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e 의 어색함에 대하여 – Maria Irene Fones의 Mud

2011. 12. 31. 11:16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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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e 의 어색함에 대하여 – Maria Irene Fones Mud[1]

201180142 박형락

           무조건 Brecht 가 먼저 시도 했다고 하기에는 상당히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극에서 연출하는 상당한 어색함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준다. 단지 충격이라는 그 의미 자체의 충격은 아니고, 몰입을 방해하면서 어색한 느낌을 받고 분명하게 연출가의 의미를 받아나는 생소함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Brecht 의 어색한 시도는 연출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부각되었다. 관객이 극을 느끼기에 최대한 어색하게 해야 하는 것은 혹은 기존 관념의 틀 그 자체를 흔들기 위한 목적성이 있는 극이라면 이러한 기법을 상당히 사용하고 있다. Mud에서는 Fones의 목적성을 기존의 틀을 흔들어 대기 위해 연출적인 측면과 함께 내용적인 측면에서 독특한 방법을 시도하였다. Brecht의 소외효과를 차용한 것은 아니지만, 유사하게 Fones 만의 극 내용의 어색함을 통해 굉장히 자연스러워 보이는 인간의 삶을 고발 한 것임은 틀림없다.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등장인물 셋의 관계와 배경에 있어서는, 있을 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당히 어색함을 자아낸다. 마치 인간의 내면을 도려내어 겉으로 뒤집어 놓은 것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원시적인 것 같은 삶을 그들은 살고 있다. 원시라는 곳은 말 그대로 가장 자연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자연적인 아름다움 속에는 인간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다움이라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인간들이 서로 서로 관계를 통해서 자연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나비 한 마리가 배추 밭에서 사는 그 삶은 곳곳에 도사리는 수많은 동족간의 경쟁과 타 종족간의 무시무시한 먹이 사슬에서 살아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Mae는 남성들 시각에서 보면 남성에게 지칭하면 상당히 불쾌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아름다운 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여성이고 남성들 혹은 지금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안정적인 공간인 집 혹은 가정이라는 곳은 절대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세계이고 인간이 만든 자연성 혹은 원시성을 띄면서 편안하고 친숙한 공간이다. 두 남자에게 가지고 있는 포유류로서의 성적인 행동과 인간 사회와는 동떨어진 사회성과 지성은 Mae를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Mae는 진흙 같은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공간에서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이다. 다시 내면에서 외면으로 끄집어 내어진 정신의 피부들을 다시 내면으로 돌려놓아서 본다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그러한 가부장의 세계 속에서 밖으로 빠져 나오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확립적이고 확정적이고, 마치 인위성이 이미 자연화 되어버린 인간의 자연계 속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이므로,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여성이 아닌 것이 되고 질서를 흐트러 놓을 수 있으므로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을 좀더 충격으로 몰고 가기 위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Fones는 작품에 집어 넣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존의 질서를 끄집어 내기 위해 더욱더 어색함을 통해서 증명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원시성이라고 보기에는, 혹은 척박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성이라고 보기에는 성적인 측면이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기둥에 수음을 한 행동은 극히 인간적일 수 밖에 없고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느 하나의 인간 성적 판타지의 일부분일 수 도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놀라움은 『킨제이 보고서』 사건과 연관시켜서 분석 할 수 있다. 이 책이 출간 당시 상당히 충격을 주었고 그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금기 속에 담겨있는 인간 내면의 섹스 판타지는 극히 인간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인간들은 불쾌해 한 것이다. 그러면서 플레이보이 잡지보다 더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올랐다. 이와 동시에 수많은 공공 도서관들은 이 책을 받아주지 않았다. 당시 기준으로 그 책이 옳고 그런지 따져 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Fones는 우리들이 원시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자연적으로 은폐되어 있는 것을 드러내게 함으로써 극 전체의 거시적인 부분과 미시적인 부분을 어긋나게 하여 관객들에게 또 다른 어색함을 자아내었다. 그 뿐 아니라 이 극에 나타나는 주인공들은 도저히 사회성이라고는 없는 등장인물들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경제성이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 돈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극 속의 가정생활 활동을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들이 가정 밖에서는 정상적인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을 한다는 가정을 한다는 설정은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극에서 그들의 삶이 계속해서 유지된다는 것은 극의 무대 안과 밖의 두 남자 혹은 한 여자의 이미지는 상당히 다르고 이것이 또 하나의 관객들의 놀라움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텍스트적 충격이다.

           이렇듯 단순히 관객들이 이해 할 수 없는 독특한 연출에 따른 소외효과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음을 극작가는 보여준 것이다. 또한 Brecht의 일화처럼 자칫 소외효과에 신경 쓰고 줄거리를 놓치는 실수는 관객들에게 극작가의 목적성과는 전혀 다른 의외의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작품이 관객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맡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적성이 있는 작품은 분명 그렇지 않다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계몽시킬 것이냐, 그 계몽이 작가의 이상향인 만큼 실현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자 도구라면 어색함을 적절히 사용하여 관객들을 이끄는 가도 중요한 문제다.



[1] www.gedanke.wo.tc 에서 다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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