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주체와 집단기억 그리고 학생운동과 이석기 (2)

2013. 10. 9. 00:02Culture/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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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들이 주사파가 되었는가? 에 대한 원인은 다양하다. 시사인 만화 작가는 그들이 일대의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내재된 관심받기 원하는 것과 영웅심리 그리고 자기 생계와 민족성이 복합적으로 좌파라는 대열에 들어 섰다라고 했다. 이명준은 그들이 주사파가 되는 과정에서 대학 문화가 이를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즉, 대학안에서 선후배와의 돈독한 우정을 바탕으로 작은 사회인 대학 안에서 밖으로 정치를 그들은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대학 활동은 사회를 진출하기위한 생산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NL과 PD들이 "달력식 투쟁"(참고문헌의 저자가 임의로 명명한 말이다.) 을 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이들 단체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이명준은 주사파의 성격을 정의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기고한 글이 있다. 그 글 중에 필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시가 있어서 우선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시가 바로 NL 운동권 대학생들의 모범적인 대학생활에서의 자세라고 본다.

 

바보과대표 - 홍치산

 

 

우리학교 1학년에 바보 과대표가 한 명 있다.

술만 먹으면 개가 되고

밍맹몽, 007빵 무얼 하더라도 진짠지 가짠지.

야튼 맨날 걸려 얻어맞으며 헤헤 웃고

벌주 발칵발칵 마시며 배꼽 뚜딜겨

뽕짝 걸판지게 뽑아대는 천하에 바보가 있다.

항상 그 바보 곁에 사람들이 드글거리고



그의 수첩에는 120명 동기 이름 모두 적혀 있다.

누구누구와 언제 만났고

누구의 고민은 무엇이고

누구와는 아직얘기 못해 보았으니...

멋있는 싯구 하나 없지만 그런 것들이 잔뜩 쓰여있다.

수업 안들어오는 애들 리포트 알려주고

시험때는 쏘스 제비 벌레 물듯 물어와 노놔주고



역사연구반이니, 사회과학 연구반이니

소수의 의식을 위한 것보다

바둑반이니 농구반이니

그런 모임을 만들어 120명 모두를

함께하는 고민으로 자기 과 소모임에 참여시켰다.



일기장에는 자신의 참된 삶의 문제

누구보다 겸허하게 치열하게 고민하였으며

개인의 안락에는 추호의 타협이 없었으며

항상 5시간 수면을 철저히 지킬것을 강제했고

서재에는 항일 무장투쟁사가 손 때묻어 간직되어 있었다.



그날

자기 과 친구들에게는 아직 이르다며 본대에 있으라 하고

아스팔트 하이바에 우리 선배 전투조들 떨고 있을때

익살스런 춤 "간다 간다 뽕간다"

신명나게 두려움 누그려주고

전투대장의 진격의 나팔 우렁차게 울리니

그는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정확하게 꽃병을 꽂았다.



드디어 놈들이 사나운 이빨 으르렁 거리며 덤벼들 때

한 친구 전사는 미끄러지고

모두 안타까이 돌아 섰을 때

그 바보 전사 바보처럼 의연히 달려 나갔다.



다음날 한계레신문에 조그맣게 바보 이야기가 실렸다.

고대에서 2명이 화염병으로 잡혀오고 100명이나 친구들이

성북서 항의 방문을 했다고 바보를 풀어 달라고 울부짖었다.

총학생회장님이 잡혀가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리고 다음날 교문과 식당에서는

바보의 바보같은 친구들을 누구나 만났다

그들 손에는 당구 큐대가 아니라

볼펜이 아니라 오락실 운전대가 아닌

규탄 성명서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며칠 지난 뒤 학생의 날 가투 전투조 사전 모임에서

한 1학년 학우의 결의 발표가 나의 심장을 쳤다



"나는 바보의 다른과 친구입니다.

투쟁하란 말은 없었지만

그 친구는 말은 없었지만

저는 아직 짱돌 한 번 던진적 없었지만 바보를 잡아간 놈들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오늘 비록 제가 잡혀간다 하여도....."

 

          이 시가 꽤나 운동권 학생들에게는 유명한 시였던걸로 알고 있다. 이명준 씨 역시 이 시를 가지고 주사파를 분석했다. 필자도 역시 이 시에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시를 분석하기 앞서 우선 운동권을 대상으로 하는 용어들을 분석해보자~ NL은 National Liberation의 약자고, PD는 People`s Democracy 가 약자다. 글자 그대로 NL은 민족 해방이다. 해방은 곧 어떤 다른 민족이나 집단에서의 체제를 탈출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 단어에서) 그런데 사실 남한에서나 북한에서나 한반도 만큼 단일민족국가인 나라는 드물다. 그런데 NL 을 쓴다. 그러면 뭔가 한반도 전체에 다른 민족? 또는 다른 억압적인 체제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밈리 언급하자면 분단과 통일, 미국으로부터의 해방,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이 뜬금없이 언급된 이유는, 주체사상 그 자체는 말 그대로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를 꼽씹어 보면 NL의 사상을 좀 더 깊게 파고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체라는 것은 내가 스스로 인식함으로서 주체라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공간에서 나는 나라고 존재한다고 느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인지를 하고 표상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단지 감으로만 나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곧 주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단어다. 주체는 곧 내가 인지함에 있어서 나 중심으로 인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 중심으로 인지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대상이 보일까? 그래서 빛이 있어야 한다. 그 빛이 바로 타자다. 타자를 통해서 나와 타자가 관계를 맺고 나는 타자를 위해서든 나를 위해서든 무언가 인지를 하고 드러내고 다시 생각하면서 나의 주체를 확립한다. 아... 좀더 쉽게 말해서 내가 태어나서 둘리라고 명명 짓고 나는 이제 둘리로서 살아가는 그것~ 그게 내가 정한건지 타자에 의해서 정해진 건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타자들과 함께 배우고 발전하고 생존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둘리라는 이름으로 인지하며 살아간다.

          주체사상은 바로 그러한 것이다. 바로 그 위의 시 바보과 대표가 그렇다. 위 시는 주체사상의 표본이자 정수의 시이다. 사람이 중심이 된다.  나라는 주체를 가지긴한다. 그런데 그 주체가 올바르게 정립되기 위해서 다수의 타자들과 함께 인지해나가며 활동해 나간다. 그런데 시의 3을 보자. 소수가 아닌 다수를 이 시는 호의를 가진다. 아예 대놓고 이론적으로 논의되는 단어인 People 과 Demmocracy 같이 연구하고 논의하는 소수 집단을 깐다;; (People과 Democracy는 National과 Liveration 과는 다르게 최근 단어가지고 담론이 학문처럼 다뤄지는 분야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가 많은지 민족이란 무엇인가? 해방이란 무엇인가? 많은지? ㅎ)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고 사람답게 사람다운 세상을 위해 억압체제를 해방하는 과정을 필자가 언급한 키워드로 다시 꼽씹으면서 위 시를 읽어보자.

          의문점이 드는가? 나라는 주체가 있긴 한데 타자들도 함께 챙기다 보니, 나라는 주체는 행동에서 보이지 않는다. 타자와 함께 동행한다고 생각하면 맞을런지.(지나친 비약이다.) 그런데 다른사람과 함께 하면서 자신을 타자와 함께 열심히 주변 배경의 작업과 함께 하다보니... 자기 자신이 어느덧 타자도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도 타자를 챙기는... 다함께 서로 주체를 가지는 참다운 사람의 세상이 된다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지나친 확대 해석이지만 예수님 일대기를 생각하고 바보과대표를 생각해보자. (주체사상에서 통일과 미국과 함께 김일성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것은 생략한다. 다만 인간 행동이라는 롤 모델을 예수님;; 헉;; 아니 김일성이라고 생각하자. 어찌되었든 홍치산도 바보과대표를 롤 모델로 삼고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길 바라면서 시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가 닥친다. 바보과대표처럼 행동하면 다들 함께 사람처럼 잘 살 수 있을텐데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주체사상과 통일과 분단과 함께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미국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발생하는 자본주의에서의 차별이 발생함에 따른 계급의 분화다. 이것이 복합적으로 연결되면 하위주체가 발생한다. 경기도 광주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계속)

 

p.s 주체사상의 개념은 철학자 황장엽에 따르면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 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 대중에게 있다."라고 했으며,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 라고 했다. 그런데 황장엽이 실존주의를 벗어나 북한에 있을 당시 주체사상의 개념을 바꾼다. "인민 대중의 이익은 노동 계급이 대표하므로, 인민 대중의 참다운 이익을 옹호하는 입장은 곧 노동 계급의 입장이며, 노동 계급의 참다운 이익을 옹호하는 입장은 곧 노동 계급의 당(黨)의 입장이며, 노동 계급의 당의 이익을 이상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은 곧 수령(즉 김일성)의 입장이다".


참고문헌

 

이명준.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서울: 바오, 2012.

임미리. "'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고립". 기억과 전망 28. 6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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