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왔겠지만 나갈 땐 안 된단다. - Judith Butler 의 Gender Trouble 의 서문

2012. 1. 6. 11:26Literatur/English

반응형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왔겠지만 나갈 땐 안 된단다.

-     Judith Butler Gender Trouble 의 서문
 

포스트 모던 극과 공연

정병언 교수님

201180142

박형락

 

 

Your hip is so elastic! – undernation

1. 개념을 통한 Butler 다가가기[1]

 1) 사법적 모델 (judiciary model) : 인류학이나 정신분석에서 인간 문명의 기원 점으로 꼽는 금기가 금지는 사실 금지해야 할 어떤 욕망이 이미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욕망이 있다고 이미 전제하고 조작해둔 것이 법이나 권력이라는 설명 모델을 의미한다.

 2) 생산적 권력 (productive power) : 반복된 법에 대한 복종 행위를 통해 법은 스스로 자가 증식하면서 개인에게 내면화되기 때문에 법 자체가 생산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법은 그 반복 복종을 통해 언제나 조금씩 다른 의미로 재형성 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내적 전복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역 담론이 발생할 수도 있다.

3) 기술적 (descriptive) : 규범적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지배적 제도 규범의 권력효과가 행사되기 이전의 중립적 설명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말한다. 모든 전체성이 규범적이기 때문에 권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Butler는 입장을 취한다.

4) 남성적 의미화 경제 (masculine signifying economy) : 모든 의미화의 방식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남성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 남성적인 것을 양 일반화하면서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의미화 방식은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간의 수직적 경제구조처럼 남성/여성 간의 지배/피지배 양식을 유비적으로 보여준다.

5) 드래그 (drag) : 드래그는 자신의 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성의 옷을 입는 복장 전환자를 말한다.

6)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sex, gender, sexuality) : 원래 섹스는 생물학적 몸의 차이, 젠더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동일시 양식, 섹슈얼리티는 성적 실행이 발생되는 근원적 욕망으로 설명되었다. 이런 전통적인 구분법에 Butler는 저항하면서 몸의 인식성과 욕망의 근원성을 만드는 것도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양식이기 때문에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가 모두 젠더라고 주장한다. 셋 다 사회적 구성물이고 제도 담론의 결과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7) 운연적인 인식 가능성 / 우연성 (contingent intelligibility / contingency) : 버틀러는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결정되기 보다는 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입장을 취하는 구성주의자다. 섹스/젠더/섹슈얼리티의 구성뿐 아니라 몸의 구성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예컨대 몸이라는 물질에 대해서도 그 물질에 대한 인식 성이나 인식 가능성 자체가 몸을 인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때문에 몸과 몸에 대한 인식성은 선후관계라는 시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인식성은 역사적으로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지배담론과 제도규범에 따라 가변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필연적 본질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 토대 위에 있다고 본다.

8) 우울증 (melancholia) :  인간은 누구나 동성애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데, 그 마인드가 억압되자 이에 따른 우울증을 동반한 것.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하고 나면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을 거두어 이정 기간 애도의 시간을 갖다가 사랑의 대상을 옮겨야 한다. 그런데 우울증의 경우에는 다른 대상으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 상실한 대상이 무의식 적인 것이라서 무엇을 상실했는지 모르며, 따라서 극복도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9) 이성애적 모태 (heterosexual matrix) : 원래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필요로 하고 원하고 사랑한다고 이성애를 규범화하는 경향이, 마치 보편적인 토대처럼 사회 저변에 전제되어 있는 상태나 그렇다고 보는 가정적 기반을 의미한다.

10) 재현 (representation) : 사물의 관념이 구체적인 물질적 양식으로 드러나는 방식을 말한다. 예컨대 도토리나무라는 이데아 (관념)이 있으면 현실에서는 실제 도토리나무가 그 관념을 재현하고, 예술작품 속의 도토리나무는 현실의 나무를 예술가의 시선으로 재현한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톤은 예술이 이데아에서 두 번 떨어져 나온 재현 물이라고 평가한다. 여성의 재현과 정치성을 문제 삼는 1장에서의 Butler의 논점은 지금까지 페미니즘이 여성이라는 안정된 재현 대상을 페미니즘 정치성의 정치 주체로 삼아왔는데, 실은 그렇게 재현된 여성이 계급, 민족, 인종, 식민 경험, 성 경향이라는 다양한 내부의 차이를 억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쉽게 말해 페미니즘의 정치 주체는 단순희 희생자나 피 억압자로 재현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범주로 재현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내부적 차이들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젠더의 표현물이 곧 젠더이지, 젠더 표현물 뒤에 젠더 정체성이 없다는 말은 행위 뒤에 행위자가 없다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젠더 구현의 구체적 재현 양상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이 곧 젠더의 본질과 같다는 의미이다.

11) 체현 (embodiment) : 몸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난 재현 양상을 말한다. 젠더가 몸으로 재현되어 나타난 표현물이 젠더의 체현이며, 이런 젠더의 표현물이다 체현 양상이 Butler 에게는 곧 젠더 자체이다. 젠더 체현 물이다 젠더 표현물 뒤에 본질로서의 젠더는 없기 때문이다.

12) 패러디 (parody) : 어떤 것을 희화하려는 목적으로 원본을 모방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원본이라는 관념 자체가 원래 당연하게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제도와 규범이 만든 이차적 구성물로서의 이상성에 불과하다면 모방 본은 원본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원본으로 가정되는 이상적 관념을 모방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원본과 모방본의 구분은 불가능하다. Butler에게서 젠더는 원본을 가정하지 않는 모방본이라는 의미에서 패러디와 같다.

 

2. 최악의 저자 소개[2]

           윤리학, 정치철학, 퀴어이론, 페미니즘의 분야에 기여한 미국인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자인 Judith Butler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비교문학과 수사학 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헝가리인과 러시아인 부모로 부 터 클리브랜드 오하이오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유대교 신자이며 아버지는 그녀가 어릴 적 개종했다. 열두 살 때부터 철학을 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유대교적 딜레마에 고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그녀 가족을 포함한 유대인들은 강제수용소와 홀로코스트라는 참담한 역사적 기억을 가지고 있다. 홀로코스트 앞에서 신의 존재란 과연 무엇일까? 역사적 트라우마와 대면하면서 유대인들은 신에 대한 개인적 결단과 집단적 책임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녀는 수사학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개인적, 집단적 고통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독일에서 독일관념론을 공부하고 예일로 되돌아와서 대학원생이 되었다. 1970년대 학내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하다가 Althusser Foucault 를 만났다. 우리에게는 유대계 백인 레즈비언으로 Gender Trouble』 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그녀는 버클리 대학 정치학과 교수 웬디 브라운과 함께 살고 있다?!

 

3. 성경처럼 읽어보는 초판 서문

           트러블이라는 말 그 자체는 상당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전적으로 말썽, 충돌, 고장, 문제점, 불화를 일컫는다. 따라서 우리들은 트러블을 하려 하지도 않고 주변에서 트러블이 생기기를 워치않는다. 왜냐하면 트러블이라는 의미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데, 의미를 부합해서 트러블에 대한 정의를 내리게 되면 누군가가 곤경에 빠지는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트러블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직감적으로 반응 하게 끔 되어 있다. 그런데 기존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비판을 하거나 바라보는 자들에 대한 트러블이 필요했다. 결국 그에 반한 자들은 트러블을 당하거나 또 다른 트러블이 필요했던 것이다. Judith Butler 는 이러한 트러블에 대한 트러블이 계속 상호적으로 주고 받는다면, “모호성을드러낼 것이고, 이를 자신의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에 부합시켰다.

             페미니즘 하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가부장제다. 가부장제를 통한 어떤 남성과 여성간의 어떤 권력의 관계를 일반적으로 중요시 한다. 그러나 Butler권력형태가 주체와 타자를 구성하고 남성과 여성간의 이분법적 관계를 구성하는지, 관련 용어들의 내적 안정성을 구성하는 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영화로도 리메이크 되어 잘 알려져 있고, 뮤지컬을 통해 토니 상 8개 부문을 싹쓸이한 Hairspray』에 나오는 Divine은 배우가 남자이자 여자로 등장한다. “젠더란 실재를 통하면서 계속되는 분장 같은 것이라고 은연중에 주장한다. 그 또는 그녀의 연기는 자연스럽거나 인위적인 것, 심층과 표층,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간의 구분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구분을 통해서 젠더에 관한 담론이 거의 언제나 작동된다”. 여기에 우리의 시선은 쏠리게 되고 담론이 생성된다. 또한 여자 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실을 구성하는가, 문화적 퍼포먼스를 구성하는가, 아니면 성의 범주 안에서 또 그 범주를 통해서 몸을 생산하는 담론적으로 규제된 수행적 행위가 자연스러움을 구성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맥락 속에 정체성의 어떤 다른 근원적 범주인 섹스, 젠더 그리고 몸이 자연스러운 것, 원본적인 것, 필연적인 것이라는 효과을 남과 여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구성되고 담론화 된다고 그녀는 주장하고 있다.

             계보 학이란, “젠더의 근원, 또는 욕망의 근본이라는 내적 진리가 있다는 전제를 거부하면서, 그런 담론을 진리나 진실로 생산한 역사적 특정 제도 권력의 역학관계를 밝히려는 학문적 경향을 말한다. 이 계보학을 통하여 섹스, 젠더, 욕망의 근본적 범주를 드러내기 위한 탐구형식으로 사용하였다. 그녀는 정체성의 범주을 기원이나 원인에 규정되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걸려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남근로고스 중심주의[3]와 강제적 이성애[4]라는 규제적 제도에 집중하며 그것을 해체시키려 한다”. 결국 Butler의 사상은 상당히 정치적인 색채를 띈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고 급진적인 계급의 문제를 놓고 본다면, 여성과 남성과의 관계를 피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놓듯이 이분법 적이고 정치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계급이 모두 평등한 세상이 되면 부르주아, 쁘띠, 프롤레타리아 라는 단어들로 구분 할 수 없는 이상 세계에 도래하듯이, 그녀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여성인척하는 사람과 남성인척 하는 사람 모두를 구분 할 수 없게 끔 하도록 하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이상이며, 그녀가 주장하는 『Gender Trouble』 에서의 목표는 이러한 이상을 중심에 두고 이 모든 비평과 의문들에 대한 제도들을 해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4. 개정판 서문에 대하여

           Gender Trouble』을 출간하고 10년 뒤 다시 한번 Butler는 개정판 서문을 작성하였다. 10만부나 팔릴 정도로 그녀는 이 책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굉장히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하다. 사실 서문을 통해서 그녀의 주장과 의문을 알 수 있을 지 몰라도, 결국은 난해한 본문을 읽어봐야 한다. 개정판 서문에서는 지난 10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의문시하고 오해하거나 오독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썼음을 짐작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부분이 『Gender Trouble』 에 대하여 상당히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더러 존재한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 유행하던 시기에 이성애적 가정을 비판하기 위해서 시작 되었다. 젠더라는 의미를 단순히 남성성과 여성성이라고 한정짓는 것에 대한 비판을 위함 이었다. 페미니즘 안에서 한정짓는 이러한 규범들이 그녀는 동성애적 혐오감을 불러 일으킬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이 수정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수행성 이론이라고 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자신 스스로 개정판 서문에서 수행성에 대해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문에서 그녀는 실제와 발화 그리고 언급한 이 수행성이라는 용어에 주목해서, 그녀의 사유에 미약하게나마 무언가를 찾아볼 수 있다. 드래그, 즉 말 그대로 남장 혹은 여장을 하면서, 위에 언급한 영화 『Hairspray』의 Divine 처럼 수행을 하는 것은 배우가 남자이지만 여장을 함으로서 거기에 맞는 규율에 따르는 데, 이는 규율 자체에 남자가 해야할 것과 여자가 해야 할 것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징계에 갇혀있는 우리들이 실재와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또한 그녀는 발화를 중시 했는데, 이 발화를 통해서 인간의 행동들이 발화에 똑바로 수행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미 짜여져 있는 틀 속에서 설령 발화와 다르게 수행을 하더라도 그 규율 안에 목적성이 발화에 내포되어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다.

 

5. 차라리 Benjamin 이 나았다.

삼수를 하고 대학교를 들어 갔을 때다. 학교에서 일명 새터라고 불리는 새내기 새로 배움터를 2 3일 일정으로 선배들과 함께 가면서, 나는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문대학이 늘 그렇듯 여성이 남성 학우에 비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아직 수업도 들어가지 않은 첫날 OT 하고 놀러 가는 첫 만남에 여학우들이 편을 가르기 시작했다. 6명 밖에 되지 않은 남학우들끼리 모여 이거 시작부터 편가르기인가 싶었다. 조직의 미래가 암울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 조직은 남학우의 수에 비례하여 희비가 갈리는 곳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심한 편가르기로 조직이 와해된 상태였다. (내가 졸업하기 전까지도 편 갈렸다가 합류되고 다시 다른 멤버 쳐내고 하는 일이 심하더라.) 그때 나이 많은 내가 총대를 매고 1학기 정기 학과 총회 때, 이 사실을 고발했다. 왜냐하면, 편가르기가 심한 상태에서 (4~5 조직) 1조직의 리더 격인 인물이 선배들의 사랑을 받고 (엄청난 고학번과 훗날 사겼다.) 대표를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럼 나머지 조직은 뿔뿔이 흩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내가 여자 과대에게 발언권도 없으면서 대들었다는 이유로 고 학번한테 끌려가서 심하게 알루미늄배트로 구타를 당했다. 그리고는 약 발라준다고 말한 건 가관 중에 가관이었지만.. 조직은 상당히 와해 되었는데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1조직이 조직을 잡았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데, 그러지 않고 동아리 활동 혹은 귀찮다는 이유로 학과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3년뒤 남자 동기들에게 당시 이야기 꺼내면서 방관 한 것에 대한 사과를 받았지만, 이미 나는 좌파 지식인 고 학번들과 어울리면서 우파 입장에서 한량처럼 과방에서 비난하는 이야기만 설파하며 살았다. 그때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페미니즘 과목이 당시 그다지 인기 있는 과목은 아니었다. 학생들 대부분 남성들로 이뤄져 있으며, 나와 비슷하게 호기심 반 관심 반으로 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는 생물학적인 Sex 가 아닌 Gender라는 것과 우리의 삶과 제도 그 자체 모든 것들이 가부장제에 종속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그들이 투쟁을 하였는지에 대한 것과 문학, 영화 등을 통해서 그들이 탈주하는 몸부림을 알 수 있었다. 때론 강하게, 때론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던 페미니즘은 큰 센세이션을 지금도 가끔 식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최근 동향을 보면 그렇게 좋은 것 만은 아니다. 죠리퐁 사건, 문화 컨텐츠 소송, 전거성 신드롬 등등 엄청나게 센세이션을 일으킨 여성가족부를 보면 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가운데 점점 여성의 인권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두 성이 평등하게 지내지는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면서 홍석천, 하리수, 빌리 헤링턴 같은 유명인들이 여러 대중 매체에 알려지면서 소수자라고 불려지는 이들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한국의 경우 이슬람, 동남아시아에 비해서 남녀불평등이 심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 것 여성들의 잘못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인식이다. 대부분 TV 토론회에 나오는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의무보다는 권리를 강조하는 입장이고 그러다 보니 극단적인 거 같아 보여도 비논리적인, 소위 말하는 지식 팔아먹는 대표자들로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쉐미니즘[5]이라고 한다. 최근 페미니즘은 소수 자들과 함께 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슈화 되는 것은 대부분 소수자 문제나 슬릿워크[6] 운동 정도라고 하겠다. 이리저리 본질을 살리지 못하고 다른 부분에서 이해하고 비판 받고 있는 상황임은 틀림없다. 지금 이렇게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문을 제기하고 지식 없는 필자에게 Gender Trouble』 은 시련 그 자체다. 상당히 난해하고 인터넷에 Judith Butler 만 쳐도 방대한 자료들이 나오지만 대부분 2차 문헌을 통째로 사용한 글뿐이다. 누구나 페미니스트라면 이 사상가를 거칠 거 같았는데, 막상 이 사람에 대한 자료가 굉장히 빈약했다. 그렇게 도움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백과사전에라도 그녀가 한국어로 나오길 바랬는데, 수많은 언어로 소개되어 있는 그녀가 정작 한국어로는 등재되어 있지 않는 사실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Gender Trouble』 책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한 사람이 지나치게 독보적인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었다. 번역의 경우는 책이 3년이 지나고 나서야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등장할 정도다. 그것도 그 사람의 글에 의하면 초월번역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한국에는 그녀에 대한 프로필이 정확히 기재된 곳이 없을 정도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발표 준비를 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에 의존 할 수 밖에 없다. 2차 문헌 조차도 마치 Butler의 사상에 대해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붕 떠있다고 보면 된다. 그녀의 프로필 만 가지고 그녀의 사상을 읽기가 굉장히 쉽지 않다. 따라서 그녀도 의식을 했는지, 후속 책을 출간 한 것으로 알며, 우리나라에서는 그녀의 사유를 가장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는 『Gender Trouble』의 번역자도 이 책을 설명하기 위해 무려 500페이지 분량의 2차 문헌을 집필했다. 아쉽게도 우리 학교에는 관련 책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신청하게 되었고, 아직까지 도서관에 들어오지 않아 발표가 끝나는 대로 입고 될 거 같다. 따라서 시간이 부족해 이리저리 서문과 관련된 글들을 모아 한번만 읽어보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 발표 범위는 서문이었기 때문에 아주 깊이 있게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스스로 안위를 삼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 발표 내용의 질이 떨어지고 필자 스스로도 학문을 정진하는 것에 대해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점은 큰 후회가 아닐 수 없었다.

 

6. 더 생각해보기

 1) 영화 Hairspray 에서 나오는 소수자들과 백인 중심주의, 소비 사회의 모습 속에 나타난 해피엔딩을 생각해보자.

 2) Gender Trouble』 에 나타난 사유들을 연극에서 끄집어 내어보자. 특히 그녀의 이론 자체가 단순히 젠더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상당히 정치적이다. 정치성만 캐내어서 그 작동원리를 비교한다면 페미니즘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7. 참고문헌

임옥희. 젠더의 조롱과 우울의 철학 주디스 버틀러 읽기. N.p.: 여이연, 2006. Print.

조현준. 성 정체성 허문젠더 계보학소수자 철학으로 확장. 한겨례 4 Sept. 2009. Web. 7 Oct. 2011.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75000.html>.

--------. 젠더 트러블. N.p.: 문학동네, 2008. 13-81. Print.



[1] 조현준 역 『젠더 트러블』 서문 앞에 있는 개념 설명 글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2] , 옥희. 젠더의 조롱과 우울의 철학 주디스 버틀러 읽기. 7-29.: 여이연, 2006. Print. 와 위키피디아

[3] 프로이트가 성차의 근원으로 보는 버자이너 보다 우월한 페니스와 계몽주의가 말하는 파토스보다 우월한 로고스를 결합한 용어로, 남성 중심적이고 이성 중심적인 서구의 형이상학적 전통을 일컫는다.

[4]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일견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사실 여자가 여자를,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것이라고 만들어버린 규범이다. 따라서 이 규범은 강제적이고 강압적인 것이지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성애는 강제적인 것이다.

[5] 정확히는 페미나치다. 하지만 페미나치 자체가 남성 우월주위를 기반으로, 모든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비난이다. 쉐미니즘이 신조어 이긴 하지만 정확한 기원이 불분명하다. 신문기사를 통해서는 자주 사용하고 있는 용어다.

[6] 한국에서는 잡년 행진이라고 하며 대부분 인터넷에서는 정확한 번역이라고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