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베케트의 "Not I" 강의록

2012. 4. 11. 09:43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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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적인 법인 상징계의 법과 초자아의 법인 외설적인 아버지의 법이 있다. 이는 죽어버린 아버지의 성문화된 법과 제한없는 욕망으로 볼 수 있다. 글은 죽어버린 아버진의 법이다. 욕망의 측면에서 제한없는 욕망을 위한 제거는 또다시 돌아오는 성문화된 법으로 ~을 하지마라라고 자꾸 요구한다. 법앞에서의 사회적으로 주체 탄생이 이루어진다. 욕망에 대한 조건으로만 말이다. 이는 법의 정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선의 이름으로 법은 등장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벤담의 공리주의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선을 나눠쓰는 것으로 최대다수의 최소행복이 선의 실체일 것이다. 한정된 재화 때문이다. 광기의 행동을 하면서도 정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합의된 상징계의 법과 공통적이고 동의한 법은 분명아니다. 최근의 런던 폭동을 생각해 보자. 사태를 전반적으로 초자아적인 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법의 기원과 기능 그리고 효과는 약점이 될 수 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 자체가 법인 것이다. 억압된 것은 무의식이다. 무의식이 억압된 것은 아니다. 이드는 단순히 사회적 금기 욕망이 아니라 무의식의 모든 것을 말한다. 
          출발은 언어의 밖에서다. 상징계는 언어이며 실재계는 밖이다. 불완전한 언어로 이 작품은 이끌어 나간다. 이해 될수 없는 것,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즉, 주체는 나인데 이는 상징계속이다. 내가 아니어야 이해할 수 없고 상징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주체는 상징계에서 태어난 것이고 사실은 벗어날 수 없다. 주체가 응답되는 나는 끊임없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휩싸인다. 언어가 조직화된 개념들이다. 불가능성 공백이라는 주체라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언어로 불가능 하기 때문에 공백이 유발된다. 주체를 벗어나서 말하는 것은 오염됨이다. 우리 사회안에 이 모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들어와 있는 큰 타자들의 흔적들을 삭제위해 내의지와 내 의도로 말하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다. 윤리적 정언명령은 한예로 착해야 한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텅빈명령이다. 무엇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의무는 내가 선택하는게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해야하는 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도록 강요되는 것이며 주체의 수동성을 드러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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