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국희곡 연구 강의록 2
2011. 7. 4. 23:11ㆍ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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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지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아감벤의 호모사케르는 법칙안에 있으면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법안에 있으면서 예외인 존재자들이다. 현대로 가면 갈 수록 이러한 통치의 수단을 삼고 있다. 예외상태란, 작동하는 법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을 말한다. 주권의 힘은 법 안의 공백을 만드는 것이다. 법 질서 바깥에 배재되어 있으면서 법에 속하는 것이다. 배재적 포함은 통치하는 생명정치이다. 예컨데, 용산참사를 생각해보자. 법에 포함시킬때는 처벌한다. 법에 평소에는 예외인 사람들 한테 말이다. 주권찬탈당한 사람들이었다. 이는 미국의 난민수용소도 생각하면 되겠다. 스펙터클한 사회인 현실은 자기도 모르게 법에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진정한 정치는 국가 주권에서 폭력이 되어서는 안된다. 법은 통치 목적 기반이다. 진정한 정치적 행위는 국가라는 통치기제와 맞서 싸우는 것이다.
수잔 로리 팍스의 피로 쓴 주홍글씨 (핏빛 속으로)
과거에 기록되지 않는 이야기를 현재화 시킨다. 주인공 헤스터의 행동은 에피소드 부분 마다 고해성사를 한다. 푸코는 고백이라는 단어를 통해 어떻게 통제하는 지 서술하고 있다. 자기의 내면을 드러내게 하면서 통제하는 것이다. 수치를 도덕과 연결시켜 도덕적이게 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지배사회에서는 예절과 규범과 매너를 요구한다. 주인공의 아이들은 경제 문제가 심각하다. 아이들을 다리 밑에서 키움으로 극은 표현하고 있다. 아이들의 입장은 아버지이면서 아버지로 인정 받지 못하는 호모사케르인 것이다. 장소와 시간의 희곡 텍스트를 통해 보면 단지 여기라는 단어 밖에 없다. 이는 모든 것에 적용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1인 2역을 하면서 어른과 아이를 연기한다. 고해성사를 통해 통제한다. 춤은 흑인과 관련 지어서 생각하자.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서 여성에 대한 풍자와 거기따른 분노 를 연상케한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서 돈벌이를 하는 모습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자. 여러해석이 가는한 공연작품이다. 연출가의 능력에 따라 극의 질이 달라질듯 하다. 계급 문제도 이 극에서 생각해볼 만한다. 이름이 Welfare이다. 즉 복지다. 법을 통해 계급을 계속 창조해내는 통제를 상징한다. Hester는 더럽다하면서 좋아하는 이중적인 소유자다.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성격이다. 크리스테바는 침을 뱉으면서 싫어한다. 자신의 것, 좋아하는 것.. 그것이 침이기 때문이다. 상징계로 넘어가면서 끊임업이 떠나지 ㅇ낳고 존재하는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무엇. 그것이 저항적인 그 무엇들이ㄱ라고 했다. 고해성사는 지배 계층을 드러내고 비판하게 하는 의미다. 극에서 Slut은 글자그대로 수치이다. 성적이기 때문에 성적으로 볼수 밖에 없는것에 대한 조롱이다. slut walk운동은 이에 대한 저항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배사회가 인식시킨 것이다. 지배는 고백을 하지만, 피지배는 그 수치를 드러내게해서 가시화 시킨다. slut은 타자를 통제하는 매커니즘인것이다. 율리와 도덕이 상존하는 이 단어는 , 오직 창녀에게만 수치시키고 폭력당한다. 국가제도는 타자를 억누른다. 저축은행 사건에서도 이면에는 시스템의 문제다. 플롤로그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코러스 처럼 연기하는 것은 인상 깊다. 코러스를 통해서 주제를 던져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치는 경쟁이다. 카이스트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돈문제이지만 이면에는 수치의 문제인 것이다. 시선의 문제그리고 인식의 문제를 통해 억압을 한다. 본다는 것은 데카르트가 말하길 자의식이라고 하였다. 이 극은 상호텍스트적 문학으로서 그 가치를 높이 살만하다.
호미 바바의 문화의 위치 ; 모방과 인간
프리엘은 트렌스레이팅에서 번역과 과정에 그 속에서 순수하게 통역이 아닌 아일랜드의 저항성이 나옴을 보여 주었다. 그러니까, 아일랜드는 영국과 친하지 않다. 아일랜드 인이 영국과 다른 나라 사람을 서로 통역해 주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아일랜드인이 영국인을 엿먹이려고 통역을 제대로 안했다는 말. 미미크리는 흉내내기 또는 위장이라고 말한다. MB 흉내내기라고 해서 우리가 MB가 될 수 없다. 따라하는 것 같지만 따라하는게 아니다. 양가성이 있다. 즉, 부정적인것과 저항성이 있는 것이다. 목크리는 조롱하기라는 말이다. 도시공간은 잘사는 공간과 못사는 공간으로 구분짓는다. 그런데 그것을 위함감이 들지 않게, 교묘하게, 공원이 생긴다. 이는 함께 하는 공유공간이다. 그런데, 도록가 있다. 이는 걸쳐가지 못하게 하는 공간이다. 혹은 벤치를 일부러 공원에 두지 않는다. 역공간이 있는 것이다. 그 사이의 공간은 주체의 문제다. 백인 문화에서 살지만 흑인으로서의 저항성이 있다는 말이다. 하나의 정체성은 순수한 하나가 아니라 이면의 저항성이 있다. 혼종성이 있는 것이ㅏ. 그리고 끊임 없는 협상을 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공포의 권력
문명화 하는 과정은 경계를 분명하게 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이를 허무는 것을 아보젝트라고 한다. 아보젝트는 라깡의 어머니로써, 아버지의 법때문에 어머니가 기존에는 없는데, 옛날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에서 경계가 없는것을 기호계 , 주이쌍스로서 생각한다.자신과 타자의 경계가 애매모호 하다는 것이다. 불확실하다. 주체도 아니고 객체도 아닌 것이다. 주체와 객체에 대한 경계는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질서계에 살고 있지만 넘어가고 싶어 한다. 근대 예술은 터부와 관련되어 있다. 근대 식탁은 예의와 예법을 중시하는데 말이다. 샤르트르의 구토,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아브젝트이다. 4.48, the blacks 도 이에해당한다. 태아와 어머니의 애매한 관계. 즉, 태아 주체는 어머니와 태아 분리를 하는데, 어머니는 보호 및 위협이 존재하는 존재다. 어머니의 권력의 내속에 잔존되어 있다. 비가시적인 힘이 있다. 괴물은 영화에서 보통 여자로 상징되어 진다. 왜냐하면 질서사회인 상징계에서 교란 가능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회귀는 무정형 상태로 이끈다. 욕망은 역겨움으로 나타낸다. 프로이트의 신경증은 어머니의 손길이다. 문명은 아버지인데, 보이지 않는 힘으로 나가오기 때문이다. 크리스테바는 어머니읜 손길에 역겨움을 가지며, 예술작품이 반듯한 질서를 무시한다고 한다. 즉, 예술은 역겨움이다. 사회에서 역겨움을 말한다. 역겨움을 참지 못한다. 혼자하고 있으면서 사회에서는 그러지 않는 것. 스캔들을 정치, 공적인 것과 연결 시켜 감시를 동조하는것이 그 예다. 역겨움이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는 거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드러냄이다. 역겹다.
랍신의 접대의 기술
접대술이라는 것은 좀더 이윤을 위한 행동이다. 잉여를 더 꺼내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적으로 말이다. 기다림이라는 것은 접대하기도 하지만 또하나의 기술이다. 돈을 더 받기위해 사람을 기분좋게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분동안 의식의 기법을 사용했다. 내면을 시각화 시키고 무대는 인간의 머리속이라고 가정 시킨다. 랍은 인종차별자이면서 피해자이다. (자세한 것은 소논문으로 블로그내 올림)
아감벤의 호모사케르는 법칙안에 있으면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법안에 있으면서 예외인 존재자들이다. 현대로 가면 갈 수록 이러한 통치의 수단을 삼고 있다. 예외상태란, 작동하는 법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을 말한다. 주권의 힘은 법 안의 공백을 만드는 것이다. 법 질서 바깥에 배재되어 있으면서 법에 속하는 것이다. 배재적 포함은 통치하는 생명정치이다. 예컨데, 용산참사를 생각해보자. 법에 포함시킬때는 처벌한다. 법에 평소에는 예외인 사람들 한테 말이다. 주권찬탈당한 사람들이었다. 이는 미국의 난민수용소도 생각하면 되겠다. 스펙터클한 사회인 현실은 자기도 모르게 법에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진정한 정치는 국가 주권에서 폭력이 되어서는 안된다. 법은 통치 목적 기반이다. 진정한 정치적 행위는 국가라는 통치기제와 맞서 싸우는 것이다.
수잔 로리 팍스의 피로 쓴 주홍글씨 (핏빛 속으로)
과거에 기록되지 않는 이야기를 현재화 시킨다. 주인공 헤스터의 행동은 에피소드 부분 마다 고해성사를 한다. 푸코는 고백이라는 단어를 통해 어떻게 통제하는 지 서술하고 있다. 자기의 내면을 드러내게 하면서 통제하는 것이다. 수치를 도덕과 연결시켜 도덕적이게 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지배사회에서는 예절과 규범과 매너를 요구한다. 주인공의 아이들은 경제 문제가 심각하다. 아이들을 다리 밑에서 키움으로 극은 표현하고 있다. 아이들의 입장은 아버지이면서 아버지로 인정 받지 못하는 호모사케르인 것이다. 장소와 시간의 희곡 텍스트를 통해 보면 단지 여기라는 단어 밖에 없다. 이는 모든 것에 적용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1인 2역을 하면서 어른과 아이를 연기한다. 고해성사를 통해 통제한다. 춤은 흑인과 관련 지어서 생각하자.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서 여성에 대한 풍자와 거기따른 분노 를 연상케한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서 돈벌이를 하는 모습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자. 여러해석이 가는한 공연작품이다. 연출가의 능력에 따라 극의 질이 달라질듯 하다. 계급 문제도 이 극에서 생각해볼 만한다. 이름이 Welfare이다. 즉 복지다. 법을 통해 계급을 계속 창조해내는 통제를 상징한다. Hester는 더럽다하면서 좋아하는 이중적인 소유자다.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성격이다. 크리스테바는 침을 뱉으면서 싫어한다. 자신의 것, 좋아하는 것.. 그것이 침이기 때문이다. 상징계로 넘어가면서 끊임업이 떠나지 ㅇ낳고 존재하는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무엇. 그것이 저항적인 그 무엇들이ㄱ라고 했다. 고해성사는 지배 계층을 드러내고 비판하게 하는 의미다. 극에서 Slut은 글자그대로 수치이다. 성적이기 때문에 성적으로 볼수 밖에 없는것에 대한 조롱이다. slut walk운동은 이에 대한 저항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배사회가 인식시킨 것이다. 지배는 고백을 하지만, 피지배는 그 수치를 드러내게해서 가시화 시킨다. slut은 타자를 통제하는 매커니즘인것이다. 율리와 도덕이 상존하는 이 단어는 , 오직 창녀에게만 수치시키고 폭력당한다. 국가제도는 타자를 억누른다. 저축은행 사건에서도 이면에는 시스템의 문제다. 플롤로그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코러스 처럼 연기하는 것은 인상 깊다. 코러스를 통해서 주제를 던져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치는 경쟁이다. 카이스트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돈문제이지만 이면에는 수치의 문제인 것이다. 시선의 문제그리고 인식의 문제를 통해 억압을 한다. 본다는 것은 데카르트가 말하길 자의식이라고 하였다. 이 극은 상호텍스트적 문학으로서 그 가치를 높이 살만하다.
호미 바바의 문화의 위치 ; 모방과 인간
프리엘은 트렌스레이팅에서 번역과 과정에 그 속에서 순수하게 통역이 아닌 아일랜드의 저항성이 나옴을 보여 주었다. 그러니까, 아일랜드는 영국과 친하지 않다. 아일랜드 인이 영국과 다른 나라 사람을 서로 통역해 주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아일랜드인이 영국인을 엿먹이려고 통역을 제대로 안했다는 말. 미미크리는 흉내내기 또는 위장이라고 말한다. MB 흉내내기라고 해서 우리가 MB가 될 수 없다. 따라하는 것 같지만 따라하는게 아니다. 양가성이 있다. 즉, 부정적인것과 저항성이 있는 것이다. 목크리는 조롱하기라는 말이다. 도시공간은 잘사는 공간과 못사는 공간으로 구분짓는다. 그런데 그것을 위함감이 들지 않게, 교묘하게, 공원이 생긴다. 이는 함께 하는 공유공간이다. 그런데, 도록가 있다. 이는 걸쳐가지 못하게 하는 공간이다. 혹은 벤치를 일부러 공원에 두지 않는다. 역공간이 있는 것이다. 그 사이의 공간은 주체의 문제다. 백인 문화에서 살지만 흑인으로서의 저항성이 있다는 말이다. 하나의 정체성은 순수한 하나가 아니라 이면의 저항성이 있다. 혼종성이 있는 것이ㅏ. 그리고 끊임 없는 협상을 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공포의 권력
문명화 하는 과정은 경계를 분명하게 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이를 허무는 것을 아보젝트라고 한다. 아보젝트는 라깡의 어머니로써, 아버지의 법때문에 어머니가 기존에는 없는데, 옛날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에서 경계가 없는것을 기호계 , 주이쌍스로서 생각한다.자신과 타자의 경계가 애매모호 하다는 것이다. 불확실하다. 주체도 아니고 객체도 아닌 것이다. 주체와 객체에 대한 경계는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질서계에 살고 있지만 넘어가고 싶어 한다. 근대 예술은 터부와 관련되어 있다. 근대 식탁은 예의와 예법을 중시하는데 말이다. 샤르트르의 구토,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아브젝트이다. 4.48, the blacks 도 이에해당한다. 태아와 어머니의 애매한 관계. 즉, 태아 주체는 어머니와 태아 분리를 하는데, 어머니는 보호 및 위협이 존재하는 존재다. 어머니의 권력의 내속에 잔존되어 있다. 비가시적인 힘이 있다. 괴물은 영화에서 보통 여자로 상징되어 진다. 왜냐하면 질서사회인 상징계에서 교란 가능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회귀는 무정형 상태로 이끈다. 욕망은 역겨움으로 나타낸다. 프로이트의 신경증은 어머니의 손길이다. 문명은 아버지인데, 보이지 않는 힘으로 나가오기 때문이다. 크리스테바는 어머니읜 손길에 역겨움을 가지며, 예술작품이 반듯한 질서를 무시한다고 한다. 즉, 예술은 역겨움이다. 사회에서 역겨움을 말한다. 역겨움을 참지 못한다. 혼자하고 있으면서 사회에서는 그러지 않는 것. 스캔들을 정치, 공적인 것과 연결 시켜 감시를 동조하는것이 그 예다. 역겨움이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는 거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드러냄이다. 역겹다.
랍신의 접대의 기술
접대술이라는 것은 좀더 이윤을 위한 행동이다. 잉여를 더 꺼내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적으로 말이다. 기다림이라는 것은 접대하기도 하지만 또하나의 기술이다. 돈을 더 받기위해 사람을 기분좋게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분동안 의식의 기법을 사용했다. 내면을 시각화 시키고 무대는 인간의 머리속이라고 가정 시킨다. 랍은 인종차별자이면서 피해자이다. (자세한 것은 소논문으로 블로그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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