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 웨스트』에서 나타난 고상함에 대한 조롱

2011. 7. 14. 09:37Literatur/English

반응형

Hyeong Rak, Park

Byung Eon, Jung

Studies in Contemporary American Drama, EL69787

14 July 2011

『트루 웨스트』[1]에서 나타난 고상함에 대한 조롱

           극작가 샘 셰퍼드는 1980년대부터 새로운 장르로 진출하였다. 바로 영화다. 그는 1970년대 초반부터 영화시나리오를 쓰다가, 1980년대 부 터는 조연으로 발돋움하였으며, 1990년대부터는 완전한 배우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그가 1980년에 초연한 『트루 웨스트』에서는 그가 상업이라는 요소와 자신이 쓰고 싶어하는 작가의 욕망이라는 예술성이 대립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네티즌들에게 인기가 있는 풍자적이면서 상당히 성적이면서 욕설이 난무하는 일부 웹툰에 대해 뛰어난 작품이라고 칭송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욕설이 난무하고 상대 야구선수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만화를 그렸는데, 실제 그 만화의 숨겨진 의미는 그 야구 선수의 과거 행태를 패러디 하면서 지난 경기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패배 원인을 전문가 못지 않게 그리고 있다. 따라서 그냥 웃고 넘길 수 있으면서, 이런 분석을 잘하는 네티즌들에 의해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의미를 대중들이 느끼게 하고 그 작품에 대해 경탄하면서 수많은 커뮤니티에 다시 게시하게 되면서 퍼지게 된다.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과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는 굉장히 위험하다. 자칫 잘못해서 대중의 눈에 벗어나게 된다면 그 작가의 살림이 바닥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는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 문화산업 이론에 따라 자신의 작품을 표준화 하고 거기에 도식화 시킬 수 밖에 없다. 극에 나오는 배급 자는 사이비 개성화을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에 익숙한 하나의 자아와 그와 상반된 자아가 한 상상 계 속에서 끊임없이 대립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이 없는 이 극은 결국 영원한 숙제로 남길 수 밖에 없지만, 세퍼드의 행보를 보면 결국 두 개는 결국 어느 한 상상계 속에서 대립하면서 공존하면서 끊임없이, 다시 말해 결론 없이 머물러 있는 상태로 유지 하면서 평온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 하는 것 밖에 없다. 둘 중 하나가 어떤 식으로 죽이려 들어도 죽을 수 없는 상황이다.

           두 형제는 작가의 자유와 대중의 입맛을 서로 바꿔 보기도 한다. 서로 바꾸는 시도는 형태만 서로 바뀌었을 뿐 결국 전체적인 맥락 차원에서는 바뀐 게 없다. 이는 유행과도 같다. 벤야민은 유행을 유행은 새로운 것의 영원한 반복이다. 라고 말하였다. 결국, 작가의 자유라고 하는 대중 문화와의 괴리 그리고 반감은 다시 반감과 괴리로 이어지며, 이것은 끊임 없는 변화 속에서 거시적으로는 결국 돌고 도는 사유 양식을 뜻한다.

           따라서 극작가의 마지막 결론은 열린 결말이라기 보다, 그 결론 그 자체가 결론인 것이다. 아무리 자기만의 세계에 대한 자유를 누린다고 하더라도 대중을 무시할 수 없고 대중에게 집착하게 되면 작가로서 성공은 거두지만, 이에 뒤 따라오는 매너리즘은 나와 타자간의 소통을 위한 열린 마음, 즉 망각이 필요하듯이, 서로 다른 생각에서 정지되어 있는 그 상태로써 작가는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두 형제를 통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는 것을 경고하고 있으면서 한대 아우르는 것은 불가능 하고 억지스런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서로가 만나지 않으면서 만날 수 있는 상태, 그 상태를 작가는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1] 대부분 논문에서는 『진짜 서부』라고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트루 웨스트’ 로 잘 알려져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