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 아트리지(Derek Attridge)의 문학의 특이성(The Singularity of Literature) (1/2) 강의록

2012. 7. 18. 15:17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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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특이성은 문학적 도구주의를 거부한다. 문학 형식의 착취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신비평같은 형식주의와도 상반된다. 객관적이고 초월적 기반 속에 이미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특정계급과 위치와 훈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형식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고 문학적 배제를 통해 선입견을 배제할 수 있는 자엊ㅁ을 가지고 있긴 하다. 문학의 특이성은 사건이다. 이는 타자성에 의한 윤리적인 것이며 이것이 바로 새로운 것이라고 아트리지는 주장했다. 형식의 차원에서 말이다. 이 새로운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새로움을 넘는 타자성이다. 만남을 통한 사건성으로서 관계를 가진다. 타자는 기존의 세계관을 무너뜨리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문학은 관계적 형식으로 문학과 관계는 가깝다. 문학의 특이성은 타자와 새로운 것을 만나기 위해 전보적인 행동이다. 이것은 반 자본적이며 반 순응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은 창의와 창안으로 이루어 졌다. 문학은 거울이며 램프라는 말을 한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고전주의와 18세기 문학에서의 모방론을 통해 어떻게 하면 선배의 생각을 잘 따르를 까하는 고민을 한다. 또한 세계와 정신성을 표현하는 낭만주의는 문학에는 이미 현재를 넘는 차원이 있는 정신으로 피추어 진다. 천재로서 만을 중심으로 이루어 진것이다. 기관없는 신체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특정한 좌표 및 배치를 시행한다.

          창의적이다라고 하는 것을 바디우 사유를 빌리면 그러나 우리는 도구로 쓴다는 논문으로 생각되기 쉽다.논리로서 꾸려나가지 실천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부분이다. 문학의 특이성을 이는 죽인다. 타자와 새로움을 집어넣는 방식은 혁신적이다. 문학에는 일반성과 특수성이 존재하는데 이를 문학이 매개적인 방식으로 취한다. 창안과 특이성과 타자성이 타자와만나는 사건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만나는 것, 그것이 바로 윤리다. 뭔가를 행하는 게 아니라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기표와 기의 사이 분열은 문학의 언어이지 현실은 아니다. 문학의 개념이 바뀐다. 사고의 지형이 바뀌는 것이다. 민족적 문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나라안이 아닌 국경을 뛰어넘는 소설에게는 말이다. 민족의 은유는 님과 별이라면 이는 공동체의 도덕과 정신으로서만 해석 된다. 국어는 욕망과 환상의 대상이며 연구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가능 성의 조건 , 문학의 가능 성의 조건을 살펴봐야 한다. 텍스트적 읽기는 미국 사회의 양상을 볼 필요가 있다. 냉전시대 민주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에서 문학으로서 사회의 지평에 나갈 수 없이 억압되어 있었다. "문학연구에서 문화연구로"에 따르면 문학과 광고와 영화 모두는 텍스트로 되어 있다고 했다. 언어의 코드들의 결합물인 것이다. 텍스트의 효과 그 자체는 심오하다. 이와 상반되는 문학이란 이데올로기의 틈세를 보여주고 이데올로기적 관계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지로서 교묘히 기호를 배치하는 역할을 하긴하다. 브로큰백 마운틴에서 동성애자는 비 자연스러움에서 자연 같은 자연스러움과 결합되어 있다.

          창조라는 것은 글쓴다는 것의 창조이지 생각하는 아이디어로서 창조의 의미로 이 책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문학적 사건은 심리적이고 사회적이다. 주관적 경험이 없다. 텍스트는 써가면서 현실과 봉착되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관계와 구조의 문제를 지니며 우리의 세계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문학의 모든 경계를 배재할 것을 주장한다. 특이성은 물질성과 관계성이 합쳐진 것이다. 색다르다는 것은 다른 사람하고 관계 속에서 파악할 때일어난다. 문학은 모순적이며, 매개적이고 상호적이다. 변화하는 문화적 체계를 지닌다. 한 인간, 한 사회 경제가 결정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결정들에 지닌다. 이를 중접결정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다. 문화와 법과 이데올로기와 경제 등등 원인이 보이지 ㅇ낳을 정도로 되어 있다. 이러한 부재원인은 수많은 것들이 주체를 결정하고 있음으로서 드러난다.문학의 특이성은 관계적이며, 새로운 것이 한계를 드러내서 창출해 내는 것이다. 주체를 스스로 통제하는 게 아니다. 관계속에서 야기시킬수 있는 계기를 설명해야한다. 매개는 타자와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특이하다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경험은 점의 연속 그리고 선의 연속으로 되어 있다. 내자신 존재를 흔드는 경험이다. 특수와 보편에서는 식상하지만 경험에서 직면할 때 특이성이 일어난다. 타자의 특이성과 존재의 특이성은 없다. 관계의 특이성은 형성양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근대는 마주치는 경험으로서 특수와 보편이 결합되어 있다. 추상의 폭력과 보편의 폭력이 지닌다. 벤야민이 말하길 역사는 거대한 연속체이다. 시간은 텅빈 시간이 되어버렸다.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 시간이 중요하며 목적으로 두는 시간으로 이는 목적에 볼모로 매여있지 않음을 말한다. 시간은 목적이외는 시간이 없다. 이상적 목적을 향해 돌아다니는 과정과 시간이 있음이다. 추상과관념에 의해서 살아간다. 40세 까지 의사와 교수 되겠다 되기위해 다른 행동의 시간이 없음과 같다. 서울에서 부산은 중간역이 없다는 것과 은하철도 999처럼 순간 순간 정착지어 경험하는 것과의 대조를 생각해보자. 표상의 물질성은 이데올로기다. 구조속의 타자는 우리안에서 균열에 위치한다. 가능성과 불가능성 속에서의 타자이다. 우리 안에서 일치한 길들여 지지 않는 소외된 타자인것이다. 기존 소재 활용으로 새로운 것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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