌 켈러 역시 일반인 보다는 정보 습득이 뒤처지기 때문에 그녀가 쓴 글에서 표절 의혹을 빚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인권 운동을 추진하다보니 헬렌 켈러는 195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메커시즘(Mccarthyism)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교사로서 애니 설리번은 헬렌 켈러를 위해 자신의 일생 대부분을 소비하였다. 비효율적인 교육일 수도 있었지만 당시 사회적인 장벽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렇게 헬렌 켈러가 사회에 나아가는데 있어서 수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 했다. 헬렌 켈러의 실제 업적은 현재 지배하는 사상으로 인하여 묻혀버린 감이 있고 어린 시절 일대기만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교사 애니 설리번이 헬렌 켈러에게 가르쳐 주었던 교육관은 헬렌 켈러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헬렌 켈러가 청년 이후의 시기부터 행했던 사회 운동은 현재 특수 교육에 상기한대로 큰 영향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헬렌 켈러가 운동했던 누구나 차별 없이 사회, 문화, 환경의 장벽을 제거하고자 노력 말이다.
특수 아동을 대하는데 있어서 헬렌 켈러와 그녀의 교사 애니 설리번의 이야기는 많은 교훈을 현대 교사들에게 제공한다. 애니 설리번의 일상생활에서 오감으로 체험한 경험을 토대로 헬렌 켈러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자신의 좋지 않은 경험으로 다시 재 반복하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교사들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 일상생활에서 배우고 경험하게 되는 특수 아동의 현실 적응 사례들을 느끼고 관심과 사랑으로 특수 아동에게 접근하여 교육해야 한다. 헬렌 켈러와 애니 설리번이 살았던 당대 상황과는 다르게 현대는 특수 아동을 위한 기반과 인식 개선에 대한 요구가 커진 상황이다. 왜냐하면 현대에는 일반인뿐 만 아니라 소수자들에게도 “모두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필요하다고 논의 되고 있어서다(정동영 73). 그러나 애니 설리번과 헬렌 켈러의 이야기처럼 헬렌 켈러 주변에는 사회적 장애물이 존재 했었다. 안타깝게도 어린 헬렌 켈러의 생애를 기준으로 1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수 아동에 대한 사회적 장애물이 존재한다. 따라서 교사는 학교에서 특수 아동에게 개성(personality)을 부여하고 긍정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애니 설리번처럼 이끌어 나가야 한다. 여기에 대하여 교사는 애니 설리번이 헬렌 켈러와 그 주변 인물들에게 헬렌 켈러를 위하여 올바른 특수 교육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대하는 리더십(leadership)을 발휘 한 것처럼, 학교에서도 교사는 교내 분위기와 문화를 일반인 학생들과 특수 아동 사이에서 함께 조화를 이루어 교육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참고문헌
이수영(역) (2001). 헬렌 켈러-A LIFE. 서울: 미다스북스.
정동영, 김봉세, 김석진, 김영석, 김정민, 유진수, 정윤우, 정현우 (2014). 예비교사를 위한 특수교육학. 경기: 교육과학사.
Arthur, P. (Director). Anne, B. (Actor). (1962). The Miracle Worker [Online video]. California: United Artists. Retrieved November 3, 2014.
Pulling a Helen Keller. (2007, January 6). In Urban Dictionary. Retrieved November 5, 2014, from http://ko.urbandictionary.com/define.php?term= Pulling%20a%20Helen%20K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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