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로리 팍스의 "비너스"
2012. 2. 23. 19:10ㆍ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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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로리 팍스의 "비너스"
주위에 펼쳐진 모습은 쇠창살 속에서 본다. 배우가 바라보는 관객은 인간사회이다. 감옥에 있지 않다는 환상을 보여주면서 환상에 빠지게 만든다. 전쟁과 극을 구분하는 것은 놀이와 신재에 대한 구분이다. 비너스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해 보자.
비너스를 해부 한다는 것은 흑인 여성의 정복을 의미한다. 그녀를 가두는 것은 흑인의 몸과 이미지를 철장에 가둔다. 역사를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 속에 있는 잘못된 과오들이 녹아져 들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계보학에서 계통을 따라 올라가보면 잘못과 오류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푸코는 지식과 권력이 결합 혹은 결탁을 하여 미학을 창출하고 타자를 구별한다고 하였다. 흑백문제는 남녀 문제 포함된다. 비너스의 몸은 검은 대륙을 상징한다. 아프리카에서 서구에 대한 지성들이 응시하고 착취하는 것이다. 혐오는 미의 대상이다. 썩은 젖갈 또는 썩은 치즈가 난다고 생각하는 외국인들 혹은 외국인이 보는 나의 불쾌함을 미로 취급한다. 법의 문제도 뒤따른다. 합법화시켜 지배하려는 수단이 법이다. 바라카는 분위기를 연극과 같게 만들려고 하였다. 바다향기와 배냄새와 울부짓음을 실제 연극에서 관객에게 연출시켰다. 역겨운 것은 향유하려함이다. 이것을 봄으로써 욕망이 해소된다. 이는 예술을 통해 이뤄진다. 문명화 사회적 과정을 통해 역겨움을 멸시한다. 이는 향유하려는 욕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베이컨은 돼지와 소를 자르는 것을 그렸는데, 사람들이 좋아하고 예술로 취급했다는 것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역겨워하면서 끌리는 것이다. 병적으로 신경증과 도착증을 지닌다.
어머니에 대한 권위를 그라피티 즉, 저항의 양산이라 한다면 아버지에 대한 권위는 경고문이다. 라캉은 상상계와 상징계와 리얼을 나누어, 상징계는 크리스테바의 어머니 때문이라는 주장과 반대되는 아버지의 권위를 신경증과 도착증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따. 리얼은 남자중심적이다. 팔루스라고 하는데, 카타르시스를 위해 끊임없이 희생 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브젝시옹은 비체에 대한 감응작용이다. 구토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역겨움과 자극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비너스는 로마식 아프로티테에서 나왔다. 1800년대 여성이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향유의 대상이다. 아이는 태아 속에서 더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상징계로 들어갔을때 아버지에게 들어갔을 때에 대한 두려움 즉, 금기를 가진다. 아이가 주체화 되려면 엄마아 분리되어야 한다. 아이를 보호하고 위협하는게 엄마다. 아이가 주체될때, 상징계인 아버지의 권위에 들어가야 어머니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집착이다. 태아에 있을때,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닌 태아다. 이곳과 저곳의 구분이 없는 상태로 생명과 사물의 구별에 대한 어떤 것을 나타낸다. 시체, 침, 배설물 그리고 콧물이 바로 그것이다.
다가오는 아브젝시옹은 더러운 것에 인해서 생겨나는 감정이다. 여성중심적 혹은 여성적 글쓰기로 각 챕터마다 쾌락을 지닌다. 무조가 전조가 되듯 말이다. 내속에 아직까지 어머니의 물컹한 것이 있다. 남겨져 있다. 그리울 때가 있다. 혐오스럽지만 좋아할 때도 있다. 역겨움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침과 피다. 근대 이후 터부화가 되었지만 말이다. 아버지의 법으로 그렇게 되었다. 엄마가 그대로 따라오고 틈만나면 나타난다. 무서움이 역겨움이다. 어머니에 의해서 아버지의 상징계가 무너질 수 있다. 탄탄한 상징계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존재는 여자 즉, 괴물이다. 비체인 역겨움이다. 주체가 아니다 객체 즉, 대상도 아니다. 태아와 산모가 분리되지 않는 모태이다. 이러한 것은 애매함을 지닌다. 괴물 영화에서 잘짜여진 것에 대한 것에 대한 저항이 강하다.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의 과정에서 돼지 같지 않는 것으로도 올린다고 하였다.
수의 역사는 몇 등신으로 나눈다. 음악은 아름다움을 선율과 박자와 리듬으로 나누는데, 이는 바로 수에 의해서다. 피타고라스는 수에 집착한 사람 즉 정수 라고 한다. 바하는 기하학 적인 것을 좋아한다. 미의 체계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여성의 육체를 수치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표현될 수 없는 음들, 악보에 없는 음들, 무음과 소움음은 침묵이다. 인종차별은 부차적 문제다. 이면에 무언가 놓여진 것이다. 경제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흑인은 노동력이며 경제다. 피부색은 사실 부차적인 것이다. 파카라의 노예선에서 흑인은 금덩어리다. 누워서 쇠사슬에 묶여있다. 고정된 것이 없는 정체성은 ~이다 가 아니라 ~ 되다 이다. 리좀적이다. 몸을 해부하고 재단하며 평가하는 것은 단지 백인을 위해서다. 차별과 착취는 경제 문제인 것이다. 흑인 조차도 백인의 잣대 속에서 모르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실천하고 있다. 지식을 가지고 무엇을 평가하는 것은 지식과 권력이 결탁해성다. 임상의학이 18~19 섹에 등장하는데 정신병자를 교묘하게 만들어 낸다. 화형과 교수형은 역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지배한다.
주위에 펼쳐진 모습은 쇠창살 속에서 본다. 배우가 바라보는 관객은 인간사회이다. 감옥에 있지 않다는 환상을 보여주면서 환상에 빠지게 만든다. 전쟁과 극을 구분하는 것은 놀이와 신재에 대한 구분이다. 비너스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해 보자.
비너스를 해부 한다는 것은 흑인 여성의 정복을 의미한다. 그녀를 가두는 것은 흑인의 몸과 이미지를 철장에 가둔다. 역사를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 속에 있는 잘못된 과오들이 녹아져 들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계보학에서 계통을 따라 올라가보면 잘못과 오류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푸코는 지식과 권력이 결합 혹은 결탁을 하여 미학을 창출하고 타자를 구별한다고 하였다. 흑백문제는 남녀 문제 포함된다. 비너스의 몸은 검은 대륙을 상징한다. 아프리카에서 서구에 대한 지성들이 응시하고 착취하는 것이다. 혐오는 미의 대상이다. 썩은 젖갈 또는 썩은 치즈가 난다고 생각하는 외국인들 혹은 외국인이 보는 나의 불쾌함을 미로 취급한다. 법의 문제도 뒤따른다. 합법화시켜 지배하려는 수단이 법이다. 바라카는 분위기를 연극과 같게 만들려고 하였다. 바다향기와 배냄새와 울부짓음을 실제 연극에서 관객에게 연출시켰다. 역겨운 것은 향유하려함이다. 이것을 봄으로써 욕망이 해소된다. 이는 예술을 통해 이뤄진다. 문명화 사회적 과정을 통해 역겨움을 멸시한다. 이는 향유하려는 욕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베이컨은 돼지와 소를 자르는 것을 그렸는데, 사람들이 좋아하고 예술로 취급했다는 것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역겨워하면서 끌리는 것이다. 병적으로 신경증과 도착증을 지닌다.
어머니에 대한 권위를 그라피티 즉, 저항의 양산이라 한다면 아버지에 대한 권위는 경고문이다. 라캉은 상상계와 상징계와 리얼을 나누어, 상징계는 크리스테바의 어머니 때문이라는 주장과 반대되는 아버지의 권위를 신경증과 도착증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따. 리얼은 남자중심적이다. 팔루스라고 하는데, 카타르시스를 위해 끊임없이 희생 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브젝시옹은 비체에 대한 감응작용이다. 구토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역겨움과 자극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비너스는 로마식 아프로티테에서 나왔다. 1800년대 여성이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향유의 대상이다. 아이는 태아 속에서 더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상징계로 들어갔을때 아버지에게 들어갔을 때에 대한 두려움 즉, 금기를 가진다. 아이가 주체화 되려면 엄마아 분리되어야 한다. 아이를 보호하고 위협하는게 엄마다. 아이가 주체될때, 상징계인 아버지의 권위에 들어가야 어머니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집착이다. 태아에 있을때,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닌 태아다. 이곳과 저곳의 구분이 없는 상태로 생명과 사물의 구별에 대한 어떤 것을 나타낸다. 시체, 침, 배설물 그리고 콧물이 바로 그것이다.
다가오는 아브젝시옹은 더러운 것에 인해서 생겨나는 감정이다. 여성중심적 혹은 여성적 글쓰기로 각 챕터마다 쾌락을 지닌다. 무조가 전조가 되듯 말이다. 내속에 아직까지 어머니의 물컹한 것이 있다. 남겨져 있다. 그리울 때가 있다. 혐오스럽지만 좋아할 때도 있다. 역겨움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침과 피다. 근대 이후 터부화가 되었지만 말이다. 아버지의 법으로 그렇게 되었다. 엄마가 그대로 따라오고 틈만나면 나타난다. 무서움이 역겨움이다. 어머니에 의해서 아버지의 상징계가 무너질 수 있다. 탄탄한 상징계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존재는 여자 즉, 괴물이다. 비체인 역겨움이다. 주체가 아니다 객체 즉, 대상도 아니다. 태아와 산모가 분리되지 않는 모태이다. 이러한 것은 애매함을 지닌다. 괴물 영화에서 잘짜여진 것에 대한 것에 대한 저항이 강하다.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의 과정에서 돼지 같지 않는 것으로도 올린다고 하였다.
수의 역사는 몇 등신으로 나눈다. 음악은 아름다움을 선율과 박자와 리듬으로 나누는데, 이는 바로 수에 의해서다. 피타고라스는 수에 집착한 사람 즉 정수 라고 한다. 바하는 기하학 적인 것을 좋아한다. 미의 체계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여성의 육체를 수치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표현될 수 없는 음들, 악보에 없는 음들, 무음과 소움음은 침묵이다. 인종차별은 부차적 문제다. 이면에 무언가 놓여진 것이다. 경제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흑인은 노동력이며 경제다. 피부색은 사실 부차적인 것이다. 파카라의 노예선에서 흑인은 금덩어리다. 누워서 쇠사슬에 묶여있다. 고정된 것이 없는 정체성은 ~이다 가 아니라 ~ 되다 이다. 리좀적이다. 몸을 해부하고 재단하며 평가하는 것은 단지 백인을 위해서다. 차별과 착취는 경제 문제인 것이다. 흑인 조차도 백인의 잣대 속에서 모르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실천하고 있다. 지식을 가지고 무엇을 평가하는 것은 지식과 권력이 결탁해성다. 임상의학이 18~19 섹에 등장하는데 정신병자를 교묘하게 만들어 낸다. 화형과 교수형은 역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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