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그날 본 그녀의 이름을 나는 이제 안다

2012. 11. 19. 09:32Review/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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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그날 본 그녀의 이름을 나는 이제 안다는 여러 가지 점에서 아쉬웠다. 우선 단편소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 요소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단순하게 말해 소설은 형식을 갖춘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의식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 있고 서사적 전개와 무관한 내용들이 너무 많이 삽입되어 번다해져 버렸다. 문장도 더 다듬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후기

습작도 거치지 않고 심지어 교정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제출하다보니 혹평을 받은 거 같다. 만약 계속해서 소설을 쓸 기회가 있다면 기초적인 소설 쓰는 법 정도는 익혀야 할 필요가 있음을 고백한다. 어쩌면 부산대학교의 생활 아니.. 이제 인문학과 나와의 생활이 점점 멀어져 갈때.. 하고 싶었던 공부 그리고 쓰고 싶었던 글을 마지막으로 써보고 싶었다. 앞으로는 비평적인 내용이 아닌 따뜻하면서도 진지하고 인간적인 글을 쓰고 싶다.


그날 본 그녀의 이름을 나는 이제 안다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석사과정 201180142 박형락

<이름과 지명 그리고 세계관은 의도적으로 꾸민 내용이다.>

 

아침 9시에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7시간동안 날아가 지구 아래 부분에 위치한 빌리 섬(Bili)에 도착 예정인 여객기 내부에는 가족 관광객들로 붐볐다. 혹한기를 피하고 원시적이고 습한 자연을 체험하면서 이국적인 문화와 쇼핑을 즐기기 위해서 인거 같다. 7시간의 비행시간은 나로서 무척 지루한 시간이다. 아이들의 시끄러운 웃음소리는 자연스레 나로 하여금 승무원이 제공한 헤드 셋을 착용하게 하였다. 그런 다음 정면 의자에 배치되어 있는 모니터를 터치하여 영화를 보게 한다. 중간 중간 친절한 승무원들은 식사 포함 간식과 음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들은 최선을 다해서 고객들에게 지루함과 불편을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동안에 계속해서 덜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제공받는 음식들을 먹어야만 한다. 주는데 안 먹으면 아깝기도 하다. 물론 기내식은 지상 음식과는 다른 특별함이 느껴진다. 이왕 기내에서 제공하는 모든 것들을 누려서 비행기 값 본전을 뽑아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호랑이 맥주와 아침과 점심 기내식 사이에 제공되는 간식을 안주삼아 원주민들이 사는 섬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영화를 보면서 지루함을 나는 잊고 싶다.『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즐거움과 긴장을 선사했고 상업적인 부분에서 성공을 이룬 영화였지만, 동시대 영화 테렌스 멜릭(Terrence Malick)의 『씬 레드라인』(Thine Red Line)은 나의 어린 시절 너무 지루한 영화였다. 치열한 전투 씬 보다 주인공의 심각한 독백 그리고 원주민들과 푸른 자연의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였다. 어린 시절 그 영화를 보면서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심각한 영화 정도로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에서 이 두 영화를 바라보며 마치 이제 제대로 된 철학자인양 더 고상하다고 생각되는 당시 2인자 영화를 선택한다. 비행기는 시간과 연료의 효율성이라는 이유로 제트기류를 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스타급 주연 배우들이 명성에 걸맞지 않게 조연처럼 죽어 나가는 것을 나는 본다. 모두 다 똑같아서 구분 할 수 없는 존재들의 세계는 일본군과 미군의 치열한 전투 속에 끊임없이 전선의 라인을 유지시키려는 자와 고지를 점령하려는 자 간의 보이지 않는 두뇌 싸움뿐이며, 병사들은 인간에 대한 배신과 거짓말이 오고가기만 한다. 그 와중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과 원주민들의 모습은 앞으로 내가 만나야할 풍경들과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한다. 무지했던 어린 시절 봤던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여전히 그 때 받았던 무의식적 씁쓸함이 여전히 느껴지고 있다. 비행기가 빌리 섬을 도착하려는지 천천히 내려오면서 영화 속의 장면과 유사한 푸른 바다와 산호초들 그리고 작은 섬들이 창밖으로 보인다. 기내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을 하고 설레는 분위기로 어수선해지고 있다. 착륙에 따른 기내 안전벨트 착용 지시등이 켜지면서 비행기는 갑작스럽게 내려갔다가 다시 고도를 유지하는 것을 반복한다. 이 때문에 나의 심장을 중력이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여러 번 비행기를 타봤지만 기내 착륙 상황만큼은 놀이공원의 어떤 기구 보다 짜릿함과는 다르게 익숙하지 않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가는 동안에 기내 분위기는 경직된다.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승객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오묘한 감정에 이끌려 불안과 공포와 때때로 죽음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낯선 문화가 자신에게 침투해 올 것에 대한 설레임을 가지게 될 지 모른다. 나를 포함한 주변 모든 사람들은 여행을 하며 위험을 항상 감수하고 앞으로 행동하게 된다. 자의적이기도 하고 타의적이기도 하다. 물론 이제 나는 귀저기를 차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지원해서 출장 여행을 하는 것 이면에는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내 자신 스스로에 의해서 명령받아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오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여행일정은 빌리 섬 시내를 방문하여 하루를 묵고, 라스로팔로스 섬(Las lo Palos)에 가서 이틀간 천연 에너지 사업을 위해 협력하는 현지 기업을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틀 동안 NGO가 구호하는 현장을 방문하여 지원 사업 추진과 실태 파악을 하기 위해 나설 것이다. 기업에서는 나 혼자에게 거대한 임무를 부여했다. 너무 큰 사업이고 치안 상태가 좋지 않아서 위험이 뒤따르는 출장 여행을 나는 가지게 된 것이다. 사실 현지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직접 사원이 현장을 찾아가 단지 사인……. 사인하나만 받으면 되는 일이지만 갔다와서는 현장에서의 회의와 자료 수집한 것을 토대로 나의 팀원들과 전반적인 업무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인만 받아내면 기업의 어마어마한 자원 채취 사업권 획득과 동시에 사실상 우리나라는 라스로팔로스 섬을 장악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애국자다. 15년 동안 준비한 국가, 15년 동안 준비한 기업 그리고 15년 만에 는 다시 다른 타자로 변화하여 그들에게 다가가게 된다.

 

빌리 국제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따뜻함 보다는 습한 공기로 인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여권 심사하기 전에 볼 수 있는 복도의 장식품이라고는 푸른색 작은 수족관 속 물고기 밖에 없었으며 입구에 나오자마자 맞이하는 것은 기념품점들이 고작 전부였다. 현대적이고 세련되지 못한 건물 내부 벽은 마치 국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보수가 덜된 국립 대학교 건물과 같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소함과 불편하게 다가오는 첫 기분은 여전하다.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나의 이름을 크게 적어놓은 팻말을 들고 있는 아스만 (Mr. Assmann) 씨를 어렵지 않게 나는 본다. 아스만 씨를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는 나를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한다. 당시 12명의 봉사단원들이 라스로팔로스 섬의 비자를 취조 없이 입국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관광비자로 여행사의 도움을 받아 봉사 2주 일정 앞뒤로 1박 2일 관광 코스를 배치했었다. 그 때 알고 지냈었던 아스만 씨는 자신의 호텔로 우리를 픽업 했었는데 봉사 갔다 온 전 후 대원들의 차림 상태가 너무 달라 인상이 깊었다고 한다. 현지인들이 당시 우리나라로 취업 비자를 따기 위해 또는 관광 경제 이유로 우리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는 유행이 있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아스만 씨도 물결에 따라 우리 인이 운영하는 현지 학원에 공부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포기하고 그냥 조용히 사는 듯하다. 우리말을 전혀 못한다. 빌리 섬은 이전과는 달리 상당히 많이 발전한 거 같다. 특히 생소해 보였었던 무질서한 오토바이들의 운행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내 생각엔 그게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수많은 섬들이 운집해 있는 쟤네 나라에서 유일이자 세계 최대 10대 관광지인 이곳의 현지 주민들은 관광객의 영향에 따라 자국 언어보다 영어를 중시하며 한때 우리 언어도 중시 여겼던 걸로 알고 있다. 7인승 봉고차 창밖에서 본 가게 간판들은 죄다 영어일 뿐 우리언어는 보이지 않는다. 뭔가 나도 모르게 아쉽다. 정말 우리 언어가 유행했는지 안했는지는 현지인들이 잘 알 것이다. 우리는 단지 관광업 관련 현지인의 이야기 밖에 듣지 못했지만 말이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옛 추억이 떠오른다. 호텔이 도저히 호텔이라고 생각되지 않고 마치 별장 같았다. 수영장이 호텔 내부 한가운데 위치한 마당에 있었는데, 이끼가 너무 껴있어 마치 연못이 되어버린 것처럼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정문을 지나 입구로 들어가는 마당에 서있는 나무 위에는 시커먼 박쥐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 때 일행들이랑 같이 이 나무 아래에서 앞으로 만날 현지 원주민들의 축제 참가를 위한 공연을 준비했었던 곳이다. 모두 다 어쭙잖게 배운 무술과 전통 예능을 이력서에 냈다 보니 NGO 단체의 착각으로 우리의 동의 없이 마을 축제를 계획한 것이었다. 미치던지 아니면 닥치던지 우리는 책임져야했다. 그 공터에 나는 서있다. 가끔 고여 있는 수영장 물위를 재빠르게 지나가면서 날벌레를 낚아채는 수고를 제외하고는, 박쥐들은 여전히 한 낮에도 매달려 있을 뿐 이다. 옥상 위를 올라가니 이전과는 다르게 변한 동네의 전체 전경들이 가득한 상태로 나는 멍하게 서있다. 모든 것들이 빛을 통해 나의 망막을 맺히게 했던 그 흔적의 기억들과는 달라서 잔상의 초점을 한동안 흔들어 놓았다. 장대 같은 열대 나무들과 이국적인 사찰의 도움으로 혼자서 모니터 액정을 통해 터치를 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들을 순간으로 만들어 포착한다. 무의식적으로 앞으로의 일에 대한 생각에 한숨을 내쉬고 옥상 아래로 내려간다. 아스만 씨가 웃으며 기다리고 있다. 항상 여기를 들르는 사람은 꼭 옥상으로 찾아가 사진을 찍는 다고 하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인지 나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여관 방 같은 곳에 안내한 아스만 씨는 나에게 화장지는 변기 안에 버리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내일 조식은 따로 마련된 테라스에서 먹는다고 하고는 즐거운 여행이 되라고 한다. 오늘은 정말 하는 일이 없어서 짐을 풀고 침대에 멍하게 누워 있다 전자패드로 미국 드라마 보는 것을 반복한다. 날이 어두워지는 것을 틈타서 호텔 주변을 나는 돌아다닌다. 저녁 먹을 만한 곳을 찾기 위해서다. 이제 나도 출장 여행은 도사다. 무조건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많은 곳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더워 마트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현지 음료수는 꼭 챙겨 마신다. 그리고 버리기 전 사진을 찍는다. 나의 마음과 기억은 믿을 수 없다. 여행에서 남는 건 카메라에 담긴 사진이다. 한 음식점에 들어가 나시고랭(nasi goreng)을 시켜 먹는다. 후 후 불면 날아가는 밥이지만 향신료가 나의 코를 자극한다. 그때는 축농증 때문에 무슨 냄새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렇게 자극적일 줄은 몰랐다. 이제 이 음식의 향과 맛을 나는 체험 할 수 있다. 반숙한 계란은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밥에 비벼 먹는 것이 핵심이다. 혼자 대화 없이 먹으면서 별 생각다한다. 타자인 나는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과달카날 섬 (Guadalcanal)에서 이국적인 열대 우림에 취하다가는 언제 일본군과 현지 질병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 나 또한 미군처럼 설사 폭탄은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걸 감수하고 먹는 나는 이방인이다. 겉은 윤기가 있는 음식이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물이 필요로 했다. 우리 음식이 그리워진다. 또한 주변의 시선이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군대 짬밥 먹는 속도로 빠르게 먹고는 달러로 계산한다. 그리고 더 이상 멀리 가지 않고 숙소로 들어간다. 그리고 짐을 뒤지기 시작한다. 혹시나 누가 내방에 들어와 물건을 훔쳤을까? 해서다. 타지에서 시간은 일분일초가 아깝다. 하지만 내일 일정을 위해서 푹 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주는 음식에 여러 관광객들이 충격을 받은 듯하다. 나 또한 처음에는 그랬다. 꿀 발린 구운 식빵에 계란 풀어 놓고 햄 슬라이스 하나 집어넣은 게 고작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 하나는 끝내준다. 커피가 상당히 달달 하며 향은 꽤 진하다. 보약 한 첩 마신 기분으로 테라스를 나는 유유히 빠져나간다. 가루가 둥둥 뜨는 커피와 나름 고급호텔에서 제공하는 음식에 당황해하는 관광객들을 뒤로하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한다. 그리고 나는 정문에 기다리고 있는 아스만 씨에게 가서 감사를 표한 뒤 차에 탑승한다. 아스만 씨는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 좀더 강한 과거의 회상과 집착이 있을 거라고 건네준다. 그는 아직까지 라스로팔로스 섬의 사정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고 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라고 했다. 현재는 너무 힘들다. 과거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대학교 시절이 너무 좋았다. 집착이 된다. 그 때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무작정 현실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위험조차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일개의 불쌍하면서도 용감하고 씩씩한 병사로 가장했다. 국가와 기업을 대표하는 웃음 짓는 해외 담당 사원으로서 다시 그 곳을 방문했다.

 

라스로팔로스 섬으로 가는 비행기는 좁지만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쾌적했다. 에어컨이 온도를 조절하여 답답한 공기를 제거해 주지만, 무엇보다 현재를 탈출한 거 같았다. 이 평안함이 오히려 향후 일정에 따른 업무진행에 도움 될 거 같았다. 관광객은 거의 없고 그렇다고 현지인도 거의 없었다. 라스로팔로스 섬을 가기위한 유일한 경유지인 빌리 국제공항의 대부분 손님들은 뚜렷한 사업 목표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이다. 내가 대학 시절만 하더라도 이곳은 호주를 필두로 하여 선진국 끼리 천연 자원 쟁탈전이 빚어 졌었고 아시아 국가에서는 먹거리 수입과 수출 사업에 혈안이었다. 이 조그만 나라가 돈이 뭐가 될까 싶었는데, 한국인 사업가를 봉사활동 시절 기내에서 들은 이야기는 인상 깊었었다. 그 사람은 커피 사업가였는데 라스로팔로스 섬의 커피를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싼 값으로 수입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들 주식인 옥수수 밭은 커피 재배지로 변환시키기도 한다고 했다. 이 조그만 섬이 전쟁이 나고 나서 전 후 복구 사업에 목숨 걸고 각국의 방위군을 투입하는 것도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국가 단위의 자원 뿐 아니라 조그만 기업까지 사업 확장에는 이 섬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새롭지 않다. 관리 만하면 되니까 말이다. 최근 사내에서는 라스로팔로스 사업의 경우 안정적 관리만 하고 최대한 지원은 다른 긴급구호 지역에 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나 역시도 그 소식에 동감을 표했었다. 효율만 따지고 보면 자원 많고 잠재성이 있는 지역에 투자하는 것이 기업의 이미지 뿐 아니라 미래 사업 확장에 큰 이득이니까.

라스로팔로스 국제공항에 착륙하면서 강풍에 흔들거리는 야자수들과 푸른 바다를 뒤로하고 나는 재빨리 항공사에서 제공한 계단을 두 계단씩 성큼 성큼 내려가 국제공항 건물로 걸어 들어갔다. 초등학교 절반되는 규모의 공항에서 커리어 가방을 재빨리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기 모든 이들을 나는 본능적으로 경험적으로 믿을 수 없었다. 심지어 기내 화물칸에 실은 짐을 꺼내는 공항 직원 까지도 믿을 수 없었다. 배낭을 칼로 째버리고는 짐 찾는 컨베이어 옆에다가 놓을 것이다. 커리어를 질질 끌고 가면서 지하철 입구 같은 조그만 검사대와 비자 확인을 거친 후 바로 몇 걸음 걸어가니 건물 밖을 순식간에 나오게 되었다. 현지 기업을 방문하는데 도움을 줄 친구가 숙소에 체크인 하고 기다리면 호텔로 방문하겠다고 메시지를 나눠 전달 받았다. 줄 서있는 택시 중 하나를 타고나서 시내에 마련된 호텔에 데려다 달라고 기사에게 영어로 말했다. 기사는 바로바로 나의 말을 알아들었다. 나는 익숙하게 기사에게 해당 지역 범위 가격에 맞게 달러를 건네고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라스로팔로스 섬 유일한 호텔인 이곳은 빌리 섬으로부터 독립 선언 뒤 내전 상태로 수도가 잿더미로 변했을 때 살아남은 소수의 건물 중 하나다. 15년 전 만 하더라도 이곳은 물 일정량만 호텔에서 기본으로 제공 했다고 한다. 지금은 옛날 책과는 달리 화장실에 수도꼭지도 있고 물도 잘나왔다. 또한 빌리 섬의 호텔처럼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안전함과 편안함에 만족해하며 침대에 잠시 누워 뒤척이고 있다가 친구 메시지를 다시 받고 호텔 앞으로 내려갔다. 출장 여행 전부터 자주 네트워크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제임스 킴 (James Kim) 은 예전에 같이 이 곳 긴급 지원 했을 때 함께 봉사 단원들을 이끌었던 1팀장이었다. 나는 그 때 당시 2팀장이었는데 출국하기 전에 뭔가 팀원들 간 서로 경쟁 구도로 가는 거 같아 서로 떨어지게 행동하면 팀 전체가 무너지게끔 꾸려 나갔던 적이 있다. 봉사활동을 하고 나서 이 친구는 오지의 마을을 떠나는 날 심하게 울었었는데 그걸 본 팀원들이 덩달아 눈물을 펑펑 흘리는 모습이 선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2주간 매일 영어와 우리 문화를 가르쳤던 현지인 아이들을 두 번 다시는 만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일 것이다. 현지인들마저도 접근하기 힘든 물도 없고 전기도 없는 섬 한가운데 사는 아이들을 우리는 아직도 그리워하고 기억하고 있다. 킴은 봉사활동 이후에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 공구 수입 회사를 경영하다가, 예전에 알고 지냈던 후배가 라스로팔로스 섬에서 NGO로 현지 간사를 지내고 있자, 킴이 직접 후배를 통해서 인프라 사업에 뛰어 들어 왔다고 한다. 킴은 이 곳 사업 확장을 통해 대단한 수입을 벌고 있는 거 같았다. 현지인들의 잦은 공공시설 약탈로 인해 계속 해서 싼값에 수입을 하여 현지에 공급하는 방법으로 수익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킴의 도움에 헤메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킴은 개인 사정으로 이제 그만 돌아가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티티마일라우 마을(Titimailau)에 가서 지원 사업을 위해 다시 방문할 건데 이번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저번에도 이야기 했었지만 다시 제안을 했다. 그러나 그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곳은 우리의 과거에 이미 완료된 여행이며 만약 지금 가더라도 모든 것들이 새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기억을 수정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고 나는 내전이 일어난 지 18년이 지났으니 여기 호텔처럼 뭔가 많이 안달라졌겠나 하는 생각만 가지고 알겠다라고 엉뚱한 답변을 했다. 킴과 작별인사를 하고 이제 정말로, 드디어 본사로 들어간다. 2층 건물에 마치 조그만 어학원 같은 곳이다. 건물을 이곳 저곳 둘러볼 사이도 없이 바로 약속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던 아랍인 직원이 나를 사무실로 이끈다. 현지 치안상태가 너무 불안정해서 아시아인들 특히 화교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에너지 사업 참여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대부분 현지인들은 결핵 보균자이며 이곳 수도에서 나름 잘 살다는 시장도 기생충에 노출되어 있다고 그는 전해준다. 주변 섬들은 독립한 라스로팔로스 섬을 증오하고 있으며, 이는 이곳 바닷가 부근에 천연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18년 전 실패한 반 독립파 민병대 세력들이 마을 곳곳에 흩어졌는데, 이 때문에 마을마다 라스팔로스 섬의 현 정권에 대한 입장차가 너무나도 다르다. 이러한 실정에 우리나라 정부가 UN 평화 유지군 자격으로 파견 되었었다. 여기에 NGO의 긴급 구호가 유지군이 떠나도 계속해서 지금까지 UN과 함께 이 섬의 평화 안정을 지키고 있다. 이 때문에 현지인들은 우리나라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이라고 한다. 이번 천연 자원 사업은 이것이 불안한 치안 상태 속에서 다른 나라 기업 보다 우리나라 기업이 손쉽게 참여하게 된 이유라고 그는 전한다.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모든 업무를 마무리 하고 바로 전자문서로 상사에게 보고를 한다. 킴에게 연락하지 않고 택시를 타서 호텔로 돌아가는 밤길은 주황색 등불 그것 전부 다다. 유령도시같이 너무 밤길이 조용했다. 주황색 가로등에 비치는 도로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낮과는 달리 밤은 번화가를 벗어난 교외의 우리나라 같았다. 침묵은 택시가 돌길을 지나면서 흔들거림으로 깨뜨려 졌고 호텔인근 민박집들과 여러 식당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호텔 주변을 배회하지 않고 나는 택시에 내리자마자 본능적으로 방으로 향했다. 빛과 어둠, 존재와 비존재가 한데 뒤섞여 과거로부터 현재를 덮치는 일이 내일부터 시작될 거라고는 나도 상상 못했다. 스테판 킹(Stephen King)의 랭고리얼(The Langoliers)처럼 모든 것들이 과거의 정지된 공간에서 자꾸 현재가 조금씩 추억들을 어지럽히고 혼란스럽게 하고 갉아 먹는 듯 했다. 분명히 말하건 데 내가 있는 곳은 과거의 공간이다. 아니 여기만큼은 과거이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현재다. 힘들다…….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면서 호텔 직원의 도움으로 NGO측과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 길을 달려 수도에 있는 사무실에 있었나보다. 15분도 채 안되어 소형 트럭 한 대가 나에게 다가왔다. 간사는 생각보다 젊었다. 나보다 10살 아래인 것 같았다. 그는 현지인 소녀와 한명 대동했는데 나를 그냥 뚫어지게 처다보기만했다. 간사는 이년 전에 이곳으로 파견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이미 사내 팀원들과 안면이 있었다. 15년 전부터 여기 NGO와 우리기업은 계속해서 지원사업을 꾸준히 한 사이지만 간사들이 자주 바뀌고 구호 현장에 뛰어 들어가는 일이 잦아서 자주 한사람만 파고들어 만나보지는 못했다. 이 간사는 반듯한 정장차림으로 봤던 거 같았다. 단정한 머리에 앞머리만 살짝 치켜세운 잘생겼던 남자였었다. 지금은 빡빡 머리를 깎아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간사를 나는 봤다. 옷차림도 추리닝 차림에 빨래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얼굴은 현지인이 다 된거 같았다. 나 역시 이제 정장차림은 필요 없어 가방에 꾸깃 넣어버리고 가벼운 차림으로 입었는데, 그래도 이들의 옷차림과는 비교도 안 되게 하얀 섬광을 드러내었다. “안녕하세요?” 라고 영어로 말하는 소녀에게 내가 먼저 자기소개를 하였다. “로버트 영(Robert Young)이라고 해, 그냥 영이라고 불러, 만나서 반갑다.” “저는 포메노(Fo-me-no)라고 해요.” “영, 아니 로버트씨 저는 박진영이라고 합니다.” “?!” 그리고는 서둘러 잠시 차가운 분위기를 뒤로하고 마을로 가기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간사는 지금 출발하면 오후 늦게 도착할 것이라고 전하고는 급히 차를 가지러 잠시 갔다. “영 아저씨를 만나려고 선생님이랑 오전 4시에 일어나서 출발했어요.” “아침이라도 먹었니?” “네, 아침에 시장에 들러서 말린 바나나랑 코코넛 먹었어요. 우리 점심은 UN 캠프에서 먹을 예정이에요.” UN캠프는 봉사활동 시절 일주일에 한번 씩 방문했었다. 그때 동티모르 대학 청년들이 관광지로 발전시키기를 바라면서 구경시켜 준 곳이었다. 비포장도로를 2시간 달리니 곳곳에 사람 사는 곳이 보였다. 현지인들을 계속 스쳐 보내면서 달리는 차는 UN 직원들이 머무는 숙소에 다다랐다. 이곳 입구의 경비는 삼엄했고 주변 현지 아이들이 우리 차를 집중하고 있었다. 예전 간사님도 그런 말씀하셨지만, 이곳 아이들에게 무언가 호의를 베풀어주면 우르르 몰려서 달려들고 그러다가 몇몇 아이들이 여행객의 물건을 소매치기 해간다고 했다. 캠프 주차장에 내린 후, 간사와 포메노와 함께 나는 부둣가에서 그들이 준비한 도시락을 먹게 되었다. 노란 밥 위에 향신료를 듬뿍 바른 닭다리 한 조각이 놓여있었다. 밥을 씹으면 꼬들꼬들한 식감과 함께 카레향이 묻어 나왔다. 선착장 끄트머리에 앉아 혹시나 밥알 하나라도 바다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먹었다. 발아래에 보이는 다양한 색깔을 지닌 물고기들을 보면서 먹기 위해서다. 그래도 살짝 푸르고 투명한 바다 속에 나는 빠져들어 갈거 같았다. 이 지역을 추억으로 떠오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투명한 바다다. 감탄사만 절로 나오지 특별한 말없이 밥을 먹다가 포메노가 침묵을 깨뜨렸다. “영, 나 이거 처음 먹어봐요.” “?!” 하긴 긴급 구호하는 단체가 이런 비싼 음식 까지 일일이 이들에게 챙겨 줄 수 없을 것이다. “마을 사람 모두에게 이 도시락을 사주기에는 어렵겠지? 아마?” 뜬금없이 간사가 끼어들어, “그렇죠, 하지만 무엇보다 쌀 지원에 대해 저희들은 증오해서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 섬에서 자립으로 쌀을 생산할 수 없는데, 몇몇 구호 단체의 쌀 지원 이후 화교 상인들이 오지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일주일에 한번 달러로 그들에게 비싼 값에 팔고 있죠.” “쌀 맛에 눈 뜬 거군요. 그럼 이들의 주식이 뭡니까?” 간사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뒤, “이들 주식은 옥수수였습니다. 밭을 일궈서 하고 있죠. 지금 부유한 마을은 커피생산으로 대신하고 달러를 벌어 화교들이 빌리 섬을 통해 수입한 쌀을 구입해 먹고 있습니다.” “15년 전에 쌀 파는 화교를 봤어요. 아직도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팔러 다니는 군요.” “현대화된 도시 두 군데와 그 주면 마을을 제외하고는 화교들이 문화를 잘 이용해 먹죠. 현지 문화 자체가 통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마을 간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아요. 포르투칼어, 영어, 테툼어 그리고 인도네시아어도 써요.” “콩가루 집안이군요.” 간사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이들의 문화를 이해해야해요. 역사를요.” 속이 좁은 티를 내지 않고 말없이 있다가 간사의 인도로 다시 차에 오르게 되었다. UN 캠프를 빠져나와 다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동안 간사가 그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이미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려 했지만, 그대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이들이 빌리섬과 주변 섬에 대한 독립 전쟁을 벌이기 이전에 영국과 포르투칼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었다. 해방 뒤 독립을 위한 내전은 그야말로 그들에겐 카운터 펀치였다. 대부분 집들이 다 파괴되고 불탔는데, 결정적으로 공공시설물 특히 전선이랑 변압기를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 팔아버렸다고 한다. 이게 악순환이었다. 국가의 법이 이들 전부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큰 도시를 중심으로 주변부만 효력이 있어서다. 이 국가의 법도 창가를 통해 가끔씩 보이는 흰색 자동차에 적혀있는 UN, 그 뿐이었다. 시장에서 잠시 내려 이 곳 저곳 구경했다. 시장 길가에서 동전을 정해진 빗금 가까이에 던져 선에 닿으면 상대방 동전을 전부 뺏거나 그렇지 않으면 던진 뒤 가장 선에 가까운 동전의 주인이 손바닥을 대서 상대 동전이 닿으면 뺏는 게임을 현지 아이들이 하고 있었다. 아주 익숙한 게임이었다. 이곳 시장은 라스팔로스 섬에서 제 2 도시이고 곳곳에 전봇대도 보이는데 아마 간사가 말하는 최악의 환경 조건의 지역은 아닌가 보다. 마치 이 곳은 옛날 재래시장을 보는 거 같았다. 15년 전 생선을 그냥 땅바닥에 갖다 놓고 파는 상인이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고국에서 온 사람도 봤는데, 그 여자는 더위에 지쳐 우물터 부근 큰 돌 위에 앉아 있었다. 반가워 말을 걸어 보았지만 나의 외모에 그녀는 상당히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럴만하다. 나는 황인이 아니다. 나는 익숙하게 그녀에게 작별인사하고 포메노와 함께 바나나 말린 과자와 인도네시아 분말차인 에너젠을 구입하였다. 간사에게 혹시 삼발 소스는 있냐고 하니 웃으면서 사무실에 많다고 했다. 포메노는 과자에 관심이 없었다. 15년 전 아이들은 과자 달라고, 음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거지처럼 구걸했었는데... 그녀를 끌고 주차장에 빠져 나온 간사의 차량에 올라탔다. 비포장도로와 비탈길에 심한 멀미를 느꼈다. 한참 뒤 간사가 나를 위해서 멈췄나 싶었는데, 내리더니 바깥에 고장이 난 차량을 발견하고 현지인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잠시 뒤 간사가 돌아와서 현장상황을 나에게 보고했는데, 차가 가축을 쳤다고 했다. 사람들이 기사를 현장에서 구타하는 것을 간사가 뜯어 말렸다고 했다. 수도에서 출발한지 6시간 뒤, 해가 벌써 저물려고 할때서야 티티마일라우 마을에 도착했다. 포메노는 차량에 내려 집으로 갔다. 나는 이곳 까지 인도해준 간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그의 일행들과 현지인 간사를 만나 본격적인 지원 사업을 저녁 식사한 뒤 무려 3시간 논했다. 겉보기에는 서른 되어 보이는 스무살의 현지인 간사가 나를 이틀 지내게 될 숙소로 안내했다. 그곳은 그대로였다. 바로 15년전 2주간 씻지않고 촛불에 의존하면서 동료들과 반성의 시간과 다음날 일정에 대한 준비를 밤새도록 했던 곳이었다. 팀원 모두가 교육봉사를 위한 열정이 지나쳐서인지 두 팀간의 갈등이 시간이 갈수록 극에 달했었다. 킴과 나는 공식적인 행사이외에는 팀원 전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거나 주변 지역 여행이라던지 밥을 짓는 거 까지 새로 팀을 짜 기존의 팀 체제를 무너뜨리는 초강수를 둔적이 있었다. 갈등과 해소는 바로 이곳에서 항상 시작되었다. 나보다 1팀장이었던 킴의 냉철한 판단과 자기 팀원에 대한 설득력 그리고 리더십이 강했었다. 그래서 그가 우리 팀에게 손을 많이 내밀었었다. 나는 회관 밖을 나가 맑은 하늘 위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을 보았다. 어느 곳을 가도 볼 수 없었던 별들이 이곳에는 보인다. 투명하면서 푸른 바다를 쳐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점점 바다로 빠져들어가버리듯이 밤하늘을 바라보면 볼수록 우주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았다. 우주속의 하나의 존재자로서 나는 미세한 운동자일 뿐이다. 지금 여기서 나의 위치는 정말 정글을 좌지우지 하는 위치에 있지만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면 일개의 프로그램화된 시스템 파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우주를 바라보는 가운데서는 이런 것들이 뭐가 필요한지 잊게 만들었다. 내가 서있는 넓은 공터에서 일주일만에 빗물을 맞으며 모든 팀원들과 샤워를 했을 때는 우주와 비와 메말랐던 땅들이 하나가 되어 우리 갈등도 지구 속으로 스며들어 갔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그렇다 우리도 여기 현지인들처럼 불완전하고 늘 변화해 갈 것이다. 그것을 모든 것들이 채워주면서 어떤 방향으로 가든 진화해 나갈 것이다. 거기에 따른 새로이 생겨나는 오차들...

간사들이 준비한 아침은 일부러 밥에 물을 많이 부어 우리나라 밥처럼 찰 지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여기에 나와 간사들은 삼발소스를 비벼 먹었다. 이 마을 할머니의 도움으로 장작패고 우리 고유의 그것과 같은 가마솥에 불을 때워 찰진 밥을 만들어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간사님께서 삼발 소스를 밥과 비벼준 이 후가 신비한 맛의 첫 번째 경험이었다. 간사들과 함께 안내를 받아 마을을 둘러보았다. 15년 전과 많이 변했다. 이제 나무 집은 보이지 않고, 건물 내부의 바닥은 더 이상 맨 땅이 아니었다. 전기는 여전히 들어오지 않지만 물 걱정을 전혀 하지 않으니 생존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15년 동안 우리 기업의 작은 지원을 바탕으로 한 NGO의 현대화를 위한 노력의 결실을 보고 있는 거 같았다. 벽에 악어와 바다를 우리 팀원들이 페인트칠 하면서 그렸던 그림이 여전히 진하게 남아 있었다. 최근 대학생 봉사단원들이 덧칠 했다고 한다. 우리의 추억은 그들의 추억이 덧칠 되면서 영원히 이곳 사람들과 우리들 모두 유지된 것이다. NGO 간사의 말로는 전기만 해결되면 사실상 자신들이 이곳에서 지원할 필요는 이제 없다고 하였다. 간사는 이들의 평균 수명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15년 전만 하더라도 이들의 평균 수명은 30살 되지 못했다. 우물 사업과 함께 1달러를 NGO에게 현지 가정이 주면, 빗물 공급 설치 해주는 사업을 오래 전부터 했었다. 이 물은 햇빛을 비춰 자연 소독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윗물만 사용한다고 들었다. 가축을 NGO가 빌려주고 다시 이자 대신 가축 새끼 몇 마리를 받아 다시 NGO가 경제력 없는 현지인에게 되 빌려주는 가축은행 사업도 이 마을은 이미 완료 된지 오래인거 같았다. 사실상 여기는 간사들과 내가 판단하건데 우리 기업이 해줄 생존 지원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상태였다. 통혼도 이루어지고 있어서 빌리섬 사람이 여기 마을에서 살기도 하였다. 이제 이들은 경제적으로 자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기업이 지원하게 될 또 다른 곳을 방문하러 포메노와 간사들과 함께 차를 타고 나섰다. 더 멀리 더 깊이 오지로 갈 줄 알았는데, 시내를 향해 갔다. 2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포메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영은 가본 적이 있어요?” “옛날에 여기 학교에 페인트 칠 해주고 고기 얻어먹은 적이 있지.” “여전히 이곳은 다른 마을에 비해 잘 살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 수에 비해 영어교육이 너무 부실해요. 여기 마을 대표 만난 뒤, 다 같이 학교에 방문하시고 자세한 이야기 나누죠.” 간사와 나와 마을대표 그리고 현지 대학교 출신 청년들이 모인 자리에서 교육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이들이 우선적으로 가장 원하는 것은 영어 교육인 거 같았다. 학교 현장을 방문한 뒤, 이들에게 고기 대접을 받고 커피를 마시면서 계속되는 지원 사업 확대 요구를 계속 나는 듣기만 했다. 나는 지금 당장 이들에게 사업을 시행할 수 없다고 말하며 상부에 보고해서 평가 후 다른 직원들 여럿이 올 것이라고 했다. 이것저것 메모도 해놓고 녹취도하고 사진도 찍었다. 마을에 돌아와서 포메노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젊은 현지 청년들이 벌이는 마을 축제를 구경했다. 마른 근육으로 이루어진 청년들의 축구와 투계 현장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이들 청년들 대부분은 나와 함께 2주간 보냈던 아이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 누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친구들도 평소와는 다르게 밭일하는 시간을 조금 내어 내 앞에서 하는 거라고 간사가 귀띔해준다. 저녁이 되어 혼자 촛불 앞에 조용히 앉아 동네 개들과 같이 장난치고 놀고 있는 와중에 돌이 지붕을 치는 소리를 들었다. 개들이 놀라 짖어 대고 계속해서 돌로 던져 지붕 치는 소리가 들린다. 지붕에 구멍이 날거 같은 소리였다. 뭔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자극했다. 때마침 현지인 청년 한명이 다급하게 영어로, 다른 마을 사람들이 당신이 머물고 있는 회관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으니 촛불을 끄고 나오지 마라라고 전했다. 청년들이 모여서 간사들과 함께 돌을 던진 자를 찾으려고 배회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외치는 소리는 심각성을 더욱 고조시키게 했다. 2시간이 지나서야 소동이 잠잠해졌다. 간사는 두려움의 떨고 있는 나에게 다른 마을에서 온 청년들의 소행인데 어느 마을에서 그리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어제 저녁에 있은 사건 때문에 두려운 나머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줄 알았다. 이름 모를 파충류의 울음소리에 혼자만의 지루한 시간을 덜었던 기억 밖에 나지 않는다. 천상의 노래 소리에 눈을 뜨고 햇살이 창밖에 들어와 나를 깨웠다. 촛불은 이미 다타 버린 상태였다. 아까운 촛불……. 나는 소리를 따라 회관 밖으로 나가 교회 앞 뜰 마당을 향해 반쯤 눈이 감긴 상태로 바라보았다. 포메노와 함께 일부 아이들이 하얀 드레스를 입고 합창을 하고 있었다.

 "주~님 나를 지켜줘~

어디든지 내가 가는 길 주님 내 우편에 계시네~에~~

주~님 나를 지켜줘~

내가 무엇을 한다하더라도 주님 사랑 멈추지 않으리~이~

나의 구세주~ 그리고 나의 수호자~아~, 내 옆에 그가 있네~

그는 나를 편안한 곳으로 인도해~

그의 사랑 결코 멈추지 않으리~"

다른 아이들과 함께 포메노도 같이 나를 보면서 수줍은 소녀처럼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번 주말 예배 때 세례를 받을 소녀들이라고 간사가 이야기 해 주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별일 아니라는 듯이 어제 있었던 일을 뒤로하고 사업이야기를 계속 진행해 나갔다. 이들과의 구체적인 지원 방향은 나의 보고가 고국에서 진행된 후에 총괄적 업무를 맡는 간사대표와 함께 이루어 질 것이다. 다음 파견될 간사들과 NGO 이사장과 우리 기업 간부 그리고 정부 고위직이 방문하여 공식적으로 언론에 알려진 뒤 사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우리 기업은 이미 경제적 자립 발판을 마련한 티티마일라우 마을에게 영어 및 자국 대학 등록금 지원사업을 벌일 것이고 우수한 성적을  거둘 경우 우리 고국의 대학 유학 지원을 정부와 함께 추진하게 될 것이다. 여기 아이들이 모든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되면 우리 기업이 현지 에너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현장에 최선의 조건으로 취업하게 된다. 우리 기업의 일원이 될 것이다. 국가는 15년 전부터 이를 위해 평화유지군 파견부터 봉사활동 직원 파견을 통해 세심하게 이들을 우리의 이질감에서 안정적 존재로 만들어 내게 했다. 간사들과 현지 대학생들의 아주 큰 기대감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이제 이들이 선진국 기업에 취업해서 일을 할 수 있는 농장이 이곳에 만들어 지게 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한결 같지만 어찌되었건 서로 상호간의 크나큰 이득을 취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서로가 좋은 게 좋은 거다. 모두가 웃으면서 끝나지 않는가? 점심을 먹고 다시 떠날 채비를 준비했다. 회관 창가에 나를 빤히 보는 아이들이 비쳤다. 친하게 지내지도 못했고 시간도 제대로 내줄 수 없어 아쉬운 마음과 함께 아이들을 뒤로하고 회관을 빠져나와 간사의 차량에 탑승했다. 포메노가 차장 밖에서 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나를 잊지 마세요.” 포메노의 어른스러운 말에 나는 “응. 포메노, 이름 잊지 않을께.” 오랜 시간이 지나서 해가 질 때가 되자 다시 수도에 도착했다. 인근 바닷가에 UN직원들이 자주 찾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이름 모를 거대한 생선구이를 먹으면서 간사 커플과 같이 사적인 이야기를 아주 그냥 훈훈하게 대화 했다. 이곳에서 운전을 함께한 남자 간사가 “이번에 사업상으로 오신 일 보다 오고 가고 하면서 그냥 생각하신 것들이 더 많겠어요.” “네, 이번 여행은 사업상의 일보다 저의 사적이면서 공적인 생각이 더 길고 중요한 작업으로 채워진 거 같습니다.” “어려운 말씀 하시는데 저도 뭐 이것저것 주워 읽은 말로 조심스레 말하자면, 부조리해야할 과정들이 그러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뭐, 그런 셈이죠. 15년 전의 기억들과 응답했으니...” 나의 추억거리가 아주 좁은 목적을 중심에 가려 펼쳐질 수 없을 수도 있었다. 간사들과 해어지고 호텔로 들어가 침대에 그냥 벽보고 누워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너무 짧은 시간들이 큼지막하게 사건들로 파편화되어 중심이 없는 거대한 구조들로 다시 언젠가 어느 곳에서 떠올릴 것이다. 2팀장이었던 나는 봉사활동이 종료된 후 한달동안 밤을 새면서 팀원들의 보고서를 편집하여 두꺼운 책을 만들어 내었었다. 그 메인 사진의 해맑게 웃는 여자아이는 이번 여행에서 있었는지 없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자주 그 책을 꺼내봐서 이젠 익숙해져 버린 얼굴... 또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상사로부터 이번 주 금요일까지는 푹 쉬라고 나에게 전달한다. 덧붙여, 주말 팀 회의에 참석하고 보고서 작성해라고 친절하게 편의를 제공 받는다. 깊은 한숨을 쉰 후 전화를 끊고 현지인 가이드를 기다린다. 아스만 씨의 호텔에 가기 전에 여행사가 제공하는 관광 프로그램에 맞춰 하루 일과를 보내게 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코스를 방문했던 나에게 전혀 새로움이 없는 여행으로 느낀다. 라스로팔로스 섬과는 달리 빌리 섬의 땅은 국가에서 직접 유지하는 노력을 통해 관광객에게 대자연의 일부분을 감동으로 선사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을 사랑하지 않는다. 라스로팔로스의 원시적인 땅에서 추출된 위험한 오염 자연이 오로지 나의 발과 소통하여 하나가 될 수 있다. 방금 만난 여자 가이드에게 유머와 가십거리를 통해 만담을 나누고 커피도 같이 마시면서 시간을 때운다. 여자 가이드는 안내할 기사까지 데리고 온다. 아쉽다. 그래도 서로 통할만 한 주제로 아는 척 하면서 이들과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나는 유도하고 노력한다. 크라켓, 영화 그리고 클럽 같은 걸로 주저리 댄다. 1시간이 지나서야 관광객들이 게이트를 통해 빠져 나온다. 이들과 함께 나는 빌리섬의 주요 관광지를 다시 둘러 볼 것이다. 현지 출신 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안내하는 빌리섬은 우리나라 입장을 들어 설명한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문화가 유행이니, 현지인들은 우리를 우러러 본다는 것, 빈부 격차가 이곳은 심하다는 것 그리고 치안이 불안정 하고 강간과 살인이 많다고 말한다. 왠지 저렇게 말하는 현지 가이드의 심정을 나는 동감을 한다. 나도 특별한 계기로 딱 한번 해외 출장 오신 분들 관광 대접해 주기 전에 그녀가 한말을 비슷하게 말한 거 같다. 어떻게 보면 이들에게 굽실댔다. 지금 관광객에게 주의 사항과 현지 실정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고 있는 저 가이드는 심한 왜곡에 대한 억울함이라든지 자존심이 꺾여서 속이 상하는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다. 관광객들과 같이 빌리 섬의 유명한 사찰을 구경한다. 원숭이들이 관광객들의 소지품들을 노려보고 있다. 가이드는 항상 주의해라라고 당부하면서 사찰을 이끈다. 정작 관광객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수평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절벽인 거 같다. 너도 나도 할 거 없이 사진을 찍어 댄다. 사진만이 평생 남는다. 싸고 실속 있으면서 안전하고 편안한 관광 일정 저녁에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이국적인 음식과 쇼핑만이 남을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는 빌리 섬 최대의 쇼핑 센터에 간다. 쇼핑센터 근처 식당은 그야말로 주의를 받았던 현지 분위기와는 달리 현대적이고 거대한 시설이다. 이들의 음식은 관광객의 입맛에 맞춰진 안전한 음식들로 구성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관광객들 서로 아는 사람끼리 어울려 지낸다. 이 새로운 사람들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심지어 현지인과 대화하기를 두려워한다. 어느 누구도 현지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원치 않는다. 좋다 나쁘다 그것이 다다. 나는 그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들처럼 이곳만큼은 나도 모든 것을 다 잊고 이제 그저 프로그램에 맞춰 즐기다가 피로를 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위치는 여기 관광객들 사이에서 애매하게 놓여있다. 나는 혼자다. 여기서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나는 오히려 외롭다. 가이드와 기사는 관광객들과 함께 식사 하지 않는다. 나는 이들 사이에서 마저도 이방인이다. 차라리 혼자 여행할걸 그랬나 보다. 경비 관리 귀찮음이 나에게 다가오는 이질감들을 차단시킨다. 오로지 친숙함 선에서 이질감들이 안정감으로 이들과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거부감이 나에게 강하게 몰려오나 이미 프로그램과 나는 서로 계약을 한 상태다. 생각만큼은 자유롭게 이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나는 위험해 처해질 거지만 이에 따른 만족을 누릴 각오가 되어 있다.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고 혼자서 사색을 하며 이방인으로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겐 욕심이 있다. 돈을 내지 않았는가? 사소한 욕망에 안전함과 귀찮음이 더욱더 나를 화폐와 함께 이끈다. 음식점 인근 백화점에 머무르다가 다시 한참을 가더니 더 큰 백화점으로 안내한다. 이곳 주변은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그야말로 번화가다. 가이드가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무려 2시간을 준다. 관광객들은 너도나도 빌리 특유의 쇼핑 문화를 만끽한다. 나도 쇼핑센터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화장품 정도 구입한다. 쇼핑센터 전체를 둘러 본 다음, 밖으로 빠져나가 현지인들이 밀집되어 있는 거리를 나선다. 현지인들의 특유 암내가 느껴진다. 이들이 먹고 있는 전 세계의 동일한 레시피로 구성된 패스트푸드마저 신기해 보이고 특별해 보인다. 거리 상점의 모든 것들이 진품을 대체할 수 있는 거 같다. 우리나라 음악과 영화 그리고 게임 시디가 가품으로 절반 가격도 채 안 되어 있다.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특산물 커피 한통 구입하고, 라스로팔로스에서 15년 전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도 자주 마셨던 에너젠도 샀으며 삼발소스는 꼭 잊지 않고 밥에 비벼 먹기 위해 구입한다. 이들 음식들이 가져다주는 기억은 빌리의 기억이 아닌 라스팔로스의 기억이 될 것이다. 쇼핑을 마친 후 관광객들을 숙소로 먼저 가이드는 안내하고 나서 나를 아스만 씨 호텔로 인도한다.

기나긴 여정이 서서히 끝을 다가온다. 출장 여행이 최종 목적이었고 그것을 나는 기억과 국가 아니 모두를 위해 목표로부터 달성했다. 그러나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여전히 오랜 시절의 추억뿐이다. 여행 중 나에게 가졌던 생각들 대부분은 힘들지만 충실하게 관계했던 기억들에 대한 흔적들이 채워져 있었다. 내가 한 행동은 전체 시간에서 짧지만 국가와 기업은 엄청난 시간을 계획하고 공들여 왔다. 이제 나는 잘 살 것이다. 기업도 더 커질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국가도 더 부강해 질 것이다. 그들도 인프라를 갖춰 잘 살 것이다. NGO도 또 다른 실적을 내서 더 많은 활동을 계획하고 도와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잘살게 될 거다. 거짓말... 이거 다 거짓말이다.

이 모든 일들이 처음 라스팔로스에 발을 디딜 때 근원이 창조되었다. 그들과의 순수한 만남은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꼈고 우리들만이 사는 세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희망이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도와준 것들이 이들에겐 강력한 영향력으로 그들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우리가 한일은 단지 아이들을 위해 교육봉사하고 페인트칠하고 가끔씩 할일 없는 모습들을 보여준 것뿐, 그러나 이들은 차츰 우리들에게 나가왔고 우리는 그들과 2주 동안 다른 세상에서 먹고 자고 일상생활을 보낸 것이 전부다. 봉사활동이 가장 인기 몰이를 했던 시기, 우리도 단지 거기에 따라 갔을 뿐이었다. 마을을 떠나는 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에는 이들과의 만남이 영원히 기억 속에 묻혀야하는 절망감에 따른 슬픔이 담겨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 마을을 떠난 뒤 우리가 작성한 보고서 양식의 책자는 도서관 한구석에 놓여있다. 아름다운 이야기 가운데 묻어나오는 걱정과 희망은 이들을 온전한 삶으로 이끌어 가야한다는 절박한 요청도 간직되어 있다. 라스로팔로스에 대해 온전하게 소개된 책이 한권 밖에 없을 정도로 나라 이름도 우리 국민들이 잘 모르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봉사와 사업을 위해 드나드는 곳이 되었다. 모두는 서로 15년이 지나도 여전히 희망을 찾고 있다. 우리는 변했지만 말이다. 봉사 단원들이 빌리섬에 도착했을 때 다른 봉사단원들이 힘든 모습으로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탑승을 위해 대기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우리들의 순수한 마음과 함께 했던 봉사활동 이력서가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몇몇 정답 일부분 단어들로 떠오른다. 글로벌 시대, 글로벌 리더십, 글로벌 인재... 나 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그들의 이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든 다시 찾아올 것이다. 리더와 인재로서는 아닌 상태로...

 

 참고 문헌

 

<이 소설을 창작하기 전아래의 문헌들을 읽거나 감상하고 썼음을 밝혀두기 위해 참고 문헌을 나열해 보았다.>

 

Attridge, Derek. The Singularity of Literature. London: Routledge.                2004. Print.

King, Stephen. The Langoliers. NY: Viking, 1990. Print.

Malick, Terrence, dir. The Thin Red Line. Writ. James Jones.                Hans Zimmer. 20th Century Fox, 1998. DVD-ROM.

Softmax. War of Genesis 3 Part 2. Softmax, 1999. PC.

로버트 영. 『백색신화』. 김용규 옮김. 부산: 경성대학교출판부. 2008.

손봉숙. 『동티모르의 탄생 나는 한편의 휴먼 드라마를 보고 왔다』. 서 울: 답게. 2002.

알라이다 아스만. 『기억의 공간』. 변학수, 채연숙 역. 서울: 그린비.                2011.

알랭 바디우. 『사랑 예찬』. 조재룡 옮김. 파주: 길. 2010.

지구촌나눔운동. 『나를 잊지 말아요.. = Iebele haluha ha'u..』. 서울: 지 구촌나눔운동.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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