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아도르노 그리고 베케트 강의록
2012. 3. 24. 21:07ㆍ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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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윤리학은 기호들의 세계와 공통들의 세계가 있다. 대상들은 원인이 된다. 사물의 구조와 형태를 안다는 것은 그 본질을 안다. 인간은 신과의 속성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같은 형상을 지녔다. 정념은 수동이다. 공기의 움직임 정도에 따라 나의 관계가 변화될 것이다. 신은 실체다. 맑음의 정도 그 자체가 밝기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 모든 다양체는 차이 그 자체다. 그것이 본질이다. 모든 관계들의 관계를 감싸고 있는 것이 빛의 투사이다. 우리 각각의 변이들이 있다. 이것은 얼굴의 본질이다. 몸들이 서로의 관계들이 형성될 때, 운동과 정지들의 다양한 변이들이 있다. 모든 변이들이 일어나는 차이들의 체계를 지니고 있다. 초재적이냐 내재적이냐의 차이인 것이다.
(아도르노) 우리가 삶을 살다가 중요한 나의일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신 자유주의 경제라는 것이 모든 젊음과 에너지를 재화와 돈을 얻기 위해서 바치는 것을 삶의 대가로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예술은 뭔가를 말하고 있는데 일명, 상업적 예술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문화 산업으로 돈주고 사서 보는 예술이 판치게 된다. 이와 다르게 문학적 금욕주의가 생겨난다. 값으로는 매겨지지 않는 절대상품이 말이다. 절대상품은 문학적 부적을 한다. 나를 있는 존재도 불안을 구원해 주는 것이 상품 물신주의이다. 삶자체가 소비행위다. 나의 경험이 아닌 대리경험으로 이루어 진다. 아도르노는 자기가 더욱더 물신적으로 됨으로서 물신의 지위를 획득함으로서 절대상품을 생산한다고 하였다. 예술의 명시적 입작은 참여 예술로서 정치성을 앞ㅇ 내거는 것이다. 자율적인 존재는 즉자적이다. 자기가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어떤 경향에 따라가지 않고 리얼리티가 없다. 예술은 필요조건은 돈이다. 나는 구입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다. 이는 소비하지 못하면 거세되는 존재기 때문이다. 페티쉬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가 있어야 하는 것이 없는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붙여 줌으로서 자신에게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이힐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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