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2. 23:16ㆍ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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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형식에 대한 아이러니
20146146 박형락
피터스의 ‘지식의 형식’에서 지식은 실재를 들춰내기 위한 도구다. 이는 내재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내재적인 힘은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절대의 진리로 나아가기 위한 영역으로서의 도구다. 지식 그 자체로는 절대 진리에 도달 할 수 없다. 주체는 지식을 통해 삶의 현상들을 이해하고 행위하고 표현한다. 즉, 지식을 활용하여 주체는 마음으로 이루어져 나오는 활동을 한다. 이는 외재적인 힘과 구분된다. 질료가 변형되고 존재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내재적인 힘은 인식과 안목에서 시작된다. 주체의 인식이 타자를 통해 마주치고 흔들리고 변화되어 완성된 존재를 탄생 시키는 발판이 된다. 따라서 살아가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현상들에 대해 주체는 자유롭다. 이러한 주체들의 경험은 주체 그 스스로의 유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도구로서 새로운 지식과 존재를 생산하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교육은 공적으로 인간의 이상을 도달하기 위해 혹은 그 자체가 오히려 목표를 달성하고 전수하기 위한 인류의 영속적인 삶이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이러한 이상적인 교육을 생각하는 피터스는 현실과 대립된다. 교육은 필요와 요구로부터 체계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 설계에 ‘정치적 무의식’이 수반되며 이는 곧 ‘상징 질서’다. ‘헤게모니’ 안에서 교육은 ‘지식의 형식’ 그 자체로 끝낼 수 없다. ‘생산양식’ 틀 안에서 충분히 준비된 ‘주체 없는 욕망들’이 필요하다. 자본가는 ‘가변 자본’의 가치가 증가됨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 임금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피터스의 ‘지식의 형식’으로 꾸려진 교육 내용이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인 교육이기 때문이다. 교육과 훈련을 구분지음으로서 ‘가변자본’의 가치 상승과 ‘상징질서’의 불안과 ‘실재’로 다가가려는 주체들과 ‘하는 지식’의 부재는 자본가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현 체제에서의 필요와 요구가 곧 교육이며 그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것이 지원이다. 지원은 곧 자본이며 자본은 곧 이 시대의 ‘헤게모니’다.
피터스가 가지고 있는 이상적인 교육관은 따라서 현 시대에 맞지 않다. 그의 사유를 ‘지금 바로 여기’에 적용시키는 것은 수많은 인간의 가치와 생존 안에 이기적 행동이 될 수 있다. 교육을 통해 학습자는 소수의 도구들을 가지고 자신의 내적 실현을 이루기 위해 내적인 힘을 지닌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쌓아 나간다. 복사와는 다른 이해를 위한 교육은 가르치는 자와 받는 자 모두에게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교사는 주체의 ‘특이성’과 관계없이 학습 동기와 흥미를 제한된 교과안에서 어떻게든 끌어 내야한다. 주체는 압도적인 힘을 지닌 타자에 의해 갈려지고 비틀어져서 추출기에 일정하게 뽑아져 나오거나 불량이 되어버린다. 이는 마치 이상적인 인간을 만들려고 하는 자유 교육이 현 시대에서의 ‘소외’를 발생시킬 수 있다. 또한 자본가의 비효율적인 교육아래에 훈련이 요구된다. 전체와 전체에 대한 갈등 양상은 낭만적인 이로니와 같다. 절대 진리를 목표로 다가가려고 인간의 지식에 대한 내적 변화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 교육과 훈련이라는 구분을 해체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서 새로운 인간의 상징적 억압이 발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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