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egant Universe - Tom Stoppard 의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2012. 1. 2. 11:19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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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legant Universe

-     Tom Stoppard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영국르네상스희곡연구

윤화영 교수님

201180142

박형락

Heute ist Mama gestorben. Vielleicht auch gestern, ich weiss nicht. – Albert Camus

1. 발제지 구성

대체적으로 먼저 서문에는 간단히 발표의 핵심 부분을 요약하는 것이 좋을 지 모르나, 발제지 구성자체가 난해하기 때문에, 이렇게 먼저 발제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가를 언급하도록 하겠다. 우선 기본적인 발표의 주제는 상호텍스트성과 함께 작품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논문에 주어진 상호텍스트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파고드느냐에 고민을 많이 했다. 대체적으로 해당 논문의 상호텍스트성은 주관성이 강하지만 이해하기 쉽게 개념이 정리되어 있고, 마치 수능 학습지를 보는 것처럼, 개념 정리 후 실전에 어떻게 사용하는 지 보여 주었다. 다만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Stoppard의 다른 작품을 상호텍스트성을 활용한 분석이었기 때문에, 필자가 발표할 때 아는 척을 하느냐 또는 언급을 하지 않느냐 또는 다른 알려진 것을 필자 임의로 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고민 끝에 생각은 아예 개념으로 밀고 가자는 생각이었다. 극에서 다루어진 여러 개념들을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찾아보고 언급하기로 했으며, 상호텍스트성에 비중을 많이 두고 어지간한 용어들은 각주로서 해결하기로 하였다. 개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흥미 있었던 점은 모든 개념들이 상당히 명쾌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불친절하게 구성된 것은 발표 시간을 감안했고 이미 발표 전에 작품을 미리 읽어오거나, 그것이 힘들면 영화라도 시청하라고 언급을 했기 때문에, 줄거리와 등장인물은 처음 발제지가 완성되었을 때와 지금과 다르게 삭제되어 있다. 딱히 줄거리를 요약하자니 장소이동언급 그리고 등장인물의 경우 Ros Guil 관계를 필자 스스로 명쾌하게 설명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맨 마지막 부분의 더 나아가기에서 둘의 차이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언급했다. 상호텍스트성을 제외한 작품 분석과 그 외 나머지 부분들은 필자의 개인 생각을 과감히 작성하고 나서 여러 논문들을 읽어보고 덧붙이거나 추가하는 방식으로 하였다. 따라서 모든 발제지 구성들이 미리 선행 학습이 이뤄진 사람만이 발제지 오류들을 명확히 짚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발표를 수업시간에 정할 때, 매우 익숙한 작품이라서 선택했었는데, 막상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처음부터 무슨 내용인지 영문과 번역문을 통해 비교해 가면서 다시 읽어 봐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영문과 인터넷에 떠도는 번역문은 이해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었지만, 번역문이 영문의 내용을 상당히 생략하고 일부 각색했었다. 또한 영화도 영화이니만큼 Stoppard 특유의 각색으로 고상함과 대중스러움을 동시에 잡으려는 놀라운 일을 하다 보니 원작가 다른 부분이 있었다.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동기 형과 함께 할 것인지 직접 물어보라고 권유했던 것이 머릿속에 자꾸 맴돌면서 발제지를 만들었던 거 같다. 1번 타자의 임무가 아웃이 되더라도 항상 끈질기고 오래 버텨 투구 수를 늘리고 팀의 분위기를 살리게 만들 듯, 이번 수업 첫 발표를 분위기 좋게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작성했음을 생각해 주길 바란다.

막상 발제지를 완성하고 나서 용량이 너무 커 폰트를 일반적인 10 혹은 11로 하지 않고 8 혹은 9로 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A4 마진도 최대한 커팅했음을 시인한다. 그렇지 않으면 20장 이상 거뜬히 넘어 버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돈도 벌지 못하고 인문학이 좋아서 공부하고 있는 불쌍한 영혼을 위해서 말이다. 다 발표를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정말 이왕하는 거 하나라도 얻어보려는 생각이 이렇게 된 거 같다. 어쩌면 내가 바로 잉여의 중의 잉여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덕중의 덕은 양덕이라고 칭송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행동을 하면 잉여 소리 듣고 이상하게 나를 바라 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얻어가는 것이 어떻게 훗날 나의 인생에서 어떻게 쓰여질지는 모르겠지만, 세이버매트릭스가 인터넷 발달로 마스터 하는 이들이 생기면서 허구연 야구 해설 위원을 허구라라고 칭송 하듯이, 계속 공부할 것인지 다른 공부를 할 것인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나에게 설령 다른 인생의 길로 갈지라도 최근 인터넷 문화를 이끄는, 소위 말하는 지식인 저격수로 라도 하면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

발표하기 전날 교수님께서 직접 전화 해주시니 정말 감사하다. 교수님의 전화 한 통화로 발제지 만드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던거 같다. 그리고 발제 덕분에 고생하는 모니터 두 대와 기계식 키보드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그리고 발제 준비하는 과정에서 구글링을 통해 너무 공짜로 많은 컨텐츠를 학술이라는 미명하에 합법적으로 사용했음을 밝히고 원 저작자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바다.

 

2. 들어가기 전에..

 1) 패러디

a. 일반적 정의

          이미 대중문화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 있는 요소이다. 오마쥬와 표절과의 관계에서 개념을 구별 짓기 힘든 것과는 다르게, 패러디는 상대적으로 표절과는 구분 짓기 쉽다. 오마쥬의 경우에는 프랑스어로 존경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작에 대한 존경과 경의의 표시로 원작자에게 바치면서 자신의 작품에다가 유사하게 원작 내용을 인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쟁을 가장 많이 일으킬 만한 요소이기도 하다. 인문학에서는 학문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대작의 제목에서 단어를 살짝 바꾸거나 문장배열을 그대로 따옴으로써, 해당 저서와 학자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낸다. 영상관련 업계 쪽에서는 Kaminski 카메라 감독의 기법을 오마쥬 한다.

          이와는 다르게 패러디의 정의는 좀더 의미를 좁힐 수 있다. 풍자와 희화화가 들어가면 된다. 다만, 서태지의 음악을 패러디 하려다가 소송위기까지 가서 논란을 일으켰던 이재수 사건[1]을 생각하면, 패러디 그 자체 만으로도 원작자에 의해 표절시비가 붙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그만큼 패러디, 오마쥬, 각색과 표절에 대한 명확한 개념의 정의와 구분은 원작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패러디는 특정 타깃에 대한 풍자성이 강하다.

b. 사전적 정의[2]

          장중하고 진지한 내용 및 작품 등을 일순간에 조소하는 문학양식이고, 대상의 외적인 양식을 패러디 하면서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문학 작품의 외형, 특히 운율이나 문체 등을 교묘하게 모방하면서 그 내용을 우스꽝스럽게 개작해 풍자한다. 패러디는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를 통해 어떤 작가나 작품 및 사실을 비방하고 조소할 의도로 쓰인 글이다.

 2) 상호텍스트성[3] : “텍스트들에 포함된 관습, 코드와 독자 또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말한다. 배우나 관객은 역할이나 텍스트가 상호 관계하는 역사, 즉 과거의 심연을 의식함으로써 영향을 받는다. 어떤 텍스트는 그 상연에 영향을 미치는 갖가지 다른 텍스트들을 배경으로 해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독자나 관객의 해석은 독자나 관객의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갖가지 다른 텍스트들과 개인적 경험을 배경으로 해서 비로소 성립한다고 본다” (드라마 사전, 김광요).

             Saussure의 언어학에서는 기표[4]와 기의[5], 랑그[6]와 파롤[7], 공시태[8]와 통시태[9], 통합적[10] 관계와 계열적[11] 관계와 같은 몇 가지 이분법적 개념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Saussure는 언어기호를 정의하면서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이라고 주장하였다. 독립적으로 쓰인 것 같은 언어기호는 사실 선택과 연상을 바탕으로 다른 언어기호들과 무수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언어는 통합적 축과 계열적 축을 따라서 결합한다. 이처럼 독립적으로 쓰인 것 같은 언어기호는 사실 선택과 연상을 바탕으로 다른 언어기호들과 무수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구체적 발화인 파롤이 아니라 언어의 체계라고 할 수 있는 랑그를, 그리고 변화하는 언어의 모습을 다루는 통시태가 아니라 주어진 시점에서의 체계를 의미하는 공시태를 올바른 언어 연구의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전통적으로 문학 텍스트는 작가의 경험과 지식을 매개로 재현된 현실을 담고 있다고 이해되었으며, 해석은 그 텍스트를 통하여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무엇을 찾는 행위였다. 하지만 Saussure의 이론을 가지고 생각한다면 텍스트는 언어 기호가 현실을 지칭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재현한다고 확실할 수 없다. 텍스트 또한 언어 기호와 마찬가지로 넓게는 모든 텍스트와 문화 일반, 좁게는 문학으로 분류되는 무수한 다른 텍스트들과의 관례, 차이, 연상에 의해서 기능하는 것이다.

             Bakhtin은 발화가 대화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발화에 어떤 규범성이 내재해 있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발화가 발화자에 의해서 대화의 상대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발화는 대화 상대로서의 타자를 반영할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 Bakhtin이 말하는 타자성이다. 언어의 절반은 이미 남의 것이며, 이러한 언어의 근본적인 대화적 성격을 지칭하는 타자성은 독백이나 지극히 독백적인 텍스트에도 적용된다. 새로운 언어를 말할 수 없으며, 발화는 이미 무수하게 발화되었던 것을 이미 무수하게 사용되었던 형식을 통해 다시 말하는 것이다. 텍스트는 발화의 일종으로서 언어의 기본적인 대화적 성격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한 인물의 말은 작가에 의해서 창조되지만, 그 말은 작가가 아닌 타인의 말로, 마치 그 인물 자신의 말처럼 자신의 내면적 논리와 독립성을 마음껏 발전 시킬 수 있게끔 창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Kristeva는 하나의 텍스트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담화로부터 구성되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저자는 자신의 독창적인 정신으로부터 텍스트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텍스트들로부터 자신의 텍스트를 편십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까닭에 수평적 축(주체-발화의 대상)과 수직적 축(텍스트-맥락)이 교차하면서 각각의 텍스트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다른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의 교차점이다. 어떤 텍스트도 인용의 모자이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텍스트도 다른 텍스트의 흡수이자 변형이라는 것이다. 상호텍스트성의 개념은 상호주관성의 개념을 대체하고, 시적 언어는 최소한 이중적으로 읽혀진다고 했다. 텍스트와 과거 및 현재의 다른 텍스트들과의 관계를 포괄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미 무수한 상호텍스트 성이 교차하는 의식의 주체이며, 텍스트는 그러한 무수한 상호텍스트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짜여 있는 공간이다. 개별적 독자는 또 나름의 상호텍스트 성이 교차하는 의식의 주체로서 텍스트에 접근하여 작용하게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텍스트는 문화 일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상호텍스트적 관계는 무한대로 증폭된다. Kristeva의 저자-텍스트-독자라는 도식은 저자 못지 않게 독자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텍스트는 완결된 상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산되는 과정이다.

             거미줄 같은 망을 이루고 있는 기표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 언어 기호가 지시하는 의미가 통해진다. 기표의 의미에는 그 기표와 변별적 관계에 있는 다른 기표들의 자취가 남게 되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상황은 의미의 결정불가능성 또는 기표의 유희를 가능하게 만든다. 차이와 연상의 망을 이루고 있는 기표의 모임인 텍스트는 당연히 다른 텍스트들과 무한한 상호작용의 연쇄를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게 되면, 텍스트 해석은 일종의 문학적 무 정부주의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저자의 의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텍스트의 해석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극단적 입장을 지양하고, 어느 정도 절충적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단선적이고 절대적인 텍스트 해석을 부정하는 것은 문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일반에 걸쳐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다. 문학 텍스트가 자체의 구성원리와 특정한 효과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장치 등에 의해 통제되며, 나름의 통일성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하나의 텍스트는 하나의 발화로서 그 안에 독자의 역할을 극단적으로 강조하여 단일하고 신적인 의미 생산의 주체로서의 저자를 궁극적으로 배제하고, 개별적 독자를 텍스트 의미 생산의 새로운 주체로 내세워 의미의 연쇄가 무한대로 전개되어 텍스트가 갖는 의미의 무한대적 확산과 폭발을 가능하게 만드는 측면과 특정한 효과와 메시지의 전달을 목표로 하는 의식으로서의 저자의 의도를 반영하는 측면을 비유적으로 원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텍스트의 의미는 텍스트 내의 두 힘이 긴장과 균형 위에서 존재하며, 해석은 텍스트에서의 저자의 의도[12]를 지향하는 주도적 의미를 추구하는 가운데, 텍스트에서의 개별적 독자의 무한한 텍스트 의미 생산[13]에서 비롯되는 다양성과 깊이를 동시에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호텍스트성을 이용한 텍스트의 해석은 먼저 재현성에 대한 의문 제기, 직접적 또는 간접적 인용의 적극적 활용, 플롯이나 인물의 차용과 같은 패러디 등, 텍스트가 자의식적으로 상호텍스트성을 드러내는 측면들에 주목한 후, 실질적으로는 이런 측면들을 출처나 영향 관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쥬네트가 의미하는 하이퍼텍스트와 하이포텍스트[14] 사이의 유의미한 관계, 특히 하이포텍스트의 주도적 의미를 추출, 해석함에 있어서 하이퍼텍스트의 생산적 기여를 밝히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3) 액자구성

             극중극은 정확히 이 의미에서 희곡 속에서 발생하는 희곡이다.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에서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는 액자 식 구성의 하위 카테고리다. 영화 속의 영화, 영화 속의 희곡 등등 다양한 하위 카테고리들이 존재한다. “외부 이야기를 내부 이야기 밖에 두면서 내부 이야기의 진실성을 부여하고자 쓰인다. 주의할 점은, 내부 이야기가 무조건 사실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부이야기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자 한 것이다.” BrechtThe Caucasian Chalk Circle 의 경우 분쟁해결을 위한 해결책으로 연극을 하는 것 그리고 Shakespeare A Midsummer Night’s Dream 에서 Nick, Peter, Robin 3명이 극 안에서 연기를 한다.

 4) 부조리[15] : 라틴어로 absurbdus ,즉 불협으로 울리는 이라는 뜻을 가진 부조리는 일반적으로 무의미한, 모순적인, 비논리적인 또는 논의적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독교적 해석에서 이 개념은 증명될 수 없는, 오로지 믿음의 대상인 신학적 내용을 성격화하는데 사용된다. 종교적 의미로서 무의미한 이란 뜻보다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16]

a. 등장배경[17]

          2차 세계대전 후, 인간의 삶이 뜻이 없다는 실존주의 이론을 구현한 것. 전쟁은 환멸의 소산이며 소위 중산층이 지배적인 사회의 안정과 안전을 추구하는 부르주아의 가치관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하여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무의미성과 그로 말미암은 불안과 공포를 표출하고 있으며 흔히 줄거리의 발전이나 심리적 진전 같은 것도 없이 시작한 곳에서 그대로 끝나버려 출발점도 없고 목적지도 없이 그저 계속 지속 되기만 하는 부조리한 인간존재의 심상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연극을 휩쓸다시피 하였다.

b. 부조리 극의 특징[18]

부조리 연극은 오로지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세계관을 표현한다. 이 연극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형식의 탐구에서 그 두드러진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오랫동안 드라마의 평가 기준이 되어 왔던 모든 것을 일소에 붙임으로써 재래의 드라마에 익숙해 왔던 우리를 당혹시켰다.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사실주의 극은 등장인물 들의 성격창조가 치밀하고 그들의 행동의 동기가 충분히 믿을 수 있게 끔 되어 있다. 그러나 부조리 연극에서는 그 인물의 신분이나 성격이 거의 밝혀져 있지 않으며 그들의 행동의 동기도 전혀 주어지지 않고 있다.

          종래의 연극은 어떤 스토리를 말해 주거나 지적인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부조리 극은 인간의 기본 상황을 시적인 이미지나 메타포로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꿈이나 환상이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전달하며 그 발전이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연상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같다. 부조리 극은 인생을 모사하려는 한 사건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원형적 상황을 표출해서 그것을 설명 없이 있는 그대로 투사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이 극은 관객의 사고와 판단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신의 심층에 호소하며, 그러한 상황을 막연하게 느끼게 해주기보다 의식적으로 그것에 직면케 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적인 부조리 성을 인식하게 한다.

          재래의 형식으로부터 아무런 결론이나 해결도 없으며 명중한 정의가 결여되어 있는 이미지로 그 역점을 옮겼다. 그것은 부조리 작가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어떠한 것도 명확하고 깨끗하게 해결되고 설명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생의 이해 불가능을 말하며 의미와 목적이 상실된 세계에서의 절망을 표현하려고 한다. 종래의 연극은 확실하고 그것대로 만족 할 수 있는 신조의 가치체계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 세계는 의미가 통하고 있던 세계였다. 그러나 부조리 연극은 그저 한 신조나 가치체계가 없거나 상실되어 버린 세계,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는 세계에 부딪힌 인간의 절망,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공허한 세계에 살고 있는 정신의 황폐 감이 전적으로 표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언어에 대한 불신감을 부조리 극은 가진다. 모든 진실을 그 동안 우리는 언어에 의해서 밝힐 수 있고 소통시킬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물과 그를 설명하는 언어 사이에는 차츰 간격이 벌어지게 되었고, 언어는 진실을 표현해 주기보다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 버렸다. 우리는 이제 엄청난 언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미래를 맹세하는 정치가들과 사회 개혁자들의 엄청난 장광설, 대중매체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유혹의 말들이 얼마나 거짓되며 허위에 차 있는가를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따라서 부조리 작가들은 언어를 통해 논리 정연하게 무엇을 기술하고 설명하여 설득시킨다는 일을 포기해 버렸다.

         연극에서 과거 연극의 유산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커스, 마임, 광대놀이, 넌센시컬한 말장난, 우의적 요소를 강하게 갖고 있는 과거 꿈과 환상의 문학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이제까지 언어의 노예가 되다시피 했던 종래의 사실주의 연극의 옹색하고 답답한 울타리로부터 연극을 해방시켜 연극적 재미와 활력을 되찾게 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3. Tom Stoppard[19]

 1) 작가소개

             영국의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 중 한 사람으로 1937년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출생하였다. 유태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당시 유명했던 바타 신발회사에서 의사로 근무했는데, 1939년 나치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략하자 가족과 더불어 싱가포르로 피신하였다. 이후 일본군이 싱가포르로 진주하게 되자 Stoppard 일가는 다시 인도로 피신했는데, 뒤에 남았던 아버지는 끝내 가족과 합류하지 못하고 싱가포르에서 사망하였다. 인도에서 Stoppard의 어머니는 영국인 Stoppard 소령과 재혼했고, 결국 가족들 모두 영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Stoppard는 철학, 과학, 예술, 서양 고전 등 난해한 주제들을 자신의 극 작품 속에 짜 넣기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고, 이후 연극 비평, 단막극, 라디오 극과 TV 극 등을 쓰며 습작 기간을 보냈다. 1966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가 에딘버러 페스티벌의 프린지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은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았으며, 작가로서의 성공과 명성을 안겨주었다. 전체적으로 스토파드의 작품들은 재기 넘치는 대화와 깊이 있는 주제가 어우러진 사변 극으로 연극계와 학계의 호평을 받았다. 1997년 기사작위를 받았다.

 2) 대표 작품 간단 소개

a.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 1966년 작

b. Jumpers : 1972년 작, 냉소적이고 반인간적인 논리 실증주의에 반대하여 George라는 철학자 주인공을 통해 세상에는 해결될 수 없는 신비가 존재하며, 설령 우리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신의 존재에 기초한 절대적 도덕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작가가 주장하는 이야기.

c. Travesties : 1974년 작, 다다이스트였던 Tzara와 마르크스주의자였던 Lenin이 대표하는 극단적, 혁명적, 집단주의적 예술을 거부하고, Joyce가 대표하는 진지함과 훈련에 기초한 예술, 기교를 바탕으로 하면서 점진주의를 지향하는 몰 정치적 예술을 지지하는 이야기.

d. Night and Day : 1978년 작 언론사의 클로즈 샵에 반대하여 신문사를 나와 아프리카로 취재를 떠나는 젊은 이상주의 기자를 등장시켜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를 다룬 극.

e. Every Good Boy Deserves Favour : 1977년 작 과거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공산주의를 비판

f. The Real Thing : 1982년 작 Henry라는 극작가가 Annie 라는 여배우를 만나 재혼하면서 진정한 사랑에 대해 깨닫는 과정을 그린 희극. 극중극이며 다른 드라마로부터의 차용, 진정한 예술에 대한 토론과 같은 수법을 사용.

g. Arcadia : 1993년 작, 무질서와 혼돈이 이 세계의 핵심적인 일부분이며 표면적인 모든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더 깊고 복잡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는 극.

b. The Coast of Utopia : 2002년 작으로 Arthur Miller Death of a Salesman 6개 부문 수상 기록을 깨고 토니상 7개 부문 석권하였으며, 3부작으로 총 8시간 30분에 44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

 

4. 대사를 통한 작품 분석

 1) Rose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 “죽음을 전하는 메시지가 died 가 아니라 are dead 라는 표현되는 것에는 분명히 현재 시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죽은 상태를 의미하는 시간적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20] (김나영 34)”

 2) 연극 시작 부분에 부조리 극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별 특성이 없는 2명의 엘리자베스 인이 한 장소에 있다.

Two Elizabethans passing the time in a place without any visible character. (9)

별특징 없는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2)이 한 장소에있다.

             이들은 항상 어디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처해있는지 모르는 상황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 극 중간 중간에 보면 이들이 마치 인과관계가 없는 시간관 속에 놓여있다(wg). 그들이 왜 엘시노어에 가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고 왜 왕궁에 있으며 갑자기 세계가 바뀌질 않나, 그것도 모자라 왜 배를 탔는지도 모른다.

Opens in pitch darkness. Soft sea sounds. After several seconds of nothing, a voice from the dark. . . .

Ros : We’re not finished, then?

Guil: Well, we’re here, aren’t we?

Ros : Are we? I can’t see a thing. . . . Ros : We’re on a boat. (Pause.) Dark, isn’t it (71-2)?.

(암전. 잔잔한 파도소리---- 정적. 암전소리가 들린다)

로스] 우린 아직 할일이 남았는데

[길덴] 우리가 여기 있는게 맞나?

[로스] 우리가? 난 아무것도 알수가 없네

[로스] 우리가 배를 타고 있었군. 어둡지?

             그들 스스로 역할극을 할 때도 그들의 정체가 특별하지 않은 인물로 드러난다 (윤미덕 275, 79참조)

또한 이 연극에서는 시간의 의미가 없다. (wg)

Guil : How long is that?

Ros : I forget. Mind you – eighty-five times!

Guil : Yes? (12)

길덴] 얼마나오래 됐지?

[로스] 잊어버렸어 옳치 여든 다섯번

[길덴] 그런가?

 

3) 부조리 극에서 나타나는 전형화된 유형의 인물 특징이다. 대본에서 작가가 배우들에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동과는 다른 어색한 모습을 요구하고 있다.

The run of “head” is impossible, yet Ros betrays no surprise at all-he feels none. . . . He is not worried about the money, but he is worried by the implications; but not going to panic about it. (9)

 

             분명 앞뒤의 확률은 5할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행운의 징조, 혹은 불길한 징조로 생각할 것이다. 부조리 쪽으로 생각하자면 이성과 질서의 법칙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불길한 징조라고 할 수 있다 (김우택 53). 결말부터 말하자면 이 둘은 Hamlet 극에 따라 죽게 된다. 이 불길한 것이 죽음을 말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뒷면은 삶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계속되는 1/2죽음과 원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wg).

Guil : It must be indicative of something, besides the redistribution of wealth. . . . One: I’m willing it. Inside where nothing shows, I am the essence of a man spinning double-headed coins, and betting against himself in private atonement for an unremembered past. (He spins a coin at Ros.) . . . Guil : And a syllogism: One . . . (12).

[길덴] . . . 첫째 양쪽모두 앞면으로된 텅빈 동전을 퉁겨울리면서 알수없는 과거를 속죄하거 나 스스로 불리한 게임을 하는 인간의 표본이 바로 나일세 (길이 로스에게 동전을 퉁겨 올린다) . . . 세째 성령이 조종한다. 그에겐 이스라엘 민족처럼 행운을 내려주고 나에겐 롯의 아내처럼 천벌을 내렸 다. 넷째 던져올린 개개의동전(동전을 퉁겨 올린다) 이 앞이나 뒤로떨어지는 것은

똑같은 확율에 의한 것이다. 고로 당연지사이다

(로스에게 동전을 던져준다)

4) 2)의 상황처럼 두 주인공들이 뭔가 앞뒤가 안 맞고 말이 안 되는 상황에 직면을 해도 의심에 대한 확신이 일절 없다. 또한 Rosencrantz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 연극 할 때 사용하는 조명장치인데 피사체 발 아래에다가 빛을 비추면 그림자는 위쪽으로 생겨서 굉장히 자연스러운 상태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진다.

Ros : (forward to footlights). Ah. . . . We entitled to some direction. . . . I would have thought (16).

[로스] (푸트라이트 앞으로 가며) (머뭇거린다) 어느길로 우리가 (한바퀴 돌아보고) 우리가 어느길에서

             두 주인공의 행동은 자기가 자기 스스로 연기를 하고 무대 위에 있다고 인식하고 연기를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Ros : (at footlights). How very intriguing! (Turns) I feel like a spectator. . . . Guil : No. (at footlights.) What a fine persecution – to be kept intrigued without ever quite being enlightened. . . . (pause) We’ve had no practice (31-2).

[로스] (푸트라이트에게) 어휴 복잡해 (돌아서며) 마치 탁정이 된 기분이군. 오싹소름끼 치는 걸 참는건 곧 흥미있는 누군가가 나

타나길 바라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지 [길덴] 누굴 봤나?

[로스] 아니 자넨? [길덴] 나도 (푸트라이트에서) 얼마나 훌륭한 고문인가- 깜깜한 미로속에 둔다 는게 --- (사이)

             연극에서 대본은 질서다. 질서는 곧 운명이다. 하지만 숙명은 아닌 것이 연극 밖을 벗어나 일탈을 하기도 한다. 에드립이 바로 그것이다. 극 중에서 이 두 주인공들은 관객들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세계와 무대 사이의 커튼은 허물어지고 삶 속의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다.

Guil : Well . . . aren’t you going to change into your costume?

Player : I never change out of it, sir.

Guil : Always in character.

Player : That’s it. (pause)

Guil : Aren’t you going to – come on?

Player : I am on (26).

(A good pause. Ros leaps up and bellows at the audience.) Ros : Fire! (Gil jumps up.)

Guil : Where?

Ros : It’s all right – I’m demonstrating the misuse of free speech. To prove that it exists. ( He regards the audience, that is the direction, with contempt – and other directions, then front again.) Not move. They should burn to death in their shoes. (He takes out one of his coins., Spins it. Looks at it. Replaces it.) (44)

[길덴] 자넨 의상을 갈아입지 않나?

[배우] 전 갈아입지 않습니다.

[길덴] 늘 격에 맞는가 보군.

[배우] 그렇읍니다

(사이) [길덴] 자넨 무대에 등장하지 않나?

[배우] 이미 무대위에 있읍니다.

[길덴] 하지만 미리 무대에 있으면 등장할 수가 없지 않나?

[배우] 이미 시작됐읍니다.

(상당한 사이 로스.벌떡 일어나서 객석에 소리친다) [로스] 불이야

[길덴] (벌떡 일어나며) 어디야? [로스] 아냐- 방종한 언어가 잘못 난무할때를 설명 중이네 그존재를 증명하려고 (객석에 조소를 보낸다) 꼼짝마시요 이들이 모두 타 죽어야 할텐데 (동전을 꺼내 퉁겨 올렸다 잡아서 살펴본후 집어 넣는다)

             여기에 호접지몽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43-4). 정확한 호접지몽에 대한 의미는 아니겠지만, 극과 극중극 사이 그리고 무대 커튼 밖의 경계가 정확한 인식과 판단이 모호해지면 그만큼 그 세계를 분별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Player는 연극을 하는데 실제 사형을 당해야 할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실제연극과 현실을 혼합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다음 부분에서 정말 이 두 주인공은 Hamlet 그 자체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 버린다.

Player : . . . Audiences know what to expect, and that is all that they are prepared to believe in. (To the Spies) Show!

(The spies die at some length, rather well. The light has begun to go, and it fades as they die, and as Guil speaks.)

. . . (The two Spies lie still, barely visible. The Player comes forward and throws the Spies;s cloaks over their bodies. Ros starts to clap, slowly.) (Black out) (A second of silence, then much noise. Shouts . . . “The King rises!” “Give o’er the play!” “and cries for “Lights, lights, lights!” . . . (62)

[배우] (배우는 기분좋게 극중극에 몰입한다. 두배우는 자신의 혁대에서 단검을 뽑은 배우에게 사형을 기다린다) 관객이 예상하는 것을 보여줘라! (쇼우) (배우들이 어느 정도 있다가 죽는 연기를 한다. 조명이 어두워진다) [길덴] 안돼 아니야--- 너희들은 완전히 틀렸어. 죽음을 연기 할수 는 없어 상 황 묘사는 아무 것도 아냐-- 신음과 피, 쓰러지는 것만이 능사가 아냐 [길덴] 그건 죽음이 될수 없어 단지 퇴장에 불과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진실 이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눈에 거슬리지도 않고 공식도 없는 퇴장, 점점 무겁 게 사라지다. 결국 죽음으로 가득차야해 (두 배우 누워있다. 배우가 외투로 그들을 덮어준다. 로스 천천히 박수를 친다 암전 잠시의 침묵후 수많은 소음. 외침들--- "왕께서 일어나신다--" 099 "연극을 집어치워라" "" "불을 켜라" 잠시후 불이 켜지면 한낮이 된다 외투 차림으로 쓰러진 두명의 인물 외엔 무대위에 아무도 없다. 조명이 밝아진다. 그들은 로스와 길덴이다. 로스가 일어난다.)

             만약 위의 가정하에 해당 극의 역할이 종료가 되면 연극은 끝난다. 연극과 진짜 삶이 구분이 되지 않는 세계라면, 곧 진짜 삶이 끝나는 것이다.

Guil : There may be something in the letter to keep us going a bit.

Ros : And if not?

Guil : Then that’s it – we’re finished.

Ros :  At a loose end?

Guil : Yes. (Pause) (77).

[길덴] 편지에 우릴 때려 주라는 내용이 적혀 있을지도 모르지

[로스] 그렇지 않다면?

[길덴] 우리 임무는 끝나는 걸세

[로스] 결말이 좀 싱겁군

[길덴] 허긴 그렇군(사이)

6) 믿는 자가 많아지면 믿을 수 없는 것들도 믿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부조리 혹은 실존에서의 기본적 배경이 아닌가 생각된다. 라고 필자는 생각했지만.. “신비로운 경험과 환상이 반복되고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공유되어가면서 그 충격은 약화되고 종국에는 현실처럼 받아들이게 되어, 결국 유니콘은 사슴을 본 것이라는 착각으로 전환되어 버린다. 허구적 연극 현실이 그 허구성을 은폐하고 있는 원리다. 또한 현실과 환상 사이의 상호 은폐적인 드라마의 논리에 대한 지적이다. 무대 위에서 유니콘은 이마에 뿔 같은 화살을 달고 있는 말의 형상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에 관한 이야기다” (김나영 24).[21]유니콘은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만나고 싶은 보다 높은 차원의 현실에 대한 상징이다. 유니콘이라는 환상의 동물과 냉혹한 현실을 반영하는 머리에 화살이 꽂힌 말 사이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것이고, 유니콘과 현실의 말 사이의 유사성, 다시 말해 환상과 실재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김태우 컨텍스트 70).

Guil : A man breaking his journey between one place and another at a third place of no name, character, population or significance sees a unicorn cross his path and disappear. . . . A third witness, you understand, adds no further dimension but only spreads it thinner, and a fourth thinner still, and the more witnesses there are the thinner it gets and the more reasonable it becomes until it is as thin as reality, the name we give to the common experience. . .(17)

[길덴] 긴 여정속에 낯선곳에서 머물게된 한 사나이가 길 건너로 사라진 외뿔 마를 보았다네 그 사실 자체는 놀랍지만 그런 신비스런 조우전에 이미--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세. 어떤 사람이 "주여 제가꿈을 꾸었나봅니다. 외뿔 마를 본것 같아요"라고 말하기 전에 그 사건에 살을 붙여서(뻥기) 여기저기 소문을 퍼트리고 소문은 꼬리에 꼬 리를 물고-- 그 소문이 완전히

015 퍼지면 자연스럽게 봐요 봐 하고 소리치면 군중들도 덩달아서 이마에 뿔이 달린 말이군 돌연변이 사슴인가?

7) 두 주인공이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대해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자신이 누군지 햇깔려 한다. 또한 둘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참고로 Hamlet에서 이 둘은 딱히 구분할 필요가 없는 인물이다. 일종의 패러디다. 이름이 중요하지 않고 유형화된 인물로 덧붙여서 다음 대사에 나온다. 스테레오 타입인데, 기원자체가 사회 비판 용어로 나온 만큼[22] 대게 스테레오 타입이 나오는 연극을 보면 사회 부조리에 대해 비판하려는 목적성이 강하다. 소외, 노동 이런 쪽의 연극들을 참고해라. 영미연극에서는 Elmer Rice The Adding Machine 참조

Ros : My name is Guildenstern, and this is Rosencrantz. (Without embarrassment.) I’m sorry. . . . Player : . . . (512).

Guil : What’s your name when you’re at home? . . .

Guil : (snaps) Guildenstern! (34)

[로스] 내 이름은 길든스턴이고 이분은 로젠 크렌츠라네 (길덴 동의한다) (당황하지않고) 아 미안하오 이분이 길든스턴이고 내가 로젠그렌츠라네.

            또한 두 인물이라는 의미가 부조리 연극에서의 평범한 인물의 특성을 그대로 따온다면, 삶의 부조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인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 없이 확인 할 수 있는 장치아닐까(김우탁 53)(wg)? 이런 논문의 글도 있다. “Ros Guil 의 세계는 정상적인 세계이며, 그들은 나름대로 독립된 개인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확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김태우 개인주의, 95). 정말 정상적 세계[23]일까?

 8) Hamlet에서 등장하는 두 주인공의 위치를 보면 주연은 아니다. 다른 조연들과 비교하면 역할이 너무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없다. 그렇지만 시녀, 시중들과는 다르게 친구이자 스파이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 주인공들이 왕궁에 들어가면서부터 Hamlet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원작 대로 진행하자니 딱히 할 것이 없으며, 따로 그들만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스핀오프로 흘러가자니 1막후반부터 스토리 상으로 Hamlet이 사건 발단의 중심이 되고 있다. 따라서 자신들이 주인공인 세계마저도 공허하고 지루하게 흘러 갈 수 밖에 없으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어떻게 대처하지도 못한 채 지적인 말장난만 늘어 놓고 있다. 할게 없으니 의문과 질문만 늘어 놓기도 한다. 또한 극 중간 중간에 생기는 pause는 잠시 멈춤으로써 관객들에게 순간적인 생각을 주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Ros : What are you playing at?

Guil : Words, words. They’re all we have to go on. (pause) . . . We could play at questions (31).

[로스] 지금 무슨 장난인가?

[길덴] , 말말야 그것만이 우리가 계속해야 할것이거든(사이)

9) 대본에 (aside) 가 들어가면 방백이다. 해당 배우가 말하는 것은 관객들만 듣는 것이고, 무대 안의 배우들은 설정상 듣지 못한다. 이를 암묵의 룰이라고 한다.

Polonius (aside) : . . . (39).

[Polonius] (방백) 돌긴 돌았는데 말에 조리가 있거든

10) 배우가 두 주인공에게 Hamlet Gertrude, Claudius 앞에서 공연할 Murder of Gonzo 스토리를 설명하다가, 점점 Hamlet 이야기 내용을 말한다. 이 두주인공의 결말을 이야기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극과 극중극의 구분이 애매모호 해진다.

Player: . . . The two Spies present their letter; the English King reads it and orders their deaths. They stand up as the Player whips off their cloaks preparatory to execution . . . Traitors hoist by their own petard? Or victims of the gods? . . . (What brings Ros forward is the fact that under their cloaks the two Spies are wearing coats identical to those worn by Ros and Guil, whose coats are now covered by their cloaks . . . He does not quite understand why the coats are familiar) (60).

그들이 영국 왕에게 전하기 전에(둘러보며) 영국왕입니다

(배우가 배우의 왕관을 바꾼다) 왕자가 어디있지? 줄거리는 복잡해 집니다. 그들이 전한 편지에 그들을 죽이란 말이 써 있읍니다.

(그들은 망토를 벗고 사형 집행을 준비한다) 배반자는 자승자박의 꼴이 됐죠 신의 제물일까요? -- 우린 알수 없죠 (극중극 도중 로스가 배우의 망토를 갖고 온다.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로스] (의심을 품고) 그의 것인가? (배우는 어리둥절해한다. 로스 다가가서 코트를 치고 심각해 한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내가 잠시 실수했네--- 이것은 내가 전에 입었던 것 같은데 안그런가? 난 자네를 알고 있지 날 모르곗 나 난 얼굴을 잊지 않고 있지(그의 얼굴을 쳐다 보며) -- 내가 알기론 당신것이 아닌데-- 방금 생각났네 자넨 날 몰라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나

11) 지금까지 것들을 정리해 보자면, 이들은 분명 자신들이 죽을 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모른다. 뭔가 말이 안되고 이상하게 돌아가면서도, 자신들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할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의문은 공허하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진행이 자꾸만 이뤄질수록 말장난은 함께한다. 그들이 연기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의 이야기들은 전혀 모른다.[24] 극 안에 극이 있고 그 극이 그들의 운명이다. 그런데 Act 3 는 의문을 가지면서 거대하고 말도 안 되는 이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는 생각을 가진다. 물론, 결국에는 질서대로 가지만 말이다.

Ros : I wish I was dead. (Considers the drop). I could jump over the side. That would put a spoke in their wheel.

Guil : Unless they’re counting on it (79).

[로스] ! 차라리 죽을걸 (익사를 생각한듯)

배다속으로 뛰어들걸 그러면 아마 그들의 계획에 차질이 오겠지

[길덴] 그것이 그들의 의도라면

 

5. 네박사와 함께 하는 Hamlet +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줄거리

             성을 지키는 Barnardo, MarcellusHoration는 선왕의 모습을 한 망령을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보게 된다. 그들은 Hamlet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덴마크 왕 Claudius는 선왕의 아내인 Gertrude를 아내로 맞이했다. Hamlet은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해 마음이 슬픈 상태였다. 아버지 선왕이 돌아가신 지 2달만에 Gertrude가 삼촌과 결혼한 것에 대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Horation, Marcellus 그리고 BarnardoHamlet을 만나 선왕의 유령에 대해 말한다. Ophelia의 오빠 LaertesHamlet 왕자를 사랑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신분의 문제였다. 아버지 Polonius는 유학을 가는 Laertes에게 당부의 말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Ophelia에게 Hamlet의 맹세를 믿지 말고 만나지도 말라고 조심시킨다. 한편 망령을 보기 위해 Horation가 말한 곳에 기다린 Hamlet은 망령이 손짓하는 대로 따라간다. 선왕이 그에게 명령을 하는데 숙부에게 살해되었음을 알려주면서 복수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문제는 하늘의 심판에 맡기라고 당부한다.

             PoloniusOphelia에게 Hamlet의 비통해하고 침울해 하는 행동에 대해 보고를 한다. ClaudiusHamlet이 요즘 이상하다면 Hamlet 친구들에게 그의 동향을 파악하라고 명령한다. Hamlet의 친구 Rosencrantz Guildenstern은 명령을 받고 엘시노어로 가는 길에 동전이 계속 앞만 나오는 요상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배우들과 만나서 마지막에 뒷면이 되니까  어떤 이유인지 순식간에 궁전에 도달했다.  Hamlet은 궁신들을 만나고 배우들을 소개 받는다. Hamlet은 그들의 연극을 보고 나서 그들에게 몰래 Murder of Gonzo』 연극을 부탁한다. 그런데 Rosencrantz Guildenstern 이 구경하고 있는 와중에 그 연극과는 무관한 먼 나라 영국의 유명한 작가의 작품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두 스파이 이야기를 보게 된다. 그들에겐 너무 익숙한 이야기 였다. 마치 자신들의 몸에 배길 정도로 익숙한 일상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사형당한 두 스파이 시체처럼 덮였는데, 일어나니 실재 연극 직전 상황으로 가게 되었다.

             Claudius 왕에게 PoloniusHamletOphelia에게 실연당하여 우울한 상태를 겪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OpheliaHamlet이 우연히 만난 것처럼 꾸며 그들의 얘기를 엳듣게 된다. 그러나 HamletOphelia에게 수녀원에 들어가라면서 비관적인 말을 하고 사라지자, 왕은 Hamlet에게 다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영국 사절로 보내겠다고 한다. Hamlet은 유령이 했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친구 Horation에게 연극 관람도중 왕의 표정을 살피라고 한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연극배우들은 왕 앞에서 왕비가 맹세하는 연극을 시작했다. 그리고 왕의 동생이 왕의 귀에 독약을 부어 넣는 장면에서, 갑자기 Claudius가 연극 관람 도중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 소동이 발생했다. 왕은 신하에게 Hamlet을 영국으로 보내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Polonius에게 왕비와 Hamlet의 대화를 엿듣게 한다. 모두가 나가고 왕은 혼자 자신의 죄로 괴로워하며 기도한다. 이때, Hamlet이 들어와 왕을 죽이려다, 잠시 참고 어머니에게 가게 된다.

             어머니를 찾아간 Hamlet은 엿듣고 있는 Polonius를 찌른다. Hamlet은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과 어머니의 어리석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Claudius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시체를 예배당으로 인도하는 것과 함께 급하게 Hamlet에게 영국으로 가라고 명령한다. 왕은 Hamlet을 사형시킬 계획을 준비한 것이다. Rosencrantz Guildenstern은 햄릿에게 함정을  빠뜨리려고 계획하지만 바지만 흘러내리려고 한 채 실패하게 되고, 떠나기 위해 왕궁의 문에 빠져 나갔더니, 갑자기 컴컴한 보트 갑판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Hamlet은 가는 도중 싸움에 나서는 노르웨이 군대를 보게 되고 복수의 결심을 하게 된다. 잠시 뒤에 Rosencrantz Guildenstern은 보트 갑판 아래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러다가 왕의 편지가 얼마나 궁금하던지 편지를 뜯어 읽어보게 되고 Hamlet은 편지의 내용을 알고 바꿔 치기하고 해적을 만났을 때 도망가 버린다. Rosencrantz Guildenstern는 마침 배에 타고 있던, Player에 의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상황을 타개해보려고 하지만 긴장감 속에 Player를 제대로 죽이지도 못한 채 운명에 순응한다. Polonius의 아들 Laertes가 폭도들과 함께 궁으로 쳐들어 온다. Polonius의 죽음을 알고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것이다. 왕은 진정시키고 진실을 말해준다. HorationHamlet의 편지를 받는다. Claudius 왕은 Laertes와 서로 같은 편임을 확인한다. 이 때, 사신이 Hamlet의 편지를 들고 온다. Hamlet이 긴급한 일이 생겨 귀국한다고 한 것이다. 왕은 Laertes의 복수심을 이용하여 부추겨 Hamlet과 싸우라고 한다. 그리고 칼 끝이 날카로운 것을 선택하라고 하는데, Laertes가 그 칼 끝에 독약을 묻혀 놓겠다고 서로 밀약을 한다. 이 시점에 Ophelia는 자살을 한다.

             광대들이 Ophelia의 무덤을 파는데 Hamlet이 그것을 보게 된다. 이 때 Ophelia의 관이 운구되어 무덤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슬퍼하는 LaertesHamlet은 만나게 되고, Laertes는 그를 저주한다. Hamlet이 놀라 무덤 속에 뛰어들자, LaertesHamlet에게 다가가 싸움을 하려고 한다. 주변에 왕과 왕비는 이들을 말리고 왕은 다음 기회를 엿보라고 Laertes에게 말한다. 왕의 음모가 담긴 편지를 찾은 Hamlet은 그 내용을 Horation에게 말한다. 편지의 내용을 반대로 바꿔 써 넣어, 자신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이야기 해준다. 다음 날, HamletLaertes는 결투를 벌인다. Laertes는 독약이 묻은 검을 선택한다. Gertrude 왕비는 Hamlet에게 손수건을 주면서 Hamlet의 술잔을 든다. Claudius 왕이 이미 준비해둔 독약이 든 술잔이었다. Claudius 왕이 이미 준비해둔 독약이 든 술잔을 마신 것이다. 격투하는 동안 우연히 서로 검을 바꿔 쥐게 되고,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입는다. 왕비 Gertrude는 독약을 마신 탓에 쓰러지게 되고 곧이어 LaertesHamlet과의 격투도중 우연히 서로 검이 바뀌는 바람에 두 사람 모두 독에 중독 되게 된다. 그리고 Laertes가 죽을 때 독이 묻은 검 때문이라고 말하고 왕이 범이라고 한다. Hamlet은 그 칼로 왕 Claudius를 찌른 후, 독배를 강제로 왕에게 먹인다. 그리고 모든 사건 속의 인물들은 다 죽게 된다. 그리고 Hamlet에게 영감을 주었고 폴란드의 복수를 위해 출정했던 노르웨이 왕자 포틴브라스가 덴마크 엘시노어에 입성하면서 죽은 Hamlet의 유지에 따라 왕으로 추대 되었고 Horation에게 모든 사건의 진실을 듣게 되고 Hamlet의 장례식을 치러 주라고 명령한다. 이 상황에서 영국의 사신이 나오게 되는데, “That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라고 보고한다(Cambridge 237). 그리고 곳곳에 시공간을 초월하면서 등장했던 Player는 다시 Rosencrantz Guildentsern과 처음 만났던 곳에서 다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한 채 유랑하게 된다.

5. 끊없는 의문들?

             인생을 점치는 데 있어서 두 가지 개념으로 미래를 바라본다. 운명과 숙명이다. 운명이라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대로 명을 하는 것이겠지만, 자신의 노력에 의하면 운명의 시련을 피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숙명은 그렇지 않다. 절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숙명이다. 하지만 이를 통틀어 쉽게 운명을 피할 수 있는 운명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나뉜다. 우리는 언제가 죽는다. 그래서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 죽음에 다가서려고 할 때, 혹은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볼 때는 마치 고향처럼 맑은 하늘 언덕 위 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떠올릴 것이다. 영화 UP』에서는 이러한 모습들을 단 15분 만에 인간이 사랑하고 시련을 겪게 되고 결국 사별하는 모습을 가장 짧게 보여주기도 한다. 15분 때문에 픽사는 또다시 영화계에서는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 단지 아주 평범하게 15분을 인간의 인생에 대해서 간추린 거다.

15분에서 5분은 그냥 반복만 계속 되는 거 뿐이다. 넥타이를 메고, 일이 생기면 적금을 깨버린다. 반복되는 일상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 날까 말까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세월의 덧없음을 말하기도 한다. 가끔씩 의견 충돌이 일어날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중요하다. 쓸데 없는 말을 하더라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인간은 노력한다. 그런데 그게 어색한 것인가?

             신화에서 나오는 신들은 인간의 삶과 유사하다. 북유럽의 신화는 상당히 많은 대중문화에서 모티브를 따내는 소스다. 굉장히 인간적이고 인간을 위해서 노력하며 신과 거인과의 갈등과 배신 그리고 연합은 마치 인간의 정치행위와 실로 유사하다. 북유럽 신화의 영향은 대중문화 사이에서 굉장히 큰 영향을 준다고 앞서 언급했다. 게임 God of War』 에서는 신들이 왜 지금은 없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시작으로 인간이 어떻게 그리스 신들의 신탁에서 벗어 나기 위한 일환으로 신들을 몰살 시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인간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신과의 처절한 대립 속에는, 그들만의 이념에 대한 충돌이고 배경적으로 신들은 인간 보다 부유하고 고상한 존재로서 생기는 인간의 전복적 행위다. 좋은 환경과 여유 속에서 찬란한 문화에서 태어난 그리스 신과는 다르게 북유럽의 신들은 굉장히 척박한 곳에서 태어났다. 라그나로크 시절 굉장히 많은 개성적인 신들이 차례차례로 죽어 나가면서 인간을 제외한 모든 신들이 죽거나 봉인된다. 위대한 전쟁의 신 Heimdal과 사건의 원흉인 Loki가 죽을 때는 마치 햄릿처럼 동시에 맞찔러 죽는다. 이들의 신화에 대한 구체성은 그리스 신화보다 빈약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개성이 뚜렷해서 좌충우돌 해도 그거 자체가 개성이다. 이야기는 한정적이고 역사는 설정상 길지만, 막상 그들의 이야기는 중요치 않은 것이다. 이야기 내용이 비슷 비슷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 저작권 없는 신화는 판타지 쪽에서는 안 들어 갈래야 안 들어 갈 수 없는 필수요소이고 이들의 개성이 너무 강해 설정에서는 평범한 이들에게서 창작자들은 개성적인 이야기를 무수히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Rosencrantz Guildentsern은 정말 특별한 인물일까? 그들이 좌충우돌 겪는 코미디 같은 모든 행동들이 인간으로서 거기에 처해진 상황이라면 이럴 수 밖에 없는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작품의 배경도 정말 수많은 논문에 나오는 카오스이론, 엔트로피 법칙, 불확정성 이론 같은 것들에 적용 된다면 오히려 있을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것은 철학하고는 다르게 증명이 되고 검증이 되면서 일단 눈앞에서 현실화 시키고 인간을 신으로 만들며 법칙을 찾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불확정성 원리도 일단은 수학이라는 법칙에서 증명이 되지 않는가? 따라서 어느 차원에서 생길 법한 일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모든 상황의 연극들을 어색해 할 까? 신의 주사위에 굴러가는 운명일 지라도 그것이 하나의 평범한 일상이고 신들마저도 운명에서는 피할 수 없듯, 바로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다. 그토록 신기해 하고 열광하고 극과 세계가, 인생과 운명에 대한 이 작품은 상당히 정치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아무것도 안하고 이야기 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과연 어색한 일인가? (wg)

            

6. 하지만 더 나아가기

 1) 상호텍스트와 함께 연상되는 개념 중에 하나가 하이퍼텍스트다. 하이퍼텍스트는 사고의 흐름과 정말 무관하게 흘러가서 정보를 얻기도 하는데, 이러한 선택들이 사용자가 원해서 선택하고 얻어지는 정보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컴퓨터 용어인데,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인터넷을 사용할 때 사이트와 사이트를 넘어가기 위한 장치인 링크들이 무수한 네트워크를 이루어져 있음을 착안하면 쉽게 생각이 들것이다. 텍스트 안에서 갑자기 링크를 타, 다른 텍스트를 읽기도하고 완전 다른 분야로 빠져 들어가기도 한다. 문학, 비문학, 논문, 백과사전, 어학사전 등등 모든 분야에 전자화가 이뤄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두되고 있지만 비주얼 노벨을 제외하고는 문학 분야에서는 크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 예로 Rosencrantz 관련 전자 문서를 읽다가 Hamlet 으로 가게 되고 Hamlethause -> Wittenberg -> Luther -> Eisenach 로 가버렸다. 최근 수많은 위키니트를 양산하고 있는 것은 하이퍼텍스트에 따른 중독 때문이다.

 2) offshoot 의 정확한 개념이 무엇인가? Offshoot 라고 하면 어떤 파생되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대개 offshoot 를 특정 용어로서 사용할 때는 우리가 잘아는 특전 영상, DVD에 나오는 일종의 서비스 컷을 말한다.

 3) Ros Guil 의 운명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30)

 4) 연극과 영화 비교

a. 동전던지기 게임 :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정한 장소 / 말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 우연히 동전을 발견하게 되며 이동하면서 게임을 반복

b. 유랑극단의 마차 : 단순히 무대 소품을 운반 / 관객이 있는 곳을 찾아가서 마차 자체가 무대로 변환 됨

c. 숲 속에서 엘시노어 성으로 이동할 때 : 조명만 바뀌면서 Hamlet Ophelia 등장 / 휘날리는 대본들, 도망가는 Ophelia의 비명소리, 휘감은 무대의 커튼을 헤치고 나옴

d. 죽음 같은 철학적 제주에 관한 토론 / 고전 물리학의 개념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장면들 첨가 (부력의 원리, 베르누이의 원리)

e. 영국 대사가 Ros Guil의 죽음을 알린 후 : Hamlet의 대본 그대로 진행하면서 막을 내린다. / 유랑극단이 배를 만들었던 장치들을 꾸리는 장면으로 바뀌고 무대가 다시 마차가 되어 영화 시작 장면의 숲 속으로 옮겨짐. 시작과 결말의 배경을 연결시킴으로써 다시 대본의 처음으로 돌아감을 암시.[25]

7. 참고문헌

Michael Greenwald, Dario Pomo Roberto, Marie Welsh Anne and Schultz Roger. Longman Anthology of Modern and Contemporary Drama, The: A Global Perspective. N.p.: Longman, 2004. 508-52. Print.

Richard, Andrews, and Gibson Rex, eds. Hamlet. 2nd ed. N.p.: Cambridge, 2006. N. pag. Print.

김광요, 박진권, 황성근, 류용상, and 김종대. 드라마 사전. N.p.: 문예림, 2010. N. pag. Print.

김나영. 스토파드의 '사이' 공간의 무대 미학. 영어영문학 연구 49.2 (2007): 21-39. Print.

김우탁. Shakespeare Post-modernism - Hamlet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의 비교연구. 인문과학 15: 41-58. Print.

김태우. 상호텍스트성과 스토파드의 연극세계. : 115-59. Print.

------- 톰 스토파드(Tom Stoppard)의 연극 세계 : 개인주의와 혼돈과 질서로서의 세계 어문학논총 2021 Feb. (2011): 87-99.

Print.

---------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컨텍스트. 현대영미드라마 14.1 (2001): 57-86. Print.

김형배.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연구. 영미어문학연구 15.2 (1999): 143-65. Print.

마틴 에슬린. 『부조리극』. 한길사

송순섭. 부조리극과 하벨작품의 주제. 동유럽연구 2 (1993): 35-65. Print.

윤미덕. Stoppard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에서 Playworld의 의미와 The Player의 역할. 영어영문학 110 (1989): 259-85. Print.

한상철. 현대극의 상황과 한국연극. 현대미학사 p. 34~36

 

l  이 발제지는 www.gedanke.wo.tc 에서 다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1]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패러디 가수 이재수는 음악저작권협의회에 패러디를 승인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원작곡자 서태지의 의지와는 달랐다. 지금은 방송인이지만 당시 대중음악평론가였던 김구라가 원곡과 비교하여 혹평을 가하는 등 해당 패러디 곡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했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음악의 경우, 음악 저작권 협의회에 리메이크 신청하고 저작권료만 내면 원작자 동의 없이 곡의 사용이 가능하다.

[2] 김광요, 박진권, 황성근, 류용상, and 김종대. 『드라마 사전』. N.p.: 문예림, 2010. N. pag. Print.

[3] 김태우. "상호텍스트성과 스토파드의 연극세계." : 115-59. Print.

[4]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로써 의미를 전달하는 외적 형식을 이르는 말. 말이 소리와 그 소리로 표시되는 의미로 성립된다고 할 때, 소리를 이른다. (이하 국립국어원 참조)

[5] 말에 있어서 소리로 표시되는 의미

[6] 각 개인의 머릿속에 저장된 사회 관습적인 언어의 체계. 개인의 언어 사용에 상대하여 사회가 채용한 제약을 통틀어 이른다.

[7] 특정한 개인에 의하여 특정한 장소에서 실제로 발음되는 언어의 측면.

[8] 변화가 정지 상태에 있는 어떤 한 시기의 언어 상태.

[9]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언어의 모습.

[10] Ex) 철수가 책을 읽었다. -> 철수가 와 책을 과 읽었다가 서로 연속적 연결관계

[11] Ex) 철수가 책을 읽었다. -> 철수가 신문을 읽었다. 또는 철수가 논문을 읽었다. , 논문, 신문은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고 현 문장에서 배재된 단어

[12] 구심적

[13] 원심적

[14] 필자는 원 텍스트로 해석했다.

[15] 직접 인용은 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부조리 극에 대한 관련 글들은 마틴 에슬린. 부조리극. 한길사에서 대부분 인용한 글들이다.

[16] Enzyklopaedie Philosophie und Wissenschaftstheorie. Ed. ByJ mittelstrass. Vol.1 .Manheim,Wien,Zuerich 1980 p.39 내용을 송순섭. 『부조리극과 하벨작품의 주제』. 동유럽연구 2 (1993): 35-65. Print.에서 재인용.

[17] 김우탁. "Shakespeare Post-modernism - Hamlet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의 비교연구." 인문과학 15: 42. Print.

[18] 한상철. 현대극의 상황과 한국연극. 현대미학사 p. 34~36

[19] 김태우. 『톰 스토파드(Tom Stoppard)의 연극 세계 : 개인주의와 혼돈과 질서로서의 세계』 어문학논총 2021 Feb. (2011): 87-99. Print.

[20] Hamlet의 세계에서 보자면 Ros Guil 이 죽었다는 소식은 전혀 비극적 고민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무대 밖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건으로 전달되고 있을 뿐이다.

[21] 수정된 사실주의는 현대 미술의 간결화, 암시, 왜곡 등의 기본적 수법 등을 도입하여 연극성을 강조하고 현실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일을 줄이며 예술과 현실의 차이를 시인한다. 예를 들어 무대장치에 있어서도 시대와 장소는 구체적인 표현 대신에 암시에 의존하고, 극의 구조도 좀 더 자유로워지며, 장면 수는 늘어나는 반면 막 수는 줄어드는 등의 갖가지 연극적 수법들이 실험되었다.

[22] 사전적 용어로 매우 단순하고 일반화된 기호로서 특정 사람이나 사물을 사회적으로 구분 짓는 것으로 일종의 부당한 동일시라고 한다.

[23]그들의 세계가 부조리한 세계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세계 안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강하게 동기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한 세계의 의사부조리성이 그들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보이는 짜임새 있는 형식적 장치들과 갈등을 보이기 때문이다” (김태우 개인주의, 96).

[24] Hamlet이 자신의 어린 친구였다는 그 자체도 정확히 이들은 잘 모른다 (80). “Hamlet』에서 Hamlet의 진정한 친구가 아니기에 죽어야 할 운명이 부여된 등장인물이라는 것이다. Hamlet』에서 Ros Guil 에게 거의 동정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형배 156).

[25] Guil이 죽기 전, 다음을 기약하는 대사를 한다. “처음 시작할 때 어느 정도 거절할 수도 있을 거야. 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다음엔 더 잘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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