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희곡이론 강의록

2012. 7. 28. 19:58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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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은 근복적으로 연극을 보면 오염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 그대로 인간, 인간 비슷한, 우수한 인간, 못한 인간으로서 말이다. 우수한 인간은 비극이며, 못한 인간은 희극으로 연기된다. 희극 이후 집에 와서 저열한 행동을 하는 가능성 그리고 흉내는 보고 따라하는 것에 대한 플라톤의 두려움이다. 이는 이상국가와 상반됨이다. 카타르시스는 연민과 공포를 통해 해결된다. 설사, 나쁜 것을 정화하기도 한다. 관객의 내면 또는 작품 안에서 정화한다. 재현은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으며 행동하는 사람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상태를 포함한다. 이는 극적 행동이라고 하는데, 처음과 끝까지 관통하는 사건이다. 수많은 행동 중에서 처음과 끝까지의 극 안에 중요한 행동이 있는 것이다. 말은 하는 것이 하니라 해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말은 언어 우리 이전에 있다. 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 기술의 큰 영향은 미디어다 신의 영감 없으며 자신의 영감도 없다. 이는 대세다. 근본적 영감을 받고 있는 게 아니다. 목소리다. 누가 말하고 누가 보는 것인지 자본과 유행처럼, 내가 같은 맥락에서 읽고 있는게 아닌 것이다. 소실점은 중심적 시점에 해체되고 있다. 그리스로 부터 시작한 말은 사유가 어떤 틀로서 개념들의 연원이 여전히 즈금으로 유효하고 있다. 

          사회를 지탱하는 최상위의 법을 코러스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오이디푸스의 법보다 상위에 있다. 여기서 비극이 있다. 비극 작가중 유리피데스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 강한 작가였다. 디오니가 디오니의 어머니를 살해함으로서 기존 권위를 돈전하는 극을 그렸다. 비극의 기원은 디튀람브에 남아있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인 것을 모르고 죽였던 과거에 의해 비극을 맞는다. 시간과 공간과 주체에 대해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하는 지 아테네 청년들 앞에서 비극을 벌인다. 이는 정치성과 관계있음을 알 수 있다. 신의 법에 운명되어지지만 결국 자신에 의해 비극 되어지는 것. 비극의 모든 것 들은 자신이고 벌도 마찬가지다. 우주 전체의 질서는 안정적 이어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개성 있는 사람들은 법과 질서가 필요하다. 오이디푸스는 희생양이었다. 왕도 결국 상위의 법, 즉 신의 법에 존재함을 인정해야만 했다. 오이디푸스는 희생양이었다. 무대와 코러스외의 관계에서의 입장에 대한 역할 그리고 연극의 메시지를 명화히 하는 역할은 한다. 신은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성격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 지 미리알고는 있다. 그러나 이 피하는 인간일지라도 신 앞에서 비극을 맞는다. 

          재현 개념에는 미메시스에 포함된다. 모든게 행동을 재현하는데 있다. 비극이든 서사시든 말이다. 인물들의 대화가 그대로 드러있는 양식으로서 소설속의 미메시스를 지닌다. 

          호머에게는 미메시스와 디에게시스가 포함되어 있다. 이상 국가에는 해롭고 디에게시스를 옹호하는 플라톤의 주장이다. 서사시는 비극과 대립을 이루고 디에게시스는 미메시스와 대립을 이룬다. 이 대립을 이루는 주장이 아리스토텔레스다. 서사시를 포함된 작품과 서사시 성취한 것을 더 성취시킬 수 있다. 드라마에 부여한 특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에서다. 서사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비극을 우수한 것으로 받는다. 소설적인 서사에 있어서도 19세기 말까지 소설 장면 이것이 드라마 장면의 창백한 모방으로 여겨지면서 소설 속에 들어간 장면 같은 것으로 결과를 낳았다. 극이 모방이라면 소설을 또 그것의 모방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소설이 어떻게 드라마 속박에 해방되었느냐 하면 연극적 모방을 대사로 바로 취하는 것을 극단으로 소설에 접어 넣음으로서다. 완전히 인물에게 화자가 아닌 스스로 자기말을 소설에 집어넣음으로서다. 소설이 아리스토텔레스 경향 때문에 억눌려져 있었다. 화자가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주네트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의 분위기와 목소리에서다. 이 태는 소설에서 누가 말하고 있는 가에 대한 물음이다. 미메시스에서는 인물이고, 디에게시스에서는 화자이다. 직접 나서는 경우와 인물이 따로 나옴으로 나뉜다. 누가 말하고 있는 가에 대한 찾기이다. 화자 자신이 자기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에서 화자가 부재하고 있는 경우 등장인물로사 나오지 않는다.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서술은 하지만 인물로서 등장하지는 않음은 헤테로디에게틱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이야기에서 등장은 호모디에게 틱이며 나레이터가 증인이거나 등장인물로 나올때 오토디에게틱이다.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가는 뮈토스는 플롯, 즉 수성이다. 실제로 일어난 차례로서 텍스트로 추측한다. 극이 시작전에 나오는 거를 말하는 것이다. 화자의 존재와 서술 행위는 소설의 특징이다. 리얼리즘 소설의 경우가 소설의 행위이다. 소설가들이 소설가로서 자의식이 강해질 수록 현실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나는 창조하고자 하는 영향이라는 불안을 벗어나 저술한다. 리얼리티는 재현, 즉 소설하는게 아니라 장르 안에서 기존 서사기법들에 대한 창의적 노력 및 자의식에서다. 의식들이 서술기법 자체에서 작품에 드러낸다.행동하는 인물들의 재현은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을 재현하는 이유이다. 단순한 것만 제시한게 아니라 여러예시들을 제시하고 있다. 모방은 재현의 본능이고 쾌감이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이라도 예술을 통해 재현되고 쾌감과 정서적으로 효과를 지닌다. 감정들을 일깨우고 정화하고 쾌감하는 것이다. 정화된 대상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단순한 작품이 모방한다해서 쾌감이 있는게 아니라 잘 만들어야 하지만 말이다. 소포클레스는 합창단과 배우사이 유기적으로 진행하였다. 비극은 시인에 대한 송가에서 왔고 즉흥극에서 잠차 하나는 비극으로 하나는 코미디로 간다. 신고전주의 룰이 되면서 작가들에게 큰 억압이 되고 있다. 행동의 중계인은 행동하는 사람 속에서 보편적 행동을 본다. 쇼펜하우어의 본질은 고통을 통한 본질을 찾는다. 처음 오이디푸스의 구귀한 성격을 가지지만 진행과정에서 생기는 그의 행동을 통해 또다른 성격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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