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 아트리지(Derek Attridge)의 문학의 특이성(The Singularity of Literature) (2/2) 강의록

2012. 7. 20. 17:54Literatu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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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창성은 기존의 것을 변경함으로서 생긴다. 독창적이라는 것은 미국안에서 독창성일 수도 있으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로서 사용될 수 도 있다. 기존의 문학의 장을 바꾸는 것이다. 독창성이라는 것은 기존의 시가 소설과 상반되게 바깥에서 문학의 장으로 표현된다. 흑인 남성의 개성문화가 보이지 않는 것이 미국 소설에서 드러나듯이 말이다. 하나의 작품은 작가의 개별 문화가 품는다. 그러나 이 개별 문화는 문학의 장으로 부터 품어져 있다. 그러나 이 문학의 장은 수많은 장으로 엃혀 있다. 문화의 장과 정치의 장과 경제의 장으로서 말이다. 즉, 문학은 중층 혹은 과잉 결정으로 관계한다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서 시대의 장들을 읽어내야 한다. 장들은 다른 장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관계적 자율성에서 말이다.새로운 예술은 창조 함께 또다른 제약을 제공하고 있다. 모더니즘 이후의 반감을 제기하고 있는 예를 알 수 있다. 사랑의 시선이 아닌 개의 눈으로 보면서 지각구조와 인식구조를 바꾸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형식 파괴 실험인 것이다. 이는 보수적인 신비평과는 상반된다. 문학의 장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 넓히거나 돕게 해야 한다. 

          문학적 규범에 낯선 것을 도입하는 것이 창안이다. 사건은 유동하는 기표로서 존재한다. 민감으로서 새로운 무안가가 창출된다. 문장자 문장 그리고 단어와 단어를 통해서 의미를 창출 하는 것이다. 내부의 모습과 한계를 극단적으로 밀어 붙인다. 기존의 재료 속에 이질 적인 것들을 도입시키거나 기존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 속에 있는 모순과 긴장들을 극대화 시킨다. 상황과 도덕은 타자에서 사건과 주체가 일어난다. 기호를 인식해야만 그 기호로서 생각을 한다. 그리고 태어난 사람 혹은 ㅇ외계는 그 기호라는 것을 알 수 없고 문자로서 인식 못한 상태이다. 그것이 의미장용으로서 일어나는 것이 사건이다. 수정된 의미는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전제이다. 데리다가 의미의 긴장 그리고 미끄러짐으로서 이것이 하나의 주류 즉, 모른다라는 사건이 필요하다. 의미는 끊임없이 갈등을 한다. 의미 없음에서 있음에서 어떻 사건이 일어나는 가를 주목했었던 것이다. 사건은 하나의 주체적 시각이다. 영화는 그러나 다양한 시각화로서 비인격적이다. 잠재성의 영역이 가능하다. 기존 관습을 관점과 시간을 달리해도 새로워 질 수 있다. 단순한 인식의 변화가 아니다. 문학의 생산과 소비관계는 텍스트 안에 텍스트로서 가치를 지닌다. 가치는 독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텍스트 안은 아무것도 없다. 잠재성이 문학 텍스트에 있고 독자에 의해서 창출된다. 공동체 관습과 지식과 의견은 도덕적이다. 이질적 존재를 수용하고 타자들이 들어가는 것일 때 말이다. 들어가는 구멍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윤리적이다. 문학은 또한 가치 중립적이다. 한 작가가 그 주변 시대 작가 관계에 의해서 특이성을 지닌다. 

          문학적 실체는 가변적이다. 언어적 형태는 시의 발현 형태 속에서 이루어 진다. 동일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달라져 보인다. 특이성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친숙성 속에서 낯섬이다. 특수성과는 다르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은 특수한 발현의 형태로서 전형적이다. 특이성을 다른 말로 하면 단독성이라고 할 수 있다.기존 규범이나 사회적인 관습에 대해서 위반함으로서 그 위반 자체가 규범화되고 그것에 대한 위반이 문학의 특이성으로 이루어 진다.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특이성의 끊임 없는 작동에서 이어져 내려 왔다. 하나의 문학작품이 다양한 형태로 띄는데 이를 통해 우연적 사건이 발생하기 도 한다. 오자와 탈자 혹은 편집자 의도로서 말이다.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이것도 인식된다. 

          버틀러는 수행을 함으로서 정체성을 만든다고 하였다. 리얼리즘은 하나의 효과다. 현실의 효과를 생생하게 보게하는 효과이지,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복사는 아니다. 효과는 작가에서 작품으로 넘어가면서 읽음으로서 그 힘을 느낀다. 어구와 상상 그리고 장르로서 말이다. 어구 체계도 된다. 작가는 출발점이 아니라 목적 경이 될 수 잇따. 작품에서 텍스트로 저자는 저자의의도를 생각할  필요없고 의도성은 생각해 줘도 된다. 저자의 죽음으로서 롤랑브르트는 텍스트 이후 작품은 근대 노동이며 재산이라고 하였다. 아우라 같은 것이 아니라 기존의 매트릭스에서 태어난 것 그것이 특이성이다. 뻔한 것들, 친숙한 것들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 것이다.

          형식과 내용의 2분법을 깨려하고 있다. 신 비평은 형식과 맥락에서의 대립이다. 흑백으로 나눈는 것은 상하관계도 포함된다. 즉각적 해성에 저항하고 거절해야 한다. 사회학으로 설명되어도 관리되지 않는다. 사건은 설명조차 되지 않는다. 문학은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사이에서 존재한다. 모순에 대한 상징적 해결방식으로서 부대화된다. 사회적 모순이며 해결할 수 없는 갈등과 대립하면서 존재한다. 문학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지식에 활용하되 판단 중지 시킴으로서 반성하고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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