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tur(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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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데이비스의 "레비나스 입문" 중심으로 주저리;; (2)
* 강의록을 바탕으로 정리해서 쓴 내용입니다. 현상학은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와는 다른 형식이다. 소쉬르의 언어혁명에서 기인한 구조주의는 데리다, 들뢰즈, 바디우 같은 사상가들을 낳았다. 현상학과 관련된 인물은 하이데거, 후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타자를 귀속 시킬 수 밖에 없다라고 주장하고 타자를 동일자로 귀속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포스트 구조주의는 주체 죽음 이후 주체는 무엇인가 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질료는 변화하면서 일면적이다. 질료는 외부의 대상으로 이러한 의식작용의 대상을 형상이라고 한다. 이라한 통합적인 인식 자용을 노에시스라고 한다. 자연적 태도는 자아와 세계가 대립되는 초월론적인 세계다. 세계 모든 것은 자아와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서 순간 멈출때 그 시점을 바라본다. ..
2012.02.15 -
콜린 데이비스의 "레비나스 입문" 중심으로 주저리;; (1)
* 강의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헤겔의 최종목표는 절대지혜다. 모든 나뉘어진 지혜들이 하나로 완성되는 지점이 그의 이상이다. 레비나스의 최종 목표는 타자성이다. 존재에서 존재라로 간다. 타자성은 타인과 출산성과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의 향유는 존재가 짊어져야할 몫으로 레비나스는 보았다. 앞서 말한 헤겔의 최종목표인 전체성은 모든 지식들의 완벽한 지점이라고 말하였다. 모든 것들의 관계성을 알게되고 부분과 전체가 하나가 되고 엮이는 것이다. 이와는 분명 레비나스와는 다른 사유이다. 존재자의 줌음은 유한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주장하였다. 현존재의 결단론적 혹은 결의론적 의지를 주장하였다면 레비나스는 가능성의 불가능 성을 주장하였다. 가능성의 한계를 드러나는 지점 즉 ..
2012.02.13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과 사무엘 베켓의 "고도를 기다리며"
* 강의록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들뢰즈의 감각은 정독적이며 지각적이다. 이는 예술이 된다. 정동은 나가 없는 상태로 우리 인식으로는 포착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레고리 잠자가 바퀴벌레가 되듯 이러한 되어가기는 나와 관련 없는 2개가 되어가는 것을 지각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은 이와는 다른 정동과 지각을 보유한다. 영혼과 플록은 논리적이고, 수사적이며, 이성적이다. 마치 탐정소설과 같다. 시작과 중간과 끝이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하나의 유닛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개연성은 그럴싸 하게 만든 개연성이 존재한다. 칸트는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맞딱드릴 때의 느낌을 숭고라고 하였다. 이러한 숭고심은 언어적이다. 하나의 장은 막과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작동원리 및 매..
2012.02.11 -
로버트 영의 "백색신화"와 웬디 브라운의 "관용"
로버트 영의 "백색신화"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은 68 프랑스 운동에서 시작했다고 대부분 알고 있으나 실제 이들은 알제리 출신이다. 즉, 알제리 출신에서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맞다. 프랑스 여성주의자는 대부분 유태인이거나 불가리아 인이다. 그러나 프랑스 페미니스트의 설정은 타자들이 아웃사이더를 설정한 것이 되는데 정체성이 모호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시민을 박탈 사실 이들은 박탈당한 자들이었다. 20세기 영국 소설 대부분 비주류였다는 것과 유사하다. 프랑스에 초첨이 역사는 이뤄지고 있다. 역사의 연속체는 결국 지배자의 역사에서 비롯 된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 자체가 소수자와 여성을 배재했었다. 역사는 정반합으로 흘거 간다고 하자. 그런데 이러한 정반합과의 사이에서 프롤레탈리아는 조직 노동자..
2012.02.09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 - 그린비
* 강의를 듣고 정리한 글입니다. 감각적인 것은 이성과 감성이 범주화 되어 있는 상태다. 이것이 잔재 되어 있는데, 이 것을 어떻게 배분하는 가? 에 의문을 지닐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몫을 나누는가가 더 맞을 지도 모른다. 재현을 하면 민중이 개입하는게 예술이다. 그러면 서로 평가 할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를 미학적 시각으로 본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학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것 처럼 사회를 분할하는 방식과 미학을 분할 하는 방식이 유사하다. 이를 테면 청소년과 이방인과 외국인과 노동자들은 말할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재현을 통해 참여를 한다? 그러면 몫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게 정치적인 것이다. 랑시에르는 평등이라는 것은 집합적 연대..
2012.02.07 -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와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 간단 코멘트 (강의록)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 현대의 삶은 직접적 삶이 아닌 재현이다. 이미지를 모아놓은 것이 아닌 사람의 관계에서 이미지에 의해서 매개되어 있는 것이다. 경제 시스템은 소외를 기초하고 있다. 그 소외가 순환적으로 생산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스펙터클한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거리가 있는 것이 거리가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사회가 되었다. 낯서는 것이 없어지며 모든것이 물질화 되어 있다. 모든 세계가 이미지가 지배하는 것이다. 소비는 환상이다. 스펙터클은 힘과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통제하는 수단 및 제도 그리고 기술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과학이 아니다.) 가상에 자신들은 모른다. 가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현실에 대한 회귀로 다시 가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탈리아의 발전은..
2012.02.05