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에서 우리로.. - 1492 타자의 은폐 : ‘근대성 신화’의 기원을 찾아서 : 엔리케 두셀 : 그린비

2012. 1. 8. 11:29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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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에서 우리로.. [1]

-       1492 타자의 은폐 : ‘근대성 신화의 기원을 찾아서 : 엔리케 두셀 : 그린비

201180142 박형락

 

           미국과 캐나다를 우리는 북아메리카라고 하고 미국 아래에 있는 나라들이 있는 대륙을 남아메리카라고 한다. 혹자는 라틴 아메리카라고 하기도 한다. 라틴이라는 말 자체에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잘 아는 라틴이라는 단어를 라틴어, 라틴 민족 이라는 말로서 사용하는데, 이는 바로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아리아인들 중, 유럽 남쪽에 사는 사람들의 집단에서 근원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 근원은 원주민이 아니다. 이는 마치 유럽의 역사와 유사하다. 예를 들어, 클라우스 슐츠의 『독일의 과거로부터』에서 나오는 독일의 역사만 하더라도, 그들의 역사의 시작은 게르만 인과 로마인들의 충돌에서 시작한다. 그 이전의 역사는 서술되어 있지 않고 있고, 문화 라던지 신화의 경우도 북유럽 게르만민족이 대이동 하면서 발생한 지크프리트 신화를 가지고 그들을 해석하고 대표한다. 분명한 것은 아주 오랜 세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하이델베르크인이 그들의 땅에 살고 있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서 코르테스가 정복자로서 몬테수마의 아즈텍을 박살내는 과정은 대부분 그를 중심으로 『슬픈 밤』 이라든지 남겨진 고문서나 편지를 중심으로 역사된 것이다. 유럽 게르만의 역사 시작 이라던지 청동기 시대의 단군 신화는 이와 유사하다. 사실상의 문화적 역사의 시작은 문헌이 남겨져있음으로서 증명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역사가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역시 이와 유사하나, 인디오라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또 다른 문화가 다른 문화 세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은폐되어 있다는 점이다.

           엔리케 두셀은 유럽 중심의 세계관에 대해서 헤겔의 『역사철학강의』를 통해 이 책에서 설명했다. 해겔의 세계관은 세계를 동과 서를 나눠서 거기에 처음과 끝을 결정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시각을 지니고 있다. 유럽이 문화적으로 중심이며 완성형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덧붙여서, 언어를 가지고 구분을 짓고 정의를 어떻게 내림에 따라 마치 그러하도록 만들게 끔 되어 있다. 유럽 중심적 사고관을 가지고 유럽 이외의 대륙, 인종 그리고 문화는 주변부의 문화가 되어버린다. 이미 이슬람,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경우는 교역을 통해서 익히 서로를 알고 있는 나라였지만, 여전히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같은 인간이 아닌 새로운 다른 성격의 사람들로서 단지 대할 뿐이다. 아즈텍의 수장 몬테수마와 정복자 코르테즈와의 관계 이후 선교사들이 생각하는 라틴 아메리카인들에 대한 생각은 이것에 대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유럽 자신들의 대표적인 문화인 기독교 문화와는 전혀 다른 이도교들의 문화이며, 정복자이자 유럽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따른 발견자로서 그들을 기독교화 시켜야 하며 영혼이 없는 존재로 부류했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 신화들이 재구성되는 요즘 시기에는 굉장히 영향력이 대중문화 사이에 있을 정도로 아즈텍의 신화와 구성은 뛰어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은폐시키고 자원과 노동력의 착취를 하게 된다. 그 과정들을 오늘날에 맞게 쉽게 설명하자면, 이방인들은 내전의 중단 또는 사회 혼란 또는 가난과 자연재해에 대한 구호로 NGO 들이 정부의 지원 하에 그들에게 파견된다. 그러면서 그들의 문화를 파악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맞는 전문가들이 유입된다. 다만 이런 원조들은 그곳의 자원에 대해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방인들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이젠 그들의 문화 잠식이 이미 진행된 상태가 된다. 동티모르의 경우에는 원래 주식이 옥수수나 감자 같은 밭에서 생겨나는 작물이다. 그런데 중국을 비롯한 쌀이 주식이 아시아 지역에서 쌀을 지원해서 긴급구호를 펼쳤고 지금은 베트남이나 중국인 상인에 의해 쌀을 수입해서 사먹게 되었다. 경제의 경우도 화폐를 달러로 생활하고 있어 그 나라의 화폐경제는 이미 작살난 상태다. 계속 해외에 의존하게 되는 경제를 펼치면서 서서히 다국적 기업들이 잠식하여 석유와 커피 같은 자원을 싼값에 채취하게 된다. 이미 이때는 그들의 문화를 간간히 유지하고 있는 곳은 산속과 외지에서 겨우 1달러의 쌀 포대를 가지고 아직 남아있는 NGO와 함께 전기와 물 없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도 점점 영어와 자본주의 경제를 어린이들부터 배워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의 문화와 영혼이 진짜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들은 무자비한 착취와 자원들을 쓸어모으기 위해 원주민들의 문명을 짓밟았다. 대표적인 두 명을 작가 두셀은 언급하게 되는데 위에서 잠시 소개한 코르테스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잘 알려진 콜럼버스다. 코르테스는 대표적인 정복자로서 현지 원주민인 말린체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녀를 이용하여 원주민들과 스페인사람들간의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려 하였다. 또한 아즈텍 문명자체가 소수 다른 원주민 왕국들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아즈텍 문명을 파괴시켰다. 여러 의미에서 현지 문명에 능통했기 때문에 정복자로서 말년을 제외하면 성공한 인물이었다. 두셀의 언급과는 다르게 BBC에 의하면 몬테수마가 보낸 사신이 정복자들에게 환대 해준 것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려 했던 것으로, 이는 문화적 차이이며 이 일화는 후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콜럼버스의 경우는 오해로서 아메리카를 발견했고 자원 착취에 눈을 붉힌 인물이었지만, 그는 자원 착취 량에 비해 수많은 인디오들을 학살했다는 점에서 스페인 왕국에 의해 스스로 몰락 하게 된 인물이다. 발견이 이뤄지고 정복을 하면서 수많은 인디오들을 내부분열을 통해 회유하거나 포섭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격렬히 저항하다 자살하거나 정복자에게 학살당했다.

           대한민국의 일제 강점기 때도 그랬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문화 지배였다. 당시 살았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일본어를 할 수 있어야 했고 창씨개명 같은 일본문화를 강제적으로 수용하면서 일본인으로써 흡수당할 뻔 했던 위기가 있었다. 저자 엔리케 두셀의 책에서는 이러한 라틴 아메리카의 깊이 있는 역사적 사실은 사실 알려주지 않고 있다. 다만 선교사들이 효율적인 기독교 전도를 위해 문화적으로 서서히 자신들의 문화를 흡수케 하고 강제적으로 거주민들을 분산시킨 점을 각주를 통해 서술하였다. 스페인사람들의 정착 뒤에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이주하게 되고 혼혈인들이 급증하게 되면서 인디오들의 숫자는 급감하게 되었다. 문화침략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 졌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두셀의 철학의 핵심은 이렇게 정복자들에 의해, 기득권 자들에 의해 발견되고 은폐되어버린 정체성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헤겔이 중국과 인도를 아시아라고 하면서 정작 그 당시 사람들은 아시아라는 사실을 몰랐고 동양이고 서양이라는 구분을 함부로 지어냈던 것 처럼, 라틴 아메리카를 아직도 저들에게 라틴이라고 붙이고 아메리카라고 붙이는 행태에 대해 두셀은 타자의 은밀한 폭력에 대해 고발한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는 결국 민족적인 해방은 실패했다. 사실상 스페인에 대한 독립은 귀족 전쟁이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또 다른 폭력의 시작이기도 했다. 운하, 자원 부분에서 국유화를 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 경제에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아르헨티나의 경우 대부분이 90% 정도가 혼혈 백인계인 후안 페론 부부의 포퓰리즘과 군부 내전에 따른 정치 혼란과 더불어 경제 정책의 실패만 아니었으면 매장량이 풍부해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강대국이었다. 맥시코의 경우는 내전이 지금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혈통이 백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리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과연 엔리케 두셀의 해방철학 만이 지금 현 라틴 아메리카 상황을 극복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러한 이론을 통해 다른 부분에 이용하는 게 우리들의 관심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레비나스는 유럽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경험했던 인물이다. 나 중심에서 서는 생각들이 타자를 간섭하게 될 때, 타자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타적으로 나 중심 그 자체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존중하는 자세로서 나를 정의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는 나의 자아를 통해 타자를 인식할 수 있다는 자세와는 다른 것이다. 누군가를 정복해서 자기 중심적으로 타자를 평가하고 심판하며 억압하고 은폐하는 제국주의적 마인드와는 다른 것이다. 이미 콜럼버스 아메리카 발견 몇 주년 기념행사 또는 공휴일 지정 같은 것들이 미국과 남미 등지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 제도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유들이 이미 다른 누군가에 의해 지배 당해지고 있으며 진실이 은폐되어 있고, 나도 모르게 다른 누군가를 정의 내리고 판단하고 억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동쪽 바다를 동해라고 하고 한국해라고 하기도 하며 일본해라고 한다. 중국은 중화중심 사상을 가지고 소수민족 문화들의 역사를 왜곡시키거나 혼혈정책으로 민족을 자신들의 편으로 융화시키고 있다.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에는 명절만 되면 외국인 가정이 한국에 얼마나 잘 융화되고 있는 가에 대해 강조를 하고 있다. 심지어 아즈텍 문화가 꽃 피울 때, 수많은 주변 인디오들이 수탈을 당했는 가도 생각해볼 문제다. 그들 소수자들 내부에서 해방을 위해 스페인 코르테스의 편에 들어 갔는 가도 생각해볼 문제다. 데리다와 벤야민의 법과 폭력에 대한 사유처럼, 그게 어느 배경이고 어느 중심이든지 간에 결국 폭력은 폭력을 통해 부수게 되는 것이고 해방도 결국 역사적으로 폭력에 의해서 이뤄졌었다. 전복이 되면 또 다른 폭력 도구가 생겨나게 되고 안티테제들을 융합하거나 억압할 것이다. 또한 그의 사유가 정치철학임은 분명한데, 인간 개인의 요소로서도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하나의 해방을 위해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은 자들도 분명 있을 건데, 그러면 그런 사람들에게 결국 역으로 폭력과 기존에서 다시 기존으로 되어버린 그 인식 자체를 뒤엎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다양한 생각을 요구하는 철학이 아닌 것이, 이러한 해방철학의 목표 자체가 모든 사람들의 사유를 억압해야만 탈 식민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를 들었지만 멕시코만 하더라도 대부분 혼혈인이고 자신들이 백인임을 강조하는 행동들이 인터넷 곳곳에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두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사유에 대한 실천들은 대체적으로 나라와 나라간의 정치 제도를 기초를 두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타자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신경제자유적인 논리로 착취하는 것을 두셀은 두고 볼 수 없었던 거 같다. 미국이 남미의 자원을 마치 자신들의 신기술로 혹은 자본으로 상대의 경제체제를 국제적 합법으로 무너뜨리는 모습들이, 옛날 유럽중심에서 미국중심으로 사고하고 타자를 구원하는 척하며 실질적인 이득을 다 뺏어가는 것이 마치 옛날 스페인과 인디오의 이야기를 통해 빗댄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는 전세계가 콩키스타도르 즉, 다국적기업을 통해 서로 먹고 먹히는 자본적 혼란의 탐험시대로 들어설 것이다.



[1] www.gedanke.wo.tc 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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