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가르침 그리고 돈

2015. 12. 28. 23:25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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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가르침 그리고 돈

20146146 박형락

 

듀이가 말하는 아동은 학습을 하는 인간 모두를 말한다. 학습자는 개인의 사건들을 체득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식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사건은 제한적이다. 그리고 제한된 사건은 기존의 축척된 학습자의 경험을 통하여 재해석된다. 재해석은 곧 학습자 자신의 생각이다. 생각은 개인 안에서는 자유롭지만 사회에서는 그러지 못하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전달하고 부딪쳐서 다듬어진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며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켜야한다. 그것을 만드는 장이 학교다.

학교에서 학습자에게 제시하는 교육은 학습자의 필요와 요구가 아니라 국가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서 방향이 결정된다. 따라서 학습자의 생각과는 부딪치게 된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지식을 학습자에게 추상적으로 전달된다. 지식은 선험적이며 집단적으로 응집된 무의식들이 기표로 표현되어서다. 공공의 장에서 개별자를 챙겨줄 수 없기에 삶의 도구라고 역사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지식들을 기반으로 다양하게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자는 수많은 지식들을 모두 경험할 수 없다. 따라서 학습자는 한정된 시공을 고려하여 간접적인 경험이 필요한데 그것 역시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추상적인 경험과 실제적인 경험과 창조 행위를 스스로 할 수 있는 도구 그 자체를 배운다.

학습자는 태어나자마자 이미 선택권이 없는 상태로 시작한다. 이름, 별명, 명칭, 인사 방법, 친구와 사귀는 방법 등등 모든 것들이 이미 정해져있는 기표 안에서 학습자는 생활했고, 그렇게 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탈출 할 수 없는 체계 안에서 학습자는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흥미를 상상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학교의 입장은 다르다. 국가는 국민의 상상을 상징 안에서 키워나갈 것을 중시한다. 즉 전체성 안에서의 창조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습자는 학생들과 교사와의 관계를 통해 추상적인 경험들과 타자와의 관계를 자신의 경험들과 부딪쳐 의미화 작업을 추진한다. 그러나 학문과 학습자와 타자와의 상호관계는 각자의 욕망이 달라 늘 불일치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의미화 과정은 곧 호혜적 상호관계가 필요하다.

학습자의 욕망에 대한 에너지는 동기이다.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경험을 하려면 해당 사건에 대한 관심을 학습자 내부에서 거쳐야 한다. 관심사는 학습자마다 다양하다. 그러나 그 다양체가 조직에 결집되어 있기 때문에 학습자의 가시적인 행동 결과가 곧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교육과정은 일부 학습자들에게는 실제 욕망과 재생산 실현에 도움이 되는 과정 그리고 그러지 않은 학습자들에게는 그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 과정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시각을 기반으로 한 슬픈 열대인 것이다.

학습자의 관심과 동기 상승을 위해 국가와 교사는 체계적으로 설계된 학습내용을 개별 인자인 학습자의 수준에 맞춰 왜 이 도구를 통해 경험하고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는지 설득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경험을 중심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 듀이의 주장이다. 학문의 도구는 수없이 검증된 추상적인 기표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미래에 새로운 경험을 심어 질 수 있는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시켜 준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한계가 있다. 민주적인 절차는 교육을 한정된 자원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강요한다. 모두가 자신의 흥미와 재능과 관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맞는 최적화된 교육을 통해 올바르고 가치가 있는 삶이 될 수는 없다. 무한 경쟁 속에서 민주적인 절차는 곧 생존 밖의 일이다. 동기 그 자체는 상대를 누르고 자신이 생존하여 좀 더 윤택하고 자신의 욕구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는 그 꿈에 대한 원동력일 뿐이다. 학습자가 교사의 통제아래에 자유로운 능력 개발 발견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생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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