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또의 연극세계

2011. 12. 25. 22:33Review/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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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이 문화에 끼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현실적인 것 사이의 언어간의 괴리를 이어주는 하나의 수행성에 있다. 일반적으로 연극의 행위를 마치 인간이 억지로 임시방편적 인인 것에 불과한 행동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실제 연극의 행동들은 일상적에서 나타나는 게 연극이다. 잔혹극은 몸짓과 비명소리를 이루는 즉흥적 연극이다. 일반적 재현은 말과 행동의 따로 되는 현실을 대표한다. 행위는 실제고 상유는 행위에 대한 것들이다.  문화가 응용된 것이 문명이다. 문명은 문화가 적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의 말처럼 감각으로 긴의 재현을 벗어나는 것으로 써 기능 해야 한다. 감각에 익숙을 막고 원초적 무엇을 만나게 해주는것, 그것이 잔혹극인 것이다. 레비나스는 부조리극은 새로운 메커니즘을 만드는 장치이며 새로운 시작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실제는 우리의 삶을 완전하게 포착하는데 기인한다. 
 잔혹극을 관객이 보게 되면 모두가 옳다고 할 수 없는 해석이 생긱것이다. 인식 체계가 얼마나 편파적인지 말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극의 특성상, 그릇된 문화에 대한 항의를 내포하고 있으며 진실 그대로를 드러내 주는 장치일 수도 있고 그와 반대 되는 것에 대한 항거일 수도 있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혐오가 드러난다. 무엇과 무엇이라는 답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몸짓이다. 삶과 이성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이러한 무의식에 의식과 무의식은 마치 따로있는거 처럼 보여진다. 진실된 문화는 삶을 실행시키는 멋진 수단이다. 진정한 비평이라는 것도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인 것 처럼 말이다. 이러한 이성적인 요소는 글로 기록되는데, 이를 우리는 대개 이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성은 기존의 보존, 유지로서만 도서관에서 과거와의 단절 속에 남아있다. 기존의 말들어진 형상들이 그곳에는 존재한다. 그리고 늘 머리로만 쓰여진 문화다. 물론 이는 의식과 따로노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성을 파괴시키면 언어 이외가 남게 될 것이다. 언어의 영역이 확장된다고 몰수 있다. 몸짓과 소리와 비명이 그예다. 우리의 의식과 상관없는 그 힘은 야만과 원시이며 이는 문명화 되지 않은 진정한 삶의 추구중 하나일 수도 있다. 틀에 쥐어 진 것을 깨틀기 위한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관객은 당연히 이러한 야만적인 것에 경악을 하게 된다. 머리와 피부로 반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감각기관이 살면서 수동적인것과 반대되어 감각기관이 사는 것이 된다. 개고간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게되어 무엇에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실재를 바라보는데 항상 무언가 중간을 거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것을 제거해 주는 것이, 즉각적이것이며 잔혹극이며, 그게 바로 충격인 것이다. 언어를 확장 시키는 연극은 무의식이라는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다.

- 아르또의 잔혹연극론 서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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